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시스코 바렐라: 윤리적 노하우
- 책 밑줄긋기/책 2012-22
- 2021. 8. 25.
윤리적 노하우 - 프란시스코 바렐라 지음, 박충식.유권종 옮김/갈무리 |
역자 서문
저자 서문
첫 번째 강의:노하우(Know-How)와 노홧(Know-What)
두 번째 강의:윤리적 숙련에 대하여
세 번째 강의:비어있음의 체화
프란시스코 바렐라 연보
프란시스코 바렐라 저작목록
역자해제
부록1. 생명과 마음:오토포이에시스로부터 신경현상학까지 139
부록2. 프란시스코 바렐라(1946~2001)의 부고_에반 톰슨 177
찾아보기
용어풀이
25 이와 가장 근접한 예에 해당하는 것은 무엇이 선한 것인가를 알고 그것을 자연스럽게 실천하는 사람을 현자 a wise man라고 부른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우리가 비판적으로 검토해보고자 하는 것은 바로 (현자의) 이 지각과 행위의 즉각성 immediacy 인 것이다. 이러한 접근은 윤리적 행위를 연구하는 일반적 방법과는 뚜렷하게 대조되는 것이다. 그 일반적 방법이란 행위의 의도를 분석하는 일에서 출발해 특정한 도덕적 판단의 합리성을 평가하는 일로 끝난다.
25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물어야만 한다. "왜 우리는 윤리적 행위에다가 윤리적 판단을 무분별하게 결부시키려고 하는가?" 이 질문에 대하여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상적 삶 속에서 실제로 행하고 있는 것을 기술하기보다는 이미 통념화한 (서구식) 견해를 반복한다. 이것이 매우 결정적인 문제이다. 거리에서 맞이하는 일상적인 하루의 생활을 생각해 보라. 당신은 보도를 걸어가면서 곧 있을 회의에서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까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는데 그 때 사고가 일어나는 소리를 듣는다. 당신은 즉각적으로 당신이 도울 수 있을지를 살핀다. 다른 상황을 생각해보자. 당신은 당신의 사무실에 있고 대화가 잘 이어지다가 어떤 화제가 당선의 비서를 당황스럽게 만든다. 당신은 즉각적으로 그 비서의 곤혹스러움을 알아차리고 재치 있는 말로 대화를 다른 화제로 돌린다. 이러한 종류의 행위들은 판단과 추론으로부터 싹터 나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가 직면하는 것들에 대한 즉각적 대응능력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우리는 다만 그 상황이 그 동작들을 우리 자신으로부터 끌어내기 때문에 그러한 행위들을 한다고 밖에 말할 수 없다. 그러나 바로 이러한 동작이 진정한 윤리적 행위들이고, 사실 이러한 동작이 우리의 일성에서 일어나는 가장 일반적인 종류의 윤리적 행동들이다.
32 우리는 살면서 처하게 되는 모든 상황에 각각 들어맞는 '행동을 할 체비’가 되어있다. 더구나 우리는 하나의 행동을 할 체비로부터 또 다른 행동을 할 채비로 끊임없이 옮아간다. 대체로 이러한 준비의 이행과 종료는 미미하여서 실질적으로는 지각할 수 없다. 가끔씩 갑작스런 충격을 받거나 예상치 못한 위험에 처했을 때 그 행동을 할 계비들은 압도적인 힘을 발휘한다. 나는 그러한 행동을 할 채비를 모두 미시주체라고 부르고 그것과 연관되어 살아가고 있는 상황을 미시세계라고 부른다.
33 중요한 점은 이러한 미시세계들의 목록을 작성하는 일이 아니라 그것들의 재현에 주목하는 일이다. 즉 핵심은 우리가 상황마다 그에 적절한 행동을 취할 수 있는 능력이란 반복되는 일련의 미시세계들의 단계별 이행과정을 체화하는 데서 오는 것이다.
37 지각에 대한 구성적 접근방식에 관한 총체적인 관심은 지각자로부터 독립해서 존재하는 세계를 어떻게 재현할 것인가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지각자에 따라 달라지는 세계 안에서 지각적으로 인도된 행위가 어떻게 가능한지 설명하기 위하여 감각운동 체계 사이의 일반적인 원칙 또는 타당한 연계를 결정하는 것이다.
이렇게 구성에 의한 인지를 지지하는 입장의 주된 관심은 기존에 수용되어 왔던 견해와는 대조적인 것이다. 기존의 견해에 의하면 지각이란 근본적으로 현존하는 환경의 정보들을 하나씩 추가해감으로써 물리 세계의 일부를 있는 그대로 재건하는 것이다. 그러나 구성에 의한 인지를 밝혀보려는 입장에서는 실재란 구성되기 이전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실재란 지각자에 종속된 것이다. 그 이유는 지각자가 그 자신이 원하는 대로 실재를 "구성“하기 때문이 아니라 무엇이 중요한 세계로 간주되는가 하는 점이 지각자의 구조로부터 분리될 수 없기 때문이다.
42 인지과학은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자각함이 중요하다고 깨닫기에 이르렀다. 첫째 지각이란 하나의 이미 주어진 세계의 재현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의 감각 운동의 능력과 분리될 수 없는 세계 속에서, 즉 행동이 유도하는 지각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것과, 둘째 "상위의" 인지 구조들도 지각에 의해 유도되는 행동의 반복되는 유형으로부터 창발한다는 것이다. 즉 인지는 표상으로 구성되는 것이 아니고 체화된 행동으로 구성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알고 있는 저 세계는 주어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의(우리 자신에 의한) 구조적 결합의 역사를 통해서 구성된 것이며, 그리고 구성의 단위를 구별하는 순간적인 계기들은 각각의 상황마다 나타나는 수많은 미시세계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43 다시 말해 인지과학은 '그곳에 있다는 것 자체', 즉 즉각적인 대응이 결코 단순하거나 반사적인 것이 아니라는 간단한 사실을 이제야 깨닫고 있다. 사실 즉각적인 대응이 가장 "힘든 작업" hard work이다. 왜냐하면 현재 상태로 진화하기까지 장구한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다. 반면에 혼란의 상황에서 발휘되는 의도적이고 합리적인 분석능력은 진화의 관점에서 볼 때 최근에야 비로소 매우 급속하게 나타난 것이다(이러한 견해 역시 현대의 로봇 공학과 인공생명 연구에 관련된 여러 분야에 토대를 두고 있다).
45 요약하자면, 나의 요점은 우리의 정신적 육체적 삶의 대부분은 다양한 즉각적 대응으로부터 오는 것이며, 그것은 명확하고 안정되었으며 우리의 개인적 역사에 근거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매우 즉각적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알지 못할 뿐 아니라, 우리 자신이 그것을 알지 못한다는 것조차도 우리는 알지 못한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현상학과 실용주의가, 다른 한편으로는 인지과학의 새로운 경향들이 이것을 전면에 내세우기 전까지 이에 주목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그러나 아직도 의문은 남아있다. 과연 즉각적 대응 행동과 추상적 판단, 상황성과 도덕성 사이의 구별은 윤리학 연구와 윤리적 숙련에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72 그러나 우리의 문제는 더욱 깊어만 간다. 거세게 휘몰아치는 “하위개인적" 활동들 가운데서 하나의 정합적이고 통일된 자아를 발견할 수 없다는 것이 그 중 하나이다. 이러한 발견 불가능은 틀림없이 우리의 자아에 대한 생각에 역행할 것이지만 그 역행에는 한계가 주어질 것이다. 우리는 여전히 진실로 하나의 자아가 있지만 이러한 방식으로는 그것을 찾을 수 없는 것일 뿐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다. 어쩌면 사르트르가 말했듯이 자아는 너무나 가까이 있어서 뒤돌아보면 보이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계산주의자의 도전은 보다 더 심각하다. 계산주의에 의하면 인지는 의식 없이도 진행될 수 있는데, 그 이유는 그 양자 사이에 어떠한 필수적이거나 필연적인 연관이 없기 때문이다.
73 우리의 의문을 헤쳐갈 수 있는 진보의 길을 찾기 위하여 우리는 이 분열의 본질을 더욱 가깝게 들여다보아야 한다. 세 번째 강의에서 논의할 예정이지만 이 분열의 본질은 인지과학과 서구적 사유 모두에 대단히 새로운 분석의 유형으로서 내가 가상적인 자아라고 명명하려고 하는 것을 발생시키는 뇌의 기제로부터 나타나는 창발적(또는 자기조직적) 속성들의 본질인 것이다.
99 현대 서구과학은 자아가 가상적이고 비어있다는 것, 그리고 자아는 우리의 미시세계 안의 혼란과 대면하면서 연속적으로 일어난다는 것을 가르친다. 도교, 유교, 그리고 불교 역시 윤리적 숙련은 속성상 진행적이고 일상적인 삶과 활동 속에서 이러한 비어있는 자아의 계속되는 실현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 가르친다. 이러한 두 개의 전통은 서로를 지지하고 있으며, 그 점은 이 강의에서 내 주장의 핵심인 다음과 같은 가설의 기반을 제공한다.
윤리의 노하우 ethical know-how는 점진적이고 직접적으로 자아의 가상성과 익숙해지는 것이다.
111 즉각적인 비이기적 관심과 윤리적으로 완성된 사람을 만드는데에 말만으로는 분명 충분치 않다. 말과 개념은 통찰의 경험보다도 더 쉽게 파악될 수 있고, 기반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어서 자아의 덮개 속에 엮어질 수 있다. 그래서 모든 명상적 전통의 스승들은 고정된 관점이나 개념을 실재로 간주하지 말라고 경고한다. 우리는 어떤 형태의 지속되고 훈련된 수련 또는 '주체의 변화를 위한 수련'에 대한 필요성을 쉽게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것은 스스로 보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스스로 서구과학의 역사를 보충할 수 있는 이상의 것이다. 아무 것도 그냥 일어나지는 않는다. 개인 스스로 발견하고 가상자아에 대한 자산의 느낌을 키워야 한다.
112 결론적으로 나는 윤리적 노하우가 무엇이며 그것은 어떻게 얻어질 수 있는가에 대한 나의 주된 관심사를 조명하기 위하여 마음의 과학과 전통적 가르침의 깊이에서 나온 주제를 함께 엮으려고 노력하였다. 나의 논의는 비의도적 행동으로 이해되는 지혜로의 복귀에 대한 기원이다. 삶에 대한 숙련된 접근은 순간순간 우리 자아의 가상적 본성을 자각하는 변화의 실천론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이 접근이 완전히 펼쳐질 때 개방성은 참된 돌봄으로서 만개하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당면한 어려운 시대를 위한, 그리고 아마도 앞으로 겪게 될 더욱 어려운 시대를 위한 급진적 사상이자 강력한 처방이다.
'책 밑줄긋기 > 책 2012-22'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태권: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 3 - 예루살렘 왕국과 멜리장드 (0) | 2021.08.30 |
---|---|
발터슐츠: 근대 형이상학에 있어서 철학자의 신 (0) | 2021.08.30 |
맬컴 불: 종말론 ━ 최후의 날에 관한 12편의 에세이 (0) | 2021.08.26 |
김태권: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 2 ━ 1차 십자군과 보에몽 (0) | 2021.08.25 |
움베르토 에코: 미의 역사 (0) | 2021.08.20 |
이상희: 이상희 선생님이 들려주는 인류 이야기 (0) | 2021.08.18 |
이해영: 전국시대 비판철학 (0) | 2021.08.17 |
한스 큉: 음악과 종교 ━ 모차르트 - 바그너 - 브루크너 (0) | 2021.08.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