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유원의 책담화冊談話(https://booklistalk.podbean.com)에서 제공하는 「ε. Gilson, God & Philosophy」을 듣고 정리한다.
2024.03.25 ε. Gilson(3), God & Philosophy, foreword
에티엔 질송, ⟪철학자들의 신 - 역사적 개관⟫(God and Philosophy, 2002)
텍스트: https://buymeacoffee.com/booklistalk/god-philosophy-foreword
에티엔 질송의 《God and Philosophy》는 예일대학 출판부에서 1941년에 출간된 책인데 이 책은 본래 맬론 파월 강좌에서 했던 얘기이다. 네 번에 걸쳐서 강의를 했다. 네 번에 걸쳐서 강의를 하고 그것을 책으로 묶어냈다. 지난번에는 펠리칸의 Foreword를 읽고 있는데, scholarly genre라고 하는 걸 얘기했다. 펠리칸이 서문을, 우리가 이제 자신이 존경하던 사람이 쓴 책을 돌아가신 다음에 그 앞에다가 Foreword를 쓴다 하는 것은 굉장한 영광이지만 그런 영광을 제대로 표현한다 하는 것은 상당히 어렵다. Foreword를 쓴다고 하는 것이, 펠리칸도 지금 이쯤 되면 굉장한 대가로서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데 질송의 작업을 정확하게 규정을 해주는 게 굉장히 필요한 일이다. 질송의 작업을 정확하게 표현한다는 건 무엇인가. 지난번에 얘기한 것처럼 scholarly genre를 먼저 보여준다. scholarly genre라고 하는 것은 close reading과 explication de texte이다. 이것은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기본적으로 해야 하는 그런 것이다. 그건 주석을 다는 작업이다. 주석 작업을 하고 그다음에 그것을 바탕으로 해서 하나의 역사관 그러니까 철학의 역사, 신학의 역사에 관한 해석의 관점을 가지고 interpretation을 하는 것이다. interpretation은 단순한 translation과는 다르다. interpretation은 해석이라고 하는데 translation은 번역이라고 한다. 그렇게 해서 보나벤투라 그리고 둔스 스코투스 등의 작업에 관한 해석 작업을 한 다음에 거기서 중세 기독교 철학의 역사, 철학사라고 그러면 안 되고 기독교 철학사이다. 그런 다음에 in addition to all these scholarly genres, 여기서는 학자라고 하는 말을 막연히 쓰면 안 되고, scholarly genre는 중세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 질송이 중세 철학, 중세 신학에 대한 연구자이기 때문에 그것이 함축된 것이다.
But in addition to all these scholarly genres, he also paused several times in his literary career, often on the occasion of a named lectureship at some university in Europe, Canada, or the United States, for systematic reflections and summary formulations on major themes and problems.
in addition to all these scholarly genres에서 scholarly 대신에 academic이라는 말을 썼으면 충분히 그것을 드러내 보여주지 못할 것이다. 거기에 더해서, he also paused several times in his literary career, often on the occasion of a named lectureship, 저명한 강연을 하느라 literary career를 더러 멈추기도 했다. 여기서 lectureship라는 것이 이제 시작된다. 그 lecture라는 건 어떻게 했는가. "systematic reflections and summary formulations on major themes and problems"라고 되어 있다. "중요한 주제와 문제들에 관해 조직적으로 성찰했고 이를 요약된 형태로 제시했습니다"라고 번역되어 있다. 일단 major themes and problems라고 되어 있다. theme이라고 하는 것은 '어떤 주제가 중요해'라고 할 때 그때의 theme이다. 수학의 정석과 같은 책을 보면 유제類題 풀이라고 하는 게 있다. 비슷한 유형의 문제들을 말하는데 같은 범주에 속하는 문제들을 우리는 theme이라고 부른다. 철학사에서 다뤄야 될 문제들이라고 하면, 위대한 철학자들은 또는 탁월한 철학사가들은 자신만의 해석의 관점을 가지고 우리가 꼭 다뤄야 할 문제들을 새롭게 제시하기도 한다. 가령 중세에는 신존재 증명이 중요한 문제로서 우리가 다뤄왔다. 이를테면 철학과에서 중세 철학사와 고중세 철학사에서 배운다. 그러니까 lecture를 통해서 주요한 주제가 뭐다 라는 것, 신존재 증명을 인간의 이성으로 하지만 결국에는 마지막에는 은총에 기대야 한다 라는 얘기, 그러니까 그런 것들이 주제major theme이다. 학자 집단에서 중요하다고 간주되는 것들을 모아놓은 것이 theme이다.
거기서 왜 이게 중요할까 라고 의문을 품어서 이게 더 중요하지 않을까 라고 말하면 problema가 된다. 주어진 문제들problema, 자기가 문제제기를 해서 그것을 theme으로 만들어낼 수 있으면 석학이다. 사람들이 관심 갖지 않았던 것, 그동안 유제 풀이로 풀지 않았던 것, 그런 것들을 theme으로까지 상향 조정해서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이것이 유제풀이에 포함되어야 한다고 하는 것, 즉 교과서를 바꾸는 것이다. 그게 바로 이제 problema이다. 그러니까 major themes and problems이라고 하는 것에 대해서 systematic reflections, 체계적으로 성찰하고 검토하고, theme을 reflection 해야 된다. '이게 정말 중요한 문제였을까, 이게 과연 유제풀이로써 풀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일까'를 생각해 보는 것, 그리고 그것을 그냥 혼자 판타스틱하게 생각하는 게 아니라 철학의 역사 속에서 체계적으로 문제의 연결고리들을 찾아서, 이 theme이 theme이 된 이유, 유제풀이집에 올라오게 된 이유 이런 것들을 연원을 찾아가면서 검토하는 것이 systematic reflection이다. 그런 다음 그것을 집약해서 학적인 형식으로 만들어내는 것이 formulations이다. [번역문의] "요약된 형태"가 아니라 정식이다. 요약된 정식으로 만들어내는 것이 바로 lecture이다. lecture라고 하는 것은 주석에 그치는 게 아니라 그런 주석들을 모아서 새로운 테마를 발굴해내고 그렇게 발굴해낸 테마들에서 의문question을 질문quaestio을 하는 것이다. 그렇게 질문을 한 다음에 그런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해서 체계적으로 성찰하고 그런 다음에 '아 이건 문제를 삼아야겠다. 이건 단순한 problema에서 그쳐서 되는 게 아니라 이것을 테마로까지 제기해야겠다'라고 결심을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determinatio이다. 중세의 lectio 과정이 일단 littera부터 시작해서 논리적으로 설명을 해서 sensus를 찾아내고 그다음에 sensus들을 바탕으로 해서 내용sententia을 해명한 다음에 그러면 이제 exēgēsis가 일단 완성이 된다. 거기까지는 scholarly genre이다. 그런 다음에 exēgēsis를 놓고서 물어보는 것quaestio이다. 주어진 문제problema가 있을 때 그 문제에 대해서 그러니까 테마theme와 problem이 있는데, 그 problema에 대해서 의문을 갖는 것이 question이다. 그 problem과 question은 다르다. question은 호기심을 가지고 물어보는 것을 말한다. 그다음에 determinatio는 결정인데, determinatio는 자신이 거기에 대해서 생각을 하는 것이다. 생각을 해서 주석도 달아보고 dissert한다. dissert는 논문을 쓴다는 말인데 dissertation이라고 하면 학위 논문이 된다. 그러니까 dissert를 한 다음에 결정을 내려서 이것은 더 이상 문제 삼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또는 이건 테마로서 자리에 올라가야 한다 그러면 이제 그걸 놓고 그 과정 전체를 밝혀보이면 논제라고 번역이 되는 disputatio이다. disputatio가 오늘날에는 강의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겠다. 스콜라가 학자는 determinatio magistrale를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마르틴 루터가 1517년에 썼던 《면벌의 권능과 효력에 관한 논제disputatio pro declaratione virtutis indulgentiarum》, 그냥 열받는다, 못 살겠다, 갈아보자 이런 글을 쓴 게 아니라 이런 과정을, 지금 현재 교황이 팔고 있는 면벌부라고 하는 건 무엇이고, 면벌이라고 하는 것은 성서에 근거하면 무엇이고, 이런 것을 쭉 설명을 한다. 논리적인 설명을 한 다음에 그런 것들을 바탕으로 해서 95개조 disputatio를 내놓는 것이다. 그러니까 disputatio가 단순한 manifesto가 아닌 것이다. 단순한 선언문manifesto이 아니라 논증의 최종 결과이다. 이 논증이라는 말이 apodeixis, 필연성을 드러내 보여주는 거 그런 게 아니라 중세 스콜라 철학의 논증이다. 그 과정의 최종 결과물이 바로 disputatio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루터의 disputatio를 읽을 때는 이게 어떤 프로세스를 통해서 어떤 과정을 통해서 등장했는가를 꼭 고려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었을 때 이것의 의의를 충분히 알 수 있다.
그러면 이런 lecture라고 하는 것은 그냥 '와서 강연 한 번 해주세요'가 아니다. 에티엔 질송이나 또는 윌리엄 제임스나 이런 사람들은 기포드 강연, 맬론 파월 강연 이런 것을 한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에게 lectureship을 요청한다는 것은 이 사람들은 일단 기본적으로 scholarly genre가 되어 있는 사람이고 scholarly genre에다가 systematic reflections and summary formulations on major themes and problems이 되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면 헤겔의 강의록이 남겨져 있다. 미학에 대해서도 하고 그런데 그 사람이 미학 강의, 역사철학 강의를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어디 있는가. 바로 그 사람이 교과서로 써놨던 엔치클로페디Enzyklopädie라고 일반적으로 불리는 《철학적 학문의 백과사전》를 보면 논리학, 자연철학, 정신철학 이렇게 3부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면 그 사람은 철학의 역사에서 또는 형이상학의 역사에서 중요하게 여겨지던 문제들, theme를 쭉 망라해 가지고 그걸 자기가 재구성한다. 검토를 한 다음에 그렇게 해서 summary formulation으로 만든 것이다. 그게 엔치클로페디Enzyklopädie인 것이다. 그게 있으니까 그 안에 역사 철학도 들어있고 예술 철학도 들어있고 법 철학도 들어있고 정신철학에서 그런 것들이 있고 그다음에 심리학, 현상학, 자연철학 이런 게 다 들어있다. 그리고 존재론으로서의 논리학도 들어있다. 그러면 그것들을 자기가 이미 자기가 이미 systematic reflections and summary formulations을 해놓은 것을 바탕으로 해서, 부분 확대해서 강의한 것이 바로 법철학 강의, 역사철학 강의, 철학사 강의, 예술철학 강의 이런 것들로 나오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 사람은 그 이전에 scholarly genre에 몰두했던 것이다.
질송이 했던 강의 중에 하나가 《철학적 경험의 통일성The Unity of Philosophical Experience》이다. 여기서 핵심은 unity이다. 철학적 경험은 이렇게 저렇게 아주 다양한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그러한 경험들은 하나의 원리에 따라서 움직여 간다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특히나 하버드 대학의 윌리엄 제임스 렉처William James Lectures에서 했다. 윌리엄 제임스는 1902년에 기포드 강연Gifford Lectures에서 《종교적 경험의 다양성Variety of Religious Experience》이라고 하는 강연을 했다. 그러니까 30여 년 만에 이걸 또 했던 것이다. 그래서 윌리엄 제임스를 기념해서 하버드 대학에서 만든 게 윌리엄 제임스 렉처William James Lectures인데 윌리엄 제임스는 기포드 강연에서 20개의 주제를 가지고 Variety of Religious Experience라는 강연을 했다. 그러면 여기 철학적 경험의 통일성과 종교적 경험의 다양성 두 개가 서로 상응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철학적 경험, 종교적 경험, 다양성, 통일성. 윌리엄 제임스의 《종교적 경험의 다양성》은 펠리칸도 이야기하고 있듯이 엄청난 영향력을 미친 굉장한 책이다. 이건 꼭 읽어야 할 만한 책이다. 그러면 이렇게 두 가지가 묶여서 말하자면 "that style of doing philosophy"고 하는 것이 성립하게 된다.
It is to that style of doing philosophy that we also owe God and Philosophy, which came out of the Mahlon Powell Lectures on Philosophy that he delivered at Indiana University in 1939-40.
철학하기doing philosophy, 도이치어로는 philosophieren, 이 철학하기가 무엇인가. that라는 지시어가 있다. It is to that style of doing philosophy that we also owe God and Philosophy, [번역문은] "철학자들의 신도 이런 방식으로 철학한 것입니다"라고 했다. 우리 또한 God and Philosophy에 대해서 그러한 방식의 철학하기의 산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러한 방식은 무엇인가. 좁게는 체계적 성찰 그다음에 요약적 정식화가 된다. 그런데 체계적 성찰과 요약적 정식화라고 하는 것은 그 앞에 scholarly genre가 없다면 불가능한 것이니까, 넓게 보면 scholarly genre and lecture에 의해서 나온 것이다 라고 보면 되겠다. 그럼 여기서 God and Philosophy고 하는 맬론 파월 강연에서 나온 이 텍스트는 어떤 방식으로 만들어진 것인가. 일단 에티엔 질송은 scholarly genre에서 exēgēsis를 했다. 그런 주석을 바탕으로 해서 systematic reflections을 했다. 그리고 summary formulations을 했다고 보는 것이다. 《신과 철학》이라고 하는 이 텍스트는 그렇게 만들어진 강연의 산물이다. 그런데 이제 펠리칸은 이것을 아주 구체적으로 얘기한다. 우선 형식적인 측면을 보면 《God and Philosophy》의 목차가 God and Greek Philosophy, God and Christian Philosophy, God and Modern Philosophy, God and Contemporary Thought 이렇게 되어있다. contemporary는 philosophy라고 안 하고 thought 라고 했다. contemporary에 대해서는 자신이 살고 있는 당대에 대해서는 철학적인 통찰이 아직 좀 곤란하고 그냥 사상 일반이다 라고 말하고 있는 지점이다. 그러면 신과 헬라스 철학, 신과 기독교 철학, 신과 근대 철학, 신과 현대 사상 이렇게 돼 있다. 여기 philosophy와 thought의 차이점에 대해서는 여기서 길게 말할 수는 없고 그냥 좀 더 넓은 범위라고 보면 되겠다.
In a series of four chapters organized chronologically, he leads us through the development of the philosophical doctrines of God, always with the caveat that for Christian revelation and Christian faith the question of the existence of God is decided not chiefly by the functioning of reason but by the divine initiative and illumination, because "taken in itself, Christianity was not a philosophy."
Christian Philosophy는 중세를 가리킬 것이고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3분법이 이때는 시대 구분에 사용되었다. "연대기적으로 구성된"이라고 했다. In a series of four chapters organized chronologically,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연대기적으로 구성되었다는 말이다. 4개의 챕터가 있고 개념과 사상을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는 시대 순으로 고찰했다. 우선 이것은 형식이다. 누구나 할 수 있다. 고대 철학은 이런 것이고 현대 철학은 이런 것이고 근대 철학은 이런 것이고 뭐 이런 식으로, 시대 순으로 일단 뽑아올렸다. 형식적으로 뽑아올렸는데 주로 무엇을 다루는가. 누구나 다 이 분야에 들어온 사람들은 '이거 다 공부해야 됩니다'라고 되는 게 테마theme이다. 유제풀이로 가장 중요한 것이 신이다. the development of the philosophical doctrines of God, 신 개념에 관한 철학적 교서를 전개를 살펴본다는 것이다. 이게 형식과 내용이다. 새로울 건 없다. 철학과 학부 학생들도 시험 문제에 나오는 것이다. 신개념이라고 하는 것, 제일 만만한 게 신개념이다. 고대부터 근대 현대에 이르기까지 신 개념이 가장 만만하다. 워낙 유제풀이가 많이 일어난 개념이라서 독창적인 뭔가를 하기 어렵다. 유제 풀이가 많은 문제는 다루기가 쉽지만 쉬운 만큼 뭔가 대가로서 잘해보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질송이 맬론 파월 강연에서 《God and Philosophy》라는 제목을 붙었을 때 아무리 질송이지만 '저것은 유제풀이가 많은 문제잖아 그러니까 잘할 수 있을까'라는 의심을 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또 한편으로는 저렇게 아주 널리 알려진 이 테마에 대해서 '질송이 이것을 하면 뭔가 나오겠지'라고 하는 그런 기대감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미셸 푸코가 대단하다. 미셸 푸코는 일단 역사학과는 구별되는 계보학의 방법론이라고 하는 것을 가지고 그동안 문제가 되지 않았던, 현대 사상사가들의 업적이라는 것에서 보면 푸코가 굉장한 사람이다. 그동안 문제가 되지 않았던 걸 문제로 만들어버렸다. 교과서를 다시 써야 되는 것이다. 자기에 대한 배려 이런 거 것, 예전에도 있었던 문제인데, 사실은 그 문제가 이런 연원을 가지고 있는 문제다 라고 해버렸기 때문이다. 장 이폴리트의 후임으로 콜레주 드 프랑스의 사상사 담당 교수였다. 미셸 푸코는 강의는 열심히 했는데 푸코의 강의록을 읽어보면 exēgēsis가 엄청나다. 푸코가 플라톤의 《정치가》를 읽은 것을 보면 권력의 문제를 집어내는 부분도, 제가 가끔 쓰는 말인데, 텍스트의 단면을 자른다는 것, 어느 부분에다가 분석의 어떤 칼을 집어넣어서 잘라낼 것인가, 그 단면을 잘라내는 능력이 아주 탁월하다. 비교 자체가 안 되는 어마어마한 사상가 연구자이고 학자이기 때문에, 그것을 최소한 질송 정도의 수준으로 이렇게 만들어내지 못한 게 조금 안타깝기는 하다. 그렇지만 푸코의 강의록을 읽어보면 여기 새로운 theme을 발굴해내는 능력이 엄청나다.
always with the caveat that for Christian revelation and Christian faith the question of the existence of God is decided not chiefly by the functioning of reason but by the divine initiative and illumination, because "taken in itself, Christianity was not a philosophy."
신개념에 관한 철학적 요소를 전개한다는 것은 굉장히 도전적인 것이다. 새로운 개념이라서 도전이 되는 게 아니라 지나치게 많이 다루어졌기 때문에 그렇게 지나치게 많이 다루어진 것을 어떻게 거기서부터 새로운 무언가를 얻을 것인가가 어려운 문제이다. 그런데 거기에 대해서 질송은 최소한 이러한 절차를 따라야만 한다 라고 하는 일종의 이용 약관들을 걸어둔다. 그게 이제 caveat라고 하는 것이다. 요러요러한 거 주의해야 된다 라는 것, 그러니까 고찰 시 주의할 점들을 하나 주는데 이것은 굉장히 소극적인 것이다. 적극적으로 이런 방식으로 하라는 얘기가 아니라 이것은 최소한 유념을 해야 될 것이다 라고 하는 건데 기독교의 계시와 신앙에 있어서는, 즉 철학과 구분되는 기독교라는 종교의 문제를 고찰할 때에는 그런 얘기이다. always with the caveat that, 이런 경고 사항과 함께 얘기를 하는데, 기독교 계시와 신앙에 대해서 고찰을 할 때는 항상 신존재 문제가 제기가 되는데, 번역본은 "신의 실존에 관한 물음"이라고 되어 있는데 existence는 실존이라고 하지 않고 the existence of God는 "신존재 문제"라고 한다. "신존재 문제는 인간의 이성의 작용이 아닌 신적인 주도권과", divine initiative and illumination, 신 존재라고 하는 것은 신에 의해서 문제가 설정된다. illumination는 신의 은총이 비춰 내리는 것, 조명할 때의 照, 그러니까 인간의 이성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그것에 바탕을 둔 어떤 방법론으로서 신존재 문제를 논의해서는 안 되고, 신적인 주도권, 신이 주도하는 것 그리고 신의 은총, illuminatio, 流出에서 규정된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아주 당연하게도 기독교는 "taken in itself, Christianity was not a philosophy", 그 자체로 기독교는 철학이 아니다. 이건 너무나도 당연한 얘기인데 사람들이 잊고 있다. 그러니까 caveat의 핵심은 "taken in itself, Christianity was not a philosophy"이다. 기독교를 자꾸 철학으로만 보면 안 된다. 저는 철학 연구자이니까 기독교를 철학으로 보고도 한다. 가톨릭 교도로서는 기독교를 철학으로 보지 않고, 신앙의 대상으로 본다. 다시 말해서 신존재 문제에 접근하는 철학과 그리스도교 신학의 차이점이 거기에 있는 것이다. 철학은 언제나 인간의 이성으로써 신비한 것을 향한다면 기독교 신학은 신의 계시에 의해서 드러난다는 것에 차이가 있다. 그래서 철학은 플라톤 《국가》에 나오는 동굴의 비유처럼 밑에서 위로 올라가는 것이고 신학은 위에서 아래로 비추는 것이다. illumination이다.
그러면서 펠리칸은 베르너 예거의 글을 여기다가 인용을 걸어둔다. 베르너 예거의 《파이데이아》에서 철학적 사유와 우주의 발견이라고 하는 섹션을 보면 이런 얘기가 있다. 이것을 질송이 인용을 한 건 아니지만 충분히 이것에 공감했을 것이라고 말하는데, 헬라스 정신이 최고의 종교적 발전에 이르른 것은, 헬라스 정신이라고 하는 것은 우주에 관한 체계적 이론을 구축하는 헬라스인들의 재능에 의해서, 철학에서 우주에 관한 체계적 이론을 축한다는 것은 밑에서부터 쌓아 올라간다는 것이다. 그것이 가장 잘 드러나는 것이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이다. 신에 관한 의례(cults)에 의해서가 아니라 우주에 관한 체계적 이론을 구축하는 재능을 가지고 있었고, 그런 것이 최고의 종교적 발전의 성취를 이루었다는 것이다. 베르너 예거의 글을 참조한 건 좋은데 사실 저는 베르나 예거를 그리 신뢰하지는 않는다. 예거의 《파이데이아》나 이런 거 읽어보면 어떻게 해서든지 도이치 신헬레니즘, 신인문주의라고 얘기도 하는, 도이치 신헬레니즘과의 연결고리 그다음에 괴테의 고전주의 이런 것들의 연원이 헬라스에 있다 라는 것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약간은 아전인수들이 많이 있다. 예전에 읽을 때는 엄청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정치 사상가로서의 투퀴디데스 부분은 열심히 읽을 만하고 나머지는 조금 선전문 같은 느낌이 들어버린다. 그래서 요즘에는 예거를 추천하지 않고 당연히 참조도 잘 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말은 딱 들어맞는다. 헬라스에서 종교에 대해서 논의한다는 것은 의례cults의 측면에서 얘기하는 게 아니라 체계적 이론을 구축함으로써 신을 이야기한다는 것이 철학의 정신이다. 서양 철학의 정신은 바로 체계적 이론을 구축한다. 우주에 관한 체계적 이론을 구축하면 그것이 철학이고 우주에 관해서 어떤 믿음을 가지고 신적인 신의 주도권을 인정하면 그것이 신학이다. 철학과 신학의 차이점은 바로 그런 데 있다. 이렇게 얘기를 하고 나서 독자들은 《철학자들의 신》 네 장을 꼼꼼히 읽어갈 때 첫 장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좋다고 말한다.
《God & Philosophy》라고 하는 건 어떤 형식과 어떤 내용으로 작업을 했고 그렇게 작업한 것이 이러 이러한 것이고 그다음에 caveat가 이런 것이니까 그런 것들의 핵심이 바로 이제 신과 헬라스 철학에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독서 방법론을 안내하는 것이 그다음부터이다. Therefore the reader will do well in reviewing these chapters of God and Philosophy to read the first 이 부분부터 다음에 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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