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터 옌스, 한스 큉: 문학과 종교

 

문학과 종교 - 10점
발터 옌스.한스 큉 지음, 김주연 옮김/문학과지성사

 

머리말 7
제1장 블레즈 파스칼, 『팡세』
제2장 안드레아스 그리피우스, 『시』
제3장 고트홀트 에프라임 레싱, 『현자 나탄』
제4장 프리드리히 횔덜린, 『찬가』
제5장 노발리스, 『기독교 혹은 유럽』
제6장 쇠렌 키르케고르, 『기독교 훈련』
제7장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토옙스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제8장 프란츠 카프카, 『성』

꼬리말 411
참고문헌 415
옮긴이의 글 문학과 종교, 멀리 떨어져서 438

 

 


 

근대의 개막과 종교

11 근대와 더불어 무슨 일이 종교에 일어났는가? 종교로 인해 어떤 일이 근대에 생겨났는가? 이렇게 우리는 근대 계몽주의 이후로 불확실해진 유산에 대해 묻는다. 어떻게 이러한 일들이 종교에 일어날 수 있었는가? 한때 여왕 같은 세도를 누렸던 종교가 이제 하녀가, 별 권리 없는 국외자가 되었다. 더욱이 학계와 사회에 관대하게 귀 기울여주기를 청하는 꼴이 되었다. 처음에는 가볍게 여겨지다가 그다음에는 무시되고, 마침내는 경멸당하고 저주받고 추방되었다. 그렇다, 우리는 이렇듯 범속한 무종교성과 새롭게 낭만적으로 깨어난 종교성 사이에서 의심에 가득 차 묻는다. 우리는 이렇듯 영성이탈과 영성쇄신의 양자 사이를 오가며 질문한다. 자의식을 가지고 인류의 진보와 대등시되던 근대사 가운데서 혹시 무엇인가가 비뚤게 진행된 것은 아닐까? 사람들은 진보를 결국 가장 높은 것으로 실체화한 것이고, 장장 3 백 년 동안 그것을 언어로, 또 특히 작품 속에서 "위대한 하느님, 우리는 당신을 찬양합니다"라고 노래한 것이 아닐까?

왜 이 강의가 파스칼에서 시작해서 카프카로 끝나는지, 그것은 우연도 아니고 임의로운 일도 아니다. 그렇다! 중요한 것은 엄격한 의미에서 근대가 무엇인지에 대한 진단이다. 정신사적으로 17세기의 위기와 더불어 시작된 근대, 데카르트와 파스칼과 함께 시작된 근대는 1차 대전의 위기, 니체와 카프카와 함께 끝난다. 파스칼에서 카프카에 이르는 이 시기 동안, 우리는 위대한 작가들의 경전적인 작품들에서 복잡하지만 생생한 그리고 모순에 찬 근대 종교사를 주시하게 된다. 파스칼의 동시대인인 그리피우스에 이르러, 30년 전쟁을 치른 독일에서는 종교개혁 사상이 깊게 뿌리내리고 있었다. 독일 계몽주의는, 이를 그 누구보다 문학적으로 더 훌륭하게 대변하는 레싱과 더불어 18세기 말에 이르기까지 고전주의와 낭만주의를 통해서 열띤 논란의 대상이 된다. 여기서 우리는 고전주의와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작가로 횔덜린과 노발리스를 꼽을 수 있다. 물론 근대 위기를 본질적 의미에서 우선 언급해야 할 것이다. 키르케고르와 도스토옙스키는 19세기에 그 위기 신호를 보냈으며, 20세기에 들어서 그 위기는 완전한 모습을 드러낸다. 파스칼이라는 이름이 근대의 개막과 함께 등장한다면 카프카라는 이름은 근대의 와해와 더불어 나타난다. 

13 질서, 권위와 규율, 교회, 위계와 교의는 17세기 중엽 프랑스에서도 높이 평가되었다. 그러나 비판자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즉, 종교가 절대군주와 그에게 헌신하는 교회 성직자들에 의해서, 그 빛나는 국가교회의 배후에서 양심 없이 그 자신의 권력과 영광의 전개를 위해 오용되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강한 종교적 냉각의 기운이 위협적으로 나타났다. 그렇다, 멀리서 하나의 일반적인 문화적 · 정치적 기류가 다가왔다. 확신, 가치와 행동방식의 근본적 변화, 오늘날 우리가 하나의 새로운 파라디그마라고, 파라디그마의 변화라고 부르는 것이 생겨난 것이다.

"클레오파트라의 코가 조금만 낮았더라도, 이 지상의 모습 전체가 달라졌을 것이다"(단장 162). 파스칼의 이 말은 맞다. 세계사의 진행은 자주 사소한 일들에 의해 결정된다. 그리고 세계사는 단 한 번의 "인간적인 별의 시간"(슈테판 바이크)에 의해 조종될 뿐만 아니라 "전체 성좌의 움직임"(=파라디그마들)에 따라서, 그리고 절대로 우연이 아닌 "세계를 뒤흔드는 이행 과정"(괴테)에 의해서도 지배되는 것이다.

16 그러나 이러한 정신사적·사회사적 운동에 엄청난 힘을 부여한 추진력은 무엇인가? 중세 로마 가톨릭의 파라디그마에 따르면 "교회는 곧 교황"이라는 말이 핵심어였다. 그러나 종교개혁에 와서는 "하느님의 말씀"이 그 핵심어가 되었다. 그런데 근대에 이르러서는? 관건이 되는 단어는 "합리성, "이치" "이성"이라는 말들이었다! 사실상 근대의 유례없는 역동성은 인간이 지닌 이성 본능에 대한 커다란 신뢰에서 나온 것이었다. 갈릴레이 사건에서 볼 수 있듯이 교회와는 전혀 무관한, 교황과도 관계없는 이성 말이다. 물론 루터의 경우는 아주 다른 것이었다. "이성적 판단"이 인간의 가장 높은 활동이었고, "이치대로 꼬치꼬치 말한다"는 것은 당시 하등의 모욕적인 언사가 아니었다. "이치"와 그럼으로써 생겨나는 정도·내용·균형 비례 등등은 인간적인 "수완"과 "처세술"을 가능케 했다.

17 분명 주지하는 바와 같이 이탈리아 르네상스와 인문주의에서는 삶과 세계에 대한 새로운 방향 설정이 이루어졌다. 중세 질서에서 도출된 인간, 그 인간적 권위에 대한 의식이 생겨났다. 특히 예술은 초월성을 지향하는 중세의 질서 조직에 얽매이지 않을 뿐 아니라, 그 자체가 목적이 되었다. 미학적인 것이 고유의 가치를 지니며, 여러 세속 예술이론, 예술가 기법, 예술품 수집을 통해 표명되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분명히 뒤를 돌아다보는 시선이었다. 즉, 고대 고전 문화에 대한 재고였던 것이다. 리-나시멘토라는 말은 하나의 주문이었는바, 그것은 재생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이제 17세기에 접어들어, 유럽의 지식인 엘리트들은 의식적으로 권위주의에서 벗어나 앞을 향해 열린 자세로 생각하기 시작하였다. 근대를 특징짓는 진보라는 말 속에는 고전(르네상스) 혹은 성경(종교개혁)이 아니라 인간적인 것에 자족하는 이성의 기초가 들어 있다. 볼테르에 의하면 그것은 이성 원칙이라는 것으로, 사람 됨됨이의 절대적인 가치 기준이자 인간 발전의 원동력이다. 이는 루이 14세 시대가 온 유럽 역사에서 다른 커다란 세 문화 시대, 즉 페리클레스의 아테네, 아우구스투스의 로마뿐 아니라 메디치 가문의 피렌체 시대까지 능가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사실상 이제야 사람들은 온전히 자기중심적이 되어, 단지 외곽에서 자율 이성을 주장하는 것만은 아닌 형세가 되었다. 이 자율 이성으로 인간은 심지어 자기중심 위치의 상실마저 모두 변상할 수 있었다. 파스칼에 따르면 이러한 상실 경험과 획득 경험 속에서 인간의 약점과 힘이 동시에 터를 잡았다. "인간은 갈대일 뿐이지만, 그러나 생각하는 갈대다"(단장 347).

18 과학과 신학과 산업을 통해 촉진된 합리주의화된 근대에서 무엇보다 결핍된 것은 파스칼이 포괄적으로 "가슴"이라고 부른 것은 아닌지? "우리는 진리를 이성만으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도 인식한다"(단장 282). 센티멘털리즘 무턱댄 민감성, 감정에의 탐닉? 아니다, 가슴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합리적·논리적인 것과 반대로 비합리적·정서적인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정신적 중심을 의미한다. 단지 이 인간의 정신적 중심을 이 육체적 기관이 상징하고 있을 뿐이다. 가장 속 깊은 곳에 있는 중심부, 다른 사람과 역동적 개인적 관계를 맺는 출구, 인간적 전체를 파악하는 정확한 기관이 가슴이다. 인간의 정신이 순수이론적으로만 생각하고 결론에 이르지 않을진대, 그 정신이 자발적으로 나타나고, 직관적으로 감지하며, 실존적으로 인식하고, 전면적으로 가치평가를 하는 한에 있어서, 그렇다, 넓은 의미에서 사랑하는 (혹은 증오하는) 정신인 한에 있어서, 가슴이란 바로 인간 정신인 것이다. 그러므로 가장 유명하다고는 할 수 없는 파스칼의 말, 그러나 별로 잘 번역되지 않는 말 "가슴은 이성이 알지 못하는 이성적 바탕을 가진다. 인간은 그것을 수천 가지 사물에서 경험한다"(단장 277)를 누가 이해하랴. 그렇다, 확실히 가슴의 논리학이 있고, 가슴은 그 자신의 이성을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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