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스 뮐러: 독일인의 사랑

독일인의 사랑 - 10점
막스 뮐러 지음, 서장원 옮김/고려대학교출판부

 


머리말
첫 번째 회상
두 번째 회상
세 번째 회상
네 번째 회상
다섯 번째 회상
여섯 번째 회상
일곱 번째 회상
마지막 회상

작품 해설
작가 연보

 


40 一그리고 나는 나의 난처함을 숨기기 위해 어디를 쳐다보아야 할지 몰랐다.

그러나 그녀는 몸을 곧추세우고 앉더니 나의 이마에 손을 얹고는 내 속에 들어 있는 어떠한 생각도 그녀가 보지 않는 것은 하나도 없다고 느낄 정도로 그렇게 깊숙이 내 눈을 들여다보았다. 천천히 그녀는 마지막 반지를 손가락에서 뽑아 나에게 주었다. "나는 너희들을 떠나게 되면 나와 함께 이것을 지니고 있으려고 했어 — 그러나 내가 더 이상 너희들 곁에 있지 못한다면, 네가 이것을 끼고 나를 생각해 주는 편이 더 좋겠어.

반지에 새겨진 '마치 신의 뜻대로'라는 글귀를 읽어 보아라. 너는 사나운 마음도 가지고 있고 온순한 마음도 지니고 있어. 삶이 마음을 다스리기 바란다, 냉혹하게 하지 말고" 라고 그녀는 말했다. 그와 동시에 그녀는 그녀의 남동생들과 마찬가지로 나에게 키스를 하고는 내게 반지를 주었다.

그때 무슨 모든 것이 나의 마음속에서 벌어졌는지, 나는 정말 모른다. 그 당시 나는 이미 소년으로 성장해 있었고 괴로워하는 천사의 부드러운 아름다움은 나의 어린 마음에 자극 없이 자리잡고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는 한 소년이 친밀함과 진실과 순수함을 지니고 사랑할 수 있는 것처럼 그녀를 사랑했다. 청소년기와 장년기에 그러한 것들을 지닌 사람들은 극히 소수에 불과하다. 그러나 나는 그녀를 사랑한다고 말해서는 안 되는 바깥 사람들에 그녀가 속한다고 믿었다.

나는 그녀가 나에게 걸어온 첫 단어를 거의 감지하지 못했다. 나는 단지 그녀의 영혼과 나의 영혼이 두 개의 인간적인 영혼이 될 수 있는 것처럼 그렇게 가까이 있다는 것을 느꼈을뿐이다. 모든 쓰라림이 나의 마음에서 사라졌다. 나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고, 낯설지 않고, 제외되지 않고, 그녀 곁에, 그녀와 더불어, 그녀 속에 내가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러한 다음 그녀가 내게 반지를 준 것은 그녀에게 하나의 희생일 것이라는 것과 또한 그녀가 무덤까지 반지를 가지고 갈수도 있었을 텐데라는 생각을 했다. 그때 다른 모든 감정을 짓누르는 하나의 감정이 나의 영혼 앞으로 들어왔다.

나는 소심한 목소리로 "그대가 반지를 나에게 선사하고 싶으면 그대는 반지를 가지고 있어야만 됩니다. 왜냐하면 그대의 것이 곧 나의 것이니까요"라고 말했다. 그녀는 한동안 놀라움과 생각에 잠겨 나를 응시했다. 그러한 다음 반지를 받아 그녀의 손가락에 끼 고서는 다시 한 번 나의 이마에 입을 맞추고 나지막이 나에게 말했다. "너는 네가 말하는 것이 무슨 뜻인지 모르고 있어. 이해하는 법을 배워라. 그러면 너는 행복해질 거야. 그리고 많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 수도 있고."


158 마리아, 나의 것이 되어 주십시오. 당신 심장의 소리를 따르십시오. 지금 당신 입술에 떠도는 말은 영원히 당신과 나의 삶을, 당신과 나의 행복을 결정할 것입니다." 나는 침묵했다. 나의 손에 쥐어진 그녀의 손이 마음의 따뜻한 악수에 응답하고 있었다. 그녀 안에서는 파도가 일고 폭풍이 몰아치고 있었다. 지금 막 구름과 구름을 폭풍우가 지나가며 걷어내듯이 내 앞에 놓인 그 푸른 하늘은 그렇게 아름답지 않을 수 없어 보였다.


"왜 당신은 나를 사랑하나요?"라고 결정의 순간을 영원히 미루려는 듯 그녀는 나지막하게 물었다.
"왜라니요? 마리아! 어린아이에게 왜 태어났느냐고 물어보십시오. 꽃에게 왜 피었느냐고 물어보십시오. 태양에게 왜 비추느냐고 물어보십시오. 나는 당신을 사랑해야하기 때문에 당신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내가 당신에게 더 많은 것을 말해야 한다면, 당신 옆에 놓인, 당신이 그렇게 좋아서 가지고 있는, 이 책이 나를 대신해서 말하도록 하지요."

가장 선한 것은 가장 사랑스러운 것이어야 한다. 이 사랑 속에는 유용과 무용, 이익과 손해, 얻음과 잃음, 명예와 불명예, 칭찬과 비난, 혹은 이러한 어느 것도 결코 염두에 두어져서는 안 된다. 그보다는 진실한 속에서 가장 고귀하고 가장 선한 것, 그것은 오로지 고귀하고 선하다는 것 때문에 가장 사랑스러운 것이 되어야 할 것이다. 모름지기 인간은 외형에 따라 그리고 내면에 따라 자신을 맞추어 살고 싶어 한다. 외형에 따른다고 함은, 피조물 가운데에서 어떤 것이 다른 것보다 더 선한 것으로 존재하는 것을 말하는데, 곧 영원한 선이 어떤 것 안에서는 다른 것 안에서보다 더 많거나 더 적게 빛을 발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영원한 선이 가장 크게 빛을 발하여 반짝이며 작용하고 알려져서 사랑을 받는 존재야말로 피조물 중에 가장 선한 것이며, 그같은 작용이 가장 적은 존재가 어쩔 수 없이 가장 미천한 것인셈이다. 이렇듯 인간은 피조물을 상대하고 교제하면서 이 차이를 인정하기 때문에, 그에게는 항상 가장 선한 피조물이 가장 사랑스러운 것이며, 열심히 그것에 접하도록 하여 그것과 하나가 되어야 한다.

마리아, 당신은 내가 알고 있는 최선의 피조물입니다. 그래서 나는 당신에게 좋고, 그래서 당신은 나에게 사랑스럽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당신 안에 살고 있는 말을 하십시오. 당신은 나의 것이라고 말하십시오. 당신의 가장 깊은 감정을 부인하지 마십시오.

신은 당신에게 병고의 삶을 선물하셨습니다. 신은 당신에게 당신과 함께 아파하라고 나를 보냈습니다. 당신의 아픔은 나의 아픔이어야만 합니다. 한 척의 배가 무거운 돛들을 운반하듯이, 인생의 폭풍을 헤치고 마침내 안전한 항구로 안내해 줄 그 아픔을 우리는 같이 짊어지려고 합니다."

그녀의 마음 속은 잔잔해지고 또 잔잔해졌다. 고요한 저녁노을처럼 홍조가 그녀의 뺨에 비쳤다. 그때 그녀는 눈을 넓게 떴다. 태양이 경이로운 빛으로 다시 한 번 빛을 발했다. "나는 당신 것이에요."라고 그녀는 말했다. "신의 뜻입니다. 이대로의 나를 받아주세요. 내가 살아 있는 한 나는 당신 것입니다. 신은 우리를 아름다운 삶 안에서 다시 같이하게 하시고 당신에게 당신의 사랑을 보답해 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가슴과 가슴을 맞대었다. 나의 입술은 지금 막 내 삶의 은총을 읊조린 그녀의 입술을 부드러운 키스로 닫았다. 시간은 우리를 위해 정지해 있었고, 우리 주변의 세계도 사라졌다. 그때 하나의 깊은 한숨이 그녀의 가슴으로부터 새어나왔다. "하느님, 나에게 이 축복을 용납해 주소서"라고 그녀는 중얼거렸다. "이제 나를 혼자 있게 해 주세요.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어요. 안녕, 나의 친구여, 나의 애인이여, 나의 구세주여!"

이것이 내가 그녀에게서 들은 마지막 말이었다. 아니야, 그렇지 않았다. 나는 집으로 돌아왔고 가슴 조이는 꿈을 꾸며 잠을 자고 있었다. 궁정주치의가 내 방에 들어섰을 때는 자정이 지난 후였다. "우리의 천사는 천국에 있다네"라고 그는 말했다. "이것이 그녀가 자네한테 보낸 마지막 인사라네." 이 말과 함께 그는 나에게 편지 한통을 건네주었다.

편지 속에는 그 옛날 그녀가 나에게 그리고 또한 내가 그녀에게 주었던 '신의 뜻대로'라는 말이 새겨진 반지가 들어 있었다. 반지는 낡은 종이에 싸여 있었다. 그 종이 위에는 내가 어린아이일 때 그녀에게 한 말을 언젠가 그녀가 한번 써넣은 "당신의 것, 그것은 나의 것입니다. 당신의 마리아"라는 말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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