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유원의 북리스트」에서 제공하는 《몽유병자들》를 듣고 정리한다.
2022.08.22 몽유병자들(11) ━ 사라예보 살인사건에 대한 오스트리아 제국의 주요 행위자들의 대응
오늘은 《몽유병자들》 제7장을 마무리한다. 7장에서 오늘 읽은 부분은 수사시작, 세르비아의 대응, 그에 이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것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말하고 있다. 우리가 역사책을 읽을 때 조심해야 하는 것이 역사라고 하는 것은 사실 우연한 사건들로 이루어져 있다. 우연한 사건들이 겹쳐 있을 뿐이다. 훗날에 보면 굉장히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 사건들이라고 해도 그것이 어떤 필연적인 연결고리 속에서 벌어지지는 않는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7월 위기를 불러왔던 사라예보 암살사건이다. 바로 이것이 그런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 하는, 이를테면 운전사가 제대로 알고 갔더라면 이런 식의 가정법이 생겨나는 것이 그렇다. 그러니까 우리가 역사적인 사건을 들여다볼 때는 완전한 서사를 만들려고 생각하면 안된다. 그러면 역사를 왜곡하기 쉽다. 사실 그게 왜 그런가하면 인간의 본성이 그렇다. 그런 것들을 다룬 책들을 읽어보면, 인간의 뇌가 어떻게 작동하는가, 사람은 질서정연한 이야기를 만들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그런 질서정연한 이야기를 만드는 데에 도움이 되지 않는 그런 사건들은 빼버린다는 것이다. 자기가 자기 자신에 대해서 생각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니까 자신의 과거를 들여다보면 그 일이 벌어졌지 하고 도무지 납득이 되지 않는 사건들이 가끔 있다. 그런 사건들을 마주쳤을 때 납득이 되지 않는 것을을 대개 흑역사다 이렇게 말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그것을 흑역사라고 규정하지 말고 그냥 잊어버리는 것이 낫다. 흑역사라고 규정하는 순간 머릿속에 자꾸 떠오르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잘못을 뉘우치지 않고 살아가도 된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우리가 제1부에 읽었던 것들은 큰 배경이 되는 것들이었다. 오피셜 마인드라든가 그런 것들, 심성지도 이런 것들인데 그런 것들은 일종의 구조에 해당하는 것들이다. 아니면 아주 넓은 의미에서 선행조건에 해당한다. 그리고 그런 구조가 있을 때 그런 구조 위에서 지금 사라예보 암살사건이라고 하는 하나의 사건이 벌어졌다. 그러면 그런 사건이 벌어졌을 때 그 사건에 대해서 직접적인 또는 간접적인 당사자들, 즉 행위자들이 있다. 그런 행위자들이 어떻게 그런 사건에 대응하는가, 그것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지금 우리가 이것을 살펴보는 것은 구체적인 결과들이 나오기 때문에 그런 결과들을, 아무리 우연적인 것이라고 해도 그 결과들은 인간 행위자에 의해서 만들어지기 마련이니까, 그런 인간 행위자들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그런 귀결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사건들의 연결고리들이, 사건이 행위자들에게 어떤 식으로 연결되는가, 이것을 볼 필요가 있다. 그런 것을 '연결국면'으로 이해하는데 역사책에 보면 conjuncture 라는 단어가 있다.
수사가 시작되었다, 이 부분은 새로운 것이 없다. 당연히 수사가 시작되었을 것이고, 그런데 중요한 것은 세르비아에서 이것을, 이 음모의 배후에 있다 라는 것, 즉 세르비아 정부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막연히 짐작은 하겠지만 이것을 구체적인 수사를 통해서 밝혀내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니 이 부분이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게는 굉장히 모호한 어떤 그런 상황을 만들었다. 그런데 세르비아의 대응을 보자면, 세르비아도 하나의 행위자이다. 세르비아라고 하는 국가의 행위를 구체화하는 인물들을 보자면 대다수의 세르비아인들이 우선 있다. 세르비아인들은 공식적인 조의를 표시하는 국가와는 달리 아주 커다란 환희에 휩싸였던 것은 사실이다. 이를테면 이웃 나라에서 최근에서 아베 신조가 정말 어이없는 이유로 암살을 당했다. 그 사건을 보면 한국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했을까. 물론 국가로서의 대한민국은 조의를 표했다. 그러나 한국인들은 어땠을까. 세르비아 사람들에게 감정이입이 될 수 있다. 그런데 세르비아가 그렇다고 해도 세르비아 정부에서 구체적인 정치적 행위자들은 그런 기쁨을 드러내 보이지 않고 실책을 막았어야 한다 라는 것이 크리스토퍼 클라크의 주장이다. "막을 가능성이 더 높았던 다른 실책들도 있었다." 즉 세르비아측의 행위자들이 어떤 실수를 했다는 말이다. 그런 것들이 그 이전의 구조 위에 발화된 하나의 사건이 있는데, 그 사건이 연결국면으로 이어져 가고 있는, 정말 모호한 상태로 들어간다. 그럴 때는 전쟁이 필요하다고 생각해다면 모를까, 그것이 아니었다면 행위자들이 실수는 하지 않았어야 했는데 안타깝게도 세르비아측의 대응이 상당한 실책을 보여줬던 것은 사실이다. 그게 첫째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신뢰할 만한 파트너로 삼을 수 없다 라는 인상을 강하게 심어주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세르비아의 파시치도 마찬가지이고, "세르비아가 오만과 기만, 책임 회피로 일관한다고 여긴 오스트리아를 격분 시킬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전쟁으로 가는 것을 원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제7장 598 오스트리아 관찰자들은 공식적인 조의 표시와 대다수 세르비아인들이 느끼고 표현한 환희 사이에 커다란 간극이 있음을 처음부터 알아챘다.
제7장 600 막을 가능성이 더 높았던 다른 실책들도 있었다.
제7장 603 니콜라 파시치의 확언에도 불구하고 슈토르크는 세르비아 외무부를 신뢰할 만한 파트너로 삼을 수 없다고 결론 내렸다.
제7장 604 세르비아가 오만과 기만, 책임 회피로 일관한다고 여긴 오스트리아를 격분 시킬 수밖에 없었다.
그 다음으로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서 어떤 식으로 그들의 주요행위자들이 움직였는가를 볼 필요가 있다. 일단 구조는 구조였다고 하더라도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은 온건파였다. 전쟁을 하면 안된다고 했는데 벌써 "오스트리아 핵심 의사결정자들 사이에서 군사행동으로만 세르비아의 관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합의가 이루어졌다." 그래서 "이제 그 문제는 다른 국면으로 접어들었습니다." 이 암살 사건이 다른 국면으로 접어들게 한 결정적인 트리거, 즉 방아쇠를 당긴 것은 틀림없다. 첫번째는 콘라트는 지금이야말로 행동해야 할 때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온건파들의 태도가 전환되었다는 것을 봐야한다. 대표적인 온건파였던 공동 재무장관 빌린스키의 태도가 전환되었다. "빌린스키는 암살사건이 일어나자 이런 어정쩡한 자세를 당장 집어치웠다." 행위자들 한사람 한사람을 살펴보는 것이다. 이런 것들이 중요하다. 어떤 사태가 있을 때, 예를들어 17세기 중반의 잉글랜드 내전이 있다. 잉글랜드 내전이 찰스1세 때 갑자기 일어난 것이 아니다. 그 이전에 아주 기간에 걸쳐서 구조적으로 어떤 변화가 있다. 그런 변화들이 혁명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가 그것이 점차 개연성이 높은 사건, 혁명을 불러 일으킬만한 개연성으로 가게되는 몇 가지 징후들이 있다. 그런 것들이 가능성이 개연성으로 이어져가는 행위자들의 행동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게 바로 연결국면에서 벌어지는 것이다. 그러다가 그것을 방아쇠를 당기는 결정적인 사건들이 벌어진다. 그런 식으로 역사적인 국면들의 전개과정을 이해하여야 한다. 마찬가지로 세르비아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precondition 들이 있다. 즉 structure들이 있다. 그런 structure들이 암살사건이라고 하는 것을 딱 만나면서 연결국면으로 들어가게 된다. 연결국면으로 들어갔을 때 행위자들이 행동이 어떤 방향으로 가는가를 우리가 살펴봐야 한다. 한반도에서 벌어지는 작금의 정치적 상황들도 이런 식의 일종의, 이게 엄밀한 역사를 읽는 공식은 아닌데, 이런 식으로 읽을 때 우리가 좀 더 눈 앞에 벌어지는 사건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한 두가지에 놀라지 않고 큰 흐름을 읽으면서 '이 국면에서는 정치적 행위자가 어떤 행동을 해야 마땅할 것인가' 이런 것들을 생각해볼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그 다음에 빌린스키의 하급자인 포티오레크는 사실 이 사건의 책임자였는데, 굉장히 "격렬한 호전성으로 자책감을 감추었다." 그 다음에 베르히톨트가 통제하는 "외무부 고위층은 호전적 정책을 재빨리 받아들였다." 베르히톨트 자신이 페르디난트의 친한 친구이도 했는데, 페르디난트의 죽음으로 인하여 베르히톨트 역시 주전론으로 태도를 돌아섰다. 그가 바로 요제프 프란츠 황제를 만나게 된다. 황제를 만나서 동의했고, 그렇지만 이중제국이기 때문에 "황제는 베르히톨트에게 어떤 추가 조치든 헝가리 수상 이슈트반 티서와 합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런데 이슈트반 티서는 헝가리의 자기 정체가 있으니 루마니아와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 다음에 루마니아가 영국, 러시아, 프랑스로 이루어진 삼국협상 편으로 넘어가고 있는지 걱정을 해야 하고, 그러니까 루마니아를 삼국동맹 쪽으로, 도이칠란트, 오스트리아-헝가리, 이탈리아쪽으로 끌어와야 한다고 하면서 직접적인 행동 정책에 반대하게 된다. 이 지점에서 또 하나 중요한 것은 도이칠란트이다. 빌헬름2세가 어떻게 나올 것인가, 이랬을 때 오스트리아-헝가리으로서는 도이칠란트와 어떻게 해서든지 동의를 받아내야 할 필요가 있겠다. 그러면 도이칠란트의 행동을 촉구하기 위한 외교정책을 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즉각적인 대응은 늦어지고 말았다. 그것이 바로 이제 622페이지를 보면 "선전포고 없이 그냥 베오그라드를 타격하는 편이 더 낫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을 떨치지 못했다." 만약에 오스트리아 지도부가 바로 타격을 했더라면 문제는 그냥 국지전으로 끝났을 수도 있다. "그렇게 공격하는 것이 당시 누구나 생각한, 중대한 도발에 대한 반사적 대응이었다." "그랬다면 유럽이 여러분에게 공감했을 겁니다"라고 루마니아 수상 이온 브러티아누가 그렇게 얘기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았을 때 "이 가상 시나리오를 실현할 절호의 기회는 이미 사라진 셈이다."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지금 이 부분을 읽으면서 다시 한번 그런 생각이 드는데, 정말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의사결정을 하지 못하는 것에 시달리다가 결국에는 제1차 세계대전으로 끌려들어간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해보게 된다. 구조 위에서 어떤 사건이 벌어졌을 때 그것에 대응하는 행위자들을 잘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오늘 이야기했다.
제7장 605 6월 28일 암살 이후 며칠 내에 오스트리아 핵심 의사결정자들 사이에서 군사행동으로만 세르비아의 관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합의가 이루어졌다.
제7장 605 "이제 그 문제는 다른 국면으로 접어들었습니다."
제7장 608 빌린스키는 암살사건이 일어나자 이런 어정쩡한 자세를 당장 집어치웠다.
제7장 608 빌린스키의 하급자 포티오레크는 가장 강경한 매파 중 한 명이었다.
제7장 609 외무부 고위층은 호전적 정책을 재빨리 받아들였다.
제7장 613 황제는 베르히톨트에게 어떤 추가 조치든 헝가리 수상 이슈트반 티서와 합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제7장 622 7월 위기 내내 오스트리아 지도부는 총동원 없이, 선전포고 없이 그냥 베오그라드를 타격하는 편이 더 낫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을 떨치지 못했다. 그렇게 공격하는 것이 당시 누구나 생각한, 중대한 도발에 대한 반사적 대응이었다.
제7장 622 알레크 호요스가 베를린행 야간열차를 탔을 때, 이 가상 시나리오를 실현할 절호의 기회는 이미 사라진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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