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베르토 에코: 추의 역사
- 책 밑줄긋기/책 2012-22
- 2022. 1. 22.
추의 역사 - 움베르토 에코 지음, 오숙은 옮김/열린책들 |
서문
Chapter I. 고대 세계의 추
Chapter II. 수난, 죽음, 순교
Chapter III. 묵시록, 지옥, 악마
Chapter IV. 괴물들과 기이한 것들
Chapter V. 추한 것, 희극적인 것, 외설스러운 것
Chapter VI. 고대부터 바로크 시대까지 여성의 추
Chapter VII. 근대 세계의 악마들
Chapter VIII. 마법, 사탄 숭배, 사디즘
Chapter IX. 피시카 쿠리오사
Chapter X. 낭만주의와 추의 구원
Chapter XI. 두려운 낯설음
Chapter XII. 철탑과 상아탑
Chapter XIII. 아방가르드와 추의 승리
Chapter XIV. 타자의 추, 키치, 캠프
Chapter XV. 오늘날의 추
서문
세기마다 철학자들과 예술가들은 미(美)의 정의를 보태 왔고, 덕분에 시간의 흐름에 따른 미적 관념의 역사를 재구성하는 것은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추(醜)에서는 그런 작업이 일어나지 않았다. 대부분의 시기에서 추는 미의 반대 개념으로 정의되었으나, 추에 관하여 일정 분량이도 논문을 할애했던 사람은 거의 없다시피 하다. 고작해야 추는 주변적 작업에서 지나가는 언급으로 제시되었을 뿐이다. 따라서 미의 역사는 방대한 이론적 근거들(우리는 이런 출처들에서 특정 시기의 취향을 추론할 수 있다)에서 끌어낼 수 있지만, 대체로 추의 역사는 우리가 어떻게든 〈추하다〉고 보는 사물이나 사람들에 대한 시각적, 언어적인 묘사들 속에서 그 자체의 기록들을 찾아내야 한다.
그렇다고 해도추의 역사는 미의 역사와 어느 정도 공통적인 특성을 공유하고 있다. 첫째로, 우리는 보통 사람들의 취향이 어느 정도는 그 시대 예술가들의 취향과 일치한다고 가정할 수밖에 없다. 만약 외계에서 온 방문자가 현대 미술 전시실에 들어갔다가 피카소가 그린 여인 그림들을 본다고 가정해 보자. 그것들을 〈아름답다〉고 묘사하는 관람객들의 말을 듣는다면, 그는 일상을 사는 우리 시대 남자들이 피카소가 그린 여인들과 닮은 얼굴의 여성들을 아름답고 바람직하게 여긴다고 오해하게 될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의 외계 방문자가 패션쇼나 미스 유니버스 대회를 지켜볼 기회를 갖는다면 미의 다른 모델들에 대한 찬사를 목격하고서 자신의 견해를 수정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불행히도 이런 기회는 ━ 미에 관해서든 추에 관해서든 ━ 기나긴 과거의 시간들을 되돌아볼 때, 우리에게는 주어지지 않을 것이다.
우리에게 남아 있는 것이라곤 그 시대의 예술 작품이 전부이기 때문이다. 또 하나 추의 역사와 미의 역사를 가릴 것 없이 나타나는 공통적인 특성은 이른바 원시인들의 이야기를 논하는 작업이 제약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들이 남긴 예술 작품들은 있지만, 그것이 미적 쾌락을 위한 것인지 혹은 성스러운 외경심이나 환희를 위한 것인지 말해 줄이론적 텍스트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서구인들의 눈에 아프리카의 제의용 가면은 섬뜩하게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 지역 주민들에게는 그 가면이 자비로운 신을 나타내는 것일 수 있다. 거꾸로 비유럽권 신도들이 보기에 그리스도가 채찍을 맞고 피를 홀리며 모욕당하는 이미지는 불쾌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반면에 명백한 신체적 추로 보이는 이것이 그리스도교도에게는 공감과 감동을 일으킬 수도 있다.
문학과 철학의 텍스트가 풍부한 다른 문화의 경우(인도나 중국, 일본문화처럼), 우리는 이미지와 형식들을 이해한다. 그러나 그들의 문학 및 철학 작품 번역과 관련해서 우리는 비록 전통에 의지해 특정 개념들을 〈미〉나 〈추〉 같은 서구적 용어로 번역해 오기는 했지만 특정 개념들을 어느 정도까지 우리 자신의 개념들과 동일시할 수 있을지 입증한다는 것은 거의 항상 어려운 일이다.
설사 그 번역이 믿을 만하다고 해도, 하나의 특정 문화에서 어떤 것, 이를테면 비례와 조화를 지닌 것이 아름다운 것으로 여겨지는가 하는 문제를 판단하기에는 충분하지 않을 것이다. 비례와 조화. 도대체 이 용어가 뜻하는 것이 무엇일까?
그 의미는 심지어 서구의 역사에서도 변화해 왔다. 한 세기 동안 비례가 맞다고 여겨지던 것이 다른 세기에 들어서 더는 그렇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 우리가 그것을 알아내는 방법은 한 점의 그림 혹은 건축 구조물을 이론적 진술들과 비교해 보는 것밖에 없다. 예를 들어, 비례라는 주제에 관하여 중세 철학자들이라면 고딕 대성당의 거대한 규모와 형식을 생각하겠지만, 르네상스 시대 이론가라면 황금률에 의해 부분들이 결정된 16세기의 판테온을 떠올릴 것이다. 그리고 르네상스시대 인간은 대성당의 비례에 대해선, 〈고딕 Gothic〉이란 단어에서 충분히 알 수 있듯, 야만적인 것으로 보았다.
[…]
확실히 우리는 물리적으로 바람직하기 때문에 어떤 것에 대해 보란듯이 우리에게 아름답다는 느낌을 주는 승인을 표명하는 경우들을 목격하곤 한다. 아름다운 여성이 지나갈 때 주변에서 내뱉는 저속한 말들이나 자기가 좋아하는 음식을 보았을 때 대식가 쓰는 어울리지 않는 표현들을 생각해 보라. 그러나 이런 경우 우리가 다루게 되는 것은 미적 쾌감의 표현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만족의 툴툴거림, 심지어 특정 문화에서 음식에 대한 감사를 표하기 위해 내뱉는 트림과 비슷한 어떤 것이다. 일반적으로 어떤 경우든 미적 경험은 칸트가 〈무관심적 쾌감〉이라 정의한 것을 일으키는 것을 보인다. 다시 말해, 우리는 우리에게 기분 좋게 느껴지는 모든 것을 소유하고 싶어 하거나 선하게 보이는 모든 것에 참여하고 싶어 하는 반면에, 꽃이란 광경을 보고 호불호를 결정하는 것은 소유나 소비에 대한 일체의 욕망이 배제된 쾌감을 준다는 것이다.
따라서 일부 철학자들은, 다윈의 말처럼 추가 혐오감 같은 감정적 반응을 일으킨다고 할 때 추에 대한 미적 판단을 내리는 것이 과연 가능한가 하는 의문을 품어왔다.
실제로 우리는 역사 속에서 그 자체로서 추의 표명인 것(배설물, 부패해 가는 고기, 또는 구역질 날 만큼 악취를 풍기는 염증으로 온몸이 뒤덮인 사람)과 하나의 전체를 이루는 부분들의 유기적 관계에서 균형의 결여로 이해되는 형식적 추의 표명을 구분해야 한다.
거리에서 이가 거의 다 빠진 사람을 본다고 상상해 보자. 우리를 심란하게 만드는 것은 그 사람의 입술이나 몇 안되는 남은 이들의 형태가 아니라, 그 몇 안되는 이들 옆에 입 안에 〈있어야 할〉나머지 이들이 없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그 사람을 모르고, 그의 추가 우리에게 감정적으로 영향을 주는 것도 아니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 그 전체의 불완전성 혹은 불일치를 마주하고서 ━ 그 얼굴은 추하다고 냉정하게 말할 자격이 있다고 느낀다.
[…]
이론가들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개별적 변수, 특유의 표현법, 일탈적 행위를 고려하지 못할 때가 종종 있다. 미적 경험이 무관심적 관조를 수반한다는 것은 명백하지만 그럼에도 사춘기의 불안한 십대들은 밀로의 비너스를 보는 것에서도 감정적 반응을 일으킬 수 있다. 이것은 추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어떤 어린이는 동화책에서 보았던 또래 어린이들에게는 우습게만 여겨졌을 마녀에 관하여 악몽을 꿀 수도 있다. 또한 렘브란트의 동시대 사람들 중 다수는 시체 해부대 위의 절단된 시체를 묘사했던 그의 능숙한 솜씨를 감상하기보다는 마치 그 시체가 진짜라도 되는 양 겁에 질린 반응을 보였을 것이다. 그것은 전쟁에서 공습을 겪고 살아남은 사람이 피카소의 「게르니카」를 미적으로 무관심하게 바라보지 못하고, 과거에 경험했던 공포를 되살릴 수밖에 없는 것과 다르지 않다.
따라서 앞으로 온갖 다양성과 복합적 형상을 띤 추, 이 추의 역사를 따라가면서 우리가 주의를 기울여야 할 점은 다양한 그 추의 형상들이 일으키는 여러 가지 반응들 그리고 우리가 그것들에 반응할 때의 행위의 뉘앙스이다. 또한 우리는 『맥베스』의 제1막에서 마녀들이 한 말이 얼마나 옳았는지 ━ 실제로 그들이 옳다면 ━ 매번 명심해야 할 것이다. 〈고운 것은 더러운 것이요 더러운 것은 고웁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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