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유원의 북리스트」에서 제공하는 《몽유병자들》를 듣고 정리한다.
2022.08.30 몽유병자들(12) ━ 사라예보 사건에 대한 국제정치학적인 고려, 지정학적 요인과 정당화
오늘은 《몽유병자들》 제8장 확산되는 파문의 첫번째 섹션 외국의 반응을 읽는다. 앞에서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이 암살을 당했을 때 제7장에서 사건이 어떤 식으로 전개되었는가, 그리고 그것에 대한 반응이 어떠했는가에 대해서 살펴봤다. 우리가 역사적으로 일어난 사건들이 어떤 식으로 일어났는가를 아는 것도 굉장히 중요하지만 지금 현재 《몽유병자들》을 읽으면서 초점을 두어야 하는 지점이 어떤 사건이 일어났을 때 그 사건에 대한 반응도 굉장히 눈여겨 봐야 하는 지점이 있다. 지금 여기서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의 암살 사건에 대해서 각각의 나라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고 그것에 대해서 어떻게 대처해 나아가는가를 저자가 굉장히 조밀하게 잘 써놓았다. 그리고 어떤 서사가 만들어지는가, 외교적인 관계를 이끌어 나가는 과정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그것에 대한 대응은 어떠한가. 사실 1차세계대전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그러면 전쟁이 어떻게 벌어졌고 참호전이 어떻고 이런 것에 대해서 많이 다루어왔다. 그런데 지금 이 책 저자는 그것보다는 전쟁국면보다는 어떤 이야기가 만들어지고 어떤 이야기들을 가지고 사람들이 어떤 방식으로 그것에 대응하고, 대응 서사를 만들어내고, 그런 외교사의 측면에서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에 국제정치학을 공부하는 데에는 아주 좋은 역사책이다.
제8장 확산되는 파문, 외국의 반응에서는 특별히 카드를 만들 만한 것은 없다. 사라예보 사건에 대한 러시아의 서사가 만들어지는, 즉 대응 서사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를 유심히 보면서 그것을 정리해보겠다. 《합스부르크 세계를 지배하다》에서 당시 독일의 카이저 빌헬름 2세와 프란츠 페르디난트가 아주 친한 사이었다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다고 하는 것을 읽었었다. 여기에도 그런 얘기가 있다. 624페이지를 보면 "두 사람의 "친분"은 "독일인들에게 아주 만족스러울 뿐 아니라 누구나 아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오스트리아인들처럼 독일인들도 암살의 충격을 수많은 개인적 인상으로 드러냈다. 일례로 역사가 프리드리히 마이네케는 한 신문사의 사옥에 붙은 표제를 읽었을 때 눈앞이 캄캄해진다고 느꼈다." 독일의 입장에서 빌헬름 2세 황제가 어떻게 생각했는가, 감정은 개인의 내면에 있는 것이지만 여기 등장하는 사람들은 모두 다 하나의 공적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사람들이 어떤 감정을 가졌는가, 이런 것도 쉽게 간과하고 지나가서는 안된다. 그것이 정책으로 만들어져 나가는 그런 것이기 때문에 그렇다. 그리고 그들이 어떤 말 한 마디를 했을 때 또는 어떤 감정적인 표현을 했을 때 그것이 진솔한 내면의 표출일 수도 있지만 사실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외교적인 발언이다라고 말할 때의 외교, 외교적인 것이라는 느낌을 우리가 갖게 된다. 그리고 "루마니아에서도 암살 소식에 깊이 애도하는 분위기가 두루 감지되었다." 그리고 "다른 나라들의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세르비아는 어떠하고, 몬테네그로는 어떠하고 그 다음에 이탈리아, 오스트리아의 맹방이자 경쟁국인 이탈리아에서는 어떠했는가, 이런 얘기들이 있다.
제8장 624 두 사람의 "친분"은 "독일인들에게 아주 만족스러울 뿐 아니라 누구나 아는 사실"이었다.
제8장 624 오스트리아인들처럼 독일인들도 암살의 충격을 수많은 개인적 인상으로 드러냈다. 일례로 역사가 프리드리히 마이네케는 한 신문사의 사옥에 붙은 표제를 읽었을 때 눈앞이 캄캄해진다고 느꼈다.
제8장 624 근래 부쿠레슈티와 빈의 정치적 불화에도 불구하고, 루마니아에서도 암살 소식에 깊이 애도하는 분위기가 두루 감지되었다.
제8장 624 다른 나라들의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제8장 625 오스트리아의 맹방이자 경쟁국인 이탈리아에서 대공과 그의 배우자의 죽음 여러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대공은 거의 마자르인만큼이나 오스트리아 내 이탈리아인에게 적대적이었다.
파리에서는 어떻고, 그런데 런던 주재 세르비아 공사가 런던의 분위기를 전한다. 당황한 어조로 영국 언론이 "오스트리아의 선전을 따르고 있고", 그런데 지금 페르디난트 대공의 암살 사건이 벌어진 직후 각 나라들을 보면 각 나라가 결국 제1차세계대전에서 같은 편이 되어서 또는 적대국이 되었던 나라들, 아직은 누가 한 편이 될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제1차세계대전은 삼국협상쪽과 삼국동맹측으로 대결을 하면서 싸웠다. 그러니까 삼국동맹이 한 편이고, 삼국협상이 한 편이 되어서 싸웠다. 그런데 삼국협상은 영국과 러시아와 프랑스이다. 그리고 삼국동맹은 도이칠란트, 오스트리아-형가리, 이탈리아다. 그런데 지금 현재 런던 주재 세르비아 공사에 따르면 영국 언론이 오스트리아의 선전을 따르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면 이때쯤만 해도 영국은 오스트리아와 한 편이 될 가능성이 있었다. 그것을 생각해야 한다. 즉 제1차세계대전에서 한 편이 되어서 싸운 나라들이 있는데, 이 전쟁에서 맞붙어 싸우던 나라들이 처음부터 동맹을 서로 가졌던 것은 아니다 라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특히 여기서 보면 사라예보 사건에 대한 러시아의 서사를 보면 그런 것들이 확연히 드러나게 된다는 말이다. 특히 재미있는 부분이 세르비아인데 세르비아와 러시아는 어쨌든 적대국이 되어서 싸운다. 그런데 지금 현재 런던 주재 세르비아 공사는 당황한 어조로 영국 언론이 "오스트리아의 선전을 따르고 있고", 암살의 책임을 세르비아에 묻고 있다고 보고했다. 그러면 이 시점에서는 세르비아놈들이 나쁜 놈들이네 라고 런던측은 생각하고 있었겠다. 그런데 제1차세계대전의 교전국을 보면, 지금은 러시아가 오스트리아를 편드는 것처럼 안보인다. 게다가 이탈리아는 "대공과 그의 배우자의 죽음 여러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대공은 거의 마자르인만큼이나 오스트리아 내 이탈리아인에게 적대적이었다." 그런데 나중에 협상국에 붙어서 영국, 프랑스와 한 편이 되어서 싸운 나라에 이탈리아가 들어간다. 그러니까 세르비아는 더군다나, 영국이 세르비아와 한 편이 되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지금 현재 시점에는 제1차세계대전의 교전국이 되는 편들이 정확하게 나눠지지는 않았다고 볼 수 있다. 게다가 이때만 해도 일본은 협상국쪽이다. 산둥반도에 있는 독일 조차지를 침범하고 그랬다. 그런데 제2차세계대전 때는 독일과 한 편이 된다. 이렇듯 627페이지를 보면 "이런 다양한 반응이 시사하듯이, 대공 살해를 대하는 태도가 국가들 간 관계의 지정학에 의해 굴절되었다." 루마니아는 "루마니아 여론은 친루마니아파로 알려진 대공에 호의적이었다." 그러니까 세르비아와 적대적일 수 있었다. "삼국협상과 제휴하는 쪽으로 노선을 변경한 주역인 카롤 국왕은 친세르비아 입장을 택했다." 루마니아 같은 경우는 현재로서는 나중의 편과 지금의 편이 같은 것이 된다.
제8장 626 런던 주재 세르비아 공사는 당황한 어조로 영국 언론이 "오스트리아의 선전을 따르고 있고", 암살의 책임을 세르비아에 묻고 있다고 보고했다.
제8장 627 이런 다양한 반응이 시사하듯이, 대공 살해를 대하는 태도가 국가들 간 관계의 지정학에 의해 굴절되었다.
제8장 627 루마니아 여론은 친루마니아파로 알려진 대공에 호의적이었다. 그러나 삼국협상과 제휴하는 쪽으로 노선을 변경한 주역인 카롤 국왕은 친세르비아 입장을 택했다.
여기서 지정학이라는 것에 의해서 굴절되었다는 것인데, 지정학은 지리에 따른 정치학이다. 그러나 지리적인 것이 꼭 영향을 미친다기 보다는 지정학이라는 말을 넓게 이해해서 '당대의 상황에 따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면 우리가 꼭 《몽유병자들》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고 아주 복합적인 요인에 의해서 어떤 사건이 벌어지고 그 사건에 대해서 대하는 태도가 복합적인 요인을 고려해야 할 필요가 있을 때, 즉 사건에 대한 국제정치학적 반응은 무엇에 의해서 형성되는가 할 때 첫번째로는 지정학적 요인이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예를 들어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와 전쟁 중에 있다. 그 전쟁에 대해서 반응들이 있다. 멀리 떨어진 우리나라 같은 경우는 그냥 러시아가 침공했으니까 우크라이나가 평화를 얻기를 바라는 입장이다. 그런데 막상 러시아와 우리나라는 그렇게 적대적인 나라가 아니다. 조사를 해보면 우리나라를 가장 좋아하는 외국인이 러시아 사람이다. 이럴 때는 한국정부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러시아를 규탄할 수도 없고 그런데 이 와중에 발등에 불이 떨어진 나라가 폴란드이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과 가장 긴밀한, 그래서 폴란드는 무기를 사야할 필요성이 아주 급박하게 생겨났다. 그래서 이번에 한국과 아주 많은 물량의 무기 도입계약을 맺었다. 그러면 우리는 이때는, 폴란드는 어쨌든 우크라이나를 지원하기 때문에 우크라이나와 편이 되어있는데, 러시아와 우리나라는 무시할 수 없다. 시베리아 개발문제도 있다. 그리고 이전 정권에서는 러시아를 비롯한 중앙아시아 여러 나라들의 관계를 개선하는데 공을 들여왔다. 그렇기 때문에 도덕적인 명분이나 이런 것만 가지고는 판단할 수 없는 것, 이런 복합적인 요인들이 있다. 흔히 요소들이 굉장히 많아서 우리가 쉽게 판단하기 어려울 때는 우리는 복합적인 요인이라는 말을 쓴다. 설명을 면피하려는 그런 용어로 쓴다. 또 지정학이라는 말도 그런 의미로 쓰인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첫번째가 위기를 불러일으키는 사건이 벌어졌을 때 그것에 대응하는 국제정치학적인 고려 도는 대책 이런 것을 세울 때 첫번째 고려하는 것이 지정학적인 요인이다. 그 다음 두번째를 보면 " 훨씬 더 불길한 조짐은 암살의 중요성을 축소하고 그리하여 암살이 잠재적 개전 이유가 되지 못한다고 정당화하는 추측이 점점 늘어났다." 전쟁을 회피하려는 것이다. 그래서 "우선 삼국협상 국가들과 그들의 소극적 파트너 이탈리아의 외교 채널에서 폭넓은 공감을 얻은 주장, 즉 사망한 대공이 오스트리아-헝가리 주전파의 수장이었다는 주장이 있었다." 이것을 보면 이탈리아가 결국 삼국협상쪽으로 가담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면 두번째는 그 사태에 대응하는 정당화 논리들이 개발되었다는 되었다는 것이다. 첫번째가 지정학이고, 두번째가 정당화 논리이다. 그런데 정당화 논리는 반드시 팩트에 기반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추측 또는 추정에 기반하고 있는 것, 그리고 국가의 행위를 정당화하는 데 이런 것이 필요하다. 대표적인 것이 프랑스인데 프랑스는 개인과 그 개인이 속한 주권국가를 분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실 프랑스는 세르비아에게 차관을 많이 제공하고 있었다. 이쯤에서 프랑스는 정당화 논리가 개발되는 시점에 왔을 때는 나중에 큰 위기로 번져나갔을 때 어떤 편이 될지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 그래서 "사라예보 만행을 비정상적인 개인의 소행으로, 즉 정치기관에, 특히 주권국가에 책임을 물을 수 없는 행위로 규정"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리고 "러시아 대사는 오스트리아가 "전쟁에 뛰어들" 정도로 어리석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래서 만들어낸 러시아의 대항 서사는 이것이다. "인기 없고 전쟁을 도발하던 엄격한 차기 군주가 오랜 치욕과 학대에 격분한 자국 시민들에 의해 제거되었다. 그리고 이제 그가 대표하던, 부패해 무너지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탐욕스러운 정권이 애석할 것 없는 그의 죽음의 책임을 떳떳하고 평화로운 슬라브족 이웃에게 덮어씌울 태세였다." 이것이 러시아가 만들어 낸 서사였다. 거짓으로 가득 차 있다. 인기 없었을지는 몰라도 전쟁을 도발하던 사람은 아니었던 것이다. 이런 것들을 보면 국제관계라고 하는 것이 과연 순진한 호의에 의해서 움직여간다고 하는 것은 뚜렷하게 거짓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을 뚜렷하게 현대인들에게 각인 시켜준 사건이 바로 제1차세계대전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제8장 627 훨씬 더 불길한 조짐은 암살의 중요성을 축소하고 그리하여 암살이 잠재적 개전 이유가 되지 못한다고 정당화하는 추측이 점점 늘어났다. 우선 삼국협상 국가들과 그들의 소극적 파트너 이탈리아의 외교 채널에서 폭넓은 공감을 얻은 주장, 즉 사망한 대공이 오스트리아-헝가리 주전파의 수장이었다는 주장이 있었다.
제8장 631 이는 이심전심을 표현하는 제스처처럼 보였지만, 실은 사라예보 만행을 비정상적인 개인의 소행으로, 즉 정치기관에, 특히 주권국가에 책임을 물을 수 없는 행위로 규정하려는 발언이었다.
제8장 633 러시아 대사는 오스트리아가 "전쟁에 뛰어들" 정도로 어리석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제8장 635 인기 없고 전쟁을 도발하던 엄격한 차기 군주가 오랜 치욕과 학대에 격분한 자국 시민들에 의해 제거되었다. 그리고 이제 그가 대표하던, 부패해 무너지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탐욕스러운 정권이 애석할 것 없는 그의 죽음의 책임을 떳떳하고 평화로운 슬라브족 이웃에게 덮어씌울 태세였다. 사라예보 사건에 이런 틀을 씌우는 것이 러시아의 행동 결정을 공식화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던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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