맬컴 불: 종말론 ━ 최후의 날에 관한 12편의 에세이

 

종말론 - 10점
맬컴 불 엮음, 이운경 옮김/문학과지성사

프롤로그 종말end과 목적end의 결합에 관하여 | 맬컴 불 9
1장 시간은 어떻게 완성되는가―세계 최초의 종말론 신앙, 조로아스터교 | 노먼 콘 33
2장 ‘말세는 누구에게 오는가’―묵시적 사조와 신약의 해석 | 크리스토퍼 롤런드 54
3장 세계의 끝과 기독교 세계의 시작 | 버나드 맥긴 82
4장 중세 후기와 르네상스 시대의 역사의 양식과 목적 | 마저리 리브스 119
5장 17세기 천년왕국 사상 | 리처드 팝킨 150
6장 세속의 묵시―18세기 말의 예언가들과 묵시주의자들 | 엘리너 셰퍼 176
7장 역사의 종말로서 생시몽적 산업주의―보편사의 목적론에 관한 치에슈코프스키의 고찰 | 로렌스 디키 208
8장 오늘날의 묵시, 천년왕국 그리고 유토피아 | 크리샨 쿠마르 255
9장 묵시의 이본異本들―칸트, 데리다, 푸코 | 크리스토퍼 노리스 288
10장 종말을 기다리며 | 프랭크 커모드 320
11장 말년성 그 자체로서의 아도르노 | 에드워드 W. 사이드 341

옮긴이의 말 369
미주 373
찾아보기 443

 



9 영어에서 '끝 end'은 종결 혹은 행위의 목표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종종 그 두 가지 모두를 뜻하기도 한다. 자신이 원치 않는 곳이 자신의 최종 목적지가 되기를 바라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 그러나 목적지에 도착해서 멈추기 위해서는, 의도한 지점에서 멈춰 더 이상 나아가지 않기 위해서는 열망하는 바와 그 실현 가능성에 대한 계측 사이의 균형이 반드시 필요한데, 그것은 아마도 성취하기 어려운 일일 것이다. 일상생활의 많은 부분에서 그렇듯이, 만약 행위의 지향목표가 임시적이고 멈춤이 일시적이라면, 욕망하는 것과 가능한 것 사이의 미묘한 균형은 끊임없이 재조정될 수 있다. 그러나 문제가 되는 것이 경험의 총체성, 즉 궁극적인 목표이자 최종적인 결말이라면, 조정의 여지는 별로 없고 희망의 한계들은 불편할 정도로 엄격하게 그어질 수도 있다

세계가 종점 terminus 이자 목적 telos이라는 의미로서 끝을 가지고 있으리라는 것은 자명하지 않다. 그러나 설사 끝 혹은 목적 없는 세계라는 발상이 논리적으로는 이치에 맞다 하더라도, 그것이 무한히 지속된다고 상상하기는 힘들다. 그리고 영원한 무목적성이라는 관념은 도덕적 상상력에 불쾌감을 준다. 그러므로 실제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세계에 적어도 하나의 끝은 존재하리라고 생각한다. 우주의 역사가 어떤 형태를 갖추고 있음을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은 우주의 종말을 우주가 붕괴한 결과로 가정할 수도 있다. 그리고 세계의 영원성을 믿는 사람은 역사가 어떤 실현 불가능한 목표를 향한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이두 이론은 모두 진지하게 제안되었다. 전자의 경우는 우주의 파국을 과학적으로 투사한 것에서, 후자의 경우는 끊임없는 진보에 대한 칸트적 꿈에서. 그러나 미래에 대한 상상은 대부분 이렇다 할 동기 없는 재앙이라는 순수한 종말론과 끝없는 합목적성이라는 순수한 목적론 사이의 어딘가에 위치한다.

12 역사철학의 형식적 유형학은 그들이 목적론적인지 혹은 종말론적인지, 그리고 만약 둘 다라면 목적과 종점이 일치하는지를 결정함으로써 형성될 수 있다. 좀더 엄밀하게 말하자면 좋은 끝과 나쁜 끝을 구분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쁜 목적 혹은 좋은 종점의 개념을 고수하는 것은 어렵다. 바람직한 결말은 불가피하게 목표로 변형되고, 영원한 지옥을 제외한다면 악의 목적은 항상 최종적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현대에서 이론들을 구분하는 더 나온 방법은 그것들을 이념적으로는 종교직인 것 혹은 세속적인 것 사이의 연속체 위에 위치시키고, 사회학적으로는 '고급' 문화와 '저급' 문화 사이의 축에 위치시키는 것이다. 후자의 구분들이 결합되면 고급-종교적 사고, 고급-세속적 사고, 대중-종교적 사고, 그리고 대중-세속적 사고 등 사고의 네 가지 범주가 만들어진다. 이 범주들이 각각 위에서 논의한 종말론과 목적론의 이상적인 유형을 모두 담고 있지 않아야 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사실 사안은 더욱 간단하다. 나는 그 이상적이고 사회적인 범주競각각 차례대로 논의할 것이다.

13 묵시에 대한 정신적인 해석은 선과 악의 공시적인 구분을 강조하는 반면 역사주의적 해석은 역사에 형상과 방향, 종점은 물론 목적까지 부여한다. (다만 전천년설에서는 천년왕국이 시작되기 전에 그리스도가 재림하는 데 반해 후천년설에서는 완전한 지복이라는 목적에 점점 가까워지거나 내내 지복을 누리는 천년왕국 이후에 그리스도가 재림한다.) 역사에 대한 고급-종교적인 이론들이 늘 종말론적이다가 아주 가끔씩 목적론적이라면 고급-세속적인 이론들은 보통 그 반대이다. 계몽주의가 신의 간섭에 대한 믿음을 약화시켰기 때문에 철학자들은 역사의 끝과 관계없이 역사의 패턴과 목적에 초점을 맞추기 시작했다. 

14 세속의 철학지들이 역사의 형태에 대한 관심을 발전시키고 있을 때 종교의 천년왕국설 또한 대중적인 인기를 획득해가면서 초점을 시간의 끝으로 좁히고 있었다. 기독교 역사에서 반복적으로 출현했지만 금방 사라지곤 했던 대중적인 천년왕국설은 19세기 초반 이래로 보다 광범위하고 안정된 지지 기반을 조성해왔다. 흔히 멀거나 막연한 미래와 과거에 관심을 갖는 고급-종교적 종말론들과는 달리, 대중적인 종말론은 가까운 미래와 현재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에 초점을 맞춘다.

15 핵전쟁으로 인한 파국, 생태학적 재앙, 성적 타락, 사회의 붕괴는 현대의 종교적 천년왕국설을 고취하며, 대중-세속적 묵시는 바로 이들의 이미지와 동일한 이미지에 기대고 있다 그러나 종교적 묵시와는 달리, 세속적-묵시는 (대중문화의 다양한 분야에서 나타나지만 가장 현저하게는 공상과학소설, 록 음악, 그리고 영화에서 발견되는데) 보통 개인의 정신적 변화를 초래하려고 의도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아마도 핵무장 해제나 환경규제와 같은 사회적 · 정치적 목표에 유리하도록 여론에 영향을 주기 위해 의도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많은 경우 묵시의 언어는 단순히 충격을 주거나,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거나, 격분시키기 위해 전략적으로 이용된다. 예를 들어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 초반에 널리 읽힌 대체 문헌 『묵시 문화』에서 신체 절단, 악마주의, 성도착, 테러리즘에 관한 선집의 통합주제 역할을 하는 것은 묵시다.

17 대중문화의 허무주의적 기질과 천년왕국설의 전통 사이의 이렇듯 흥미로운 관계는 묵시적 발상들이 사회적이고 이념적인 범주들 내에서뿐만 아니라 그러한 범주들 사이에서도 유통될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고급 기독교 문화의 종말론은 세속의 역사철학들을 위해 의제를 설정해주었고, 또한 대중-종교적 천년왕국설을 위해 세부적인 뼈대를 제공했다고 말할 수 있다. 그 결과 탈역사에 대한 포스트모더니즘 이론과 근본주의적 천년왕국설 사이에는 놀라울 만한 유사점이 존재한다. 한편 대중-종교적 천년왕국설과 고급-세속적 종말론들은 때때로 결합해 종교의 구세 주장과 고급문화의 구세 주장이 모두 부재한 인민주의적 항의를 표명하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언어들을 제공한다. 이러한 대중-세속적인 묵시는 고급-종교적 종말론과는 거의 정반대인데, 저주받은 지들이 그들 자신의 파멸을 자축하고 있는 것 같다는 식의 수사다. 그것을 그 자체로 목적론에 관한 고급-세속적 비평가들과 대중-종교적 비평가들 모두의 입맛에 맞게 다시 활용할 수도 있다. 모든 사람이 진보가 가져다주는 혜택에 기뻐하고 있다는 자기 만족적인 믿음을 손상시키기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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