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기 20분 | 일본 근현대사 | 03 청일·러일전쟁 9


근대 일본의 전쟁논리 - 10점
가토 요코 지음, 박영준 옮김/태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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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에게 왜 한반도는 중요했는가?

– 야마가타 아리토모의 주권선/이익선: “我邦의 이익선의 초점은 실로 조선에 있다.”(外交政略論, 1890. 3)

– 야마가타 아리토모의 의견서에 덧붙여진 로렌츠 폰 슈타인(Lorenz von Stein)의 의견

1) 시베리아 철도의 전면 개통이 일본에 위협이 되지는 않는다.

2) 오히려 러시아 철도는 러시아의 “조선의 점령에 필요하다.” 이런 점에서 시베리아 철도는 일본에 큰 문제가 된다.

– 슈타인의 ‘권세강역/이익강역’ 개념: “조선의 중립은 일본의 권세강역을 보전하기 위해서 생기는 바의 모든 이익을 충족시키는 것이다.”

– 청일전쟁을 뒷받침하는 군사전략의 기조: 일본의 이익선으로서의 조선을 유지하려면 조선이 중립이거나 일본의 식민지가 되어야 한다.

– ‘전쟁의의 만들기 작업’: “청일전쟁이 위정자나 국민에게 피할 수 없는 전쟁이라고 자각되기에는 한층 별도의 매개물이 필요했던 것이고, 그것은 개전 직전에 무츠 외상에 의해 행해진 일련의 ‘전쟁의 의의 만들기’ 작업 가운데 부여되었다.”

– 후쿠자와 유키치, “문명개화의 진보를 꾀하는 세력과 그 진보를 방해하려는 세력과의 전쟁”(<지지신보(時事新報)>, 1894. 7. 29. 논설)

– 문명과 야만이라는 구도의 형성

– 현실적인 이익에 의한 정당화: “여기에서 전쟁은 곧 돈벌이도 된다고 하는 감각이 막 생겨나기 시작합니다.” “현실적인 문제로서는, 개전 후에 국민도 국가도 함께 전쟁에 의해 얻어지는 현실적 이익에 대한 기대감을 숨김없이 말하게끔 되어, 전쟁을 받아들이는 구조가 형성되어갔다.”


– 현실적 이익과 정신적 정당화 논리의 결합을 통한 실효적 동원논변의 창출이 작동했다는 점에서 청일전쟁은 이후 50년 가까이 일본제국의 대외침략방식을 전반적으로 정초한 사건이라 할 수 있다.






가토 요코 교수가 쓴 《근대 일본의 전쟁논리》 책을 읽어나가고 있다. 일본에서는 어떻게 전쟁논리를 전개했는가를 살펴보는 의미에서 이 책을 보고 있다. 뒤에 만주사변이나 아시아 태평양전쟁에 관한 얘기도 나와있지만 이 부분은 나중에 일본근현대사 시리즈에서 겹치는 부분이 있으니 청일전쟁에 관한 부분만 얘기하려고 한다.


이때 청일전쟁이라고 하는 것은 일본에서 군대를 한반도로 파견을 하고, 청나라에서도 파병을 해서 전쟁은 청일전쟁인데 주요 전쟁터는 사실 조선에서 이루어졌다. 그런 점에서 청일전쟁이 가진 의미는 향후에 50년 동안 아시아에서 벌어진 여러 사태들을 보여주는 일종의 미니어처와 같다. 왜 일본에서는 한반도를 중요하게 여겼는가. 청일전쟁 이전부터 아시아 태평양 전쟁이 끝날 때까지 거시적으로 보면 일본이 중요하게 여긴 것이 한반도와 만주, 그리고 몽고이다. 나중에 5권에서 만주와 몽고를 묶어서 '만몽'이라 하는데, 이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이전 논의에서 가장 밑바탕에 놓여 있는 논리가 야마가타 아리토모의 주권선과 이익선의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야마가타 아리토모가 수상이던 1890년 3월에 외교전략론을 발표하는데 "我邦의 이익선의 초점은 실로 조선에 있다"라는 말이 나온다. 이익선의 개념은 로렌츠 폰 슈타인라는 오스트리아의 학자가 이토 히로부미에게 전수한 것이다. 로렌츠 폰 슈타인은 세가지를 이야기하는데 첫째가 헤겔 법철학과 프랑스 사회주의를 결합해서 사상의 기조를 세우라는 것, 이 부분의 정치철학적 맥락은 여기서 상세하게 논할 수는 없고, 두 번째로 중요한 게 메이지 헌법의 축이 되는 권력 분립의 기본 구조를 알려주었다. 그리고 세 번째가 국가에 의한 사회정책이 필요하다는 것. 흔히 말하는 후발자본주의국가 또는 위로부터의 근대화가 전개되는 나라에서 요구되는 것 중 핵심적인 것이 이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야마가타 아리토모가 그 당시 로렌츠 폰 슈타인에게 의견서를 제출했는데 여기에 슈타인의 의견이 덧붙여 진다. 그것이 뭐냐면 시베리아 철도의 전면 개통이 일본에 위협이 되지는 않는다. 시베리아 철도는 필연적으로 중국을 통과할 수 밖에 없고 또 병력 수송에도 한계가 있으며 러시아는 치명적으로 얼지 않는 항구가 없다. 오히려 러시아가 시베리아 철도를 전면 개통했을 때 일본에게 닥쳐올 가장 치명적인 문제는 러시아 철도가 조선의 점령에 필요한 것이 된다는 것. 이런 점에서 시베리아 철도는 일본에 큰 문제가 된다.  여기서 야마가타는 착안을 하는 것. 시베리아 철도가 놓이면 일본의 주권에는 별다른 위협이 되지 않지만 조선이라고 하는 일본의 이익을 지키는 중요한 영역에는 위협이 된다고 얘기한다.


그래서 야마가타가 내놓은 주권선과 이익선의 개념이 등장한다. 이게 원래는 슈타인이 말하는 권세강역과 이익강역 개념에서 나온 것이다. 권세강역은 주권선에 해당하는 것이고, 이익강역은 이익선에 해당하는 것. 특히 이익강역이라고 하는 것은 권세강역의 존망에 관한 외국의 정치적인 사건 및 상황을 이익강역이라고 얘기했다. 즉 주권선을 지키기 위해서는 이익선이 일종의 완충지대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 그러면서 슈타인은 "조선의 독립과 주권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일본의 권세강역을 보존하기 위해서 생긴 모든 이익을 조선의 중립이 충족시키기 때문이다. 여기서 야마가타는 조선이 이익선 안에 들어온다. 따라서 조선의 중립을 실현하는 것을 1차적인 대외적인 목표로 삼는다.  다시 말해서 일본의 이익선으로서의 조선이라는 개념이 있다. 조선은 중립국이나 식민지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청일전쟁을 뒷받침하는 군사전략의 기조이다.


그런데 이런 군사전략이 밑바닥에 놓여 있다 해서 반드시 청일전쟁을 해야 한다고 나아가지는 않는다. 청일전쟁을 하려면 국민이 동원되어야 하기 때문에 가토 교수의 말을 빌려보면 "청일전쟁이 위정자나 국민에게 피할 수 없는 전쟁이라고 자각되기에는 한층 별도의 매개물이 필요했던 것이고, 그것은 개전 직전에 무츠 외상에 의해 행해진 일련의 '전쟁의 의의 만들기' 작업 가운데 부여되었다." 즉 파병을 해야 하는 사람들을 설득하기 위한 새로운 논리들이 개발되어야 했던 것.


일본의 이익선으로서의 조선을 유지하려면 조선이 중립이거나 일본의 식민지가 되어야 한다. 그것을 지키려면 청일전쟁을 해야 한다. 이것이 청일전쟁을 뒷받침하는 군사전략의 기조이다. 그 다음에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일본사람들을 동원하기 위한 파병의 필요성을 설명하기 위한 전쟁의 의의 만들기 작업이 필요했던 것이다. 거기서 나온 것이 조선을 문명국으로 만들기 위한 사명이라는 것이다. 조선이라는 나라가 지금 암흑이나 다름없는 나라다. 그러니까 조선의 내정개혁을 추진해야 한다 라는 대립구도를 만든다.


일본이 조선을 식민지로 해서 조선이 발전했다는 식민지 근대화론이 있다. 이 얘기는 청일전쟁때부터 일본사람들을 설득하기 위해서 일본정부가 만들어 낸 일종의 선전논리이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학문의 권장을>을 쓴 후쿠자와 유키치이다. 1894년 지지신보에 실은 논설에는 청일전쟁은 "문명개화의 진보를 꾀하는 세력과 그 진보를 방해하려는 세력과의 전쟁"이다 라고 말한다. 그리고 일본사람들에게 청일전쟁은 근대 들어서 처음으로 맞이한 대외전쟁이고, 이것을 설득하기 위해 정부에서 내놓은 문명과 야만이라는 대단히 알기 쉬운 구도를 접하게 되고 받아들이게 된다.


자신들의 전쟁을 문명과 야만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1894년 청일전쟁에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이를테면 투키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읽어보면 페리클레스가 전몰자들을 추도하는 연설을 한다. 이것을 보면 아테나이는 희랍의 학교라는 말이 나온다. 다른 지역은 야만이라는 것. 전쟁을 문명과 미개의 구도로 설명하고 있다. 이게 초반에 아테나이 사람들을 밀고나갔던 전쟁논리이다. 그런데 아테나이에서 역병이 돌고 사람들이 겉잡을 수 없이 공포에 사로잡히고, 그들이 자랑하던 하나의 질서와 문명이 역병이라는 것에 무너져 내려가면서 모든 말의 질서가 어긋나게 된다. 그것을 투키디데스는 생생하게 설명을 하고 있다. 그래서 내놓은 결론이 "전쟁은 잔혹한 교사"라는 것.


국민들을 설득하는 첫째 논리가 문명과 야만의 논리이고, 그 다음 논리가 식민지를 만들면 새로운 토지를 얻을 수 있고, 배상금도 얻는다는 것. 사람들을 꼬이는 것. 그래서 가토 요코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여기에서 전쟁은 곧 돈벌이도 된다고 하는 감각이 막 생겨나기 시작합니다." "현실적인 문제로서는, 개전 후에 국민도 국가도 함께 전쟁에 의해 얻어지는 현실적 이익에 대한 기대감을 숨김없이 말하게끔 되어, 전쟁을 받아들이는 구조가 형성되어갔다." 이것을 집약을 해보면 현실적인 이익, 즉 돈벌이와 정신적 정당화 구도가 결합이 되고 이것이 실효적 동원논변의 창출되었다. 그리고 이것이 잘 작동했다는 점에서 청일전쟁은 이후 50년 가까이 일본제국의 대외침략논리를 만들어 낸 또는 방식을 전반적으로 정초한 중요한 사건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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