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담화冊談話 | 그리고 로마는 그들을 보았다(4) [5]
- 강의노트/책담화冊談話 2021-24
- 2024. 5. 8.
강유원의 책담화冊談話(https://booklistalk.podbean.com)에서 제공하는 「그리고 로마는 그들을 보았다」를 듣고 정리한다.
2024.05.07 📖 그리고 로마는 그들을 보았다(4) [5]
《그리고 로마는 그들을 보았다》 네 번째 시간[5번째 시간]이다. 트라야누스 황제 시대이니까 로마 제정 시대인데, 기독교에 대해서 우리가 뭘 알고 싶다고 할 때 그냥 성경만 열심히 읽어보고 그러면 되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폴리니우스가 트라야누스 황제와 주고받은 편지들을 이렇게 살펴보면서 어떻게 어떤 일들이 벌어졌는가 그리고 그런 것들을 역사적인 증거 위에서 다층적으로 복합적으로 종합적으로 이해하려는 것들이 필요하겠다.
제1장 플리니우스 - 통치자, 명백하게 황제가 아니라 해도 아주 명백한 통치자이다. 황제 대리인이니까 그렇다. 황제 대리인으로서 비튀니아 · 폰토스 속주, 황제 속주에 가서 통치를 했고 거기에서 기독교도들을 처결을 했던, 척결이 아니라 처결, 처결을 했던 사람이니까 이제 명백하게 통치자에 해당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플리니우스는 같은 이름을 가지고 있는 플리니우스가 있다. 지금 다루는 플리니우스는 「박물지」를 쓴 플리니우스의 조카이다. 누나의 아들을 양자로 삼았다. 그래서 「박물지」를 쓴 플리니우스를 大플리니우스라고 부르고 그다음에 이 플리니우스를 小플리니우스라고 부른다. 플리니우스는 관직 엘리트로서의 삶을 살았던 사람이니다. 플리니우스의 배경을 아는 게 왜 중요한가. 이때만 해도 로마의 관직 엘리트가 기독교도는 없었다. 그리고 그 당시에 기독교도의 상황을 보면 집단의 다수가 하층민이다. 따라서 피터 브라운이 살펴보고 있는 것처럼 어떻게 해서 이 지역에 있는 사람들이나 더 나아가서 로마에 있는 사람들까지도 기독교도가 된다고 하는 것이 하나의 상류층의 문화까지 될 수 있었겠는가, 콘스탄티누스 1세쯤 되면 황제의 어머니가 기독교도였다. 어떻게 그렇게 될 수 있겠는가, 그 과정을 살펴가는 것도 되게 재미있는 일이다. 적어도 100년쯤에는 그러니까 파울로스의 편지들이 쓰여지고 그 얼마 되지 않은 그 시기에는 기독교도라고 하는 것이 엘리트의 종교는 아니었던 것이다. 플리니우스는 로마 바깥에서 살아본 적이 없고, 로마의 상류 특권층 세계가 그의 세계 전부였다 이런 사람들이 로마에는 많다. 그러면 이제 썩어빠진 인간이다 이렇게 생각하기 쉬운데, 이 사람들은 로마에 전승된 정치적 · 도덕적 전통을 아주 엄격하게 지켰고 또 무엇보다도 라틴 수사학, 웅변가, 변호사 그리고 중요하게 여겼던 것은 다른 로마인들과 마찬가지로 정치적인 것이고 오로지 공적인 일에만 몰두하는 것 그리고 그런 것들을 자랑하고 그랬다. 수도 로마의 행정과 재정 문제, 게다가 플리니우스가 살던 이 시대가 바로 흔히 오현제 시대라고 불리는 때이다. 에드워드 기번이 《로마제국 쇠망사》 서문에서, 이 책에서도 인용하고 있는데, 아주 빛나는 황금시대였다. 이때 트라야누스 황제에게 소아시아의 황제 속주 비튀니아·폰토스의 총독으로 임명되었다. 밑에다가 지도를 첨부해 놨는데, Sinōpe, Amastris, 그리고 Amisos 이렇게 세 지역을 연결해서 지도에 표시해놓았는데, 바로 Sinōpe라고 하는 데가 아리아노스가 하드리아누스 황제에게 편지를 보낸 곳이다.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회상록》에서 아리아두스의 편지를 인용을 해놨다. 이 지역이 굉장히 비옥한 지역이다. 어쨌든 비튀니아 · 폰토스의 총독으로 임명되었다라고 하는 것은, 여기가 황제의 속주니까, 로마 상업의 중요한 상업 중심지이고, 서쪽에 해당하는 비튀니아 지역은 인구가 많고 헬레니즘 문화에 영향을 많이 받은 곳임에 반해 동쪽 폰토스는 도시의 수가 적고 토착 문화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흑해 연안은 굉장히 로마 세계에서 중요한 상업 중심지이다. 지중해만이 전부가 아니라 해도 굉장히 중요한 곳이었다.
이 지역에 가면서 플리니우스는 현지의 신들을 존중하겠다. 그다음에 속주민들이 간직해온 역사에 경의를 표하겠다. 그리고 속주민들의 자존심과 자부심에 손상을 입히는 일을 하거나 군림하려고 하지 않겠다 이런 다짐을 하고 친구에게 그런 내용을 편지로 보낸다. 플리니우스는 거기에 가서 그리스도교도들 몇 명을 처형을 했다. 그러면 이렇게 마음먹고 간 사람이 그들을 사형했다고 하면 속된 말로 그리스도교도들이 사고를 친 것이다. 총독의 뜻을 거슬렸다는 말이다. 무엇을 잘못했나, 굉장히 심각한 문제가 있었겠구나 이런 생각을 해볼 수가 있는 것이다. 속주의 상황과 현안을 보면 앞서 말한 것처럼 비튀니아는 그러하고 폰토스는 그러한데, 그렇다 할지라도 비튀니아 · 폰토스 속주는 어쨌든 흑해 연안의 어업 덕분에 로마 세계에서 중요한 상업 중심지다. 몇 가지 플리니우스가 처리를 하려고 했던 일들이 있는데, 이를테면 가장 직접적으로는 몇몇 도시들이 파산 직전에 있어서 도시 재정 처리 과정에서의 문제점을 파악해야 된다는 것들이 있었고, 그다음에 자치 행정이 얼마나 잘 작동하고 있는가, 더군다나 그 지역의 몇몇 도시들은 자치시라서 오늘날의 그런 것과 비슷하게 로마는 외교권만 가지고 있고 시 행정에는 관여할 수 없는, 총독이라 해도 관여할 수 없는 그런 점이 있었다. 그다음에 형사 업무들을 처리하고 군사적 상황을 시찰하고, 총독이 할 수 있는 일들은 다 이런 것들이다.
여기서 지금 우리가 눈여겨봐야 하는 지점은 정치적 움직임, 혹은 잠정적으로 정치적으로 변할 수 있는 움직임, 즉 지난번에 얘기했던 것 같은 그런 파당들이 있는가를 봐야 된다는 것이다. 그런 당파들이 처음에는 직업 단체로 만들어졌다가 통제 불능 상태에 빠지지 않게 잘 처리를 해야 되는 것이고, 그게 서로 모여서 장례 치를 때 어려운 일 있을 때 서로 돕기도 하고, 오락과 휴식을 즐기다가 동시에 지역의 선거운동에 개입을 하기도 하고, 그렇기 때문에 트라야누스는 이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도록 총독 플리니우스에게 다짐을 뒀던 것이고, 그런 황제의 관심사를 총독이 몰랐을 리가 없다. 그리고 여기서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Sinop라고 하는 곳, 예전 이름은 Sinōpe, "Amastris(Amasra) — Sinōpe(Sinop) — Amisos(Samsun)"는 그 당시 이름이고, 괄호 안에 있는 것은 오늘날 지역이다. 초기 기독교에서 이단자라고 분류된 마르키온의 고향이 바로 Sinōpe이다. 그리고 흑해에서 오른쪽으로 그러니까 Samsun에서 오른쪽으로 따라서 올라가면 니코메디아라고 하는 곳이 있다. 니코메디아도 초기 기독교에서 굉장히 중요한 지역이고. 그 니코메디아에서 내륙 쪽으로 좀 가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니케아 종교회의, Nicaea라고 불리던 지역이다. 그러니까 이 흑해 연안이 초기 기독교에 있어서 중요한 사태들이 벌어진 도시들이 있다. 우리가 기독교 그러면 맨날 예루살렘만 생각하고 그다음에 로마만 생각하는데 그러면 안 되고 에페소스가 있고 그다음에 에페소스 북쪽으로 이렇게 퍼져 있는 도시들을, 초기 기독교에 대해서 생각을 할 때는 항상 이 도시들을 생각해야 된다. 로마보다도 오히려 이런 곳에서 중요한 사건들이 많이 벌어졌으니까 그렇다.
플리니우스의 서한은 112년 가을, 폰토스 북부 어느 해안 도시 중 하나를 배경으로 한다. 그러니까 Amastris, Sinōpe, Samsun 세 지역을 잇는 그 중에 어딘가를 배경으로 한다고 보면 되겠다. 비상심리절차를 거쳐서 플리니우스가 몇몇 기독교도들을 사형에 처한 것은 서한에서도 밝혀져 있다. 일단 그 당시 그리스도인들의 상황을 보면 남녀노소가 다 있고, 온 가족이 기독교도인 경우가 있고, 그 구성원들이 다양한 계층에서 이제 온 사람들인데 그래도 다수는 하층민, 해방 노예라든가 천시받는 직종에 종사하던 육체 노동자들 그리고 장인들이 집단의 핵심이다. 유심히 보아야 되는 지점은 이때쯤 되면 유대인들은 없었고 또 유대교와의 관련성도 찾아볼 수 없었고 그러니까 이때쯤에 오면 확실하게 유대교와의 관계는 끊어진 것이다. 그러니까 바울이 할례 문제를 가지고 예루살렘을 방문하고 갈라디아서에서 그런 얘기하는 것들은 그때는 굉장히 첨예한 문제인데 이미 이때쯤 되면 100년이 넘어가면서부터는 그런 관련성은 찾아볼 수가 없게 되었고, 로마의 통치자들에게도 독립된 종파로 간주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제 이들을 소집을 했는데, 자신이 그리스도인이라고 밝힌 몇몇은 사형에 처하고 정무관을 업신여기며 복종하지 않는 태도, 완고한contumacia 태도가 그 죄목이 된다. 이들은 비상심리절차를 거쳐서 사형에 처하게 된다. 비상심리절차라고 하는 것은 보통의 경우에는 배심원들을 이렇게 놓고 하는 상설배심재판이라고 하는 절차를 거치는데, 이 상설배심재판이 아니라 비상심리절차cognitio extra ordinem, 《예수의 마지막 날들》에 보면 특별심리절차라고 번역이 되어 있다, 예수도 행정장관이 처리할 수 있는 이 절차로 폰티우스 필라투스에게, 예수는 로마 시민권자가 아니기 때문에 비상심리절차/특별심리절차를 거쳐서 사형 선고를 받았다. 기독교인 중에서도 로마시민권자들은 속주 총독의 직권으로 유죄 판결을 해서 처형할 권한이 없었으니까 로마로 이송되었다. 그런데 플리니우스의 편지를 이렇게 보면 도시의 그리스도인들이 그렇게 호의를 얻는 집단이 아니었다는 것이 암시되고 있다. 지난번에 얘기한 것들에서 나온 것처럼 도시의 공공 행사에 참여하지 않고 그러니까 아무래도 그들로부터 스스로가 소외되어 있는 격리하는 그런 태도를 보였기 때문이었겠다.
그래서 플리미우스가 사용한 시험 중에 하나가, 그 당시 로마 시민종교는 유향과 포도주를 바치는 관행이 있었는데, 그것을 통해서 해보라고 시키는 것이다. 이제 십자가에 침을 뱉어보라든가 그런 식으로 나중에도 있었다. 그런 것들을 통해서 종교적인 충성과 연결시켜 본다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제 플리니우스는 이들을 미신이라고 봤던 것이다. 이런 걸 보면 플리니우스가 잘했다 못했다 이런 걸 떠나서 지금 A.D 100년 시기 무렵에 예루살렘으로부터 떨어져 있는 흑해 연안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어떤 상황에 있었는가 그리고 이때만 해도 로마에게는 그렇게 아주 심각한 위협이 되거나 그러지는 않았다는 점들을 알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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