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티오의 책들 | 역사 고전 강의 — 12

 

⟪역사 고전 강의 - 전진하는 세계 성찰하는 인간⟫, 제7강(2)

❧ 케르퀴라 내전의 추악한 양상
- 전쟁에 의한 내부 분열과 외부 세력의 개입
- 내전의 목적

❧ ⟪옥스퍼드 세계사⟫, 3장(2)

 

2021.08.24 역사 고전 강의 — 12

오늘은 《역사고전 강의》 제7강을 마저하고, ⟪옥스퍼드 세계사⟫ 제3장을 읽겠다.
지난 《역사고전 강의》 제7강 전반부에 해당하는 역병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역병은 자연적인 사태인데, 이 자연적인 사태가 그 당시 사람들의 심성구조로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그런데 그것이 " 이 역병은 아테나이 사람들의 인내심과 도덕심을 무너뜨리고, 동족을 향한 대량 살육의 추악한 전쟁으로 나아가는 문을 열어 젖힌다." 대량 살육의 추악한 전쟁의 전형적인 사례가 케르퀴라 내전이다. 케르퀴라는 아테나이와 동맹을 맺고 있던 나라이다. 공수동맹, 공격과 방어 모든 것을 함께 하는 동맹은 아니고, 케르퀴라에 다른 나라가 쳐들어오면 아테나이가 도와주는 것, 방어동맹이다. 아테나이가 케르퀴라와 동맹을 맺게 된 이유는 케르퀴라와 직접적인 대립관계에 있는 코린토스를 견제하기 위해서였다. 코린토스는 그리고 펠로폰네노스 동맹의 가장 앞쪽에 있는 나라이다. 네 나라를 생각하면 되겠다. 케르퀴라와 아테나이가 한쪽에 있고, 코린토스와 스파르테가 한쪽에 있다. 케르퀴라 내전이라고 하는 것이 에피담노스부터 시작해서 사실상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시작점이었다. 그런데 케르퀴라 안에 민주파와 과두파의 내분이 있었다. 

케이건 교수의 설명을 보면 코린토스가 일단 포로로 잡았던 250명 가량의 케르퀴라인을 귀환시켰다. 그리고 케르퀴라 사람들이 스파르테 동맹에 케르퀴라가 가담을 해야겠다고 생각을 하고 아테나이와 동맹을 끊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전통적으로 중립노선이었으니 중립으로 가야한다고 주장을 했다. 그런데 케르퀴라 민회에서는 민주파가 세력을 잡고 있었기 때문에 아테나이와의 방어 동맹을 재확인하면서도 동시에 펠로폰네소스 사람들과 친구로 잘 지내보자고 된 것이다. 그러면 케르퀴라 내부에서 과두파와 민주파 사이에 내분이 일어난다. 이렇게 되면 하나의 전선이 생기는데 과두파는 코린토스를 통해서 스파르테와 연결되고, 민주파는 아테나이에 연결되는 상황이 된다. 그러면 이제부터는 상대방을 절멸시킨다고 하는데, 완전히 쓸어없애버리는 단계, 그것이 내전이 1단계가 되면 궁극적인 목표는 상태방을 없애버리는 것인데 처음부터 그런 식으로 나아가지는 않는다. 

"과두파가 민주파 소속인 페이티아스 외 6명을 살해했고 아테나이로 도피한 민주파 동료는 아테나이에 보복을 요청했습니다." 그러면 내전 2단계 외부 세력의 개입이다. 그 다음에 외부 세력이 올 것을 고려해서 내부 세력이 서로 갈등 단계에 들어간다. 내전3단계이다. 그러다보면 내부 투쟁단계에서 민주파가 승리를 했다. 그러니까 과두파는 완전히 망하니까 스파르테가 개입을 한다. 자연스럽게 아테나이도 개입한다. 이것이 케르퀴라 내전 4단계, 즉 외세에 의한 싸움이 벌어진다.

제7강 112 과두파가 민주파 소속인 페이티아스 외 6명을 살해했고 아테나이로 도피한 민주파 동료는 아테나이에 보복을 요청했습니다.

제7강 114 외부 세력의 도움을 얻기는 했지만 어쨌든 내부 투쟁 단계에서 민주파가 승리했습니다. 그러자 이 싸움은 스파르테와 아테나이의 싸움으로 확대됩니다. 이것이 케르퀴라 내전 4단계입니다.

"투클레스의 아들 에우리메돈이 이끄는 60척의 아테나이 함대가 레우카스에서 출발했다는 소식이 들려왔고, 펠로폰네소스 인은 도망쳐야 했다. 이제 위험에서 벗어난 민주파는 내전의 강력한 동기인 분노와 증오를 폭발시켰다. 정치적 처형은 단순한 살인으로 타락했다." 민주파는 내전의 강력한 동기인 분노와 증오를 폭발시켰다. 내전의 최종결과물이 대학살이다. 그리고 이에 대해서 투퀴디데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인용문이 있다. 길지만 찬찬히 읽으며 음미해 볼 만한 가치가 있다. 몇 가지 눈에 띄는 서술을 보면, "눈에 띄는 적은 모조리 잡아죽였다.", "자신들이 설득한 자들을 배에서 끌어내 죽였다", "모두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신전 안에서 서로 죽였다" 죽였다라는 문장으로 계속 끝난다. "더러는 나무에 목매달아 자살하고, 더러는 다른 방법으로 목숨을 끊었다", "개인적인 원한 때문에 죽었고, 더러는 빚을 준 까닭에 채무자의 손에 죽기도 했다". "죽음은 온갖 모습으로 다가왔고, 그러한 상황에서 있을 법한 모든 일이, 아니 더 끔찍한 일들이 일어났다." 그 다음 문장들이 압권이다. "아버지가 아들을 죽이기도 했고, 신전에서 끌려나와 신전 옆에서 살해되는 사람들도 있었다. 디오뉘소스 신전에 감금되어 그 안에서 죽는 자들도 더러 있었다." 이 모든 문장을 죽었다라는 것으로 끝냈다는 것이다. 이게 무섭다. 표면상으로는 이념을 내건 전쟁인데 사실은 개인적인 원한과 채무, 이것이 민간인 학살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그러한 상황에서 있을 법한 모든 일" 인간사가 모두 그렇다는 것이다. 그래서 온 나라라 전쟁터가 되었다. 전장의 모습을 기록한 책들 또는 발굴해서 내놓은 책들을 읽어보면, 그리고 무차별적인 대량 살육이 행해진다. 투퀴디데스는 "이런 종류의 불법행위는 분명 케르퀴라에서 처음으로 자행되었다."고 말한다. 

제7강 114 투클레스의 아들 에우리메돈이 이끄는 60척의 아테나이 함대가 레우카스에서 출발했다는 소식이 들려왔고, 펠로폰네소스 인은 도망쳐야 했다. 이제 위험에서 벗어난 민주파는 내전의 강력한 동기인 분노와 증오를 폭발시켰다. 정치적 처형은 단순한 살인으로 타락했다. ━ 케이건,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151쪽

제7강 115 그러는 도중에도 눈에 띄는 적은 모조리 잡아죽였다. 그리고 함대가 입항하자 그들은 선원이 되라고 자신들이 설득한 자들을 배에서 끌어내 죽였다. 이튿날 그들은 헤라 신전으로 그서 약 50명의 탄원자에게 재판을 받도록 설득하더니 모두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재판받기를 거부한 탄원자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보자 대부분 신전 안에서 서로 죽였다. 더러는 나무에 목매달아 자살하고, 더러는 다른 방법으로 목숨을 끊었다. 에우뤼메돈이 60척의 함선을 이끌고 도착해 시민들을 계속 학살했다. 희생자들에게는 민주 정부를 전복하려 했다는 죄명이 씌워졌다. 그러나 더러는 개인적인 원한 때문에 죽었고, 더러는 빚을 준 까닭에 채무자의 손에 죽기도 했다. 죽음은 온갖 모습으로 다가왔고, 그러한 상황에서 있을 법한 모든 일이, 아니 더 끔찍한 일들이 일어났다. 아버지가 아들을 죽이기도 했고, 신전에서 끌려나와 신전 옆에서 살해되는 사람들도 있었다. 디오뉘소스 신전에 감금되어 그 안에서 죽는 자들도 더러 있었다. ━ 투퀴디데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3권 81장

제7강 117 이런 종류의 불법행위는 분명 케르퀴라에서 처음으로 자행되었다.  ━ 투퀴디데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3권 84장

역사적 사실들을 알아야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사태가 사람들로 하여금 이렇게 극단적인 상호 절멸의 상태로까지 이끌고 가는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옥스퍼드 세계사⟫ 제3장을 이어서 읽는다.
집, 화덕, 가마에서 우리가 집이라고 말하는데 그 집이라고 하는 것은 '건축된 공간' 관념이 있다. 그것은 "불을 피운 자리 주변의 지표면을 인위적으로 에워 싼 증거"이다. 동식물을 길들인 것보다 훨씬 더 이전에 일어났다. 다목적으로 쓰인 두 재료는 다듬돌과 진흙 벽돌이었다. 133페이지 사진을 보면 진흙 벽돌집 군집으로 되어있다. 그렇게 "건축된 구조물은 공간상의 연계와 의존을, 아울러 조상과 망자에 대한 암시를 통해 시간상의 연계와 의존을 강조했다." 공간상의 연계는 이웃집을 서로 이어붙였다는 것이고, 조상과 망자에 대한 암시는 제단 같은 것이 있었다는 것이다. 

⟪옥스퍼드 세계사⟫ 133 건축된 구조물은 공간상의 연계와 의존을, 아울러 조상과 망자에 대한 암시를 통해 시간상의 연계와 의존을 강조했다.

이어지는 절, 에너지와 불에서 "집과 가마 모두 건축된 공간의 핵심 특징"이라고 되어 있다. 그 문단 아래에 화덕을 중심에 둔 건축된 공간은 불 조작술을 실험하는 하나의 연속적인 무대를 제공한다. 중요하다. 부엌을 중심으로 해서 건축구조물이 형성된다는 것이다. 이게 변화된 것은 정말 현대에 와서이다. 당연하게 화덕 중심인 것이고, 화덕만이 아니라 가마, 가마가 있다고 하면 금속을 녹여서 도구를 만드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철, 구리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플라스터는 석고나 석회를 뒤섞어서 만든 것이다. 137페이지를 보면 구리를 혼합한 청동이 나온다. 아래 문단을 보면 "수천 년간 청동은 갖가지 실용적 용구, 승마 부속물, 바퀴 달린 운송 수단을, 그리고 다양한 칼날과 칼, 무기를 생산하는 데 쓰였다." 청동을 다용도 신소재라 표현했다. 청동기 시대라고 말할 때 청동기가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했는지 생각해 볼 수 있겠다. "청동기 시대 사회들은 엘리트와 전문가가 있는 위계적이고 복잡한 조직으로 그려져왔다."

⟪옥스퍼드 세계사⟫ 134 화덕을 중심에 둔 건축된 공간은 불 조작술을 실험하는 하나의 연속적인 무대를 제공한다.

⟪옥스퍼드 세계사⟫ 137 수천 년간 청동은 갖가지 실용적 용구, 승마 부속물, 바퀴 달린 운송 수단을, 그리고 다양한 칼날과 칼, 무기를 생산하는 데 쓰였다.

⟪옥스퍼드 세계사⟫ 138 청동기 시대 사회들은 엘리트와 전문가가 있는 위계적이고 복잡한 조직으로 그려져왔다.

물과 토양 다스리기, 농업이니 정말 중요하다. 이어지는 문단에 물줄기에 대한 인간의 개입 방식을 세가지로 나누어서 이야기한다. 첫째 과정은 강우에서 바다로 가는 물의 여행을 늦춘다. 그것이 계단식 경작이다. 둘째 과정은 저지의 저수지에서 물을 물리적으로 길어 올리거나 물길을 고지로 돌리는 식으로 중력에 더욱 도전하는 것이다. 우물이다. 셋째 과정은 수직으로든 수평으로든, 지상에든 지하에든 물길을 완전히 인공적으로 만들어 경관 전역의 배수 패턴에 도전하고 그 패턴을 재배열하는 것이다. " 기원전 1만 년 이전에 이 세 과정 중 첫째 과정이 널리 실행되고 확립되었다. 둘째 과정도 우물의 형태로 널리 실행되고 확립되었다." 신석기 농업혁명 시기에는 계단식 경작, 우물 정도가 되겠다. 이 책에서 알게 된 사실은 140페이지를 보면 " 일련의 필연적인 사회관계를 규정하게 되었다. 다시 말해 계단식 경작지의 모든 농민은 위쪽 농민들의 선택에 종속되는 동시에 아래쪽 농민들의 번영을 좌우하게 되었다." 그 다음 141페이지 범람. "측면 기슭을 범람시키는 방법으로 유석을 늦추었다." 속도를 늦추는 방법이 계단식 경작이 있고, 측면 기슭을 범람시키는 방법이 나온다. "이 방법은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의 초기 문헌 및 이미지에 꽤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옥스퍼드 세계사⟫ 139 물줄기에 대한 인간의 개입은 여러 형태를 띠었다. 그 형태들은 서로 연관된 세 가지 과정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 과정은 강우에서 바다로 가는 물의 여행을 늦추어 물과 토양을 한층 점진적이고 밀접하게 연관짓는 것이다. 둘째 과정은 저지의 저수지에서 물을 물리적으로 길어 올리거나 물길을 고지로 돌리는 식으로 중력에 더욱 도전하는 것이다. 셋째 과정은 수직으로든 수평으로든, 지상에든 지하에든 물길을 완전히 인공적으로 만들어 경관 전역의 배수 패턴에 도전하고 그 패턴을 재배열하는 것이다. 기원전 1만 년 이전에 이 세 과정 중 첫째 과정이 널리 실행되고 확립되었다. 둘째 과정도 우물의 형태로 널리 실행되고 확립되었다. 그 다음 우물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옥스퍼드 세계사⟫ 140 일련의 필연적인 사회관계를 규정하게 되었다. 다시 말해 계단식 경작지의 모든 농민은 위쪽 농민들의 선택에 종속되는 동시에 아래쪽 농민들의 번영을 좌우하게 되었다.

⟪옥스퍼드 세계사⟫ 141 측면 기슭을 범람시키는 방법으로 유석을 늦추었다. 이 방법은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의 초기 문헌 및 이미지에 꽤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물을 다스리는 방법이 나왔으니 토양을 다스리는 방법이 나온다. 가장 간단한 방법은 사람 힘으로 하는 것 가래, 곡괭이, 괭이 등의 농기구가 사용되었고 "동물의 견인력과 결합해 다수의 경운 기술을 낳았다." 143페이지의 벽화를 보면 쟁기에 상응하는 선사 시대 도구는 '아드ard'가 나온다. "아드의 끝은 지면을 파고드는데, 설계와 사용법에 따라 얕게 또는 깊게 파고들 수 있다. 그렇지만 흙을 뒤엎지는 못한다." 흙을 뒤엎어야 쟁기이다. 아드와 쟁기의 구분. 자연을 알아가고 생물을 길들이고 그 다음에 그러기 전부터 거주지가 생기고 에너지와 불을 이용해서 다용도 신소재 청동기까지 만들어 내고 물과 토양을 다스린다. 그러면 뿌리를 내리는 것이다. 정착하는 생활을 한다. 왜 정착을 하는가. 

⟪옥스퍼드 세계사⟫ 143 아드의 끝은 지면을 파고드는데, 설계와 사용법에 따라 얕게 또는 깊게 파고들 수 있다. 그렇지만 흙을 뒤엎지는 못한다. "주요 1년생 작물들의 생활 주기를 넘어 농지를 돌보고 개량하는 수년의 시간을 확대", 땅에 매이게 되는 것이다. "더 나아가 그 농지를 돌보는 농민 개개인의 생활 주기 이상으로 확대될 수도 있었다."

⟪옥스퍼드 세계사⟫ 145 주요 1년생 작물들의 생활 주기를 넘어 농지를 돌보고 개량하는 수년의 시간을 확대될 수 있었다. 더 나아가 그 농지를 돌보는 농민 개개인의 생활 주기 이상으로 확대될 수도 있었다.

145페이지 아래 문단을 보면 "앤드류 셰라트는 농업 초기 수천 년의 특징으로 바로 이 1차 생산물, 즉 고기에 대한 강조를 꼽았다." 젓을 짜먹는거부터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다가 "기원전 제4천년기 또는 제3천년기에 이르러서야 오로지 1차 생산물(동물의 삶의 종착점인 고기)만을 강조하던 농업에서 성체로 자랄 때까지 더 오랫동안 관리한 살아 있는 동물에게서 얻는 2차 생산물(우유, 견인력, 털)도 강조하는 농업으로서의 변화가 고고학적 기록으로 나타난다." 아주 간단하게 말하면 고기에서 우류, 견인력, 털로 갔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것을 "셰라트는 이 요소들을 '2차 생산물 혁명'이라는 개념으로 묶어냈다. 특히 고기를 비롯한 죽은 동물을 활용한 생산물들은 모두 '1차'이고 살아 있는 동물을 활용한 생산물들은 모두 '2차'였다." 우유짜기가 중요해졌다는 것이다. 그 다음에 선사 시대 농업의 두단계라고 할 때 "초기 농업의 전기에 작은 농지에서 이루어진 성긴 경작과 후기에 큰 농지에서 이루어진 조밀한 경작", 앞을 조방농업이라고 하고, 뒤를 집약농업이라고 한다. 이에 대한 설명이 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하나의 중요한 편견으로까지 굳어진 학설을 논박하는 부분이 나온다. "조방농업 이후의 집약농업 단계 역시 새롭게 그려졌다. 이 단계에 관해 개진된 사상에서 가장 중요한 두 가지 개념은 카를 마르크스의 '아시아적 생산 양식'과 카를 비트포겔의 '동양적 전제주의'이다." 비트포겔이나 마르크스의 개념은 이제 논박되었다. 따라서 그것에 근거한 설명들은 다 논박이 되었다고 봐야한다. '아시아적 생산 양식'과 '동양적 전제주의'. 두 개념 모두 중국과 인도의 체제를 허술하게 이해했고, 오히려 결정적인 논박은, 물을 관리하다 보니 집중적으로 사람을 관리하게 되고 그러다보니 전제주의적인 또는 전체주의적인 체제가 나타났다는 것인데 이게 고고학 증거에 따르면 아니라는 것이다. "과거와 당대의 복잡하고 정교한 수자원 관리 체제들은 전제적인 엘리트층의 지배를 받지 않았거나 그런 지배에 앞서 형성된 것으로 밝혀졌다." 중요한 말이다. 이게 그래서 고고학의 증거들을 계속 봐야한다. 다시말해서 이 둘이 필연적인 연결고리가 있지 않다는 것이다.

⟪옥스퍼드 세계사⟫ 145 앤드류 셰라트는 농업 초기 수천 년의 특징으로 바로 이 1차 생산물, 즉 고기에 대한 강조를 꼽았다. 

⟪옥스퍼드 세계사⟫ 145 기원전 제4천년기 또는 제3천년기에 이르러서야 오로지 1차 생산물(동물의 삶의 종착점인 고기)만을 강조하던 농업에서 성체로 자랄 때까지 더 오랫동안 관리한 살아 있는 동물에게서 얻는 2차 생산물(우유, 견인력, 털)도 강조하는 농업으로서의 변화가 고고학적 기록으로 나타난다.

⟪옥스퍼드 세계사⟫ 146 셰라트는 이 요소들을 '2차 생산물 혁명'이라는 개념으로 묶어냈다. 특히 고기를 비롯한 죽은 동물을 활용한 생산물들은 모두 '1차'이고 살아 있는 동물을 활용한 생산물들은 모두 '2차'였다.

⟪옥스퍼드 세계사⟫ 149 초기 농업의 전기에 작은 농지에서 이루어진 성긴 경작과 후기에 큰 농지에서 이루어진 조밀한 경작에 대체로 상응한다.

⟪옥스퍼드 세계사⟫ 150 조방농업 이후의 집약농업 단계 역시 새롭게 그려졌다. 이 단계에 관해 개진된 사상에서 가장 중요한 두 가지 개념은 카를 마르크스의 '아시아적 생산 양식'과 카를 비트포겔의 '동양적 전제주의'이다. 

⟪옥스퍼드 세계사⟫ 150 과거와 당대의 복잡하고 정교한 수자원 관리 체제들은 전제적인 엘리트층의 지배를 받지 않았거나 그런 지배에 앞서 형성된 것으로 밝혀졌다.

"집약농업 단계에는 몇 가지 되풀이 되는 테마가 있다. 우선 농민이 특정한 농지와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관계를 맺는다." 이게 뿌리는 내리는 것이다 "물의 흐름, 토양, 동물, 몇몇 작물에도 지속적으로 헌신하게 되었다." 평생을 농사를 짓는 것이다. "아울러 앞날을 내다보는 투자가 그 관계의 필수적인 부분이 되었다. 에너지의 측면에서 투자는 주로 생산적인 토양에 집중되었고, 축력 및 금속 기술과도 여러모로 관련이 있다." 이 부분은 중요하니 네모를 쳐둘 필요가 있다. 이 부분이 결론이다. 자연알아가기부터 시작해서 뿌리내리기까지를 한 묶음으로 읽을 수 있다.

⟪옥스퍼드 세계사⟫ 151 조방농업 단계를 새롭게 해석하게 된 것과 비슷하게, 오늘날 우리는 집약농업 단계가 훨씬 더 다양했음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집약농업 단계에는 몇 가지 되풀이 되는 테마가 있다. 우선 농민이 특정한 농지와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관계를 맺게 되었고 물의 흐름, 토양, 동물, 몇몇 작물에도 지속적으로 헌신하게 되었다. 아울러 앞날을 내다보는 투자가 그 관계의 필수적인 부분이 되었다. 에너지의 측면에서 투자는 주로 생산적인 토양에 집중되었고, 축력 및 금속 기술과도 여러모로 관련이 있다.

그 다음에 본거지와 방랑자 얘기가 나온다. 정주하는 사람과 유목하는 사람이 서로 다르지 않다는 얘기를 한다. "두 방식은 언제나 서로 뒤얽혔으며, 본거지가 더 안전할수록 더 야심 찬 여행을 떠날 수 있었다." 여기서 중요한 말은 두 방식은 본거지를 가지고 사는 방식과 방랑하는 방식, 그런데 언제나 서로 뒤얽혔다. 자칫 잘못하면 서로 얽히지 않는다는 편견을 갖기 쉬운데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옥스퍼드 세계사⟫ 153 두 방식은 언제나 서로 뒤얽혔으며, 본거지가 더 안전할수록 더 야심 찬 여행을 떠날 수 있었다.

그 다음이 음식의 지구화와 유라시아 횡단 교환이 나온데 실크로드 전신에 관한 이야기를 살짝 볼 수 있다. "'내륙 아시아 산악회랑 지대'[알타이산맥부터 힌두쿠시산맥까지]를 따라 이루어졌는데, 이 지대에서 네트워크가 형성되어 이후 다양한 재화와 물품을 수송하는 데 쓰였고 결국 실크로드의 전신이 되었다."

⟪옥스퍼드 세계사⟫ 155 '내륙 아시아 산악회랑 지대'[알타이산맥부터 힌두쿠시산맥까지]를 따라 이루어졌는데, 이 지대에서 네트워크가 형성되어 이후 다양한 재화와 물품을 수송하는 데 쓰였고 결국 실크로드의 전신이 되었다.

그 다음 재구성된 자연에서 꼭 유념할 부분이 있는데 "현저한 기후 변동이 사회 조직의 심대한 변화와 정치적 조직화 및 통제 제도의 쇠퇴에 영향을 주었으리라는 것은 합리적인 추론으로 보인다." 현저한 기후 변동이 문명의 붕괴를 일으킬 수 있고, 사회조직을 심각하게 변화시킬 수 있고 정치적 조직화와 통제 제도를 쇠퇴시킬 수도 있다는 것이다.

⟪옥스퍼드 세계사⟫ 158 해당 지역들에서 그 사태는 '문명의 붕괴'로 해석되고 서술되었다. 현저한 기후 변동이 사회 조직의 심대한 변화와 정치적 조직화 및 통제 제도의 쇠퇴에 영향을 주었으리라는 것은 합리적인 추론으로 보인다.

이 정도로 정리하고 결론에서 세계 여행에 나선 호모 사피엔스의 활동을 정리했는데 첫째가 넓은 토지에서 초목을 벌채했다. 둘째가 생물의 유전자에 영향을 주었다. 생물 길들이기이다. 셋째가 가장 눈에 덜 띄면서도 가장 심대한 영향을 끼쳤는데, 대기 중 이산화탄소와 메탄의 비율이 올라갔다는 것이다. "이 장에서 살펴본 기간이 끝나갈 무렵 두 기체의 농도는 그 이전 간빙기들의 농도보다 20~50퍼센트 더 높았다. 일각에서는 두 기체의 농도 상승을 홀로세의 끝, 즉 우리 종의 대륙 횡단 여행의 얼개를 이루었던 시대의 끝을 알리는 표지로 삼았다. 새로운 지질 시대인 '인류세'는 인간의 활동이 지구 생태계의 제1동인인 시대로 제시되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점은 지구 생태계 전체가 의존하는 기후 내 기체 균형에 측정 가능한 영향을 주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게 인류세의 인간활동이 만들어 내놓은 최종 결과이다. 

⟪옥스퍼드 세계사⟫ 160 인간의 셋째 활동은 가장 눈에 덜 띄면서도 가장 심대한 영향을 끼쳤다. 오늘날 지구 대기에서 대략 5분의 4는 질소이고 5분의 1은 산소다. 대기 중 이산화탄소와 메탄의 비율은 훨씬 낮다. 

⟪옥스퍼드 세계사⟫ 160 이 장에서 살펴본 기간이 끝나갈 무렵 두 기체의 농도는 그 이전 간빙기들의 농도보다 20~50퍼센트 더 높았다. 일각에서는 두 기체의 농도 상승을 홀로세의 끝, 즉 우리 종의 대륙 횡단 여행의 얼개를 이루었던 시대의 끝을 알리는 표지로 삼았다. 새로운 지질 시대인 '인류세'는 인간의 활동이 지구 생태계의 제1동인인 시대로 제시되었다.

⟪옥스퍼드 세계사⟫ 161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점은 지구 생태계 전체가 의존하는 기후 내 기체 균형에 측정 가능한 영향을 주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것으로 3장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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