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셀 프루스트: 잃어버린 시절을 찾아서 6 ━ 게르망뜨 쪽 2

잃어버린 시절을 찾아서 6 - 10점
마르셀 프루스트 지음, 이형식 옮김/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2부 1장 · 9

2부 2장 · 58

옮긴이 주 · 435

 
 

 

38 이제 할머니께서는, 당신께서 하시는 말씀을 우리가 알아듣지 못한다는 사실을 직감하셨음인지, 단 한 마디 말씀도 하시지 않고 꼼짝도 하시지 않았다. 그러시다가 나를 알아보실 때면, 문득 호흡 곤란을 느끼는 이들처럼 소스라치시는 듯했고, 나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려 하였으나,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만 우물거리셨다. 그러시다 결국 당신의 무기력증에 제압당하시어, 머리를 다시 베개 위에 떨구신 채, 대리석으로 빚은 듯 근엄한 얼굴로, 두 손을 침대 시트 위에 가지런히 고정시키시거나, 혹은 손수건으로 손가락들을 닦으시려는 듯한 순전히 질료적인 동작에 골몰하시면서, 침대 위에 길게 누워 계시곤 하였다. 할머니는 어떠한 생각도 하시려 하지 않았다. 그리고 얼마 후 수시로 몸이 떨리는 증세를 보이셨다. 그렇건만 끊임없이 몸을 일으키시려 하였다. 하지만 할머니께서 당신의 마비 상태를 깨달으시지 않을까 저어하여, 그러시지 못하도록 가능한 한 우리가 할머니의 그러한 시도를 저지하였다. 할머니께서 잠시 홀로 계시게 하였던 어느 날, 나는 할머니가 잠옷 바람으로 일어서시어 창문을 여시려 한느 것을 발견하였다.

 

발백에서, 바다에 투신한 미망인 하나를 사람들이 억지로 구출한 어느 날,(그토록 모호하되 미래를 반영하는 듯한 우리의 유기체적 생명의 신비 속에서 우리가 이따금씩 읽어내는 그 특이한 예감들 중 하나에 아마 감동하셨음인지), 할머니께서 나에게 말씀하시기를, 자신이 그토록 원하던 죽음으로부터 절망한 여인을 강제로 빼앗아 그녀가 겪을 수난에 내맡기는 짓과 같은 잔혹 행위는 없는 것으로 안다고 하셨다.

 

우리가 겨우 때맞춰 할머니를 제지하였고, 할머니가 어머니를 상대로 거의 난폭하다고 할 수 있을 투쟁을 벌이시던 끝에 제압당하시어 강제로 안락의자에 앉혀지셨으며, 그 순간 무엇을 원하거나 애석해하기를 문득 멈추신 듯, 얼굴이 다시 추호의 동요도 없이 태연해지더니, 할머니의 긴 잠옷 위에 우리가 걸쳐 드렸던 모피 외투가 잠옷에 남긴 털들을 하나 하나 정성스럽게 떼어내시기 시작하였다.

 

할머니의 시선이 완전히 변해, 자주 불안해지거나 불평 가득하거나 얼이 빠져, 더 이상 옛날의 시선이 아니었으며, 같은 소리나 뇌까리는 어느 노파의 침울한 시선이었다.

 

프랑수와즈는, 혹시 머리 손질해 드리기를 바라시느냐고 할머니에게 반복적으로 여쭙던 나머지, 결국에는 할머니께서 마치 자기에게 그것을 요청하신 것으로 믿게 되었다. 그리하여 머리솔들과 빗들, 쾰른 화장수, 가운 등을 가져왔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였다. “제가 머리를 빗겨 드려도 그것으로 인해 아메데 부인께서 피곤을 느끼시지는 않을 거예요. 몸이 아무리 허약하셔도 누가 머리 빗겨 드리는 것쯤은 견디실 거예요.” 즉, 어떤 사람이 아무리 허약해도, 자기로서는, 그 사람의 머리를 빗겨 드리지 못할 이유가 결코 없다는 말이었다. 그러나 내가 할머니의 방 안으로 들어섰을 때, 마치 자기가 할머니에게 건강을 되돌려드리기라도 하는 듯 황홀해진 프랑수와즈의 무자비한 두 손아귀 사이에서, 그리고 빗의 가벼운 스침조차 견딜 기운 없는 노쇠한 머리채의 가련한 흐느적거림 밑에서, 처음 정해 준 자세를 견지할 능력이 없어, 기력의 소진과 고통이 번갈아 이어지던 끊임없는 소용돌이에 휘둘려 기진맥진해진 머리통 하나가 보였다. 나는 프랑수와즈가 그 일을 마칠 순간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꼈고, 따라서 혹시 그녀가 내 말에 불복하지 않을까 저어하여, ‘그만하면 충분하다’는 말로 그 순간을 앞당길 엄두를 내지 못하였다. 그러나 반면, 악의없이 잔인한 프랑수와즈가, 빗은 머리가 마음에 드는지 보시라고 거울 하나를 할머니 가까이 가져가려는 순간에는, 내가 급히 그녀에게 달려들었다. 할머니가 프랑수와즈의 그러한 실수로 인하여—우리가 이미 할머니 주위에서 모든 거울들을 세심하게 치워버린 터였다—당신께서 상상조차 하실 수 없었던 당신의 모습 하나를 보시기 전에, 내가 프랑수와즈로부터 적시에 거울을 빼앗은 것이 처음에는 다행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잠시 후, 사람들이 그토록 괴롭히던 그 아름다운 이마에 입을 맞추려고 내가 상체를 숙였을 때, 할머니께서는 놀란 듯하고 경계하는 듯하며 분개한 듯한 기색으로 나를 빤히 쳐다보시었다. 내가 누구인지 알아보시지 못한 것이다.

 

 

81 나는 그 초대에 즉시 응하지 않았다. 나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면 그러한 초대가 필요 이상의 것이라 여겼을 것이니, 알베르띤느의 발음이 어찌나 육감적이고 달콤했던지, 그녀가 누구에게 말만하여도 그를 포옹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녀의 말 한 마디가 곧 애정 표시였고, 상대와 나누는 그녀의 대화가 그를 입맞춤으로 뒤덮곤 하였다. 그렇건만 그 초대가 나에게는 각별히 기분좋았다. 물론 같은 또래의 다른 예쁜 소녀로부터 그러한 초대를 받았다 해도 마찬가지로 기뻤겠으나, 알베르띤느가 이제는 어찌나 다가가기 쉬운 대상이었던지, 그러한 사실이 나에게 기쁨 이상의 것을 안겨주었으며, 그 기쁨 이상의 것이란 아름다움의 흔적 찍힌 영상들을 서로 대조하는 것이었다. 나는 우선, 나타나리라 추정되던 그 여배우인지, 그 순간 그 여배우 대신 출연한 어느 단역인지, 혹은 단지 하나의 투영된 영상인지,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는 극장의 광경들보다 나에게는 더 현실적인 존재로 보이지 않던, 바다를 배경 삼아 그려 놓은것처럼 보이던 알베르띤느를 해변 앞에 떠올렸다. 그 다음, 실재하는 여인이 눈부신 빛다발로부터 분리되어 나에게 다가왔으나, 그녀가 현실 세계 속에서는, 우리가 그 매혹적인 화폭을 바라보면서 그녀에게 있으리라고 짐작하던, 사랑에 쉽게 이끌려 들어가는 기질을 전혀 드러내지 않는다는 사실만을 내가 알아차릴 수 있었을 뿐이었다. 그리하여 나는, 그녀에게 손을 대거나 그녀를 포옹하는 것이 불가능하고, 그녀와는 단지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뿐이며, 그녀가 나에게는, 옛날에 식탁 장식으로 사용하던 경옥으로 깎은 포도 모형이 포도 아니듯, 여인이 아니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이제, 세 번째 도면 속에, 내가 그녀를 보았던 두 번째 도면 속에서처럼, 그녀가 내 앞에 실재하는 여인으로, 그러나 첫 번째 도면 속에서처럼 사랑에 쉽게 이끌려 들어가는 여인의 모습으로 나타났고, 사랑에 선선히 응할 듯한 그 모습이, 내가 오랜 세월 그렇지 않다고 믿었던 탓에 그만큼 더 감미로웠다. 삶에 대한(내가 처음 생각하였던 것보다 덜 단조롭고 덜 단순한 삶에 대한) 내 지식의 잉여분이 잠정적으로 불가지론에 도달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럴 듯하다고 믿었던 것이 이내 오류로 증명되었다가 다시 사실처럼 나타나는데, 우리가 어떤 단언을 할 수 있겠는가?(또한 애석하게도 나는 아직, 알베르띤느와의 관계에 있어서 장차 이어질 새로운 발견들의 끝에 아직 도달하지 못하고 있었다.) 여하튼, 그날 그날의 삶에 의해 하나씩 차례대로 드러나는 줄거리들의 더 큰 풍성함이 주는 가르침의 소설적인 매력(쌩-루가 리브벨에서 저녁 식사를 하던 중, 어느 평온한 얼굴 위에 삶이 포개어 놓은 가면들 중에서, 옛날 자신의 입술이 지긋이 누른 적 있는 모습을 다시 발견하며 맛보곤 하던 매력과는 정반대의)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알베르띤느의 볼에 입맞추는 것이 가능한 일임을 알게 된 것이, 나에게는 아마 입맞춤 자체보다 더 큰 기쁨이었을 것이다. 어떤 여인이 한 덩이 살에 불과한지라 오직 우리의 몸뚱이만이 가서 들러붙는 그러한 여인을 수중에 넣는 것과, 친구들과 함께 어떤 날 해변에 나타났으되, 다른 날들이 아닌 바로 그런 날들에 나타나는 이유를 몰라, 혹시 다시는 볼 수 없지 않을까 마음 조리게 하던, 해변에서 본 그 소녀를 수중에 넣는 것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을까? 삶이 우리에게 그 소녀의 소설 같은 생활 전부를 친절하게 드러내 보여주었고, 그녀를 더 자세히 보라고 광학기구 하나를 빌려주더니 또 다른 하나를 빌려주었으며, 육체적 욕망에다, 그것을 백배로 증대시키고 다양화하기 위하여, 그 육체적 욕망이 한 덩이 살에만 집착할 때에는 무기력 상태에 머물러 그 욕망이 하는대로 내버려두지만, 자신들이 그리움을 품은 채 추방되었다고 느끼는, 추억들 가득한 지역 전체를 수중에 넣기 위하여 그 욕망 곁에서 폭풍 형태로 솟아 올라 그 욕망을 팽배시키되, 그 욕망이 달성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비질료적 실체의 희구하던 형태까지 그 욕망을 따라갈 수 없어, 중도에서 그것을 기다리다가, 그것이 돌아오는 순간에 다시 그것을 호위하는, 더 정신적이어서 충족시킬 가능성 더 적은 욕망들을 덧붙여 동행하게 하였던지라, 아무리 싱싱하되 평범하고 비밀도 현혹적인 매력도 없는 흔한 여인의 볼 대신 내가 그토록 오랫동안 몽상의 대상으로 삼던 볼에 입맞추는 것은 곧, 내가 자주 유심히 바라보던 어떤 색깔의 맛과 향기를 알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일 것 같았다. 바다를 배경으로 윤곽이 드러났던 알베르띤느처럼, 일상의 풍경 속에 있는 하나의 단순한 영상에 불과한 여인 하나를 본 다음에는, 누구든 그 영상을 떼어 자기 곁에 놓고, 마치 그것이 입체경의 렌즈 뒤에 놓인 듯, 그것의 부피와 색깔들을 조금씩 볼 수 있게 된다. 그러한 이유 때문에, 조금 까다로운 편이라 즉시 수중에 넣지 못할 뿐만 아니라, 장차 수중에 넣을 수 있을지조차 쉽사리 알 수 없는 그러한 여인들만이 우리의 관심을 끈다. 왜냐하면, 그러한 여인들과 사귀고 그녀들에게 접근하여 그녀들을 정복하는 것이 곧 형태와 크기와 굴곡에 있어 인간의 영상을 다양하게 하는 것이며, 그것은 또한 일상의 진부한 배경 속에서 자기 윤곽의 날씬함을 회복할 때 다시 바라보기에 아름다운 어느 여인의 몸과 생활의 평가에서 드러나는 상대성을 깨닫게 하는 하나의 교훈이기 때문이다. 뚜쟁이의 집에서 처음부터 사귀는 여인들은, 그녀들이 항상 변함 없기 때문에 우리의 관심을 자극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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