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티오 출판사에서 제공하는 팟캐스트 '라티오의 책들'을 듣고 정리한다. 라티오 출판사에서 출간된 책들에 관한 강유원 선생님의 해설녹음이다.
팟캐스트 주소: https://ratiopress.podbean.com/
⟪역사 고전 강의 - 전진하는 세계 성찰하는 인간⟫, 제8, 9, 10강
❧ 8강
전쟁의 추악함과 잔혹함에 대한 투퀴디데스의 서술은 냉정하다. ‘잔혹한 교사’로서의 전쟁. 전쟁은 말의 의미와 가치를 전도시키고, 그에 따라 기존의 객관적 질서를 파괴한다.
❧ 9강
멜로스를 침략한 아테나이는 보편적인 선善을 가볍게 무시해 버린다. 광기에 휩싸인 인간들은 현실적 힘의 우위를 앞세운 제압의 논리에만 의존한다. 결국 아테나이 제국주의는 실패하고, 펠로폰네소스 전쟁은 ‘국제사회’라는 문제를 남긴다.
❧ 10강
희랍의 폴리스들은 서로를 죽이면서 공멸의 길을 향해 가고 이 세계는 다시금 페르시아가 지배하지만 그것도 잠깐, 에게 해와 페르시아는 마케도니아 제국으로 흡수된다. 번영은 오만을, 오만은 싸움을 부르고 싸움에 지친 사람들은 편안함을 찾아 자신만의 세계로 파고든다.
2021.08.31 역사 고전 강의 — 13
《역사고전 강의》 제8강, 제9강, 제10강을 읽는다. 우선 8강을 보면 "전쟁의 추악함과 잔혹함에 대한 투퀴디데스의 서술은 냉정하다. ‘잔혹한 교사’로서의 전쟁. 전쟁은 말의 의미와 가치를 전도시키고, 그에 따라 기존의 객관적 질서를 파괴한다." ‘잔혹한 교사’로서의 전쟁라는 말은 아주 유명한 말이다. 전쟁에 관한 저자의 생각이 무엇인가, 그게 바로 잔혹한 교사이다. 제8강은 투퀴디데스의 전쟁론이다. 케르퀴라 내전을 서술하고 곧바로 전쟁에 관한 생각을 피력하는데, 케르퀴라 내정이 있고나서 그 생각을 얘기하는 것이 굉장히 효과가 좋다. 왜냐하면 케르퀴라 내전은 우리가 지난번에 보았듯이 굉장히 잔인한 전쟁이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좋지 않은 그런 측면들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읽으면서 그런 생각이 들게 된다.
polemos, 즉 나라간 전쟁이 stasis, 내부의 내란과 연결이 되면서 큰 고통이 일어났다. 그리고 "내란이 발생한 도시들은 먼저 내란이 발생한 도시에서 일어난 사건에 관해 듣고는 권력을 장악하는 치밀한 방법과 전대미문의 잔혹한 보복 행위라는 점에서 이전과는 달리 극단으로 흘렀다." 118페이지 "내부와 외부에 걸친 이중의 전선이 형성되는 방향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중요하다. 이렇게 전쟁의 잔혹함이 뿜어져 나오는 상황에서는 전쟁에 의해서 무언가가 변화된다. 꼭 전쟁만이 아니라 해도 어떤 극단적인 이들을 겪으면 의식이 변화한다. 그것을 투퀴디데스는 "사람들은 행위를 평가하는데 통상적으로 쓰던 말의 뜻을 임의로 바꾸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가치전도의 현상이 일어난다. 119페이지 있는 것처럼 객관적 질서가 파괴된다. 이때 가장 인간에게 있어서 평소에는 억눌려 있던 것들, nomos에 의해서 억눌린 것들이 그대로 드러난다. 82장에서는 일반론을 얘기하고 83장에서는 추상적인 얘기를 이끌어내는데 투퀴디데스는 이런 것이 이제 인간에게는 변함없는 본성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인간에 대한 염세적인 파악일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그런 것이 있다는 것을 알아 둘 필요가 있겠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를 생각해보면 이른바 국제관계를 정리할 수 있는 그런 상위의 권위체가 없을때 이런 일이 생겨난다는 것을 제8강에서 강조하고 싶었다. 122페이지를 보면 "투퀴디데스는 폴리스에서 제국 시대로 넘어가던 시기에 나타난 첨예한 국제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게 국제관계론 international relation이 중요한 문제다. 학문분과가 있다. international relation, IR이라는 국제정치학이라고도 하고 국제관계론이라고도 하는데 자기의 학문이 어디서 시작되었는가 할 때 대개 투퀴디데스를 이야기한다.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 어떤 나라가 아무리 훌륭한 나라라고 해도 다른 나라와 맞부딪쳤을 때는 어떤 양상을 보이는가, 전쟁은 또 어떤 한가, 그들 사이의 외교적 교섭은 어떻게 진행되는가를 투퀴디데스가 보여줬기 때문에 정치학의 하위영역인 국제관계론이라는 학문영역에 중요한 출발점으로 간주된다. 정치사상에는 대개 권력론, 국가 권력을 어떻게 잡고 권위체는 어떻게 성립하는가를 다루고, 두번째는 정의론, 올바름에 관해 다루는 것, 플라톤의 국가, 존 롤스의 정의론도 이런 것에 해당한다. 마지막으로 세번째가 국제관계론, 이것이 정치사상의 세 영역이다. 케르퀴라 내전에 이어서 전쟁에 관한 자신의 생각을 다루면서 이제 투퀴디데스는 국제관계라고 하는 문제를 제기했다는 것이 8강의 중요한 내용이다.
제8강 117 전쟁의 추악함과 잔혹함에 대한 투퀴디데스의 서술은 냉정하다. ‘잔혹한 교사’로서의 전쟁. 전쟁은 말의 의미와 가치를 전도시키고, 그에 따라 기존의 객관적 질서를 파괴한다.
제8강 118 이제 전쟁은 국가 간 전쟁에서 내부와 외부에 걸친 이중의 전선이 형성되는 방향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제8강 122 투퀴디데스는 폴리스에서 제국 시대로 넘어가던 시기에 나타난 첨예한 국제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제9강의 요악문을 보면 "멜로스를 침략한 아테나이", 이때만 해도 국제분쟁을 다루는 상위권위체가 없었다. 그러니까. 보편적인 선을 가볍게 무시해 버리고, 침략 전쟁을 펼쳐 보이고, "광기에 휩싸인 인간들은 현실적 힘의 우위를 앞세운 제압의 논리에만 의존한다. 결국 아테나이 제국주의는 실패하고, 펠로폰네소스 전쟁은 ‘국제사회’라는 문제를 남긴다." 아테나이가 플라톤의 나라이기도 하고 민주정의 국가니 착한 나라인줄 알았는데 제일 나쁜 짓 많이 했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읽으면서 우리가 갖게 되는 가장 강력한 깨달음은 아테나이가 사실은 나쁜 짓을 가장 많이 했다는 것이다. 멜로스 회담, 중요하다. 국제관계론의 책들을 보면 멜로스 회담이 사례로 꼭 들어간다. 멜로스섬 사람들은 아테나이가 주도하는 델로스 동맹에 가입하지 않았다. 그런데 종족은 도리스인이었기 때문에 스파르테와 가까웠고, 그래서 아테나이가 가서 어느 편에 설 것인지 강요한다. 그러다보니 적과 아군의 구별이 명백해져야 한다. 적과 아군의 구별만 가지고 정치를 하는 것이 칼 슈미트의 정치개념이다. 정치적인 것은 무엇인가, 피아의 구별이다. 참으로 처참한 정의이다. 적과 아군 밖에 없는 전장이 정치다라고 말하면 정치는 죽이고 살리는 것밖에 없게 된다. 상대방을 완전히 절멸시켜야 하는.
멜로스 섬은 아테나이와 가까운데 스파르테에 의지한다. 아직 확실하게 저놈들이 적이라고 선언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것들이 가까이 있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게다가 섬이다. 해상헤게모니를 위협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니까 125페이지에 "그것마저도 위협당할 상황에 직면하니까 아테나이는 멜로스 인들을 공격하기로 한 것입니다. 전쟁은 명백한 적대 해우이가 있어야만 개시되는 것이 아닙니다. 세력을 과시하기 위해서나, 앞으로 생겨날 위협을 미리 제거하기 위해서도 시작됩니다." 전쟁이라고 하는 것이 다른 양상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라케다이몬이 아테나이의 세력 신장을 두려웠기 때문에 그렇게 했다. 그렇다 하더라도 에피담노스 회담도 있었고, 이제는 그 단계를 넘어가버렸다. 멜로스를 기어이 여기서 제거를 해야 한다. 그러니 여기서 선악의 판단은 주용하지 않게 되어버렸다. 정말 빈말처럼 봉이지만 휩쓸기 전에 뭔가를 한다. 그렇게 시작이 되었고 둘째 단계가 아테나이 사절단과 멜로스 위원단의 회담, 이게 국제정치학에서 많이 연구되는 회담이다. 회담이라고 하는데 사실 일방적이다. 도덜드 케이건은 "이제 아티나이 인은 페리클레스의 온건한 제국 정책을 실패작으로 보고 완전히 포기했으며, 미래의 저항과 반란을 무산시키려는 바람으로 클레온의 강경책을 선택했다." 미래의 저항과 반란을 무산시키려는 바람으로 클레온의 강경책을 선택했다는 부분에 중요한 포인트가 있다. 멜로스 회담을 어떻게 파악할 것인가. 국제정치학에서 주로 사용하고 있는 논의들을 127페이지에서 설명했다. 그 중 하나가 "합리적 행위자"로써의 국가이다. 미래에서 저항과 반락이 있을 것 같으니까 바로 행위를 해야 한다. 둘째는 "관료제 모형", 셋째는 "정부 정치 모델".
제9강 123 멜로스를 침략한 아테나이는 보편적인 선善을 가볍게 무시해 버린다. 광기에 휩싸인 인간들은 현실적 힘의 우위를 앞세운 제압의 논리에만 의존한다. 결국 아테나이 제국주의는 실패하고, 펠로폰네소스 전쟁은 ‘국제사회’라는 문제를 남긴다.
제9강 125 그것마저도 위협당할 상황에 직면하니가 아테나이는 멜로스 인들을 공격하기로 한 것입니다. 전쟁은 명백한 적대 해우이가 있어야만 개시되는 것이 아닙니다. 세력을 과시하기 위해서나, 앞으로 생겨날 위협을 미리 제거하기 위해서도 시작됩니다.
제9강 126 이제 아티나이 인은 페리클레스의 온건한 제국 정책을 실패작으로 보고 완전히 포기했으며, 미래의 저항과 반란을 무산시키려는 바람으로 클레온의 강경책을 선택했다. ━ 케이건,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297쪽
아테나이가 멜로스처럼 작고 힘없는 폴리스를 무력으로 침략한 것은 명백한 실패이다. 128페이지 앙드레 보나르의 《그리스 인 이야기》에 나오는 부분을 인용했는데 "27년 동안 계속된 펠로폰네소스 전쟁은 아테나이 지배 체제 하에 그리스 통합이 실패했음을 의미하며, 아테나이 제국주의가 실패했음을 의미했다." 아테나이는 무력에 있어서나 설득력에 있어서나, 즉 헤게모니에 있어서 제국으로 나아갈 수 있는 씨앗을 가지고 있었으나 그렇게 되지 못했다. 폴리스 대 폴리스라고 하는 쟁투의 상황으로 들어갔기 때문에 아테나이는 헬라스 세계에서 결국 궁극적인 권위를 갖지 못했던 것이다.
제9강 128 앙드레 보나르는 《그리스 인 이야기》에서 "27년 동안 계속된 펠로폰네소스 전쟁은 아테나이 지배 체제 하에 그리스 통합이 실패했음을 의미하며, 아테나이 제국주의가 실패했음을 의미했다"라고 합니다. 아테나이는 무력에 있어서나 설득력에 있어서나, 즉 헤게모니에 있어서 제국으로 나아갈 수 있는 씨앗을 가지고 있었으나 그렇게 되지 못했습니다.
130페이지를 보면 아테나이 사절단이 했던 얘기가 나오는데 이게 아테나이 사절단이 가지고 있던 기본적인 생각이다. "인간관계에서 정의란 힘이 대등할 때나 통하는 것이지, 실제로는 강자가 할 수 있는 것을 관철하고, 약자는 거기에 순응해야 한다는 것쯤은 여러분도 우리 못지않게 아실텐데요." 이런 말을 해버리면 상대방이 얼마나 모멸감을 느끼겠는가. 정의란 강자가 할 수 있는 것을 관철하고, 이때 아테나이가 가지고 있던 의회를 지배하고 있던 민주파가 가지고 있던 정의론이 이것이다. 플라톤의 《국가》에서 트라쉬마코스가 "올바름은 강자의 힘입이다" 얘기하는데 바로 이것이다. 플라톤의 생각이 그 당시에는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the strong do what they have the power to do and the weak accept what they have to accept." 강자는 그들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을 하며, 약자는 그들이 받아들여야만 할 일을 받아들인다. 멜로스 인들은 그런데 보편적인 선을 이야기한다. "우리가 보기에는 보편적인 선이라는 원칙을 지키는 것이 여러분에게 이익이 될 것입니다." 이 말을 아테나이가 들었어야 했다. 그랬으면 아테나이는 다른 폴리스들에게 설득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을 것이다. 그러면서 아테나이 사절단이 하는 말이 참으로 뻔뻔하다. "우리 제국이 종말을 고한다 해도 우리는 나중에 일어날 일 때문에 의기소침하지 않을 것이오. 지금 우리가 원하는 바는, 우리가 여기 온 이유는 우리 제국의 이익을 위해서"라고 되어있다. "양쪽의 이익을 위해 여러분이 살아남기를 바라오." 여기서 핵심은 "지금"에 있다. 아테나이 사절단 한 얘기를 계속해서 살펴보면 "신에게는 아마도, 인간에게는 확실히, 지배할 수 있는 곳에서는 지배하는 것이 자연의 변하지 않는 법칙이오" 이게 바로 현실주의적 권력이론들을 펼쳐보이는 것이다. 민주정 국가라도 해도 이런 권력욕을, 다른 나라를 침략해서 자기네 나라의 이익만을 오로지 추구하려는 권력욕을 가진 사람들이 지배하고 있다면 그 나라는 현명한 나라가 될 수 없다. 그래서 "현명함과 민주정을 어떻게 결합해야 하는지에 관한 문제가 대두했습니다." 우리가 민주정 국가에 살고 있다고 해서 민주정이라는 정치체제가 곧바로 정체 구성원들 모두의 현명함을 보장해주는 것은 아니다. 다만 독재보다는 낫기 때문에 그렇다. 그래서 끊임없이 민주정이라는 정치체제와 민주정을 올바름을 실현하는 도구로 사용해야 하는, 우리가 민주주의라는 말과는 것과는 다르다, 평등하고 누구나 다 사람다운 대접을 받으면서 살고 하는 것, 평등이라고 하는 것도 제멋대로 할 자유는 아니다. "대중의 현명함을 무너뜨리는 핵심적인 요소는 돈에 대한 탐욕" 민주정과 현명함을 결합시킬 때 우리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민주주의가 구현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것들을 생각하게 해주는 것이다.
제9강 130 인간관계에서 정의란 힘이 대등할 때나 통하는 것이지, 실제로는 강자가 할 수 있는 것을 관철하고, 약자는 거기에 순응해야 한다는 것쯤은 여러분도 우리 못지않게 아실텐데요. ━ 투퀴디데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5권 89장
제9강 130 강자는 그들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을 하며, 약자는 그들이 받아들여야 할 일을 받아들인다.
제9강 137 현명함과 민주정을 어떻게 결합해야 하는지에 관한 문제가 대두했습니다. 당시 민주정은 어리석음과 동일시되었기 때문입니다. 대중의 현명함을 무너뜨리는 핵심적인 요소는 돈에 대한 탐욕입니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마무리하면서 세가지 정도의 문제를 정리해 둔다. 왜 아테나이 제국은 실패했는가. 무력은 있었는데 설득력은 결여했다는 것이 가장 직접적이다. 그 까닭은 그들이 현명함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현명함이라고 하는 것은 민주정이라는 정치 체제만을 가지고는 보장할 수 없다. 둘째, 현실 정치에 충실하면 진정한 의미의 제국이 될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 최소한의 설득력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저항세력에 부딪치게 된다. 만만치 않은 문제이다. 설득력이라고 하는 것은 꼭 성공을 위한 것 만이 아니라 최소한 무력 행사에 있어서도 타당한 한 명분이 필요하다. 셋째, 현명한 다수에 의한 민주정은 어떻게 이룩할 수 있는가. 민주정도 이룩하기 어려운데 그 사람들을 어떻게 현명하게 만들 수 있겠는가. 정말 어렵다.
제10강은 전쟁 이후의 상황, 마케도니아와 로마제국으로 이어지는 과정, 그리고 희랍 사상 저변에 깔린 인간관에 대해서 살펴본다. 10강은 역사에 관한 이야기라기 보다는 역사철학, 사상사에 관한 이야기이다. 싸움의 끝은 페르시아가 전쟁 자금을 대어 지배하고, 결국에는 마케도니아 제국이 나온다. 그러다 보니 싸움에 지친 사람이 되어 버린다. 싸움에 지친 사람들은 편안함을 찾게 된다. 30년 넘게 전쟁을 하다보니 전쟁 비용이 바닥났고, 월급 받는 용병이 등장하니 돈은 더욱 부족하고, '황금을 가진 페르시아', 그리고 폴리스들 사이에는 증오만이 남아있게 된다. 페르시아가 결국 에게 해와 소아시아 지역을 아우르는 상위 권위체가 되었는데, 그 요소 중 하나는 '황금을 가진 페르시아'이다. 그리고 알렉산드로스라고 하는 사람이 나타나서 전쟁기술을 선보이게 된다. 그리고 데모스테네스나 이소크라테스와 같은 사상가들이 있다. 사상사에서 중요한 사람들이다. 그리고 이때가 헬레니즘 시대의 철학으로 들어가는 우리가 흔히 헬레니스 철학사에서 얘기하는 에피쿠로스주의, 스토아주의, 퀴니코스주의들은 다른 무엇보다도 이것만큼 시대의 분위기를 반영하는 사상은 없다는 생각이 들게 된다. 내용은 다를지 몰라도 그것이 배태된 즉 생겨난 시대적인 배경은 같은 것이다. 방향이 조금씩 다를 뿐이다. 이 사상은 기본적으로 편안함을 추구하는 안심입명의 철학이다. 그런 것들이 이 시대의 사상으로 등장했다. 그러다 보니 이것만 가지고 안되라고 해서 나타난 것이 기독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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