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터 옌스: 유다의 재판 ━ 가리옷 유다의 시복재판에 관한 보고서

 

유다의 재판 - 10점
발터 옌스 지음, 박상화 옮김/아침


먼저 읽기

프롤로그
시복 청원
세 가지 논제
세 재판관의 판결 작업
신앙검찰관의 반론
모든 유다들을 위해
메모

부록
작품해설 / 옌스의 삶과 문학 / 연보 / 주석

 

 


 

18 그가 싫습니다, 전 그것을 지금은 물론 영원히 하지 않겠습니다 하며 거절했더라면 그리고 그가 자기의 운명을 거부하고, 우리 모두를 구원하기 위해 해야만 했던 그 행동을 하지 않았더라면, 그는 하느님을 배반한 배신자가 되었을 것입니다. 유다 없이는 십자가도 없고, 십자가 없이는 구원의 계획도 실현될 수 없었습니다. 유다가 없었더라면 교회도 없었을 것이며, 팔아넘긴 이가 없었더라면 팔아넘기는 일도 없었을 것입니다. 혁명가인 유다가 예수님의 생명을 구해 주었더라면 우리 모두에게는 죽음을 가져다준 꼴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유다는 거역하지 않았습니다. 말하자면 그는 구약의 예언이 성취될 지 않을 지가 지신에게 — 오직 자신에게! — 달려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20 아담의 타락 이후로 우리 모든 인간에게 구원이 필요하다는 증거를 보여주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자발적으로 나서서 이런 식의 부정적인 역할의 연기를 해야만 했습니다. 가리옷 유다를 그리스도를 위해 죽은 순교자의 대열에 넣으려고 하는 저의 청원은 이러한 사실에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28 그 계획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도움이 필요했습니다. 그 일을 함께 추진할 한 사람, 그 한사람의 도움이 필요했습니다! 그것은 필수조건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 사람에게 요구될 수 있는 가장 극단적인 임무를 누군가가 기꺼이 자신을 희생하여 떠맡아야 했으며, 그래서 필연적인 희생이 있었던 것입니다.

29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이 스스로 희생되도록 계획한 것이라고 믿어야 합니까? 모르고 희생된 것이 맞다면! 그리고 만일 유다는 악마였고 예수께서 이것을 아셨다고 하는 복음서 저자 요한의 주장이 옳다면 왜 예수께서는 그에게 경고하지 않으셨을까요? 왜 그분은 유다가 희생되도록 내버려 두셨단 말입니까? 예수가 유다의 희생물인 것이 아니라 사실은 그 반대인데도 말입니다!

47 첫째는 유다는 더러운 욕심으로 인해 배신자가 되었다는 심리학적 논제였습니다. 유다는 돈의 노예, 야심가, 위선자였으며 시기심과 증오심이 많은 자였다는 것입니다.

47 둘째는 유다가 그리스도에게 실망하여 게쎄마니에서 민중 봉기를 주동하려 했던 혁명당원이었다는 정치적 논제였습니다.

48 셋째는 유다는 위장 배신으로 예수를 제거하고, 자신을 세상의 구세주로 입증하고자 했던 메시아니즘의 대변자였다는 종말론적 논제였습니다.

96 이 일을 하는 우리의 의도는 자료들을 교의학에서 나온 특정한 범주들로 분류하고, 지금까지 제시된 가설들을 우리가 원형의 세 모델이라고 이름 붙인 세 가지 기본가설로 환원시키는 것이었습니다. 세 모델은 유다의 희생물로서의 예수, 예수의 희생물로서의 유다, 그리고 하느님의 계획을 위한 공동의 희생물로서의 유다와 예수입니다.

101 우리보다 먼저 이 문제를 다루었던 수 천 명의 신학자, 윤리학자, 저술가들은 베신자의 정체는 무엇이었나? 하는 질문에서 연구를 시작하였지만, 우리는 우선 배신당한 자의 정체는 무엇이었나? 하는 것을 질문했습니다. 그들이 유다에서 출발한 반면 우리는 예수에서 시작하였습니다.

138 교황청에서 임명한 신앙검찰관인 저는 다음과 같이 저의 입장을 밝힙니다. 법정의 주장은 처음부터 이단이었습니다. 유다는 순교자가 아니었습니다. 유다는 범죄자였습니다. 하느님께서 그가 죄를 짓는 것을 허용하셨다는 것을 고려한다 할지라도 그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왜냐하면 허용한다는 말은 오도한다는 의미를 갖지 않으며 더구나 정해놓는다는 의미를 갖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유다는 자신의 자유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그가 죄를 짓도록 미리 결정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이 죄를 짓는 것을 허용하기는 하셨지만 강요하지는 않으십니다.

163 내가 아는 유다는 하느님께서 자기에게 요구하신 일을 했다. 네가 오랫동안 준비한 일을 행하라. 어서 시작하여라. 그는 이미 하느님께 봉헌되어 있었다. 그는 하느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167 배신자가 필요하기 때문에 누군가가 고안해냈다는 배신자 가설은 의심할 여지없이 설득력이 있는 듯하다. 그러나 나는 그 가설을 믿지 않는다. 그 가설은 너무 단순하다. 어서 그 일을 하여라며 예수께서 도움을 청하셨다는 것은, 천상에 준비된 열 두 보좌의 이야기와 마찬가지로 이 가설에 모순이 된다. 그러나 그 가설이 맞는다고 하더라도 나의 청원을 취하할 이유는 조금도 없다. 반대로 나는 이 청원을 더욱 더 단호하게 견지하고, 이 가리옷 사람을 상징적으로 복자의 자리에 올릴 것을 주장한다. 그렇게 된다면 유다는, 나의 형제 유다는, 솔직함 때문에 또는 종종 상이한 견해 차이 때문에도 기존 교리의 저주를 (언제나 어떤 방법으로든) 감당해야 했던 수백만 명의 편에 서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유타는, 그동안 사람들이 악마로 만들고 속죄양으로 만들었던 모든 대상들 — 유대인과 이교도, 공산주의자, 흑인과 이단자들의 편에 선 암호가 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그는 예심 법정이 인정한 대로 순교자의 영예를 얻게 될 것이다. 또한 그는 나 에토레 J. 페드로넬리가 죽음에 이르도록 충실할 것을 약속하는 우리 가톨릭 교회에 의해 두 번이고 세 번이고 복자의 반열에 오를 수있을 것이다. 어쨌든 이제 예부성성은 이 문제를 다루어야 한다.


유디에게 경의를.
희생자에게 경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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