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 아비토: 일본 사회 일본 문화 ━ 동경대 특별 강좌
- 책 밑줄긋기/책 2012-22
- 2021. 9. 3.
일본 사회 일본 문화 - 이토 아비토 지음, 임경택 옮김/소와당 |
한국의 독자들에게
옮긴이의 말
머리말
01 일본열도의 주민
02 열도의 다양한 생활
03 이에.친족.조상
04 물건(物)과 민속 지식
05 도시 사회
06 시민, 요사코이 마츠리
07 상업 사회의 전통
08 다양한 생활과 인생상
09 개발과 민속사회
10 농촌진흥과 민속사회
11 일본의 특수성과 주변성
찾아보기
106 앞서 말했듯이 일본에서 '이에'는 일본식 한자에 의한 표기법으로는 家를 대용시켰기 때문에 한문의 소양이 있는 사람에게 한국의 '집'이나 중국의 '지아'와 큰 차이가 없는 것처럼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한국에서도 문서상으로는 집에 '家'라는 한자를 대응 한자로 써왔다. 실재 일본의 이에는 오히려 한국이나 중국과 비교함으로써 그 특질이 한층 더 선명해진다.
우선 과거 중국의 한족사회나 한국에서는 일본과는 달리 무엇보다도 부계 혈연에 따라 대를 잇고 가문을 승계하는 원칙이 개인의 기본적인 자격으로서 중시되었고, '집’이나 '지아’의 구성원이 될 권리도 이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었다. 일본과 마찬가지로 농업 생활을 했던 한국의 농촌에서 벽이나 돌담으로 둘러싸인 주택을 보면, 외견상으로는 한국의 '집’도 일본의 '이에'와 마찬가지로 자율성이 높은 단위일 것 같은 인상을 받는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어디까지나 부계혈통을 따르는 원칙을 바탕으로 친족관계가 체계를 이루었고, 한국의 집은 영속적인 조직 '문중'을 가지고 있었다. 그로 인해 가족 관계에 있는 사람은 생활을 공동으로 하지 않더라도 누구든지 그 체계와 조직 안에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고 해도 좋았다. 집도 이러한 친족 체계 중의 일부를 이루고 있었다. 부계 승계가 원리로 여겨지기 때문에 아버지 쪽 핏줄이 아닌 사람이 후계자가 될 가능성은 엄격하게 배제되었으며, 일본 같이 비혈연자를 양자로 하여 '이에'의 일원으로 받아들이는 일은 원칙적으로 생각할 수 없었다. 더욱이 부계 친족 상호 간의 신뢰나 의존 관계가 다른 관계보다 우선시되기 때문에 가족은 물론 부계 친족의 사람은 비록 멀리 떨어져 살면서 오랜 세월이 지나도 끊을 수 없는 관계로 간주되어, 일본보다 훨씬 더 장기간에 걸쳐 그리고 넓은 범위에 걸쳐 친족 관계가 유지되고 있다. 세대를 넘어 확산되는 이러한 부계 친족관계를 더듬어 친족은 서로에게 관심을 가지고, 어려운 때에는 서로 의지하며, 친족 중에 의지해오는 이가 있으면 거절할 수 없는 고정된 관계망을 형성하게 된다. 예를들어 농촌에서 대도시로 인구 이동이 급증한 1970년대에는 한발 먼저 도시로 나가 생활 기반을 쌓은 가까운 친족과 동거하는 친족이 매우 많았던 것이다.
139 옛날 이야기 중에 표현되고 있는 이들 물건의 주체는 이솝 우화와 같이 어디까지나 인간이 중심이 되어 동물이나 식물을 의인화한 우화와는 다르다. 사람과 물건은 본래 영적으로 서로 교류할 수 있는 동등한 관계에 있으며, 그 감정이나 행동 면에서도 양자는 상호 관련되어 혹은 연속되어 파악되었던 것이다. 일본의 옛날 이야기 중에 등장하는 원숭이나 게나 벌이나 절구마저도 모두 그 본래의 모습대로 같은 세계에 존재했던 것일 뿐, 일본인들은 이것을 의인화라고 보는 인간 중심의 사고를 가지고 있지 않다. 인간과 그 이외의 물건과의 이러한 상호성과 연속성은 중국이나 한국에서 과거의 유학자들이 그린 인간 중심의 세계관이나 기독교 세계관, 불교의 윤회전생의 세계관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것이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표현에서 나타나는 것과 같은, 인간만이 영적인 주체임을 상정하는 유교적 사고는 일본인의 세계관으로 볼 때 그다지 익숙하지 않은 관념이다. 오늘날의 일본에서는 명확히 영적인 주체를 상정하는 것이 줄어들기는 했지만, 그래도 꽃이 나 수목에 말을 걸거나 하는 일이 어른들 사이에서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140 '요루'라는 말은 물체에 무엇인가 별도의 물체가 의지하거나 달라붙거나 혹은 흘러 들어오는 경우뿐 아니라, 비물질적이고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것에 대해서도 사용된 말이다.
예를 들면 일본인들은 풀꽃이나 나뭇가지에도, 또한 작은 돌에조차 무언가 영적인 것이 달라붙는다고 여겼다. 일본인의 생활 중에 정월의 마츠무카에는 산으로부터 정월의 신을 맞아들이는 행사였고, 봄에 산에서 내려온 산신이 머무는 곳으로서 진달래나 동백의 꽃을 맞이 한다든지, 혹은 오봉 때에 조령이 머무는 곳이라 하여 봉바나를 맞이하는 등 풀꽃이나 나뭇가지는 영적인 것이 머문다고 여겨져 왔다. 즉 일본에서는 풀꽃을 단순한 장식물로 간주하지 않았던 것이다. 따라서 서구 사회처럼 소득 수준에 따른 꽃의 소비 확대를 일본인에게 그대로 기대하는 것은 맞지 않는다.
141 일본에서는 가정에서 오래 사용한 도구나 오랫동안 몸에 지니고 있던 물건에는 무언가 영적인 것이 깃들어 있는 것처럼 간주하여 어떤 식으로든 배려해왔다. 오래 사용한 빗자루라든가 칼, 바늘, 붓, 빗, 짚신이나 게타 등 몸에 지니고 있던 물건이나 부채, 지팡이, 우산, 옷 등 크든 작든 모두 그렇게 취급했다. 물건이 오래되면 점차로 무언가 영적인 것이 갖춰지는 것처럼, 혹은 주인의 영의 일부가 옮겨와 깃드는 것처럼 생각했고, 따라서 보지도 듣지도 못한 타인이 사용한 물건은 함부로 사용하지 않는 것이 관습이 되었다. 빗 등을 주웠을 때에는 한번 밟고나서 주우라고까지 하였다. 또한 자신이 오랫동안 사용하다 낡아진 것을 함부로 버려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 적절한 때에 모아서 신사나 절에서 액막이나 공양을 하고, 마치 살아 있는 것을 대하는 것같이 위로 하거나 진정시키는 의례도 행했다.
148 고인이 특히 애용했던 물건은 그 사람의 혼이 담겨 있는 것처럼 소중히 다뤄진다. 이것은 단순한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기념물'이 아니라, 분신으로서 그 사람을 대신하는 몸으로 간주된다. '카타미와케'라고 하여 특히 가까운 사람들에게는 분신의 물건을 나눠주는 것도 일상적으로 이루어졌다. 죽은 사람뿐아니라 친한 사람과 오랫동안 헤어져야 할 때에도 몸에 지니고 있던 물건이나 소중히 여겨온 물건을 자신의 분신으로서 건네주는 경우가 있다.
149 고인의 유품을 보존하든지 분신의 물건을 소중히 한다든지 하는 것은 어느 사회에서나 비슷하게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실은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 예를 들면 한국에서는 부계의 계보 관계에 기초하여 조상의 제시를 유교의 논리와 형식에 맞추어 지금도 잘 지키고 있는데, 유교의 가르침에서는 죽은 자의 영은 어디까지나 위패에 머문다고 여겨 그 이외의 물건을 인간의 영적인 매체로 존중하는 것은 있어서는 안 될 일로 여겼다. 옷이나 애용품 등도 고인의 영과는 관계없는 것으로 간주되고, 고인이 입고 있던 옷은 오히려 태워 없애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자손도 아닌 타인에게 분신으로 나눠주는 경우는 도저히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150 일본에서는 기분을 아무리 말로 표현하더라도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고 여긴다. 무언가 구체적인 물건을 곁들여야만 비로소 마음을 완전히 전달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또한 물건을 받고 무언가 물건으로 답례하지 않으면 감사의 마음도 전해지지 않는다고 여기는 것이다. 한편 한국에서는 마음은 가능한 한 말로 표현하는 것이 성의 있는 태도라 여겨지고, 물건을 매개로 하여 마음을 전하려고 것은 불성실하거나 뭔가 의도가 있는 것으로 간주된다. 반대로 일본에서는 물건에 무언가가 담겨 있다고 여기는 것 같다.
151 장인은 도구를 마치 자신의 손발의 연장인 양 보고, 오랫동안 사용해서 닳아버린 도구는 자신을 대신하는 것처럼 소중히 다룬다. 도구의 손질과 보관도 일의 일부로 여기고, 따라서 작업장이나 도구를 보면 그 장인의 인품이나 일하는 모습까지도 알 수 있다고 한다. 장인이 남긴 작품이나 도구까지도 마치 그 사람의 혼이 담겨 있는 것 같다. 또한 연말에는 도구나 작업장을 깨끗이 손질하고, 시메나와를 걸어 액을 막고 부정을 씻고 나서 정월을 맞이한다. 이렇게 새로운 기분으로 연초를 시작하며 시무식을 맞이하는 것도 물건이나 장소와 인간의 영적인 관계를 잘 나타내준다고 할 수 있다. 장인은 일반적으로 과묵하다. 말로 표현하기보다는 솜씨와 물건을 통하여 자신을 표현하는 것이 요구되고, 어디까지나 일의 솜씨로 평가받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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