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스토텔레스: 시학

 

시학 - 10점
아리스토텔레스 지음, 손명현 옮김/고려대학교출판부

 

아리스토텔레스: 시학

시학

해설

아리스토텔레스 연보

 


+ 강유원 선생님의 강독 일정에 맞추어 책을 읽는다.

 

제1장
우리의 주제는 작시술인데, 우리는 그 일반적인 본질과, 그 여러 종류와, 그 각 종류의 기능과, 좋은 시는 그 플롯이 어떻게 구성되어야 하는가 및 시의 구성부분은 얼마나 되며, 어떠한 성질의 것인가, 그리고 또 이와 동일한 연구 영역에 속하는 다른 사항에 관하여 우선 자연적 순서에 따라 제1차적인 사항에서부터 시작하여 논하려고 한다.
서사시, 비극시, 희극시, '디티람보스' 및 대부분의 관악과 현악은 모두 모방의 양식이지만 다음 세 가지 점에서 상호 간에 차이가 있다. 즉 모방의 매재가 그 종류에 있어서 상이하든지, 혹은 그 대상이 상이하든지, 혹은 그 양식이 상이하여 동일한 방식이 아니든지.
어떤 사람은 색채와 형태를 가지고 많은 사물을 모방 묘사하고, ━ 혹자는 기술에 의하고, 혹자는 연습에 의하여 ━ 다른 사람들은 음성에 의하여 그러는 바와 같이, 상술한 여러 기술에 있어서도 전체적으로 말한다면, 율동과 언어와 해음이 모방의 매재로서 사용되는데, 이들은 단독으로 사용될 때도 있고, 혼합되어 사용될 때도 있다. 관악과 현악 및 이와 유사한 작용을 하는 것들, 예컨대 목적은 해음과 율동만을 사용하고, 무용술은 해음 없이 율동만을 가지고 모방한다. 왜냐하면 무용가도 그 동작의 율동에 의하여 성격과 정감과 행위를 모방하기 때문이다. 또 해음 없이 언어만을 가지고 모방하는 기술이 있는데, ━ 이때 언어는 산문 혹은 운문으로서, 후자의 경우에는 상이한 운율이 혼합될 때도 있고, 한 종류의 운율이 사용될 때도 있다 ━ 그것은 오늘에 이르기까지 명칭이 없다. 우리는 소프론 및 크세나르코스의 소극과 소크라테스적 대화를 지칭할 공통적인 명칭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뿐만 아니라, 이 두 경우에서 모방이 3절 운율이나, 혹은 애가 운율이나, 혹은 다른 어떤 운율에 의하여 행하여진다 하더라도 공통적인 명칭은 가지지 않을 것이다. 단 사람들은 운율에 '시인'이라는 말을 첨부하여 애가조 시인이니, 서사시 시인이니 부르는데, 이는 그들의 작품의 모방성에 의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사용하는 운율에 의하여 공통적인 명칭으로 부르기 때문이다. 의학이나 자연학에 관한 것이라 할지라도 운문으로 쓰여졌으면 사람들은 그 저자를 시인이라고 부르는 것이 통례이다. 예컨대 호메로스와 엠페도클레스에게는 운율 이외에는 공통적인 점이 없다. 전자는 시인이라고 부르는 것이 정당하나, 후자는 시인이라기보다 자연학자라고 부름이 정당하다. 카이레몬이 〈켄타우로스〉 ━ 이것은 모든 종류의 운율이 혼성된 음송시다 ━ 를 제작한 바와 같이, 모든 종류의 운율을 혼합하여 모방을 한 경우에도 사정은 다름이 없을 것이며, 그를 역시 우리는 시인이라고 부르지 않으면 안 된다. 이들에 관해서는 이만 해두기로 하자. 끝으로 이상 말한 모든 매제 즉 율동, 해음, 시문을 다 사용하는 기술 형식이 있는데, 예컨대 디티람보스 시와 송시와 비극과 희극이 그렇다. 이들의 차이점은 앞에서 언급한 둘은 동시에 모든 매재를 사용하고, 뒤에서 말한 둘은 때로는 그중 한 매재를, 때로는 다른 매재를 교체하여 사용한다는 점에 있다. 여러 기술의 이와같은 차이점을 나는 모방의 매재라고 부른다.

제2장
모방자는 행동하는 인간을 모방하고, 행동하는 인간은 필연적으로 선인이거나 악인이기 때문에 — 인간의 여러 성격은 대부분이 선악의 구별에서 파생한다. 왜냐하면 성격상의 덕과 부덕에 의하여 모든 인간은 구별되기 때문이다. 모방의 대상인 이 행동하는 인간은 우리들 이상의 선인이든지, 혹은 그 이하의 악인이든지, 혹은 우리와 동등한 인간일 것이다. 그것은 화가의 경우와 같다. 왜냐하면 폴리그노토스는 우리들 이상의 선인을, 파우손은 그 이하의 악인을, 디오니시오스는 우리들과 동등한 인간을 그렸기 때문이다. 이상 말한 각 모방도 이와 같이 구별되리라는 것, 그리고 이와 같은 방법으로 상이한 대상을 모방함으로써 각 모방이 상이하리라는 것은 명백하다. 무용, 관악, 현악에서도 이와 같은 차이가 가능할 것이며, 또 그것은 언어━산문이나 음악의 반주 없는 운문―를 사용하는 모방에 있어서도 가능할 것이다. 예컨대 호메로스는 우리들 이상의 선인을, 클레오폰은 우리와 동등한 인간을, 희작시를 최초로 쓴 타소스인 헤게몬과 〈데일리아스〉의 저자 니코카레스는 우리 이하의 악인을 그렸던 것이다. 디티람보스 시와 송시에 관해서도 같은 말을 할 수 있으니, 이들의 경우에서도, … 및 아르가스가 쓴 … 또는 티모테오스와 필록세노스가 쓴 〈키클롭스족〉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인물들을 상이하게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비극과 희극의 차이점도 이 점에 있다. 희극은 현실적 인간 이하의 악인을 표현하려 하고, 비극은 그 이상의 선인을 표현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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