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토퍼 도슨: 세계사의 원동력

 

세계사의 원동력 - 10점
크리스토퍼 도슨 지음, 이길상 옮김/현대지성사

 


제1부 역사 사회학을 향하여
제1편 역사의 사회학적 토대들
제2편 세계사의 운동
제3편 도시화와 문화의 유기적 본질

제2부 세계사의 개념들
제1편 그리스도교와 역사의 의미
제2편 역사가의 비전

 



그리스도교 역사관

264 그리스도교 역사관은 철학적 반추에 의한 역사 연구로부터 유래한 부차적인 요소가 아니다. 그것은 그리스도교의 심장에 자리잡고 있으며, 그리스도교 신앙의 필수적인 부분을 이룬다. 따라서 엄격한 의미에서 그리스도교 '역사 철학'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 대신에 그리스도교 역사와 그리스도교적 역사 신학이 있으며, 이 두 가지가 없다면 그리스도교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스도교는 그것이 발생한 이스라엘 종교와 더불어 다른 어떤 세계 종교도 주장할 수 없는 의미에서의 역사적 종교이기 때문이다. (이슬람교는 이 점에서 역사적 종교에 가장 근접했지만 역사적 종교는 아니다.)

따라서 그리스도교적 역사관을 비그리스도인에게 설명하기란 대단히 어려우며, 혹은 아예 불가능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교 역사관을 이해하려면 그리스도교 신앙을 받아들여야 하는데, 신적 계시 사상을 배척하는 사람들은 필연적으로 그리스도교 역사관도 배척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론적으로 신적 계시 — 인간 이성을 뛰어넘는 종교적 진리의 현시
— 의 원칙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조차 그리스도교가 안고 있는 막대한 패러독스들에 맞닥뜨리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팔레스타인의 미미한 부족, 그것도 남달리 문명화된 것도 아니고 매력적이지도 않은 부족을 선택하여 인류를 위한 자신의 보편적 목적의 매체로 삼으셨다는 것은 믿기가 쉽지 않다. 게다가 이 목적이 티베리우스 치하에서 처형된 갈릴리의 시골 사람에게서 최종적으로 실현되었다는 것과, 이 사건이 인류의 삶에서 전환점이었고 역사의 의미에 열쇠가 되었다는 것은 인간 정신으로는 받아들이기가 너무나 어려웠기 때문에, 유대인들 자신들도 모욕거리로 생각했고, 그리스 철학자들과 세속 역사가들도 몹시 어리석은 일로 여겼다.

그럴지라도 그것이 그리스도교 역사관의 토대이며, 따라서 만약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면, 과거에 그랬듯이 관념적인 이론들을 정교하게 풀어내고 그것을 가리켜 그리스도교 역사 철학이라고 해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교 역사관이 단순히 신의 섭리에 의해 전개되는 역사의 방향에 대한 신념이 아니라, 신이 시간과 공간의 구체적인 시점들에 구체적인 행동으로 인류의 삶에 개입한다는 신념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 교리인 성육신 교리가 역사에서도 중심이며, 따라서 유럽의 전통적인 그리스도교 역사가 성육신의 해를 원년으로 삼고 이 원년을 중심으로 연대를 앞뒤로 서술하는 연대기 체계를 골격으로 삼고 있다는 것은 자연스럽고도 적절한 일이다.

266 그리스도교적 역사 개념은 본질상 하나이다. 시작이 있고, 중심이 있고 끝이 있다. 이것은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역사적 사건이 아니라, 역사의 전체 과정이 걸려 있는 신적 창조 행위들이다. 그리스도교 역사관은 역사를 영원한 상(相) 아래서 바라보며, 시간을 영원의 표준에 의해 해석하며, 인간의 사건들을 신적 계시에 비추어 해석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리스도교 역사는 불가피하게 묵시적이며, 그 묵시는 세속적 역사 철학들에 대한 그리스도교적 대체물이다.

하지만 이 말은 역사적 가치관과 역사적 판단을 혁명적으로 뒤집고 바꾸어 놓는다는 뜻은 아니다. 역사의 진정한 의미란 역사가들이 연구하고 철학자들이 설명하려고 시도해온 명쾌한 의미가 아니기 때문이다. 인류 역사의 전 과정을 바꾸어 놓은 세계를 변화시킨 사건들은 역사의 표면 밑에서 역사가들과 철학자들의 눈에 띄지 않은 채 발생해 왔다. 이것이 사도 바울이 엄청난 힘을 실어 주장한 복음의 위대한 패러독스이다. 대대로 감춰져 왔던 신적 목적의 위대한 신비가 마침내 사도들의 사역에 의해서 천지간에 명백히 밝혀졌다. 그럴지라도 세상은 그것을 받아들일 능력이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알려지지도 않고 중요하지도 않은 사람들에 의해 유대인 사회와 헬레니즘 사회를 망라한 당대의 고등 문화가 받아들일 수도 없고 이해할 수도 없는 형태로 선포되었기 때문이다.

헬라인들은 철학적 이론들을 요구하고 유대인들은 역사적 증거를 요구한다. 하지만 그리스도교의 대답은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 즉 십자가 이야기이다. 그것은 유대인들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헬라인들에게는 불합리한 것이다. 지금까지 받아들여진 판단의 표준을 뒤집고서 이 엄청난 패러독스를 받아들일 때에야 비로소 인간 삶과 인간 역사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 사도 바울은 물론 이해의 가치를 부정하는 것도 아니고, 역사가 무의미하다고 주장하는 것도 아니다. 그가 주장하는 것은 참된 지식의 신비스럽고 초월적인 성격이다: "그러나 우리가 온전한 자들 중에서 지혜를 말하노니 이는 이 세상의 지혜가 아니요 또 이 세상의 없어질 관원의 지혜도 아니요 오직 비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이니 곧 감춰었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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