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스타브 플로베르: 감정 교육 1



감정 교육 1 - 10점
귀스타브 플로베르 지음, 김윤진 옮김/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서문 / 마지막 낭만주의자 

1부 1장 ~ 6장 

2부 1장 ~ 3장 

옮긴이 주





43 태양은 수직으로 내리꽂히며, 마스트 주위의 도르래 제어용 볼트, 상갑판의 철판들과 수면을 반짝이게 했고, 수면은 선수 부분에서 두 갈래로 갈려 물고량이 풀밭 가장자리까지 이어졌다. 강 굽이굽이를 돌 때마다 연한 빛 포플러나무들의 똑같은 장막이 다시금 보이고는 했다. 들판은 텅 비어 있었다. 하늘에는 하얀 조각구름들이 멈춰 서 있고, 어느샌가 번진 권태로움이 배의 진행을 더디게하고 승객들의 모습을 더욱 초라하게 만들었다.

  몇몇 부르주아들을 제외하면, 일등칸에는 노동자들, 부인과 자녀들을 동반한 장사꾼들이 타고 있었다. 당시에는 여행할 때 지저분하게 입고 다니는 것이 관례였으므로,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리스정교식의 낡은 모자나 색이 바랜 모자를 쓰고, 사무실 책상에 문질러대서 닳아 해진 초라한 검은 색 옷, 혹은 상점에서 시중을 너무 많이 드느라 단추를 싼 천이 해 벌어진 프록코트를 걸치고 있었다. 여기저기에 깃 달린 카디건 아래로 커피 얼룩이 진 광목 셔츠가 보였고, 인조 금으로 만든 넥타이핀이 넝마나 다름없는 넥타이를 찌르고 있었으며, 누덕누덕 꿰맨 줄로 슬리퍼가 벗겨지지 않도록 묶어놓고 있었다. 가죽끈을 맨 대나무를 든 장난꾸러기 두 셋은 곁눈질을 했고, 아이 아버지들은 눈을 휘둥그래 뜨고 이런저런 질문을 던져댔다. 사람들은 서거나 짐 위에 응크리고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고, 몇몇은 구석에서 잠을 자고 몇몇은 뭘 먹는 중이었다. 갑판은 땅콩 껍질, 담배 꽁초, 배 껍질, 종이에 싸가지고 온 햄소시지 따위의 찌꺼기로 더렵혀져 있었다. 작업복 차림의 가구 세공인 세 명은 간이 식당 앞에 죽치고 있었다. 누더기를 뒤집어 쓴 하프 연주자는 자신의 악기에 팔을 괴고 쉬고 있었다. 화덕 속의 석탄 타는 소리, 낭랑한 목소리, 웃음소리가 간헐적으로 들려왔다. 선교에 선 함장은 상하갑판 통로 벽 사이를 끊임없이 왔다 갔다 했다. 프레데릭은 자기 자리로 돌아가기 위해 일등칸의 창살문을 열었고, 그로 인해 개들을 데리고 있던 두 명의 사냥꾼들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마치 유령인듯 싶었다.

  그녀는 긴 의자 한가운데에 홀로 앉아 있었다. 그게 아니라면 그를 향한 그녀의 시선에 눈이 부셔, 그가 다른 사람은 전혀 보지 못했던 것이든지. 그가 스쳐 지나가는 것과 동시에 그녀가 고개를 들었고, 그는 자신도 모르게 어깨를 움찔했다. 같은 편, 조금 더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자마자, 그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바람에 나풀거리는 분홍색 리본이 달린 커다란 밀짚모자를 뒤로 넘겨 쓰고 있었다. 모자의 검은색 끈은 그녀의 얼굴을 다정하게 누르는 듯했다. 작은 물방울무늬가 점점이 찍힌 화사한 모슬린 드레스는 주름이 많이 잡힌 채 펼쳐져 있었다. 그녀는 무언가에 수를 놓는 중이었다. 오똑한 코, 턱, 그녀의 모든 것이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뚜렷이 떠올랐다.

  그녀의 자세가 한결같았으므로, 그는 자신의 수작을 감추기 위해 여러 번 좌우로 왔다 갔다 했다. 그리고 긴 의자에 기대 놓은 그녀의 양산 가까이에 서서 강 위에 떠 있는 작은 보트를 바라보는 척했다.

  그는 그렇게 찬연히 빛나는 갈색 피부, 매혹적인 몸매, 빛이 통과할 듯한 섬세한 손가락을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마치 대단한 것이라도 되는 양 놀라며 그녀가 만들고 있는 바구니를 바라보기도 했다. 그녀의 이름은 무엇이고, 사는 곳은 어디며, 어떻게 살고, 과거는 어떠했을까? 그는 그녀 방에 놓인 가구들, 그녀가 입었던 모든 옷가지들, 그녀가 자주 만나는 사람들을 알고 싶었다. 그러자 육체적 소유에 대한 욕망조차 보다 깊은 욕구, 끝을 알 수 없는 호기심의 고통 속으로 사라져갔다.

  머플러로 머리를 싼 흑인 여자 한 명이 벌써 다 큰 어린 소녀의 손을 잡고 나타났다.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한 아이는 막 잠에서 깬 참이었다. 그녀는 자기 무릎 위에 아이를 앉혔다. "곧 일곱살이 되는데, 아가씨가 말도 안 듣네. 엄마가 안 좋아하겠어. 너무 오냐오냐해줬기 대문이겠지." 그런 얘기를 듣고 프레데릭은 마치 뭔가 발견하고, 알아낸 것처럼 기뻤다.

  그는 그녀가 안달루시아나 크리올 태생일 거라고 추측했다. 저 흑인 여자는 섬에서 데리고 나온 것일까?

  보랏빛 끈이 달린 긴 숄이 그녀의 등 뒤, 구리로 된 선박 외피 위에 놓여있었다. 그녀는 분명 여러 번, 바다 위에서, 음습한 밤에, 몸에 저길 두르고, 그것을 발을 덮거나 몸을 감싸서 잠자기도 했으리라! 그렇지만 그 숄이 술 장식 때문에 쏠리면서, 조금씩 미끄러져, 까딱하면 물에 빠질 뻔한 순간, 프레데릭이 펄쩍 뛰어 숄을 붙잡았다. 그녀가 프레데릭에게 말했다. 

  "감사합니다."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여보, 준비되었어?" 갑판 승강구 계단 문에 모습을 드러낸 아느루가 소리쳤다.



328 그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렇다면 부인은 사람이…… 한 여자를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 건가요?"

  아르누 부인이 대답했다.

  "결혼할 여자라면 결혼하면 되지요. 하지만 누군가의 여자라면, 멀리해야죠."

  "그럼 행복이란 도저히 이룰 수 없는 건가요?"

  "아뇨! 하지만 거짓, 불안 그리고 후회 속에서 행복을 찾아서는 안 되죠."

  "무슨 상관입니까! 숭고한 기쁨으로 보상을 받는다면요."

  "그 경험의 대가는 너무 비싸답니다!"

  그는 반어법으로 그녀를 공략하고자 했다.

  "그렇다면 미덕이란 비겁함에 지나지 않는 것이겠군요?"

  "차라리 혜안이라고 하시지요. 설령 의무나 신앙을 잊어버리는 여자들이라 해도, 단순한 양식만 있다면 괜찮을 거예요. 이기주의가 지혜의 튼튼한 기반이 되어주니까요."

  "아! 참으로 부르주아적인 원칙을 따르시는 군요!"

  "제가 귀부인이라고 자랑하고 다니지는 않는데요!"

  그때 어린 사내아이가 달려 들어왔다.

  "엄마, 저녁 안 먹어?"

  "그래, 곧 가마!"

  프레데릭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바로 그 순간 마르트가 나타났다.

  그는 그대로 가버릴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애원에 가득찬 시선으로 말했다.

  "부인이 말하는 그 여자들은 정녕 무심하다는 말입니까?"

  "아뇨! 하지만 그래야 할 때에는 귀를 닫지요."

  그리고 그녀는 두 아이를 양 옆에 끼고 문지방에 섰다. 그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였다. 그의 인사에 그녀도 말없이 답례를 했다.

  제일 먼저 그가 느낀 것은 한없는 막막함이었다. 자신의 희망이 아무 가망성이 없다는 것을 그런 식으로 자신에게 깨닫게 하다니, 그는 참담했다. 마치 수렁 밑바닥에 빠졌는데 아무도 구하러 오지 않아 죽을 수밖에 없다는 걸 아는 사람처럼 막막하기만 했다.

  그는 걸었다. 그렇지만 아무 것도 눈에 뵈는 것 없이 발길 닿는 대로 걸었다. 돌부리에 발을 차이기도 하다가, 그는 그만 길을 잃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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