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클린 드 로미이: 왜 그리스인가


왜 그리스인가? - 10점
자클린 드 로미이 지음, 이명훈 옮김/후마니타스


서문 

1 서사시 일리아스 

2 핀다로스의 3연시 

3 아테네 민주주의 

4 민주적 토론에서 지적 분석으로 

5 역사 

6 비극과 신화의 언어 

7 그리스 비극, 독자적 장르 

8 철학 

결론 : 타자를 향한 열림 


옮긴이 후기 

찾아보기_그리스 고전






서문 

17 그렇다면 저 서기전 5세기에는 인간의 지성과 감성을 맞을 준비가 되어있는 무언가가 있었다고 봐야 한다. 그 저작들이 우리의 문화사에서 누려온 역할을 제공해 준 그 무엇 말이다.

  대체 그것은 어떤 것일까?

  우리가 찾는 답은 이중적이다. 우선 그리스가 처음부터 끝까지 간직하는 것, 즉 그리스 문명을 독특하게 만들고, 비길 데 없는 광휘를 준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그리고 어느 시대와 비교하더라도 커다란 차별성이 갑자기 강하게 드러난 연유를 파악하려면, 서기전 5세기의 아테네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야 한다.

  문화사에서 일반적으로 제기하는 문제는 처음에 내가 희미하게 느꼈던 물음과 정확히 일치한다. 젊은 학생이었던 나는 투키디데스를 읽었고, 그저 '좋았기' 때문에 그것을 연구하고 싶었다.


22 이런 탐구를 진행하려면 그리스의 사유를 더욱 철저하게 규명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왜 그리스인가'라는 물음에 납득할 만한 독창적인 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는 모든 시대의 사람들을 실제적으로 고대 그리스 문화로 향하도록 이끌었던 매력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을 것 때문이다.

  대개 그런 매력은 예술작품과 연관되어 있다. 게다가 그리스 예술을 검토하지 않은 상태에서 '왜 그리스인가'라는 물음을 제기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그리스 예술은 로마 시대에 모방되었고, 훗날 르네상스 시대에도 모방되었다. 그리스 예술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부정할 수 없는 많은 자취를 우리의 예술 속에 남겨 놓았다. 또 하늘을 향해 우뚝 솟은 대리석 잔해라든가 박물관 입구에서 대담한 모습으로 우리를 맞이하는 운동선수의 몸체가 종종 냉철한 감동을 불러일으켰고, 그로부터 고대 그리스를 알고자 하는 열의가 싹텄다는 점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1 서사시 일리아스 

31 게다가 이 많은 작품에 영감을 일으킨 호메로스로 거슬러 올라가 그의 작품에 나오는 영응들의 이미지를 다시 살펴보면, 우리는 돌연 그들의 모습이 더욱 생생하고 우리와 아주 가깝다는 점을 깨닫고 놀라움을 금치 못할 것이다. 호메로스 이후의 작가들이 저마다 이 영웅들에게 부여한 다양한 면모를 넘어 우리가 호메로스 원전에서 다시 발견하는 것은 그들의 근본적인 단순함과 위대함이다. 왜 그럴까?

  이것이 우리가 맨 먼저 마주친 질문이다. 그리스 서사시의 영웅들은 시의 세계로 들어가 자신들을 다시 보라고, 자신들이 짊어진 놀라운 운명을 이해하라고 속삭인다. 시의 세계 속에서 우리는 호메로스가 다양한 방식을 활용했다는 것을 알게 되는데, 그 방식은 영웅이 지닌 비할 바 없는 인간의 가치를 확고히 하는데 기여했다.


2 핀다로스의 3연시 

113 이 같은 경향에 따르면 인간의 생각이나 감정에 얽힌 여러 가지 중요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 그리하여 인간을 신이나 죽음, 고통이나 정의와 연관 지어 생각하기에 이른다. 호메로스는 그 점에 대해 한결같은 예를 제시한다. 헤시오도스나 핀다로스의 작품에서도 이와 똑같은 정신이 반영되어 있다. 

  결국 이처럼 넓게 탁 트인 방식으로 인간을 생각할 때, 우리의 감정은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관용과 연민에 이르게 된다. 이에 대해 변함없이 한결같고 언제나 감동을 주는 증거를 <일리아스>에서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인간에 대한 핀다로스의 몇몇 성찰에서 아주 희미하기는 하지만 그런 것이 반영되어 있음을 볼 수 있었다.

  이제 이 장을 마무리할 때이다. 여기서 우리가 밝혀낸 것은 보편적인 것을 시사하는 새로운 방법뿐이다. 그러나 그 방법과 정신이 담긴 경향은 그리스의 뚜렷한 특징이다. 

  실제로 이런 정신이 담긴 경향은 결코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그리고 이 잡다한 예들은 아직은 부족하지만 서기전 5세기 아테네에서 갑자기 새롭게 태어나 활짝 피어난 것을 잘 평가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호메로스의 서사시에는 명료한 용어로 사유를 설명하기는 기법이 빠져있다는 점을 앞서 지적한 바 있다. 서기전 아테네의 5세기 벽두에는 이런 상황이 바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추상적 효과를 가진 구체적 환기의 기법과 신화의 기능이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명료한 분석과 상징적 표현 수단 사이에는 모종의 혼합체가 작동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이성과 신화는 비극 안에서 융합될 것이다.

  꽃을 활짝 피운 아테네의 문학에서 다음의 두 양식이 연달아 나타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우선 의무를 중시하는 사고방식이 갑자기 나타나고, 그 결과 웅변술•역사•정치철학이 탄생했으며, 그 다음에는 분석과 신화가 비극 안에서 혼용을 이루었다.

  따라야 할 방침과 가리키는 푯말이 세워졌으니, 이제는 아테네가 말할 차례이다.


3 아테네 민주주의 

147 민주적인 사회를 이루고자 했던 노력에 대한 문헌이나 논평이 남아 있진 않지만 아테네 이전에도 민주적인 사회가 있었을 수 있는 것처럼, 관용도 이를 상찬하는 문헌은 없지만 세계의 많은 지역에 존재했을 수 있다.

  예를 들이 이집트에서는 이집트인과 유대인이 서로 오랫동안 아주 잘지냈다. 그리스 사람들은 결코 그들보다 더 잘 지내지 못했으며, 오히려 그에 미치지도 못했다. 그러나 그리스인은 문헌을 남겨 놓았다. 그리고 주변 민족의 역사에 대한 많은 정보가 헤로도토스의 저작에서 나온다. 사람들 사이에 관용이 필요하다는 보기 드문 요구도 아테네에서 나온 것이다. 

  모든 것이 한층 더 분명하게 드러나는 정치영역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용어, 개념, 이상, 이 모든 것은 그리스가 제공한 것이다. 그것들이 현실에 나타난 모습은 보잘것없고 불완전한 것이었을 수 있다. 약화되거나 심각한 결합이 있었을 수도 있다. 하짐나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늘날에는 많은 예가 우리의 기억에서 사라져 버렸지만, 이 용어, 개념, 이상은 남아서 그것들이 처음 발견되었을 때만큼이나 생생하게 자극을 주고 있다. 이 제도는 공공의 논제를 제시하려는 그리스의 의욕에서 나온 것이고, 그에 대한 서술도 말하고 정의하려는 그리스의 의욕에서 나온 것이다. 그리고 그 서술이 지닌 효력 역시 일상의 잡다한 일과 뒤섞인 특정한 사실이 아니라 전체와 원칙에 대한 정신, 누구에게나 친숙하고 본질적인 목표를 명확하게 규명하려는 그리스의 의욕에서 나온 것이다.

  테렌티우스는 관용에 대한 메난드로스의 가르침을 잊지 않았고, 키케로도 민주주의에 대한 데모스테네스의 가르침을 잊지 않았다. 이름 없는 20세기의 저널리스트라도 그가 모르는 사이에 이런 가르침을 통해 소양을 길렀을 것이다. 그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리스가 체험한 것은 곧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보편적 의미의 인간 경험으로 바뀌었다.

  이테네는 틀리지 않았다. 그들이 칭송한 것은 자신의 민주주의가 아니라, 보편적 원칙으로서의 민주주의 자체였다.


4 민주적 토론에서 지적 분석으로 

아테네 민주주의의 가치가 그토록 폭넓게 오늘날까지 전해진 것은 그 가치가 문학작품에서 선명한 방식으로, 지역적 특색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서술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는 공적 토론의 관행이 발전시킨 여러 수단 덕분이다. 수사학은 처음에는 실용과 관심에서 탄생한 수단이지만, 곧 다른 목적으로 쓰이게 되었다. 토론의 관습 정착된 것과 동시에, 또는 그보다 앞서 저술가들은 이 토론의 관습을 사유의 영역에 옮겨 놓았다.

  실용적인 목적으로 만들어진 이 수단은 그때부터 가다듬어져 일반적 차원의 성찰에 쓰였다. 그리고 인류의 역사에서 하나의 관문을 재빠르고 단호하게 넘어감으로써 서기전 5세기 말의 아테네 사람들은 소송을 거는 사람에서 사유하는 사람으로 바뀌었다.

  이런 변화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바로 그 때문에 앞 장에서 수사학의 탄생을 언급한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증언이 환기하듯이, 수사학의 탄생은 명백히 민주주의, 소송의 중요성, 말의 실용적 기능과 연결되어 있다. 그러나 그리스 아테네에서 말하는 법을 배우는 것은 곧 사유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다.



5 역사 

195 헤로도토스의 역사는 우리가 인정한 것처럼 인간적 역사이자 정치적 역사이다. 그러나 그의 역사가 전적으로 인간적인 것은 아니다. 그의 역사는 신탁과 운명에 중요한 지위를 부여한다. 또 전적으로 정치적이지도 않다. 여담, 지방 안내기, 설화를 염두에 두지 않더라도, 역사에서 그가 읽어 내는 도식은 정치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도덕적이다. 그리고 그가 사건들을 잇는 연결 고리를 확립하려고 힘쓸 때, 그것은 복수심이 지배하는 아주 단순한 심리에 바탕을 둔 일직선의 구조로 되어 있다. 헤로도토스의 역사 사상은 '누가 처음 시작했는가?', 그리고 '어떻게 그가 그 대가를 치르는가?'로 귀결된다. 그의 대담한 열성, 철저한 조사, 웅장한 묘사는 여전히 아테네보다 소아시아에 가깝고, 투키디데스보다 호메로스에 가깝다. 그는 역사(특히 서양 역사)의 아버지이다. 그러나 그를 끌어당긴 아테네에서 그의 후예 투키디데스는 헤로도토스의 후견에서 벗어나 곧바로 성숙한 모습을 보인다.


210 서기전 5세기의 그리스는 역사의 탄생을 보았다. 페리클레스 시대의 아테네는 비판적인 동시에 현실주의적이고 전적으로 정치적인 역사, 요컨대 그 후 수 세기에 걸쳐 채택될 역사의 탄생을 보았고, 또 그것을 부추겼다. 반면 더 이상 누구도 객관적 설명 가운데 심층적인 해석을 삽입하고 이야기를 일종의 논증으로 삼는 투키디데스 방식으로 역사를 기술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았다. 누구도 대립하는 논변을 뒷받침하는 저 모든 일반적인 격언을 역사에 도입하지 않았고, 인간에 대해 '인간의 본성'에 대해, 이러저러하게 주어진 상황에서 '일반적으로 벌어지는 것'과 그 이유에 대해 말하는 저 모든 성찰을 도입하지 않았다. 투키디데스는 그가 겪은 것을 이해하도록 하고, 거기서 보편적인 특징을 이끌어 내도록 열정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래서 그는 모든 것을 자신의 저작에 담아내려고 했다. 그리고 누구도 그를 좇아 그런 기도를 감행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정치사는 우리 시대에까지 지속되었다. 물론 여기에는 연설이나 인간 본성에 관한 언급은 없다. 그리고 투키디데스가 창시하고 역사와 연결 지은 온갖 학문이 역사의 옆에서 탄생했다. 심리학, 사회학, 병법학, 전략술, 정치철학 등이 그것이다. 그의 지적 포부는, 그의 저작이 연설가들에 의해 다루어지고 사실에 의해 확증되었으며 인산적인 표현으로 요약되고 때로 섬세한 차이를 담아 모든 학문의 실마리를 제시했을 정도였다. 그는 이런 것들을 역사에 이용했다. 여하튼 그는 그것들을 처음으로 창안해서 세상에 내놓았다. 거기서 그는 '인간적인 것'을 보탰다. 그로부터 수많은 '인간에 관한 학문들'이 시작된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그의 저작에 늘 간직되어 있는 저 당혹스러운 현실성뿐만 아니라, 그의 후대 역사가 포기했던 호기심과 야망을 우리 문화로 다시 가져다 주었다. 세월이 한참 흐른 뒤에 우리는 그것들이 수많은 독자적인 새싹이 되어 다시 돋아나는 광경을 보게 된다.



6 비극과 신화의 언어 

217 당시에 출현한 문학 장르 가운데 비극은 아테네의 도약, 아테네의 민주주의와 가장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비극이 아테네에서 시작된 것은 아니지만, 아테네에서 비극은 첫 옹알이를 시작했다. 아테네 출신이나 외부에서 온 비극 작가들이 언제부터 아테네에서 활동했는지는 알 수 없다. 사실상 비극은 서기전 5세기에 페르시아와의 전쟁에서 승리하면서 생겼다. 아이스킬로스가 비극 경연 대회에서 처음 우승의 영예를 안은 것은 살라미스 해전이 일어나기 4년 전인 서기전 484년이다. 현재 남아 있는 것 가운데 가장 오래된 비극은 살라미스 해전을 다루었는데, 전쟁이 끝나고 8년 뒤인 서기전 472년에 상연되었다. 그후 비극은 하나의 장르로 활짝 피어나, 해마다 걸작이 나왔다. 소포클레스와 에우리피데스는 서기전 406년 또는 405년쯤 같은 해에 죽은 것으로 추정되는데, 그때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끝나고 아테네의 몰락이 시작되기 직전이었다. 그들의 죽음은 곧 한 시대가 끝났음을 뜻한다. 아이스킬로스보다 앞선 몇몇 작가들, 예컨대 테스피스나 프리니코스와 같은 이름이 남아 있고, 몇몇 사람들은 서기전 4세기 작가로 알려져 있지만 남아 있는 작품은 없다. 비극은 아테네 전성기와 함께 태어나 사라졌으니, 이 들은 동시대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이 연극의 근원에서 민주주의 근간을 이루는 제도에 활기를 불어넣는 영감을 찾아볼 수 있다. 비극은 아테네에서 국가가 조직한 집단 행사였고, 모든 사람들이 거기에 동참했다. 아테네는 비극 경연에 참석하러 오는 가난한 사람들의 일실수익을 보상할 수당까지도 마련해 두었다. 그래서 이 성대한 공연을 위해 사람들은 민회나 법정에서처럼 모여들었다. 

  이것은작가가 매우 많은 대중을 감동시킬 줄 알아야 한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거기에서는 폭넓은 관점과 효과적인 표현 수단이 필수적이다. 이런 방법으로 비극의 갑작스러운 탄생은 웅변술이나 정치적 성찰, 역사의 탄생과 동일한 근본적 충동의 지배를 받는다. 비극은 해마다 열리는 정기 공연이자 계획에 따른 경연이어서, 더 야심찬 강제성을 따를 수밖에 없는데, 그것은 모든 사람들을, 그것도 즉석에서 감동시켜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처럼 원칙 자체에서 보편을 향한 열망이 싹트고 있다는 사실을 볼 수 있다. 비극 작가는 여러 부류의 관객의 흥미를 끄는 것을 넘어서야 하고, 이를 위해 늘 본질적인 것을 겨냥해야 한다.



7 그리스 비극, 독자적 장르 

260 누구도 합창대가 없는 비극은 생각할 수 없었을 것이다. 비극은 등장인물이 합창대와 결합하면서 태어난다. 합창대가 사라지면 비극도 소멸된다.

  그런데 본래 거기에는 어울리지 않고 양립할 수도 없는 두 요소가 있는 듯하다. 시인을 읽는 것과 공연 작품을 통해 시인을 읽는 것 사이에 존재하는 간격을 헤아리지 못할 위험이 있다. 하지만 합창대와 등장인물은 확연히 구분되는 영역에 자리 잡고 있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그들은 각자 자기 자리가 있어서 다른 곳으로 움직이지 않았다. 등장인물은 무대에서 활동하고, 합창대는 중앙에 디오니소스 제단이 있는 '오르케스트라'라고 불리는 일종의 원형 무대에 자리를 잡았다. 몇 걸음이면 이편에서 저편에 도달했고, 서로 접촉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어느 쪽도 다른 쪽의 자리로 가는 일은 없었다.


262 그런데 합창대가 중요성을 잃은 뒤에도 본래부터 전혀 어울리지 않았던 두 요소(합창대와 극중 인물)가 번갈아 가며 진행하는 형식이 여전히 비극의 구조를 지배했다. 극은 휴지로 나뉘는 막으로 구분되지 않고, 합창대의 노래로 나뉘는 에피소드로 구분된다. 게다가 합창대 또는 합창대장이 끼어들어 짤막하더라도 상항과 그 최근 전개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지 않고서는 무대 위에서 결코 어떤 일도 벌어질 수 없다. 소피스트에 의해 유행한 수사학적 방식에 따르는 토론의 형식을 택했을 때 비극은 각각의 장광설이 끝난 뒤에 합창대장에게 두 행에 걸친 평가를 맡기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결과는 개인들 간의 대립인 무대 위의 행동과 거기에 참여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집단적 반응 사이의 일종의 끝없는 대위법으로 나타난다. 이런 구조의 원리를 따르면, 행동에 대해 일정한 거리두기가 엄밀한 의미를 가진 용어로 이루어지고, 행동이 가리키거나 암시하는 모든 것이 확대된다. 한쪽의 행동은 외부 증인의 눈에 비친다. 시선은 확장되고, 의미는 풍부해진다. 

  어쨌든 그리스 비극은 이처럼 번갈아 진행하는 방식을 사용했고, 배치된 두 요소 각각을, 또는 두 목소리 각각을 활용했다. 거기서 비극은 큰 범위의 의미를 더 잘 이끌어 내는 수단을 잡았고, 갈 수 있는 한 멀리 그 길을 갔다.



8 철학 

330 비록 현재 널리 유행하는 사유 방식과 철학은 플라톤과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지만, 문학에서 그는 여전히 철학자의 전형으로 남아 있다. 그는 추구해야 할 방향을 보여주었고, 그것도 열정적으로 보여주었기 때문에 그의 사상은 소설가와 시인에게 방향을 불러일으켰다. 어떤 이들은 일반적 관념론으로 플라톤의 사상을 이어갔다. 또 어떤 이들은 그와 같은 관념론을 꼭 알지는 못해도, 하나의 경향, 하나의 사상에 매달려 그의 저작에서 자신들에게 소중한 것을 알아본다. 때로는 그것이 수학에 기대는 것이고, 때로는 심리적 경험에 대한, 그리고 사랑에 관한 이론의 틀을 제공하는 동성애에 관한 언급이나 기술이고, 또 때로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불가해한 비밀이다. 경우에 따라 우리는 플라톤의 저작에서 동굴의 신화나 사랑하는 영혼의 다툼, 철인 통치, 민주주에 대한 비판, 사람의 내장을 맛보고 그때부터 늑대가 되어 버리는 자와 같은 참주를 거론한다. 또는 아주 단순하게 플라톤에 대한 묘사를 인용하기도 하는데, 이 철학자는 일상의 삶에서는 터무니없지만 자유로운 인간에게 어울리는 성찰 속에서 편안하며, 아마도 영감을 주는 자, 디오티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331 게다가 철학자들은, 플라톤주의에서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경우조차도, 그들이 더 이상 믿지 않는 세계의 이 의미를 플라톤이 체현해 낸 것처럼 그를 공격하는 경향이 있다. 나체에서 하이데거를 거쳐 많은 이들에 이르기까지, 그들 모두가 플라톤을 언급하고 그에 관해 쓸 필요가 있었다. 다른 한편에서는 그의 정치사상을 공격하고 비판하며 거부하고 갖가지 방식으로 해석한다.  우리 현대 세계는 플라톤주의를 거부할 때조차도 일종의 시기 어린 정열을 품고 그것을 끊임없지 참조한다.

  플라톤이 모든 것을 당장 파악하겠다는 서기전 5세기의 넘치는 자신감과 단절하고 순수 사유의 새로운 영역 속으로 비상한 것이 사실이라면, 그리고 보편에 이르러는 그 엄청난 노력이 오직 이데아만을 소중하게 보는 세계의 엄격한 전형을 향해 단호하게 나아간 것이라면, 그 의미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리하여 플라톤은 단절인 동시에 연속, 나아가 결말의 표상이 된다.



결론 : 타자를 향한 열림 

347 그렇지만 아무도 왜 거기에 있는지를 알지 못하는, 물결치는 대로 떠다니는 자그마한 빙산의 조각들 같은 이 재미있는 잔존물이 존재하는 한편, 대다수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지 않은 훨씬 더 심층적인 다른 잔존물이 존재한다. 그 잔존물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간에 우리의 마음이나 우리의 피처럼 우리가 모르는 사이 우리 안에 살아 있는 관념들로 이루어져 있다. 보편을 향한 열망에 기반을 둔 그리스의 유산은 서양 문명의 정신이 되었다. 폭력 규탄, 관용, 정의 존중, 자유에 대한 취향은 민주주의를 내세우는 모든 사람들의 구호이다. 그리고 이 구호의 이면에는, 실제로 효력을 가진 힘이 숨어 있고, 이 시대에 그 힘에 저항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 되겠다. 유럽이 탄생한 시기에, 너무 쉽게 잊어버리는 경향이 있는 이 은혜를 기억해 내는 것은 소중한 일이다.


348 그러나 그런 단절은 불합리하고 비난받아 마땅하며 위험할 수도 있다. '왜 그리스인가?'라는 물음에 답하려고 할때, 우리는 늘 '왜 그리스어인가?'라는 더 관례적이고 범속한 물음에 답하게 된다.

  당시 아테네인은 자신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그리고 자신들이 마땅히 해야 할 역할이 무엇인지를 잘 깨닫고 있었다. 투키디데스는 페르클레스의 입을 빌어 아테네는 그리스에게 '살아 있는 가르침'이고, '교육'이자 교육체제라고 말한다. 아테네는 그리스에게 가르침을 주었고, 그리스인은 우리 모두에게 가르침을 주었다. 아테네가 그토록 강한 예지력을 지녔다는 것이 우리의 경탄을 자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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