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티오의 책들 | 철학 고전 강의 — 11

 

⟪철학 고전 강의 - 사유하는 유한자 존재하는 무한자⟫, 제14강

❧ 동굴의 비유의 배경
“교육(paideia) 및 교육 부족(apaideusia)과 관련된 우리의 성향”
플라톤을 비롯한 당대 아테나이 사람들의 처지

❧ 동굴 안
감각에 의해 알게 되는 사물, 그림자, 명칭과 같은 비진리들
불빛 쪽으로 쳐다보도록 강요당할 경우에 생겨나는 일들
동굴 안의 빛을 보면서도 눈이 부시고 그에따라 고통스럽다는 것

❧ 동굴 밖으로 올라가기
험하고 가파른 길을 올라가기, 고난의 길, 자신에게 익숙한 것으로부터 벗어나기
고통스러워하며 자신이 끌려온 것에 대해 짜증을 낸다.

❧ 동굴 밖
동굴 안에서와 마찬가지로 동굴 밖에서도 익숙해짐(synētheia)이 필요하다.
동굴 밖의 그림자, 모상, 하늘에 있는 것들과 하늘 자체
오름(anabasis), 구경(thea), 혼의 등정(anodos), 행하다 또는 마음쓰다(prattein)
동굴 안으로 다시 내려가기(katabasis)

 

2021.05.04 철학 고전 강의 — 11

오늘은 《철학고전강의》 제14강 동굴의 비유에 대해서 이야기하겠다. 동굴의 비유는 여러운 이야기가 아니다. 찬찬히 생각해보면 동굴의 비유는 몇 단계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단계가 우리가 어떤 앎을 획득하는 과정에 관한 이야기이다. 플라톤의 《정체》는 철학에 관한 종합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형이상학에 관한 것도 있고, 사람들과 대화하는 방법도 있고, 어떻게 하면 잘 살 수 있는 가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서양에서도 많이 읽히는 철학책에 속할 정도로 널리 알려진 책이다. 이전 시간에 말했듯이 플라톤이 여기서 얘기하는 것은 꼭 형이상학에 관한 이야기는 아니다. 인간이 살아가면서 어떤 것들을 겪게 되는가, 또 뭔가를 알려고 할 때 어떤 과정을 거치게 되는가에 대한 이야기가 있기 때문에, 《파이돈》에서 자연학에서 인간학으로의 전환을 이룬 다음의 이야기다. 인간에 관한 전면적인 통찰, 이런 의미에서 인간학이다.

원문을 보면서 중요한 대목들을 살펴보기로 한다. 앞서 태양의 비유에서는 지성에 의해서 알 수 있는 영역은 보는 장소가 다르다는 얘기를 했다. 방향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인간이 어떤 지성을 가지고 있다면, 좋음의 이데아가 있다면 그것은 잘 보는가 잘 못보는가. 다시말해서 우리가 뭔가를 아는 힘에 관여하는 것이 아니라 어디를 보는가에 관여하는 것이다. 

동굴의 비유에서 중요한 포인트는 "교육(paideia) 및 교육 부족(apaideusia)과 관련된 우리의 성향"이다. 중요한 말이다. ""그러면 다음으로는 교육(paideia) 및 교육 부족(apaideusia)과 관련된 우리의 성향을 이런 처지에다 비유해보게나." 벽을 보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어떻게 교육할 것인가 그리고 교육이 부족한 사람들을 어떻게 해서 교육된 상태로 갈 것인가, 어떤 방향으로 이끌고 갈 것인가, 동굴 벽만 보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것이 진짜로 진리를 알 수 있는 곳이 아니라 고개를 돌려서 바깥으로 나가야 한다, 즉 제대로 된 방향을 알려주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어릴 적부터 사지와 목을 결박당한 상태로 있는 사람들을 상상해보게." 그래서 글라우콘이 "이상한 이뷰와 이상한 죄수들을 말씀하시는군요.", 플라톤이 "우리와 같은 사람들일세" 이게 바로 쓰여져 있듯이 플라톤 자신을 포함해서 아테나이에 살고 있는 사람들 모두를 죄수의 상태라고 설정한 것이다. 

제14강 155 “그러면 다음으로는 교육(paideia) 및 교육 부족(apaideusia)과 관련된 우리의 성향을 이런 처지에다 비유해보게나. 이를테면, 지하의 동굴 모양을 한 거처에서, 즉 불빛 쪽으로 향해서 길게 난 입구를 전체 동굴의 너비만큼이나 넓게 가진 그런 동굴에서 어릴 적부터 사지와 목을 결박당한 상태로 있는 사람들을 상상해보게. […]"
[…]
"이상한 이뷰와 이상한 죄수들을 말씀하시는군요." 그가 말했네 
그래서 내가 말했네. "우리와 같은 사람들일세. 글쎄, 우선 이런 사람들이 불로 인해서 자기들의 맞은 편 동굴 벽면에 투영되는 그림자들 이외에 자기들 자신이나 서로의 어떤 것인들 본 일이 있을 것으로 자네느 생각하는가?" ━ 《국가》 514a~515a

그 다음에 동굴 안을 설명한다. 동굴 안은 거짓의 세계이고, 동굴 밖은 참다운 진리의 세계이다. 동굴 안에서 알게되는 것은 사물을 감각을 통해서 아는 것, 즉 그 사물에 대한 앎이 있기는 있는데 그게 감각을 통해서 아는 것인데 그 감각 조차도 그림자에 대한 감각이다. 앎의 상태가 굉장히 저급한 상태이고, 그것에 대해서 이런 저런 이름만 붙어 있는 상태. 그러니까 그 이름이라고 하는 것 조차도 진짜에 대한 이름도 아니고 그림자에 대한 이름이다. 이 세가지가 동굴 안에서 우리 인간이 익숙해 있는 것.  감각 사물, 그림자, 명칭.

그 다음에 그런 상태에서 벗어나게 하려면 결박에서 풀려나야 한다. 결박에서 풀려나는 일이 저절로 일어나는 것이다. 그런데 플라톤은 이 부분은 빼먹었다. 누군가가 그 사람들을 고개를 돌리게 하는데, 그 누군가가 누구인지는 나오지 않는다. 처음에 그 누구도 이 사람의 고개를 돌리게 하고 동굴 바깥으로 기어올라가게 해서 그것을 본 사람, 그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올라간 사람은 없다. 그 얘기를 해버리면 엄청난 영웅담이 될테니까 그 얘기를 뺀 것인지 의문이 들기는 한다. 

결박에서 풀려나서 고개를 돌리고 걸어가서 불빛을 보도록 강요한다. "가령 이들 중에서 누군가가 풀려나서는, 갑자기 일어서서 목을 돌리고 걸어가 그 불빛 쪽으로 쳐다보도록 강요할 경우에, 그는 이 모든 것을 하면서 고통스러워할 것이고, 도한 전에는 그 그림자들만 보았을 뿐인 실문들을 눈부심 때문에 볼수도 없을 걸세." 그러면 앞서 본 것들이 더 명확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서 이미 자신이 잘 알고 있는 것들에 대해서 집착한다는 말이다. 여기서 익숙해짐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그가 높은 곳의 것들을 보게 되려면, 익숙해짐(synētheia)이 필요하다고 나는 생각하네." 이 익숙해짐이라는 것은 이미 익숙해진 것에 대한 얘기도 된다. 이미 익숙해진 것을 벗어나는 것도 고통스럽고 또 새로운 것을 보기 위해서도 익숙해짐이 필요하다. 그런데 또 익숙해진 나머지 그게 정말 진리라고 여겨지는 것도 경계를 해야 하는데 그게 벗어나기 어렵다. "'익숙한 것이라 하여 인식된 것은 아님'을 아는 것입니다." 

제14강 159 "그러기에, 그가 높은 곳의 것들을 보게 되려면, 익숙해짐(synētheia)이 필요하다고 나는 생각하네. 처음에는 그림자들을 제일 쉽게 보게 될 것이고, 그 다음으로는 물 속에 비친 사람들이나 또는 다른 것들의 상태들을 보게 될 것이며, 실물들은 그런 뒤에야 보게 될 걸세. ━ 《국가》 516a~51ba

제14강 159 익숙한 것으로부터 벗어난다는 것은 자기가 잘 알고 있다고 여기는 것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익숙한 것이라 하여 인식된 것은 아님'을 아는 것입니다.

어쨌든 고개를 돌려서 올라가는데 억지로 끌고 가면 가는 사람이 고통스러우니까 짜증을 낼테고, 진짜 동굴 밖의 빛에 이르면 지나치게 눈부셔서 당장에는 볼 수가 없다. 그게 세번째 단계라고 할 수 있다. 첫번째는 아무것도 모르는 동굴 안의 상태가 있고, 두번째는 고통과 눈부심을 당하면서 목을 돌리면서 불빛 쪽을 보도록 강요를 당하는 단계가 있고, 억지로 올라가는 단계가 있다. 그 다음에 높은 곳의 것들을 보게되는 단계가 있다. 처음부터 햇빛 자체를 볼 수는 없으니 우선은 그림자를 보고, 뭔가가 모상을 보고, 실물을 보고, 하늘에 있는 것들과 하늘 자체를 밤에 별빛과 달빛을 봄으로써 더 쉽게 관찰하게 된다. "하늘에 있는 것들과 하늘 자체" 이게 형상이다. 이렇게 해서 알게 되었다. 그 다음 여기서부터 뭔가가 있다. "어떤가? 이 사람이 최초의 거처와 그곳에 있어서의 지혜 그리고 그때의 동료 죄수들을 상기하고서는, 자신의 변화로 해서 자신은 행복하다고 여기되, 그들을 불쌍히 여길 것이라고 자넨 생각지 않는가?" "그러고 말고요." 이 부분에 대해서도 시비를 걸 수 있다. 글쎄 예전의 동료를 떠올릴까가 의문이다. 떠올릴 정도면 이 사람은 인류애가 있는 사람일 것이다. 

제14강 160 "어떤가? 이 사람이 최초의 거처와 그곳에 있어서의 지혜 그리고 그때의 동료 죄수들을 상기하고서는, 자신의 변화로 해서 자신은 행복하다고 여기되, 그들을 불쌍히 여길 것이라고 자넨 생각지 않는가?"
"그러고 말고요." 
[…]
"그렇지만, 만약에 그가 줄곧 그곳에서 죄수상태에 있던 그들과 그림자들을 다시 판별해봄에 있어서 경합을 벌이도록 요구 받는다면, 그것도 눈이 제 기능을 회복도 하기 전의 시력이 약한 때에 그런 요구를 받는다면, 어둠에 익숙해지는 이 시간이 아주 짧지는 않을 것이기에, 그는 비웃음을 자초하지 않겠는가? 또한 그에 대해서, 그가 위로 올라가더니 눈을 버려 가지고 왔다고 하면서, 올라가려고 애쓸 가치조자 없다고 하는 말을 듣게 되지 않겠는가? 그래서 자기들을 풀어주고서는 위로 인도해 가려고 꾀하는 자를, 자신들의 손으로 어떻게든 붙잡아서 죽일 수만 있다면, 그를 죽여버리려 하지 않겠는가?"
"물론 그러려 할 것입니다." ━ 《국가》 516a~51ba

다시 동굴로 내려가니 눈은 어둠으로 가득차 있게 될 것이다. "그렇지만, 만약에 그가 줄곧 그곳에서 죄수상태에 있던 그들과 그림자들을 다시 판별해봄에 있어서 경합을 벌이도록 요구 받는다면, 그것도 눈이 제 기능을 회복도 하기 전의 시력이 약한 때에 그런 요구를 받는다면, 어둠에 익숙해지는 이 시간이 아주 짧지는 않을 것이기에, 그는 비웃음을 자초하지 않겠는가?" 읽는 사람이 다시 동굴로 내려가서 그 자리에 앉았다고 가정하면 너무나도 잘 이해가 되는 상황이다. "또한 그에 대해서, 그가 위로 올라가더니 눈을 버려 가지고 왔다고 하면서, 올라가려고 애쓸 가치조자 없다고 하는 말을 듣게 되지 않겠는가?" 그런 다음에 "그래서 자기들을 풀어주고서는 위로 인도해 가려고 꾀하는 자를, 자신들의 손으로 어떻게든 붙잡아서 죽일 수만 있다면, 그를 죽여버리려 하지 않겠는가?" "물론 그러려 할 것입니다." 세가지가 나온다. 비웃는다, 비난한다, 죽인다. 플라톤의 대화편에 내려가기, 올려가기에 관한 비유가 가장 잘 나와있는 텍스트가 바로 《국가》이다. 이를테면 《파이드로스》의 경우에는 강가로 내려가는 것이 대화의 시작이다. 플라톤의 대화편 중에 가장 문학적인 그리고 아름다운 텍스트가 《파이드로스》라고 하는데, 《국가》는 그렇지 않다. 내려가기(katabasis)는 비진리의 장소를 말하는 것이고, 올라가는 것(anabasis)은 말 그대로 진리를 향하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162페이지의 오름(anabasis), 구경(thea)는 모두 진리를 가리키는 표현들이다. 오름(anabasis), 구경(thea), '지성에 의해서 알 수 있는 영역'으로 향한 혼의 등정(anodos), 인식할 수 있는 영역에 있어서 최종적으로 그리고 각고 끝에 보게 되는 것이 '좋음(to agathon)의 이데아', 모든 것에 있어서 모든 옳고 아름다운(훌륭한) 것의 원인(aitia). 진정한 원인이라는 것을 찾아서 이렇게 아낙사고라스의 말을 믿지 않고 실망을 하고 왔다. 그러면 이것은 형이상학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실천학이기도 하다. "장차 사적으로나 공적으로나 슬기롭게 행하고자(prattein)하는 자는 이 이데아를 보아야만(idein)한다. 형이상학 앞부분에서 이런 얘길르 했다. 빨강을 유지하려면 계속 빨강을 만들어야 한다. 올바른 삶을 사려면 일단 이데아를 봐야한다 그 다음에는 그 올바름을 마음쓰고(prattein) 계속 생산해야 한다.생산하고 행하는 것이 올바르게 살고자 하는 사람이 해야 하는 일이다.

동굴의 비유는 누가 어떤 방식으로 진리를 알아내는지를 이야기했고, 그렇게 알아낸 진리를 무지한 사람들에게 가르쳐 주는 실천을 이야기하는데 그 가르쳐 주는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알아낸 사람도 어떻게 해야 그 올바름에서 벗어나지 않을 것인가를 가르쳐주는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진리를 가르쳐주는 것 또한 진리를 행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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