세네카: 인생이 왜 짧은가


인생이 왜 짧은가 - 10점
루키우스 아니이우스 세네카 지음, 천병희 옮김/도서출판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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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짧음에 관하여 

마음의 평정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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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 정신 문화의 리더, 세네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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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짧음에 관하여

26 내 말 믿으시오. 자신의 시간을 조금도 빼앗기지 않는 것은 인간적 과오를 초월한 위대한 사람이나 해낼 수 있는 일이오. 그리고 그의 인생이 가장 긴 까닭은 주어진 시간이 얼마든 그것을 모두 자신을 위해 비워두기 때문이지요. 주어진 시간 가운데 놀리거나 이용하지 않는 것은 조금도 없으며, 남의 지배를 받는 법도 전혀 없지요. 왜냐하면 주어진 시간을 가장 알뜰하게 관리하는 그는 자신의 시간과 맞바꿀 정도로 가치 있는 것을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그에게는 주어진 시간이면 충분한 것이지요. 그러나 자기의 인생을 사람들에게 많이 빼앗긴 자에게는 주어진 시간이 부족할 수밖에 없겠지요.

 

47 철학을 위해 시간을 내는 사람들 만이 여가를 즐기지요. 그들만이 살아 있어요. 그들은 인생의 시간을 잘 건사할 뿐 아니라, 모든 시간을 자신의 인생의 시간에 덧붙일 줄도 알지요. 많은 세월이 그들 앞을 흘러갔지만 그들은 그 세월을 자기 것으로 만들었어요. 우리가 배은망덕한 것이 아니라면, 성스러운 학파들의 저 유명한 창시자들은 우리를 위해 태어난 것이며 우리를 위해 사는 법을 마련해두었소. 다른 사람의 노력에 의하여 우리는 암흑에서 광명으로 꺼내진 가장 아름다운 것들에게로 인도되고 있는 것이오. 우리에게는 어떤 세기도 금지되어 있지 않으니 우리는 모든 세기를 향해 다가갈 수 있어요. 그리고 인간적 허약함의 좁은 경지를 고매한 정신으로 넘어서고 싶다면 우리에게는 두루두루 돌아다닐 수 있는 기나긴 시간이 있지요.

 

50 부모는 우연히 주어지는 것이지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우리는 늘 말하곤 하지요. 그러나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계보(系譜)도 있지요. 여기 가장 고귀한 지성의 가족들이 있어요. 그대가 어느 가족에 입양되기를 원하는지 스스로 선택하시오. 그러면 그대는 그들의 이름뿐만 아니라 재산도 물려받게 될 것이오. 그리고 그 재산은 째째하고 인색하게 지키지 않아도 될 것이오. 그 재산은 많은 사람들에게 나눠줄수록 더 불어날 테니까요.

 

그들은 그대에게 영원에 이르는 길을 일러줄 것이며, 아무도 아래로 떨어지지 않는 곳에 그대를 올려놓을 것이오. 그것이 우리의 가멸성(可滅性)을 연장할 수 있는, 아니 불멸성으로 바꿀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지요. 영직(榮職)이든 기념비든, 명예욕이 공적인 결정으로 명령하거나 건축물로 세우는 것은 무엇이나 금세 무너지며, 세월을 살면서 파괴되고 소멸되지 않는 것은 아무 것도 없지요. 그러나 지혜가 축성한 것들은 세월도 해할 수 없지요. 어떤 세월도 그것들을 없앨 수도, 줄일 수도 없지요. 다음 세대와 그 다음 세대가 잇달아 그것들을 더 존경스런 것으로 만들 것이오. 가까이 있는 것은 질투의 대상이 되어도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은 거리낌 없는 경탄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지요.

 

61 그대는 더 고요하고 더 안전하고 더 중요한 세계로 물러나시오! 양곡이 인부의 속임수와 부주의로 손상되지 않은 채 양곡 저장소로 운반되고, 습기를 머금거나 열에 상하지 않고, 양과 무게에서 처음과 일치하도록 보살피는 일이 과연 이 성스럽고 숭고한 학문에 접근하는 일과 아무 차이도 없다고 생각하시나요? 이 학문은 그대에게 신의 실체와 의지와 성질과 형태가 어떤 것이고, 어떤 운명이 그대의 영혼을 기다리고 있고, 우리가 육신에서 해방되면 자연은 우리를 어디로 데려가는지, 어떤 힘이 이 우주의 가장 무거운 성분을 한가운데에 붙들어두고 가벼운 성분을 그 위에 떠다니게 하고 불은 맨 위로 가져가도 별자리들의 위치를 바꾸게 하는지, 그 밖에도 매우 경이로운 일들을 가르쳐줄 텐데도 말이오.

 

그대는 땅바닥을 떠나 마음의 눈으로 이런 것들을 보시오! 아직도 피가 뜨거운 동안 더 나은 것을 향해 힘차게 나아가야 해요. 이러한 생활방식에서는 많은 고귀한 학문이, 미덕에 대한 사랑과 실천이, 욕망의 망각이, 삶과 죽음에 관한 지식이, 마음의 안식이 그대를 기다리고 있어요.

 

64 많은 사람들이 같은 느낌을 갖고 있지요. 말하자면, 일하고자 하는 욕구가 일할 수 있는 능력보다 더 오래까지 지속되고 그들은 신체의 허약함과 싸우게 되지요. 그들이 노년을 부담스럽게 여기는 것은 다름 아니라 노년이 그들을 물러나게 하기 때문이지요. 법적으로 보면, 쉰 살부터는 아무도 군인으로 징발하지 않으며, 예순 살부터는 아무도 원로원 의원으로 부르지 않아요. 사람들은 법보다는 자신으로부터 여가를 얻기가 더 어렵지요.

 

서로 뺏고 빼앗기고, 서로 휴식을 망쳐놓고, 서로 불행하게 만드는 사이에 그들의 인생은 소득도 없이, 즐거움도 없이, 정신적 향상도 없이 지나가지요. 아무도 죽음은 안중에도 두지 않고, 저마다 멀찍이 떨어져 있는 것에 희망을 걸며, 사후의 일 - 거대한 분묘, 공공 건물의 헌납, 화장용 장작더미 옆에서의 검투 경기, 화려한 장례식 - 까지 대비하지요. 하지만 그런 사람들의 장례식은, 그들이야말로 가장 짧게 살다간 인생이었던 만큼 횃불과 촛불을 밝히고 거행되어야 마땅할 것이오.

 

 

마음의 평정에 관하여

70 나는 스승의 가르침에 따라 정치 생활에 뛰어들기로 결심했다네. 내가 관직과 그 휘장을 구하는 것은 자포와 속간 때문이 아니라 친구와 친지와 모든 동포와 전 인류에 더 봉사하고 더 큰 도움을 주기 위해서라네. 나는 기꺼이 그리고 단호하게 제논과 클레안테스와 크뤼십포스를 따를 각오가 되어 있는데, 그분들은 아무도 관직을 맡지 않았지만 남들에게는 그렇게 하도록 권유했다네.

 

그러나 충격에 익숙하지 못한 내 마음을 무엇인가 공격하거나, 내게 어울리지 않거나 - 무릇 인간의 삶에는 그런 일이 일어나게 마련이라네 - 또는 잘 진척이 되지 않는 어떤 일이 일어나거나, 하찮은 일이 너무 많은 시간을 요구하게 되면, 나는 다시 여가 생활로 항하며 지친 가축 때처럼 서둘러 집으로 돌아간다네. 그리고 내 인생을 도로 네 벽 안에 가두기로 결심한다네. "그토록 큰 손실을 적절히 보상해줄 각오가 되어 있지 않은 사람은 내게서 단 하루도 빼앗지 마라. 내 마음은 자신에게 침잠하고, 자신을 계발하고, 외적인 일 특히 남들이 인정해주기를 바라는 일을 해하지 마라. 공적인 업무나 사적인 업무에 관여하지 말고 평정을 사랑할 지어다."

 

99 학문 연구에 드는 비용도 자유민이라면 가장 투자할 만한 가치가 있기는 하지만 그것도 적정해야 하네. 셀 수 없이 많은 서책과 그 주인이 평생 동안 표제조차 다 읽을 수 없는 수 많은 장서가 대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책 더미는 학생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부담감만 줄 것이네. 수많은 작가 사이를 헤매는 것보다는 몇몇 작가에게 자신을 맡기는 편이 더 나을 것이네.

 

알렉산드레이아에서는 사십만 권의 장서가 불에 탔다네. 어떤 사람은 그 도서관을 왕이 베푼 선심의 가장 멋진 기념비라고 칭송할지도 모르지. 예컨대 티투스 리비우스는 그것을 왕들의 세련된 취미와 배려의 걸작품이라고 불렀다네. 하나 그것은 세련된 취미도 배려도 아니었네. 그것은 학문적 사치였네. 아니, 학문적 사치도 아니었네. 그들은 학문 연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과시용으로 책을 모았으니 말일세. 마치 기초적인 교육도 받지 못한 많은 사람들은 책을 연구 수단이 아니라 식당의 장식품으로 사용하듯이 말일세. 책은 필요한 만큼 사야지 장식용으로 사서는 안 되네.

 

106 자네가 왔던 곳으로 돌아가는 것이 뭐가 그리 어려운가? 잘 죽을 줄 모르는 사람은 잘못 살게 될 것이네. 죽음을 가지고 호들갑을 떨 것이 아니라 목숨을 싸구려 물건처럼 여겨야 할 것이네. 키케로가 말하기를, 우리는 검투사들이 수단과 방법을 안 가리고 살려고 하면 미워하게 되고, 죽음을 경멸한다는 것을 보여주면 좋아하게 된다고 했네. 우리도 마찬가지라는 것을 알아야 하네. 때로는 죽음에 대한 공포가 죽음의 원인이 되기 때문이네.

 

118 우리의 신()인 카이사르에게 날마다 제물을 바치는 언덕이 가까워졌을 때, 동행하던 그의 철학 선생이 물었네. "카누스여, 자네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가? 기분은 어떤가?" 그러자 카누스가 "저 가장 빠른 순간에 자신이 떠나고 있다는 것을 영혼이 느끼는지를 지켜볼 참입니다"라고 말하고 무엇인가를 알아내면 친구들을 찾아 돌아다니며 영혼의 상태가 어떻다는 것을 알려주겠다고 약속했다네.

 

보라, 폭풍 한가운데에서의 평정을! 영생을 누릴 가치가 있으며, 진리를 증명하기 위해 자신의 운명을 이용하고, 마지막 순간에도 떠나가는 영혼에게 물어보고, 죽는 순간까지만 배우는 것이 아니라 죽음 자체로부터도 배우는 마음을! 그보다 더 오래 철학에 전념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네. 그토록 위대한 인물을 우리는 금세 잊어버릴 것이 아니라 존경하는 마음으로 언급해야 할 거이네. 칼리굴라가 자행한 폭정의 최대 피해자인 고귀한 자여, 우리는 그대를 두고두고 기억할 것이오.

 

120 우리는 대중의 모든 악덕을 가증스런 것이 아니라 가소로운 것으로 보도록, 그리고 헤라클레이토스보다는 데모크리토스를 모방하도록 자신을 훈련해야 하네. 헤라클레이토스는 군중 사이로 들어갔을 때 울었으나 데모크리토스는 웃었기 때문이네. 전자에게는 우리는 모든 활동이 재앙으로 보였으나, 후자에게는 어리석은 짓으로 보였던 것이네. 따라서 우리는 모든 것을 가볍게 받아들이고 가벼운 마음으로 참고 견뎌야 할 것이네. 인생을 우는 것보다는 웃는 것잉 더 인간답기 때문이네.

 

129 우리는 마음을 너그럽게 대하고 가끔은 휴식을 취하게 해주어야 하네. 휴식은 마음의 양식이자 힘이기 때문이네. 우리는 밖에 나가 거닐어야 하네. 특 트인 하늘 아래서 신선한 공기를 마셔 마음이 기운을 차리고 고양될 수 있도록 말일세. 때로는 산책과 여행과 장소의 변화와 사교와 좀 세다 싶은 음주가 기운을 차리게 해줄 것이네. 가끔은 취하도록 마셔도 좋네. 술에 잠기는 것이 아니라 반쯤 떠 있도록 말일세. 음주는 근심을 쫓아주고, 마음을 밑바닥으로부터 끌어올리고, 여느 질병들처럼 슬픔도 치유해주기 대문이네. 포도주의 발명자에게 리베르라는 별명이 붙은 것은 그가 혀를 자유롭게 해주기 때문이 아니라, 마음을 근심의 예속에서 풀어주고 해방시켜주고 고무해주고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도록 대담하게 만들어주기 때문일세.

 

 

섭리에 관하여

162 너희가 행복하다고 여기는 자들을 눈에 보이는 쪽이 아니라 안 보이는 쪽에서 보게 된다면, 그들이야말로 비참하고 더럽고 수치스럽고, 그들이 사는 집의 벽처럼 겉만 번지르르하다. 그것은 견실하고 순수한 행복이 아니라 얄팍한 겉치레에 불과하다. 그들은 버티고 서서 마음대로 자신을 과시할 수 있는 동안에는 반짝이며 남을 속일 수 있다. 그러나 어떤 일이 일어나 그들을 혼란스럽게 하고 그들의 덮개를 벗기면, 그때는 외부에서 빌려온 광채가 얼마나 많은 추악함을 숨기고 있었는지 드러날 것이다.

 

나는 너희에게는 머물게 될 확실한 선들을 주었다. 그것들은 이리저리 돌리며 사방에서 자세히 살펴볼수록 더 좋아지고 더 커지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나는 너희에게 두려운 것을 무시하고 욕망을 혐오하도록 가르쳤다. 너희는 겉으로는 번쩍이지 않는다. 너희의 선은 안쪽으로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와 같이 우주도 외적인 것들은 무시하고 자신을 관찰하기를 즐기는 것이다. 모든 선을 나는 안에다 넣어놓았다. 행복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것, 그것이 곧 너희의 행복이다.

 

'하지만 슬프고 무섭고 견디기 어려운 일이 많이 일어나고 있어요' 나는 너희가 그것을 면하게 할 수 없었기에 모든 것에 대항할 수 있도록 너희의 마음을 무장시켰다. 너희는 용감하게 참고 견뎌라. 이 점에서 너희는 신을 능가할 수 있다. 신은 불운을 참는 것 밖에 있으나, 너희는 참는 것 위에 있으니 말이다. 가난을 무시하라. 태어났을 때만큼 가난하게 사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고통을 무시하라. 고통은 사라지거나 너희와 함께 끝날 것이다. 죽음을 무시하라. 죽음은 너희를 끝내주거나 다른 곳으로 데려갈 것이다. 운명을 무시하라. 나는 운명에게 너희의 영혼을 칠 수 있는 무기를 주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나는 아무도 너희 뜻에 반해서 너희를 붙들지 못하도록 배려해두었다. 인생에서 나가는 길은 열려 있다. 싸우고 싶지 않으면 도망쳐도 좋다. 그래서 나는 너희에게 필요할 성싶은 모든 것들 가운데 죽음을 가장 쉽게 만들어놓았다. 나는 영혼을 쉽게 사라질 수 있도록 급경사진 곳에다 세워두었다. 유심히 살펴보기만 하면, 얼마나 짧고 편리한 길이 자유를 향하여 나 있는지 너희는 보게 될 것이다. 나는 너희가 나갈 때는 들어올 때만큼 오래 걸리지 않게 해두었다. 인간이 태어날 때만큼 천천히 죽는다면, 운명이 너희에게 큰 권세를 가질 테니까 말이다.

 

  

행복한 삶에 관하여

166 우리가 정처 없이 떠돌며 길라잡이를 따르지 않고 서로 다른 방향을 외치는 사람들의 소음과 잡음을 따라다닌다면, 좋은 성품을 위해 밤낮으로 노력한다 해도 짧은 인생은 실수를 반복하다가 끝나버리겠지요. 따라서 우리는 어디로 갈 것이며 어느 길로 갈 것인지를, 우리의 목표를 정확히 알고 있는 경험 많은 길라잡이와 함께해야 해요. 이것은 여느 여행과 조건이 다르기 때문이지요. 여느 여행에서는 일단 어떤 길로든 들어선 다음 그곳 주민에게 물어보면 길을 잃지 않게 되겠지만, 행복으로 가는 길은 가장 많이 찾는 가장 번잡한 길이 가장 속임수가 많으니까요.

 

따라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가야 할 길이 아니라 사람들이 다니고 있는 길로 들어서서 가축 떼처럼 앞서가는 무리를 뒤따라 가는 것이지요. 게다가 소문을 믿고는 가장 박수를 많이 받는 것을 가장 좋은 것으로 여기고, 전례가 많다고 해서 이성에 따르지 않고 거기에 맞춰 사는 것만큼 우리를 큰 불행에 말려들게 하는 것은 없어요. 그리하여 한 사람이 다른 사람 위에 엎어짐으로써 사람의 무리가 그토록 크게 늘어나는 것이지요.

 

 

로마의 정신 문화의 리더, 세네카 

242 다양한 문명이 섞여 서로 자극을 주고 받는 가운데 원숙하고 세련된 문화와 예술을 꽃피웠던 로마인은 철학적 사고에서도 독창적이라기보다는 그리스적 사고방식을 받아들여 자신의 필요와 성향에 따라 수용하는 방법을 택했다. 세네카 역시 편협한 스토아 철학자가 아니라 필요에 따라서는 다른 학파의 세계관과 도덕관도 받아들이는 절충주의자였다. 그는 독창적인 사상을 설파하기보다는 자신이 수용한 사상을 위해 탁월한 수사를 구사하고 설득력 있게 표현할 해설자이자 열렬한 선전원이었으며, 그리스어로 된 철학적 용어를 라틴어로 옮긴 그리스 사상의 전달자였다. 수사학적 도구와 생생한 은유, 인상적인 어휘와 연설, 정확한 논점으로 그의 철학 에세이와 서한은 에픽테토스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저술과 더불어 로마화한 그리스 스토아 철학의 중요한 자료로 꼽힌다.

스토아 철학은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거대 제국을 건설하면서 도시국가라는 자족적인 활동 공간을 빼앗기게 된 개인들의 새로운 사회 환경에 적응해 나가는 과정에서 발생한 여러 대응 방안 가운데 하나였다. 거대 제국과 상대적으로 왜소해지고 몰락한 개인의 불균형을 시정하려면 인간을 더 중시하거나 세계를 덜 중시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첫 번째 방법을 택한 것이 스토아 학파이고, 두 번째 방법을 택한 것이 에피쿠로스 학파이다. 에피쿠로스 학파는 철저한 유물론의 신봉자들로 세계는 원자들의 우연한 결합외에 아무것도 아니라고 믿었다. 거기에는 계획도 섭리도 없다. 신들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그들 역시 원자들의 우연한 결합으로 인간과 아무런 관계도 없다는 것이다. 죽음은 원자들의 이산일 따름이다. 인간은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인간은 자력으로 행복, 즉 쾌락을 추구해야 하지만 부동심(不動心 ataraxia)을 훼손할 정도로 추구해서는 안 된다. 에피쿠로스 학파는 개인의 자유를 철저히 주장한 까닭에 사회의 지배계층과 다른 학파, 이를테면 플라톤의 사상을 계승한 아카데메이아 학파와 스포아 학파에 의하여 매도되기도 했다. 후세 사람들이 에피쿠로스 학파에 대하여 부정적인 편견을 갖게 된 것은 이들 탓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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