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워드 크레이그: 철학 ━ 교유서가 첫단추 시리즈 1
- 책 밑줄긋기/책 2012-22
- 2016. 4. 19.
철학 - 에드워드 크레이그 지음, 이재만 옮김/교유서가 |
1. 철학
2.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플라톤의 『크리톤』
3. 우리는 어떻게 아는가?―흄의 『기적에 관하여』
4. 나는 누구인가?―무명 승려의 자아에 관한 성찰: 밀린다 왕의 마차
5. 몇 가지 주제
6. ‘-주의/론’에 관하여
7. 흥미로운 저작들―나의 선택
8. 누구에게 어떻게 이로운가?
참고문헌―어디로 가야 하나?/ 역자 후기/ 도판 목록
1. 철학
12 철학이 우리와 그토록 가깝다면, 어째서 그토록 많은 이들이 철학은 난해하고 다소 기이한 무엇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그렇지 않다고 쉽게 치부해버릴 수도 없다. 어떤 철학은 난해하고 기이하며, 최고의 철학은 대부분 처음에는 난해하거나 기이하게 보일 공산이 크다. 최고의 철학은 우리의 정보 저장고에 더하면 그만인 몇 가지 새로운 사실이나 우리의 행동 수칙을 확장해줄 몇 가지 새로운 격언을 제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세계상 그리고/또는 일군의 가치를 구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세계상이나 가치에 이미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모호하고 비반성적인 방식으로 우리 모두가 세계상과 가치체계를 갖고 있음을 기억하라) 그것들이 아주 독특하게 보이기 마련이다. 독특하게 보이지 않는다면 그것들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훌륭한 철학은 우리의 상상력을 넓혀준다. 우리가 어떤 사람들이든 어떤 철학은 우리와 가깝다. 우리가 어떤 사람들이든 어떤 철학은 우리와 가깝다. 물론 어떤 철학은 더 멀고, 어떤 철학은 더더욱 멀고, 어떤 철학은 대단히 이질적이다. 멀거나 이질적이지 않다면, 그것이 오히려 실망스러운 결과일 텐데, 이는 인류가 지적으로 아주 단조롭다는 뜻일 것이기 때문이다.
14 모든 철학이 사는 법과 죽는 법을 포괄할 필요성에서 생겨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제껏 지속되어온 철학은 대부분 절박한 동기나 절실한 믿음에서 생겨났다. 진리와 지혜만 추구하는 것은 멋진 생각일지 모르지만, 역사는 멋진 생각이 십중팔구 멋진 생각으로 그친다는 것을 넌지시 말해준다.
15 이들 가운데 시시한 수수께끼를 푸는 데 그친 사람은 없었다. 이들이 논쟁에 뛰어든 이유는 문명의 행로를 바꾸기 위해서였다.
2.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플라톤의 『크리톤』
31 『크리톤』은 그들의 논의와 소크라테스의 반응에 대한 플라톤의 서술이다. 이것이 2,400년 전 문헌임을 고려할 때 가장 놀라운 점들 중 하나는 이것이 더는 놀랍지 않다는 점이다. 여러분은 소크라테스의 발언에 전부 동의하지는 않을 것이다. 예를 들어 많은 독자들은 국가가 개인에게 정당하게 명령할 수 있다는 주장에 대한 소크라테스의 견해가 과장되었다고 느낄 것이다. 그러나 어려운 결정에 대해 한 번이라고 생각해본 사람이라면 사실상 『크리톤』의 모든 논점이 더할 나위 없이 익숙할 것이다. 플라톤이 사랑에 관해 쓸 때 우리는 플라톤의 견해가 우리의 견해와 다르다는 것을 의식한다. 플라톤의 우주론을 읽을 때 우리는 지금과 전혀 딴판인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나 "이 경우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특정한 윤리적 물음에 관한 『크리톤』의 논의는 마치 어제 일어난 일만 같다. 제1장에서 나는 우리 모두가 어느 정도 철학자이며 따라서 어떤 철학은 아주 절실하게 느낄 거라고 말했다. 고대 희랍 세계의 이 사례가 바로 그런 사례다.
44 어떤 이들은 철학이 도덕적 문제에 해답을 주리라 기대한다. 그러나 우리가 살펴본 복잡한 문제들을 철학이 어떻게든 단순화할 수 있지 않는 한, 철학이 해답을 제시할 전망은 밝지 않아 보인다. 온갖 고려사항들의 균형을 잡을 올바른 방법이 단 하나뿐임을 철학이 우리에게 설득력 있게 보여주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는 (48c부터 시작해) 전체가 단 하나의 쟁점에 달려있다는 식으로 단순화하려 했다. 앞에서 언급한 칸트는 "모두가 그렇게 행동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지겠는가?"라는 익숙한 물음과 긴밀히 연관된 단일한 원칙을 도덕의 토대로 삼는 식으로 단순화하려 했다. 어떤 이들은 또다른 식으로, 즉 임무와 의무가 아니라 우리가 하려는 행동이 그 영향을 받을 모든 사람에게 불러올 결과만 고려할 것을 권하는 식으로 단순화하려 한다. 이런 유의 견해는 제5장에서 더 자세히 살펴볼 것이다.
3. 우리는 어떻게 아는가?―흄의 『기적에 관하여』
52 흄은 우리가 어떤 기적이 일어났다고 믿고 있고 우리의 증거가 다른 이들의 증언으로 이루어질 때(실제로 언제나 그렇듯이), 우리가 증거에 반해 그 믿음을 고수하는 것임을 논증할 계획이다. 우리가 그 기적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믿을 근거들이 적어도 그 기적이 일어났다고 추정할 근거들만큼은 강력할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흄은 전자의 근거들이 언제나 더 강력하다고 생각한다.
56 기적의 역할이 종교적 믿음을 지탱하는 것임을 고려할 때, 기적은 우리 경험상 대단히 비개연적인 사건임이 틀림없다. 기적이 곧잘 일어난다면, 운이 좋거나 때를 잘 맞춘 늙은 허풍선이 누구라도 신적인 권위를 부여받을 기회를 움켜쥘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기적이 대단히 비개연적인 사건이라면, 가장 믿을 만한 증언만이 기적이 일어났다는 증거가 될 것이다. 비개연적인 사건과 증언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흄의 말마따나 증거에 비례하여 믿음을 조절하는 현명한 자들은 자신이 보기에 그나마 개연성이 높은 쪽을 선택할 것이다. 따라서 기적이 일어나는 것보다 증언이 거짓일 개연성이 낮을 때 그 선택은 목격자들의 증언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것은 실로 어려운 선택이다. 우리가 보았듯, 기적은 정말 개연성이 극히 낮은 사건이기 때문이다.
4. 나는 누구인가?―무명 승려의 자아에 관한 성찰: 밀린다 왕의 마차
75 나가세나는 말을 언급하지 않는다. 더욱 중요한 점은 나가세나가 마부와 구별되는 마차 탄 사람만이 아니라 마부까지 언급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나가세나가 반발하는 그림이 바로 그런 그림이다. 나가세나는 지시하거나 감독하는 영원한 존재, 즉 자아가 없다는 입장이다. 이 저자는 신성시되는 마차 비유를 활용하지만 다른 방식으로 활용함으로써 자신의 견해를 표명함과 동시에 자신이 속한 문화 집단에 자신이 반대하는 바로 그것을 알리고 있다.
5. 몇 가지 주제
101 그런데 우리는 무슨 근거로 이것들을 믿는가? 이런 유의 믿음이 거의 언제나 적중해왔다고 답해서는 안 된다. 실제로 적중했겠지만 그것은 과거에 일어났던 사건의 또다른 예에 지나지 않으며, 우리가 알고 싶은 것은 미래가 동일한 방식으로 펼쳐질라고 예측하는 이유다.
이런 난점들 때문에 인간의 믿음을 합리적 관점에서 속속들이 명료하게 만들 수 있다거나 인간이 오직 이성에 따라 살아갈 수 있다는 생각은 강력한 장애물에 직면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추론하는 능력, 예전 믿음에서 추론을 통해 다른 믿음을 획득하는 능력이 우리에게 중요한 능력 그 이상이라는 것은 여전히 참이다. 우리에게 그런 능력이 없다면 신체의 외형 말고는 인간임을 식별할 표지가 전혀 없을 것이고, 평균적인 침팬지가 실질적으로나 비유적으로나 우리보다 훨씬 나을 것이다.
104 나의 모든 경험을 갖고 있지만 당신의 경험은 전혀 갖고 있지 않은 단일한 나, 즉 나의 자아가 존재하는 것이 분명하며, 이 점은 당신의 자아 역시 마찬가지이다.
107 오래 전에 죽은 누군가의 사유를 오늘날의 논쟁에 기여하는 사유로, 마치 지금 여기서 우리에게 제시되고 있는 사유처럼 대하는 것이 타당할까?
108 한 가지 문제는 그들의 글은 이해할지 몰라도 그들, 즉 어떤 정치적 사유가 필요한가라는 문제에 관한 그들의 관심, 그런 관심을 낳고 또 그들로 하여금 자신의 결론을 매력적으로 여기게 한 환경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108 두번째 문제는 철학자의 사상이 자라난 지적·정서적 환경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철학자의 성취에 대한 우리의 이해가 심각하게 저해되리라는 것이다.
6. ‘-주의/론’에 관하여
114 서로 충돌하는 두 가지 근본적인 원리, 즉 선과 악을 상정하는 신학도 이원론적 신학이라 불린다. 그러나 이원론의 가장 흔한 의미는 판이하게 다른 두 종류, 즉 정신과 물질로 실체가 이루어진다고 말하는 학설이며, 이에 따르면 인간은 약간의 정신과 약간의 물질로 이루어져 있다.
115 이원론이 궁극적인 두 원리, 즉 정신과 물질이 있다는 견해라면, 오직 물질만 있다고 말하거나 정신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고 믿는 학설도 있을 거라도 생각할 것이다. 지당한 생각이다. 첫째 학설은 유물론, 둘째 학설은 (유심론이 아니라) 관념론이라 불리며 둘 다 역사가 깊다.
118 마르크스가 문자 그대로 물질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 아니라 인간의 삶에서 가장 중요하고도 근본적인 원인이 물질적인 것, 즉 사회가 물질적 재화를 생산하는 방식에 관한 경제적 사실들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118 관념론 또한 일상적 의미뿐 아니라 전문적 의미까지 있는 낱말이다. 전문적 영역에서 관념론은 앞에서 언급한 아일랜드인 조지 버클리 주교의 견해처럼 물질의 존재를 부인하고 존재하는 모든 것이 정신적인 것이라고 보는 견해를 가리킨다.
121 몇몇 철학체계(이를테면 헤겔의 체계)는 물질의 존재를 부인하기 때문이 아니라, 실체의 본성을 결정하고 실체에 목적을 부여하는 정신적인 것에 물질이 종속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관념론이라 불린다.
121 서로 대립하는 한 쌍으로 떠오르는 '경험론'과 '합리론'이 있다. '이원론'과 '유물론', '관념론'이 형이상학(어떤 것들이 존재하는가?)에 속하는 반면에, 이 쌍은 정확히 인식론(우리는 어떻게 아는가?)에 속한다.
122 '경험론'은 사유보다 지각을 편드는 학설들을 가리키는 아주 일반적인 용어이고, '합리론'은 지각보다 사유를 편드는 학설들을 가리키는 용어이다.
130 피론주의자들은 분명 자기네 회의론에 이점이 있다고 생각했다. 회의론이 마음의 평온, 근심없는 상태, 즉 아타락시아(ataraxia)를 얻게 해준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들은 마음의 평온에 관해 한두 가지를 알고 있었다. 여러분의 관점이 옳다는 입장을 고집하고 싶다면 거기에 대가가 따른다는 것을 기억하라. 그럴 때 어러분은 평생 지적인 싸움을 벌여야 할 것이다. 그 싸움이 지적인 싸움에 그친다면 행운이리라. 특히 종교와 정치 영역에서 그런 싸움은 폭탄과 참화로 귀결된다고 알려져왔다.
130 피론주의자들이 유달리 좋아한 회의론적 책략은 사물이 나타나는 방식이 사물 자체에만 달려 있지 않음을 상기시키는 것이었다. 그 방식은 사물이 누구에게 나타나는지, 그리고 사물이 어떤 매개를 통해 나타나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이로써 우리는 마지막 '주의/론'으로 들어선다. 바로 상대주의다. 상대주의는 특정한 학설이 아니라 학설의 한 유형이다.
7. 흥미로운 저작들―나의 선택
166 데카르트에게 인간의 이성은 신이 우리에게 주고 또 보증하는 능력이었고, 바로 그런 이유로 데카르트는 이성에 의존해 정신과 물질의 속성, 그 밖의 많은 것들에 관해 말할 수 있었다. 이와 달리 데카르트가 이성이란 타고난 도구라고 다시 말해 경쟁에서 이성을 결여한 이들에 비해 이성을 가진 이들이 우위를 점했기 때문에, 그리고 우위를 점했던 한에서 발전해온 도구라고 생각했다면 어떨까? 데카르트는 이렇게 생각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이성이 우리에게 말해주는 듯한 것들을 완전히 신뢰하며 참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고 추정했을까? 만약 그랬다면 데카르트는 그 추정을 어떻게 정당화했을까? 신은 기만자일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과, 이성 기능은 현실적인 문제에서 우리에게 이점을 주기 때문에 "정신은 독립적인 실체인가?" 같은 물음에 적용했을 때 우리를 터무니없이 그릇된 방향으로 인도할 리 없다고 말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이성이 생존에 큰 도움이 된다고 해서 형이상학에도 큰 도움이 되리라고 내가 믿어야 하는가? 도대체 왜 그렇게 믿어야 하는가? 데카르트가 다윈 이후에 살았다면, 그의 철학의 토대는 크게 달라져야 했을 것이다. 토대가 그렇게 많이 달라졌다면, 상부구조도 그만큼 달라지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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