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티오의 책들 | 역사 고전 강의 — 10

 

⟪역사 고전 강의 - 전진하는 세계 성찰하는 인간⟫, 제6강(2)

❧ 페리클레스 전쟁 전략의 문제점
- 희랍인들의 문화적 경험과의 충돌
- 인간의 힘으로는 예상할 수 없던 자연 재해

❧ 페리클레스의 전몰자 추도 연설
- 아테나이가 ‘희랍의 학교’라는 자부심

❧ ⟪옥스퍼드 세계사⟫, 2장(4)

 

2021.08.17 역사 고전 강의 — 10

지난 시간에서는 《역사고전 강의》 제6강 전반부를 이야기했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시작되었고, 앗티케 지방으로 라케다이몬군이 침입을 했다. 앗티케 지방의 농민들은 오랜 시간에 걸쳐서 ''약탈당하지 않은' 사람들이라고 하는 자부심을 가지고 자신의 땅을 지키면서 살아왔다. 그런데 그들에게 고통스러운 나날이 계속된 것이다. 사실 역사의 큰 흐름에서 보면 그런 고통이라고 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굉장히 하찮아 보이는 잔물결처럼 우리 눈에는 보이지만 그래서 아마 페리클레스도 그랬을 것이다. 버티는 전략을 세워서 가면 된다. 정치지도자들이 한 사람 한 사람의 고난과 쓰라림을 고려하게 되면 전쟁이라고 하는 것은 애초에 시작조차도 못한다. 

"페리클레스의 전략은 이론적으로는 훌륭했습니다. 그렇지만 그 전략은 앗티케 반도의 농민(중방 보병)의 생활방식과 마음을 고려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페리클레스도 그 상황을 짐작하긴 했겠지만 전쟁에 직면한 아테나이의 객관적 상황 때문에 어쩔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페리클레스의 구상이 그 당시로서는 최선의 방안이었다고 평가들을 하게 된다. 스파르테와 전쟁을 하는데 그 전쟁을 어떻게 할 것인가, 페리클레스도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서 궁리를 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 구상이 결정적으로 무너져 버리게 된 사태, 이런 것들을 그때는 모르고 지나고 보면 그것이 결정적이었다는 것을 알게된다. 

제6강 99 페리클레스의 전략은 이론적으로는 훌륭했습니다. 그렇지만 그 전략은 앗티케 반도의 농민(중방 보병)의 생활방식과 마음을 고려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페리클레스도 그 상황을 짐작하긴 했겠지만 전쟁에 직면한 아테나이의 객관적 상황 때문에 어쩔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역사책을 계속 읽어보면 과연 이 사람들의 행위를 어디까지 소급해서 원인을 끄집어내서 판단할 수 있는가가 어렵다. 예전에는 역사가 무엇인가를 물어보면 역사는 과거의 일어난 사건들을 설명하고 미래에 교훈을 얻게 된다고 얘기한다. 정말 낡은 역사 개념이다.  역사라고 하는 것은 과거의 사태를 설명하고 앞 날을 예측하는 하나의 학문적인 활동이라고 말하면 틀린 규정이다. 과거를 설명한다고 말하게 되면 인과관계를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원인이 무엇인지 설사 원인을 찾아냈다고 해도 그것에 의해서 파급되어 나온 귀결, 결과가 무엇인지를 어디까지 결과로 잡아야 하는지 알 수 없다. successive, 계기들이 계속해서 이어지는 그런 과정이기 때문에 페리클레스라고 알 수 없었을 것이다. "전쟁 2년째에 아테나이에 역병이 돌았던 것" 이것이 바로 결정적으로 무너뜨린 사태이다. 역병이 창궐하기 좋은 조건이라고 하는 것은 그런 지리적인 것을 통해서 우리는 알 수 있지만 그 역병이라는 것을 어찌 예측할 수 있겠는가. 

제6강 100 그런데 여기에 페리클레스의 구상을 결정적으로 무너뜨린 사태가 벌어집니다. 전쟁 2년째에 아테나이에 역병이 돌았던 것입니다.

아테나이에서 이것이 사람들의 심성지도, 마인드맵을 바꾸게 되었다는 것이다. 도널드 케이건은 이 계획이 근본적으로 신뢰받지 못했다고 말한다. 전장에서의 용기를 가장 높은 희랍인의 덕목으로 삼는 영웅적 전통을 송두리째 무시했고, 약탈을 허용한다는 것은 정말로 자존심이 상하는 문제였다. 그래서 그런 응어리가 있는 상황에서 역병이 닥쳤던 것이고, 그런 경우에 사람들의 미움이 응어리져서 페리클레스에 대한 공격이 시작되었는데 그 중에 가장 앞선 사람이 클레온이다. 클레온은 “귀족은 아니지만 부유한 자로서 전통적인 부의 원천인 토지가 아니라 무역과 제조업을 통해서 부를 쌓은 인물이었다." 사실 페리클레스는 정통적인 토지 귀족이었지만 그래도 민주파인척 했다. 그래서 출신 계급은 페리클레스와 클레온이 다르다고 해도 기본적으로 페리클레스와 클레온은 민주파에 속하는 사람이었다. 이 지점에서 주의를 해야 한다.  페리클레스와 클레온이 정치적인 지향이 달랐는가. 그렇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제6강 101 페리클레스를 공격한 자들 중 가장 주목할 만한 이는 클레온이었다. 그는 몇 년 전부터 페리클레스를 반대했다. 클레온은 아테나이에서 새로운 정치적인 계급에 속했다. 즉 귀족은 아니지만 부유한 자로서 전통적인 부의 원천인 토지가 아니라 무역과 제조업을 통해서 부를 쌓은 인물이었다.  ━ 케이건,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96쪽

첫해가 지나고 페리클레스의 전몰자 추도연설이 시작된다. 이에 대해서는 아주 많은 분석이 있다. 대체로 하나의 정치제제에 관한 이데올로기가 갖춰야할 연설이다. 체제를 앞장서서 지도하는 사람의 연설은 결국 그 체제 이데올로기를 드러내기 마련이다. 페리클레스의 연설이 그것을 보여준다는 점에서는 몇 가지 생각의 틀에 따라서 판단해 볼 수 있는 지점이 있다. 장례식 연설, 에피타피오스 로고스 epitaphios logos. "전쟁에 관한 것을 말하기보다는 아테나이의 자부심과 생활방식부터 말하기 시작합니다." 장례식 연설의 형식으로 유명한 것이 링컨의 게티즈버그 연설이다. 가장 중요것이 무엇인가. 아테나이의 자부심과 생활방식부터 얘기한다. 원래는 조상들이 우리에게 남겨준 조상들의 위업을 찬양하는 말부터 하는데 펠리클레스의 연설은 그것이 조금 모자란다고 하는 하는 결함을 가지고 있다.  그것을 먼저 생각해보면 되겠다.

제6강 102 페리클레스는 연단에 올라 전쟁에 관한 것을 말하기보다는 아테나이의 자부심과 생활방식부터 말하기 시작합니다.

그 다음에 103페이지에서 버나드 마넹의 《선거는 민주적인가》, 코린 쿨레의 《고대 그리스의 의사소통》을 소개했다. 두 권 다 좋은 책이다. 그 분야에서는 표준적인 도서로 알려져 있고 시일이 지나도 이 책들은 낡은 데이터를 가지고 있지 않은 책이다. 

페리클레스가 연설한 부분들 중에서 가장 핵심적인 부분, 널리 알려진 부분이 "우리 도시 전체가 헬라스의 학교입니다."라고 말한 부분이다. 자신들을 희랍세계의 삶의 표준으로 규정하고 있다. 자신들이 문명의 표준이라는 것이다. 당시 아테나이 사람들에 대한 희랍세계의 평판을 보면 굉장히 좋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이것은 지나친 자화자찬이 아닌가 생각이 드는 지점이다. "정치적 군사적 영향력을 넘어 문화적 자부심을 표명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게 무너졌을 때 그들이 가지게 될 심리적인 피폐함이 심했을 것이다.

제6강 103 간단히 말해 우리 도시 전체가 헬라스의 학교입니다. ━ 투퀴디데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2권 41장

제6강 103 아테나이는 희랍의 학교이며, 삶의 방식을 전파하는 곳이라는 말입니다. 자신들을 희랍세계의 삶의 표준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제6강 104 정치적 군사적 영향력을 넘어 문화적 자부심을 표명한 것으로 보입니다.

아무리 페리클레스가 공동체 리더를 얘기한다 해도 이때는 국가 기구라는 것이 따로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을 때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폴리스에 대한 시림들의 소속감은 굉장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폴리스에 사는 시민들은 폴리스의 구성원으로 혼연일체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바로 애국심이라고 말하기보다는 오히려 자기 태어난 곳, 나의 것에 대한 자연적인 본능에 근거한 소속감이라고 얘기할 수 있겠다. 

제6강 105 이 연설을 보면 이때까지만 해도 폴리스에 대한 시림들의 소속감은 굉장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폴리스에 사는 시민들은 폴리스의 구성원으로 혼연일체의 삶을 살았습니다.



이제부터는 ⟪옥스퍼드 세계사⟫ 2장을 읽는다. 지난 번에 얘기한 것이 빙하시대의 예술이다. 빙하시대의 예술로부터 영혼 세계가 추론되어 나오는데 영혼 세계에 관한 논의에서 절정에 이르는 지점이 내세에 대한 개념이다. 재미있는 것은 내세의 개념을 짐작해 볼 수 있는 유적은 호모 네안데르탈인 매장지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93페이지에 인상적인 유골 발굴지 사진이 있다. 태아처럼 웅크린 자세이다. 성인이 죽었는데도 태아 자세로 웅크리고 있다. 네안데르탈인 매장지들의 특색인데, 그것으로부터 추상적인 관념으로 넘어가기 어렵다. 제2장의 내세관념, 영혼, 예술에 대해서 다룰 때 저자의 논의에서 유심히 봐야하는 점이 유적지에서 출토된 물질적인 증거들이 있다. 그것은 분명히 물질, 유형의 증거들인데 그것으로부터 그것을 만들어 낸 또는 그런 유물을 남긴 집단이 어떤 관행을 가지고 있었는가, 또는 어떤 규범 속에서 살았는가, 그들에게 영혼에 관한 개념이 있었는가, 예언자나 세습지도자가 있었는가 하는 것들은 추상적인 생각들이다. 이 둘이 필연적으로 꼭 이것이 발견되면 이거다 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것을 연결하는 추론이 제2장에 있다. 어쩌면 역사라고 하는 것이 그 지점에서 거대한 사기가 될 수 있고 탄탄한 추론의 근거한 서사가 될 수도 있는 결정적인 지점이 있을 것이다. 물질적 증거와 추상적인 제도나 눈에 보이지 않는 생각, 이런 것들을 연결시키는 추론이 굉장히 조심스럽게 저자에 의해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을 잘 봐야한다. 그것을 표현하는 문장들을 놓쳐서는 안된다.

"의례에 따른 매장은 오늘날의 문화들도 여전히 규정하기 어려워하는 삶과 죽음 개념의 증거다." 어떤 행사를 치르면서 매장을 한 것은 사실인데 과연 그것이 이 사람들에게 산 자와 죽은 자의 개념적 차이가 있었는가를 보여주는 결정적인 증거라고 할 수 있는지는 또다른 문제이다. 그래서 저자는 상당히 조심스럽게 논의를 한다. 확정적으로 말하는 부분이 적다. "최초의 장례는 삶을 축성했다. 그것은 곧 삶이란 경외할 가치가 있는 것이라는 확신의 표현이었다." 저자가 내린 것은 장례식에서 알아낼 수 있는 것은 이것이다 라고 말한다. 살아있음이라고 하는 것이 경외할 가치가 있는 것이다. "사람들이 장례를 치른다 해도 그것이 꼭 내세를 믿는다는 증거는 아니다." 다른 형태로 살아간다고 생각하는 것이 내세다. 사람이 지금 지금 이 세상에서는 현재 육신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데 저 세상은 또다른 세상이 있다는 것을 표현한다. 그것에 대해서 저자는 이야기한다. "사자의 생존 가능성이라는 관념을 이해하기 어려운 것도 아니다. 살아 있는 동안 우리는 신체가 끊임없이 변화함에도 불구하고 나의 정체성이 계속 이어진다고 느낀다. 사춘기나 폐경기, 트라우마적 부상 같은 큰 변화를 겪고도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다면, 어쨌거나 그런 일련의 변화 중에서 가장 극적인 변화에 지나지 않는 죽음이 꼭 소멸이어야 할 이유가 있을까?" 죽음이 꼭 소멸인가. "그러므로 내세 관념은 그 자체로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초기 무덤들의 부장품은 내세가 현세의 연장일 것임을 함축하고, 영혼의 생존보다는 지위의 생존을 확인해준다." 함축이라는 말은 확인한다는 것은 아니다. 저 세상이 이 세상의 연장일 것이라는 것을 암시한다는 정도로 이해하면 된다. 그런데 무덤에 들어있는 부장품으로부터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이 무덤에 뭍힌 사람이 살아있을 때 지위가 높았다는 것은 틀림없다.

《옥스퍼드 세계사》 2장 94 의례에 따른 매장은 오늘날의 문화들도 여전히 규정하기 어려워하는 삶과 죽음 개념의 증거다.

《옥스퍼드 세계사》 2장 94 최초의 장례는 삶을 축성했다. 그것은 곧 삶이란 경외할 가치가 있는 것이라는 확신의 표현이었다. 최초의 장례는 그저 삶을 소중히 여기는 본능을 넘어섰음을 보여주는 첫 증거였으며, 그후로 줄곧 모든 도덕적 행위의 기반을 이루어왔다. 

《옥스퍼드 세계사》 2장 95 사람들이 장례를 치른다 해도 그것이 꼭 내세를 믿는다는 증거는 아니다.

《옥스퍼드 세계사》 2장 95 사자의 생존 가능성이라는 관념을 이해하기 어려운 것도 아니다. 살아 있는 동안 우리는 신체가 끊임없이 변화함에도 불구하고 나의 정체성이 계속 이어진다고 느낀다. 사춘기나 폐경기, 트라우마적 부상 같은 큰 변화를 겪고도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다면, 어쨌거나 그런 일련의 변화 중에서 가장 극적인 변화에 지나지 않는 죽음이 꼭 소멸이어야 할 이유가 있을까?

《옥스퍼드 세계사》 2장 95 그러므로 내세 관념은 그 자체로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초기 무덤들의 부장품은 내세가 현세의 연장일 것임을 함축하고, 영혼의 생존보다는 지위의 생존을 확인해준다.

이 이야기가 바로 이어지는 절과 연결된다. 지위가 높은 사람들만이 부장품을 묻었고 그런 사람들이 있는 사회가 분화된 사회다. "분화된 사회, 즉 서열과 유한계급이 있는 사회 외부에서는 분명 빙하 시대 예술을 생산할 수 없었을 것이다." 긍정문으로 만들면 분화된 사회, 즉 서열과 유한계급이 있는 사회에서만 예술을 생산할 수 있었다. [분화된 사회, 즉 서열과 유한계급이 있는 사회] → 예술 생산의 공동체적 토대. 예술을 생산하려면 특권층이 있어야 한다. 귀한 품목은 먼 거리를 통해 거래되었다. 즉 예술품이 생산되려면 원거리 교역이 있어야 한다. 

《옥스퍼드 세계사》 2장 96 분화된 사회, 즉 서열과 유한계급이 있는 사회 외부에서는 분명 빙하 시대 예술을 생산할 수 없었을 것이다.

《옥스퍼드 세계사》 2장 97 일찍이 4만 년 전부터 현지에서 구할 수 없는 귀한 품목은 분명 먼 거리를 통해 거래되었다.

특권층의 명령이 유지되려면 권력이 이어야한다. 98페이지를 보면 "지도력, 폭넓은 질서 관념, 그리고 빙하 시대의 정치경제라고 부를 만한 것" 부장품에서 부터 이어져 내려온다. 초기 농경 사회와 목축 사회에서 잔치는 군장이 공동체 내에서 잉여 생산물 분배를 감하는 방법이었는데, 잔치를 벌이는 주체가 군장이다. 그러면 무엇을 위해 그런 잔치를 벌였을까. 답이 딱 떨어지지 않는다. 잔치를 벌인 흔적은 있다. 그런데 그런 잔치를 벌였을까. 첫째 예상하는 이유는 상징적 또는 마술적 의례일 수도 있고 또 실용적인 이유들도 있을 것이다. 현대 수렵 채집 집단들의 사례에서 유추해보면, 여기서 유추라고 되어 있으니 확실한 것은 아니지만,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잔치를 벌인다는 것은 그것을 이끄는 누군가가 있었다고 하는 것이다. 그게 누구겠는가. 지도부, 권력이다.

《옥스퍼드 세계사》 2장 98 지도력, 폭넓은 질서 관념, 그리고 빙하 시대의 정치경제라고 부를 만한 것에 대해 무언가 말할 수는 있다.

지도부. 권력. 첫번째 위협과 폭력으로 통치를 강요했을 것이다. 그런데 동굴 벽화를 보니 "정치적 혁명이 일어나 권위를 부여하고 군장을 선택하는 방식이 다양해졌음"을 추론해 낼 수 있다. 위협과 폭력만이 아니라 새로운 종류의 정치적 사유, 지도력이 나왔는데 그것이 바로 샤먼이라는 것이다.

《옥스퍼드 세계사》 2장 99 호미니드 사회, 호미닌 사회, 초기 호모사피엔스 사회에는 지도자들이 있었다. 다른 유인원들로부터 유추하건대, 우두머리 남성들이 위협과 폭력으로 통치를 강요했을 것이다. 그런데 빙하시대의 정치 이념과 관련해서도 동굴 벽에 그려진 의례 장면은 실마리를 제공한다. 다시 말해 동굴 벽화는 정치적 혁명이 일어나 권위를 부여하고 군장을 선택하는 방식이 다양해졌음을 보여준다.

샤먼은 새로운 종류의 권력을 휘두르는 자인데, "영혼 ━ 세계를 현재 존재하는 세계로 만드는 힘에 해당하는 신령과 사자━과 접촉하여" 샤먼은 영혼과 접촉하는 자이다. 샤머니즘은 강자를, 즉 폭력을 휘두르는 자, 선지자와 현자로 대체했고 그런 사람들을 예언자로 부를 수 있다. 결국 영혼이라고 하는 것이 있다는 얘기가 정치적인 지도자, 예언자로까지 쭉 이어졌다고 하는 것이 핵심이다. 

《옥스퍼드 세계사》 2장 101 샤머니즘은 강자를 선지자와 현자로 대체했다.

생각할 시간 절을 보면 "세습을 통해 권력의 연속성을 보장받은 전문직 특권층 엘리트들에게는 생각할 시간이 있었다." 시간은 "일군의 변화와 다른 일군의 변화를 비교하여 변화의 간격을 측정하는 방법"이다. 빙하시대의 예술에서 특권층, 특권층이 누구보다도 가지고 있던 것이 시간이다. 제2장에서 다루고 있는 것을 마지막으로 정리해 놓은 것이 105페이지 "상징적 의사소통, 삶과 죽음의 구별, 물질적 우주 이상의 존재, 내세로의 접근 가능성, 영혼, 마나, 어쩌면 유일신 등 빙하 시대 최상의 관념들은 이 시대가 끝나기 전에 이미 세계를 바꾸어 놓았다." 그런데 106페이지를 보면 "빙하가 물러나고 사람들이 소중히 여겼던 환경이 사라졌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2~1만 년 전 지구 온난화가 단속적으로 재개되었을 때" 지금 우리도 지금 온난화. 익숙한 환경을 찾아 이주한 사람도 있었고, 그대로 머무르며 적응하려고 노력한 사람도 있었다. 현재 우리는 익숙한 환경을 찾아 이주하기도 불가능하고 그대로 머무르며 적응하려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다. 순식간에 재난이 닥치면 그대로 얼어붙어버리면 참 좋겠는데 그렇지는 않다. 짜잘하지만 굉장히 고통스러운 나날들이 계속해서 이어지지 않을까 걱정이다.

《옥스퍼드 세계사》 2장 104 세습을 통해 권력의 연속성을 보장받은 전문직 특권층 엘리트들에게는 생각할 시간이 있었다.

《옥스퍼드 세계사》 2장 104 시간은 일군의 변화와 다른 일군의 변화를 비교하여 변화의 간격을 측정하는 방법이라고 이해하는 편이 가장 좋을 것이다.

《옥스퍼드 세계사》 2장 105 상징적 의사소통, 삶과 죽음의 구별, 물질적 우주 이상의 존재, 내세로의 접근 가능성, 영혼, 마나, 어쩌면 유일신 등 빙하 시대 최상의 관념들은 이 시대가 끝나기 전에 이미 세계를 바꾸어 놓았다.

《옥스퍼드 세계사》 2장 106 빙하가 물러나고 사람들이 소중히 여겼던 환경이 사라졌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2~1만 년 전 지구 온난화가 단속적으로 재개되었을 때, 익숙하고 편안한 전통 생활 방식이 위협받는 사태에 사람들은 어떻게 대응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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