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 C. 헨리: 인문학 스터디

 

인문학 스터디 - 10점
마크 C. 헨리 지음, 강유원 외 편역/라티오

 

Ⅰ 문학.예술
1. 고전문학 혹은 고전학
2. 근대 문학
3. 예술학
읽어야 할 도서 목록

Ⅱ 철학.정치
1. 고대 철학 입문
2. 근대 철학
3. 법과 경제
읽어야 할 도서 목록

Ⅲ 역사학
1. 고대 로마사
2. 1865년 이전의 미국 역사
3. 19세기 유럽 지성사
4. 과학의 역사
읽어야 할 도서 목록

Ⅳ 기독교 사상
1. 성서
2. 1500년 이전의 기독교 사상
읽어야 할 도서 목록

 


고대로마사


'로마'는 '세계의 절반과 가장 문명화된 사람들을 지배'(《로마제국 쇠망사》의 저자 에드워드 기번)했던 나라의 이름이기도 하고, 그 나라의 수도 이름이기도 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것은 하나의 문명을 가리키는 말이다. 거대한 문명이었기에 로마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신화로 치장된 그것의 맹아기와 왕정, 공화정, 제정이라는 다양한 체제를 거쳐가는 기나긴 전개과정보다는 쇠망기에 집중된다. 그렇지만 로마는 하루 밤에 무너지지 않았으며, 마찬가지로 하루 아침에 세워지지도 않았음을 기억해야만 한다.

모든 고대 국가의 새벽에는 신화가 있다. 로마도 예외는 아니다. 로마의 건국 산화에는 늑대의 젖을 먹고 자란 쌍둥이 형제, 자기 땅의 경계선을 넘었다 하여 형제를 죽인 이야기가 등장한다. '로마'라는 나라 이름은 레무스를 죽인 로물루스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다고 한다. 그러나 실제로 이 나라는 서기전 6세기경 티베르 강변의 작은 도시국가에서 시작한다. 이 나라는 왕정을 거쳐 공화정에 들어서며 이때 세 번에 걸친 포에니 전쟁에서 북아프리카의 강국 카르타고를 멸망시킴으로써 지중해 세계의 패권을 장악한다. 로마의 수도 로마(정확하게는 '우르브스 로마나' Urbs Romana, 'Urbs'는 도시라는 뜻)는 '세계의 머리'(Caput Mundi)로 발돋움할 준비를 하는 것이다. 영토를 늘려가던 로마는 카이사르가 갈리아를 정복한 뒤 루비콘 강을 건넘으로써 제정으로 가는 길을 열어 젖혔고, 클라우디우스 왕조, 플라비우스 왕조, 세베루스 왕조 등의 통치기
를 거쳐간다. 전성기의 로마는 동서로는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를 가로지르는 하드리아누스 성벽에서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이 흐르는 메소포타미아까지, 남북으로는 라인 강과 도나우 강에서 북아프리카의 아틀라스 산맥까지의 광대한 영토를 지배했다. 영토 안에는 '로마에 의한 평화'(Pax-Romana)가 것들었다. 그러나 3세기 이후 여러 원인들로 인해 쇠망의 길로 들어섰고, 476년 서로마 제국의 마지막 황제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는 오도아케르에 의해 폐위되었다. 새벽과 황혼에 모두 로물루스라는 인물이 등장하는 것은 역사의 미묘함이기도 할 것이다. 서로마제국 멸망 이후에도 동로마제국의 비잔티움 시대는 천 년 가까이 지속되었다.

로마의 세계 지배는 고대 세계의 당연한 법칙이겠지만, 로마 군단의 강한 군사력에 의해 가능했다. 그러나 강한 군사력만이 로마를 지탱한 힘은 아니었다. 로마는 군사적 지배력만이 아니라 문화적 지도력까지도 갖춘 제국이었다. 로마의 지배를 받게 된 민족들은 기꺼이 또는 아주 적극적으로 로마적 가치 체계로써 스스로를 지도하려 하였다. 라틴어 문법학자와 그 교육 등을 통하여 로마의 가치를 받이들이는 민족들이 늘어나면서 로마 제국 전체는 동질적인 문명권으로 결속되었다. 여기서 로마는 단순한 나라에서 보편적 문명으로 상승한다.

로마의 쇠망에는 모든 문명의 쇠망에 등장하는 모든 요소가 등장한다. 오랜 기간에 걸친 무질서한 살육과 혼란, 외부의 강한 적들(페르시아의 사산 왕조, 아틸라가 이끄는 훈족 등), 진정한 혁신에 이르지 못한 미봉적 개혁 정책들, 활력을 잃은 경제상황 등이 나타나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로마의 쇠망을 이야기할 때 로마의 기독교화, 그에 이은 평화주의의 만연과 강건한 기풍의 쇠퇴, 향락과 퇴폐의 만연을 거론하는 것은 정신주의적 단견에 지나지 않는다.

팍스 로마나의 시대에 로마는 그리스, 오리엔트, 이집트, 카르타고의 문명을 흡수하여 다시금 유럽의 전 지역에 나누어 주었다. 그리고 수사학과 같은 실용적 학술과 건축기술, 방대하고 조밀한 법률체계, 고대문화를 지키던 언어 등을 서구에 남겨 주었다. 서구인들은 이러한 로마의 유산에 자부심을 느끼면서 자신들이 로마 문명의 후예임을 앞다투어 내세우려 한다. 로마는 또한 기독교에게도 엄청난 기회를 제공하였다. 로마의 국교로서 입지를 다진 기독교는 로마인들이 건설했던 도로(아피아 가도, 카시아 가도, 아우렐리아 가도)로 선교사를 보냄으로써 유럽 세계로 퍼져 나갔다. 그리하여 중세의 로마는 기독교 '세계의 머리'가 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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