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 언더그라운드

 

언더그라운드 - 10점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억관 옮김/문학동네

지요다 선
마루노우치 선(오기쿠보 행)
마루노우치 선(이케부쿠로 행/회송)
히비야 선(나카메구로 발)
히비야 선(기타센주 발 나카메구로 행)

지표 없는 악몽

 


히비야 선(기타센주 발 나카메구로 행)

689 혼모쿠로 돌아오자 사람들이 모두 저를 알아보고 길을 걸어가면 뒤에서 수군대며 손가락으로 가리켰습니다. '저기 저 사람 그 사린 사건으로 남편을 잃었어'라고요. 그것이 마음을 아프게 찔렀습니다. 등으로 그런 느낌이 전해져오는 겁니다. 도저히 견딜 수 없어 이사했습니다.

제가 처음으로 검찰청에 사건에 관한 개요를 들으러 갔을 때 남편을 도와준 사람과 데리고 온 사람의 증언을 들었습니다. 지하철 직원도 증언했습니다. "남편이 죽을 때의 상태를 알고 싶습니까?"라고 검사가 묻기에 "물론입니다"하고 대답했습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아니 … 그이가 그렇게 괴로워하며 죽었단 말인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다면 상대에게도 똑같은 고통을 주고 싶었습니다. 꽤 이렇게 질질 끌며 죽이지 않는지', 늘 그런 생각을 합니다. 하루라도 빨리 극형에 처하길 바랍니다. 재판을 보면 정말 화가 치밉니다. 남편은 도대체 무엇 때문에 살해되었을까요. 남편과 저와 아이의 미래를 망친 이 억울함을 어디에다 하소연하면 좋을지……
솔직히 아사하라는 제 손으로 죽이고 싶습니다. 만일 가능하다면 조금씩 천천히 죽이고 싶습니다. 히비야 선의 실행범인 하야시도 아직 잡히지 않았죠. 전 진실을 알고 싶습니다. 한시라도 빨리……
희생자가 거기에서 얼마나 괴로워하며 죽었는지, 매스컴은 조금도 보도해주지 않았습니다. 그런 사실은 조금도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마쓰모토 사린사건 때는 약간 보도되었지만 지하철 사린사건에 대해서는 이상하게도 그러지 않습니다. 그래서 갑자기 픽 쓰러져 그대로 죽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 거예요. 신문기사도이거나 저거나 모두 마찬가지죠. 저도 검찰청에 가서 검사가 읽는 조서를 통해서야 비로소 남편이 굉장히 괴로워하다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저는 사람들에게 진실을 알리고 싶습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어떤 마음으로 죽었는지. 얼마나 허망한 마음으로 죽어갔는지를……
결국 남의 일이 되어버리는 거죠. 저도 당사자가 아니었다면 그렇게 생각했을 겁니다. 그건 다른사람 일이라고요.

 

지표 없는 악몽
689 한 가지만은 명확하다. 약간 기묘한 '거북수러움과 께름칙함'이 남았다는 것이다. 우리는 고개를 갸웃한다. 도대체 그것은 어디서 온 것일까. 그리고 우리의 대부분은 그 '거북스러움과 께름칙함'을 잊기 위해 그 사건 자체를 과거라는 궤짝 속에 쓸어넣어버리려 하는 것 같다. 그리고 사건 그 자체의 의미를 '재판'이라는 고정된 시스템 속에서 그럴듯하게 문장화해 제도 차원에서 처리해버리려는 것 같다.
물론 재판을 통해 많은 진실이 밝혀지는 것은 귀중한 일이다. 그러나 그 심리 과정에서 밝혀진 사실을 통합하고 피와 살로 바꾸어 내는 종합적인 시야를 가지지 못한다면 모든 것은 무의미하게 세분화되고 범죄 가십으로 변해 그길로 역사의 어둠 속으로 사라져버리지 않을까. 도시에 내린 비가 대지를 적시지 못하고 하수구를 타고 그대로 바다로 흘러가버리듯이. 사법 시스템이 법률을 기초로 삼아 처리하고 심판할 수 있는 영역은 어디까지나 사건의 한 측면일 뿐이다. 모든 것이 재판 하나로 말끔히 정리되지는 않는다.
다시 말해 '옴진리교'와 '지하철 사린사건'이 우리 사회에 가져다 준 커다란 충격은 아직도 유효하게 분석되지 않았고, 그 의미와 교훈은 아직 뚜렷한 윤곽이 드러나지 못한 것은 아닐까. 이 책을 끝 내는 지금 나는 그런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다. '요컨대 광적인 집단이 일으킨 예외적이며 무의미한 범죄 아닌가'하며 사건을 간단히 정리해버리는 게 아닐까. 극단적인 말일지 모르지만 이 사건은 결국 네 컷 만화같은 '웃음거리'로서, 기묘한범죄 가십으로서, 또는 세대별로 수렴된 '도시전설'의 형태로만 의미를 가질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만일 그렇다면 도대체 어디서부터 단추가 잘못 끼워진 것일까? 우리가 이 불행한 사건을 통해 진실로 무언가를 배우려고 한다면 거기서 일어난 일을 다시 한번 다른 각도에서 다른 방식으로 철저히 분석하고 조사해야 할 때를 맞은 것이 아닐까. '옴진리교는 악이다'라고 말하는 건 쉽다. 또한 '악과 정상은 다르다'라는 것도 논리적으로는 간단하다. 그러나 아무리 그런 논리로 정면에서 파헤쳐 본들 그것으로 '승합마차적 콘센서스'의 주술을 풀기에는 역부족이 아닐까.
왜냐하면 그것은 이미 모든 장면에서 모든 방법으로 이용될 대로 이용되어버린 언어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벌써 제도화되어버린 손때가 묻은 언어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제도의 튤 속에 있는 언어로 제도의 틀 속에 있는 상황과 고착된 정서를 뒤흔들거나 무너뜨린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까지는 할 수 없어도, 무척 어려움이 따르는 작업이 될 것임은 분명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지금 필요로 하는 것은 아마도 새로운 방향에서 모색된 언어일 것이며, 그러한 언어로 말해야 할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이야기를 정화하기 위한 또 다른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722 그 두 가지 사건의 공통점을 하나만 든다면 그것은 '압도적인 폭력'일 것이다. 물론 폭력의 구체적인 요소는 완전히 다르다. 하나는 불가피한 천재지변이고, 다른 하나는 불가피하다고 할 수 없는 '인재=범죄'였다. 이 둘을 '폭력'이라는 공통항으로 묶어버린다는 것 자체가 무리라는 것도 물론 알고 있다.
그러나 우연히 실제로 피해를 입은 사람들 입장에서 생각할 때 그 갑작스러움이나 부조리성은 지진이건 지하철 사린사건이건 불가사의할 정도로 비슷하다. 폭력 자체의 출처와 질은 다르지만 그것이 가져다 준 충격의 질은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다. 사린사건 피해자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때로 그런 인상을 받았다.
피해자 대부분은 '나는 옴진리교 놈들을 정말로 증오한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정말로 증오'하면서도 그 증오를 현실적인 형태로 발산하지 못해 당혹스러워하는 것으로 보였다. 간단히 말해 자신이 느끼고 있는 분노나 저주를 도대체 어디에다 퍼부어야 할지, 어느 방향으로 발산시켜야 할지를 정확히 모르고 있다. 왜냐하면 그 폭력이 과연 어디서 온 것인지 아직 정확한 '출처 (마그마의 위치)'를 명확하게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분노나 저주를 발산할 곳이 뚜렷하지 않다는 점에서 一지하철 사린사건과 고베 대지진은 형태적으로 닮은꼴이다.

724 그러나 나는 여기서 그런 개인적인 차원의 판단 착오를 일일이 구체적으로 비난하고 질책할 생각은 없다. '어쩔 수 없었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자세히 검증해보면 제각기 참작할 만한 점들이 없지 않기 때문이다. 개개의 과실을 개선하는 일을 게을리해서는 물론 안 되겠으나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우리 사회 시스템이 마련했던 위기관리 체제 자체가 상당히 부실하고 불충분했다'라는 엄청난 현실을 절실히 인식하는 일일 것이다. 현장의 판단 착오는 어디까지나 그 결과의 집적에 지나지 않는다.
내가 그보다 더욱 심각하게 위기감을 느낀 것은, 당일 발생한 수많은 과실의 원인이나 책임, 그에 이르기까지의 경위, 또한 그런 과실에 의해 발생한 결과의 실태가 아직도 정보의 형태로 일반에 충분히 공개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과실을 외부에 명확히 밝히고 싶어하지 않는' 일본적 조직의 체질이다. '집안 창피니까'라는 것이다. 그 결과 수많은 정보가 '재판중이라서'라든지 '공무집행 중에 일어난 일이라서'라는 터무니없는 이유로 취재를 제한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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