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담화冊談話 | 시학 강독 4-2
- 강의노트/책담화冊談話 2021-24
- 2024. 5. 10.
📚 강유원의 책담화冊談話(https://booklistalk.podbean.com)에서 제공하는 「시학 강독」을 듣고 정리한다.
2024.05.08 🎤 시학 강독 4-2
드라마의 여섯 가지 구성 요소(2)
• 2024. 5. 8. 오후 7시-9시 장소:수원시글로벌평생학습관
• 강의 안내: https://learning.suwon.go.kr/lmth/01_lecture01_view.asp?idx=3672
• 강의 자료: https://buymeacoffee.com/booklistalk/20240508-suwon
강의 자료 보자. "아름다운 것은 일정한 질서에 따라 배치되고 아름다움은 일정한 크기와 배치의 질서에 있다." 아름다움이라고 하는 것은 결국 앞서 얘기했듯이 인간이라고 하는 존재는 완결되어 있지 않은 존재이니까 완결된 것, 즉 전체holon라고 하는 것을 만들고 싶어 하고, 그 holon은 결국 배치 질서에 있다. 이것을 극한으로 하면 수학적인 어떤 아름다움을 생각하겠다. 여기에서 아름다움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의 관념을 통해서 잘 짜놓은 질서에 있는 것이고 그렇게 해서 holon이 가능하다 라고 여기면 그것이 고전주의이다. 고전주의라고 하는 것은 옛날에 만들어진 게 고전이 아니라 holon이 가능하다는 생각을 가진 것이 고전주의이다. 그러니까 아주 거칠게 분류를 하면 고전주의 아닌 건 다 낭만주의이다.
극이라고 하는 것은 구성이 단일해야 된다. 구성을 하는 데 있어서 몇몇 부분들을 함께 묵는 인과적 연관, 일련의 사건 전체가 갈등을 겪는 도덕적 힘들과 더불어 하나의 목적을 향해 있다고 하는 것, 이것은 이제 단일하다는 것이다. 드라마는 구성의 단일성, 장소의 단일성, 시간의 단일성 이렇게 해서 흔히 3일치라고 하는 것을 해야 된다 라고 말하는데, 아리스토텔레스가 그걸 얘기한 건 아니라 후대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것이고, 구성의 단일성 정도만 생각하면 된다.
그다음에 발견과 반전을 통해서 변화를 만들어내야 되는데 너무 황당한 사건이 발견되거나 너무 황당하게 반전되면 안 될 것이다. 이 말을 positive하게 표현하면 필연적으로 또는 개연성이 높은 사건들을 엮어야 된다는 말이다. 한국 드라마에서 갑자기 트럭이 나타났다는 사람을 친다든가 암을 선고받는다든가 하는 지나치게 우연에 의존하는 것이다. 개연적인 것과 보편적인 것, 일어날 것 같은 일, 즉 가능한 일을 개연성 또는 필연성에 따라 행위자의 내적 성격에서 발행하는 것을 창작해야 한다. "개연성 또는 필연성에 따라", 그다음에 "행위자의 내적 성격에서 발현하는 것", 저 인간의 평소 하는 짓을 보니까 저게 나올 만 해 라는 생각이 들어야 된다는 것이다. 행위자의 내적 성격은 우리가 앞서서 얘기했던 것처럼 고전 드라마는 행위가 성격을 반영하는 것이니까 그렇다. 그러니까 주인공을 어떻게 설정해야 되는지가 굉장히 중요하다. 어떻게 하면 개연성 또는 필연성에 따라 사태가 벌어지게 할 것인가를 잘 생각을 해보면 간단한 방법이 있다. 이렇게 하면 관객이 즐거워할 것인가를 생각하면 된다. 관객의 즐거움을 기준으로 삼으면 관객이 받아들일 만한 것을 창작할 것이고 그러면 일반적인 통상적인 보편성을 획득할 수 있겠다. 이게 어렵기는 하다.
단순한 구성과 복잡한 구성이 있다. 강의자료에 굵은 글씨로 되어 있는 부분을 보면 아까 얘기한 것들이다. "반전(peripeteia)과 발견(anagnōrisis)에 의해 또는 양자가 다 어우러져 변화(metabasis)가 이루어지는 것"은 복잡한 구성이다. 그다음 비극은 "완결된 행위의 모방일 뿐만 아니라 공포와 연민을 불러일으키는 것들의 모방이다. 이것들은 우리의 예상을 뛰어넘어 서로로 인해 발생할 때 더 많이 발생한다. ─ 정화(katharsis)" 비극은 일단 반전과 발견에 의해서 양자가 어우러져 metabasis가 일어나는 것, 이것은 구성의 측면이고, 변화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안 된다. 그다음에 정화katharsis, 지리는 게 일어나야 된다. 비극은 이 두 가지만 있으면 되는 것이다. 제가 강의를 하는 목적이 여러분들이 강의를 듣고 '내가 그동안 이걸 몰랐네'라는 반전peripeteia, '이것을 알았네'라는 게 반전anagnōrisis, 그래서 '이런 분야의 책을 더 읽어봐야겠네'라는, 강의의 목적이 똑같다. 변화를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변화가 이루어지는 것은 굉장히 어렵다. 인간이라고 하는 존재는 생물학적인 필연성에 얽매이기 때문에 웬만하면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
그다음에 구성 일반론, 여기서부터는 외워야 된다. 그냥 다 외우라는 것이 아니라 여기 있는 내용을 잘 숙지를 해서 여러분들이 어떤 드라마를 보거나 소설을 읽거나 할 때 이걸 가지고 이게 잘된 드라마인지 아닌지는 이것을 가지고 판별할 수 있다. "이야기는 변화에 관한 것, 변화는 인간의 성격을 반영한 행위에 의해 일어난다." 다시 말해서 행위가 바뀌지 않으면 변화하지 않은 것이다. 드라마 작가는 주인공들의 행동을 바꿔줘야 되는데, 행동을 바꾸는 게 굉장히 어렵다. 또 우리의 삶에서도 '내가 인생을 좀 바꾸고 싶다'고 하면 행동을 바꿔야 된다. 마음을 바꾸는 것은 고전 드라마의 규칙에 따르면 마음을 굳게 먹어도 아무 소용이 없다. 행동을 바꿔야 마음이 바뀐다.
그다음에 "관객은 안정되고 통제된 상태에 있다." 드라마를 보는 관객들, 인간은 보수적인 성향이 있어서 느닷없이 뭔가 바뀌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보통의 인간은 스스로를 괜찮은 사람이며, 그런대로 잘 해내고 있다고 여긴다. 약간의 도덕적 우월감(강력하고 보편적인 적극적인 착각의 한 형태)도 가진다. 대개의 경우 이러한 자아상이 무너지면 폭력과 잔혹이 나타난다. 붕괴의 원인은 탐욕(야망), 가학증, 지나치게 높은 자존감과 도덕적 이상주의(역설적이게도 이 둘은 악행惡行의 원인이기도 하다)" 우리가 대부분의 경우에 내가 그런 대로 잘하고 있다고 여겼는데, 내가 그동안 뭘 한 거야라고 여겼을 때, 그때 사람의 자아상이 무너지는 것이고, 그 자아상이 무너지면 폭력과 잔혹이 나타나게 된다. 그리고 그때 '내가 그동안 나에 대해서 지나치게 과잉 확신하고 있어서, 착각하고 있었어'라고 생각하고 자기를 반성하는 사람은 열 명 중에 한두 명 밖에 안된다. 대부분의 사람은 짜증을 내고 화를 낸다. old and wise 규칙이 있다. 나이가 들면 현명해진다는 말이다. The Alan Parsons Project의 노래도 있다. 그 노래의 가사가 '늙었는데도 왜 현명해지지 않았지, 괴로워 죽겠네'라는 것이다. 나이가 들면 현명해진다는 것, 나이가 웬만큼 될 때까지는 현명해지나 임계선을 넘어가면 unwise가 아니라 dull이 된다. 둔탁해지고 무감해지는 것이다. 어느 정도 나이가 들면 unsympathetic, 동감 능력도 떨어진다. 나이를 많이 먹으면 먹을수록 현명해지는 게 아니라 특정한 나이가 넘어가면 그때부터는 계속 경화된다. 우리가 생물학적으로는 기대수명이 늘어났을지는 몰라도 현명함의 수준은 예전하고 똑같은 것이다. 그게 조심해야 되는 지점이다. 그래서 여기서 붕괴의 원인은 탐욕과 가학증, 야망이 있는 사람이 자기의 자아상을 유지를 못하면 거기서 무너진다.
주인공을 설정을 할 때 이런 사람을 설정해야 된다. 이렇게 잘 만들어진 주인공이 맥베스, 오셀로 같은 주인공이다. 오셀로가 처음 등장할 때 자신이 어느 정도의 무공을 세웠는지를 말하는데, 그게 오셀로의 자아상이다. 약간의 도덕적 우월감과 탐욕도 있다. 그러니까 베네치아 귀족의 딸 데스데모나와 결혼을 해서 야망이 불타올랐다. 그러다가 살짝 건드리니까 wise 하지 못하게 가학증을 보인 것이다. "지나치게 높은 자존감과 도덕적 이상주의"는 악행의 원인이기도 하다. 지나치게 높은 자존감과 도덕적 이상주의는 종교인들에게서 많이 발견이 된다. 종교 전쟁의 원인이 된다. 그런데 이런 것들이 붕괴될 위험에 닥쳤을 때 그것을 극복하고 극복을 해내는 사람이 영웅인 것이다.
"자기 정체성의 변화는 자기 서사의 철저하고 급진적인 재구성이기도 하다." 인생을 살면서 자기 정체성의 변화는 심각하게 급전직하로 일어나는 일은 드물다. 자기 정체성이라고 하는 것은 사회생활하면서 대부분 구축이 되는데, 그게 무너졌을 때 재구성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기 서사의 철저하고 급진적인 재구성"이 필요한 순간 굉장히 소외감을 느끼고 외롭고 힘들다. 정체성을 구성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공부를 하는 것이다. 어차피 직장생활도 먹고 살려고 하는 것이고 내가 직장생활을 아무리 열심히 한다고 해서 그 직장이 내 것이 아니다. 하루에 1시간이든 20분이든 날마다 공부를 하면, 공부하는 사람이라고 하는 정체성을 갖고 있으면 그 정체성은 100% 내가 하기에 달려 있다. 즉 자기가 통제할 수 있는 정체성이다. 자기가 통제할 수 있는 정체성을 갖고 있으면 어떠한 외부의 요인에 의해서 생겨나는 변화도 이겨낼 수가 있다. 자기 정체성은 평생 변함없이 가는 게 제일 좋다.
변화를 일으키는 이야기 구축. "변화는 결함을 인지하고 받아들여 파멸하는 것이 아니라(이는 말 그대로 사라지는 것이므로, 다른 단계로의 이행이 아니다), 현실의 구조 자체를 분해해서 새롭고 다른 양식으로 재구축하는 것, 이러한 이행을 겪어내는 것은 내면의 고통을 수반한다 — 영웅적 인간" 그러니까 변화는 결함을 인지하고 받아들여 파멸하는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사라지는 것이다. 다음 단계로의 이행이 아니다. 현실의 구조 자체를 분해해서 새롭고 다른 양식으로 재구축하는 것, 그러려면 내면의 고통이 수반된다. 이게 바로 영웅이다. 그러면 드라마에서 일단 주인공은 뭔가 변화 가능성이 높은 사람을 주인공으로 만들어야 되겠다. 변화 가능성이 높다는 것은 결함이 있어야 되는 것이다. 완전 무결한 사람이 주인공으로 나타나면 변화는 없고, 쉽게 공감도 불러일으키지 않는다. 변화의 가능성이 높은 것이 일단 하나 있어야 되는데, 주인공은 hamartia가 있어야 한다. hamartia는 결함이라고 번역이 되는데, 이 결함은 주인공이 알고 있지 못하는 것이다. 나는 알고 있지 못하는데 알고 보니 나에게 이런 결함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게 있는데 그 결함 때문에 무너지는 게 아니라 이를 악물고 견뎌낼 만한 인간이 말하자면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시작은 "변화가 함축되어 있어야 한다. 그런대로 잘 진행되던 일상에 예기치 않은 조짐이 일어나거나 무대 위의 주인공과 관객 사이에 정보 격차가 벌어져 있어야 한다." 대표적인 것이 아리스토텔레스가 분석하는 게 《오이디푸스》이다. 즉 오이디푸스가 나와서 자기가 스핑크스에 수수께끼 풀어서 오만한데, 관객들은 알고 있다. 저자가 라이오스 왕을 아버지인 줄 모르고 죽였고, 지금 저자와 같이 살고 있는 여자가 자기 어머니라는 걸 관객들은 알고 있다. 정보 격차가 있다. 그 정보 격차 때문에 관객들은 조마조마한 것이다. 그런데 이 주인공은 자기가 저지른 과거의 잘못은 잘못이 아니다. 사실 오이디푸스의 잘못은 격정적 성격이다. 길에서 만난 노인네가 자기를 뭐라고 하니까 그걸 못 이기고 노인네를 죽였는데 알고 보니까 라이오스인 것이다. 오이디푸스의 격정적 성격을 보여준다. 그다음에 테이레시아스가 와서 당신이 당신의 불행의 원인이라고 말했는데, 그걸 조금만 더 자세하게 얘기를 좀 해봐라고 할 틈 없이 테이레시아스를 야단쳐서 쫓아냈기 때문에 알 수 있는 기회를 놓쳐버린 것, 이것도 격정적 성격이다. 즉 격정적 성격이 그의 불행의 원인이 되는, 그것이 hamartia이다. 그러니까 고전 드라마를 읽을 때 주의를 해야 되는 것은 무엇을 hamartia로 볼 것인가, 이게 드라마 분석의 포인트이다. 드라마 분석의 포인트는 무엇을 hamartia로 볼 것인가에 있다.
그다음 중간에 "주인공에게 적대적인 상황 발생. 주인공의 결함을 극적으로 증폭시키는 적대자(antagonist 등장)", 아까 말한 antagonist가 등장한다. antagonist는 주인공의 결함을 극적으로 증폭시키는 사람이다. 그러면서 "질문이나 수수께끼가 제시되며, 주인공이 그 질문의 답 / 해결책이 예상되지만 주인공은 그것을 알지 못하는 사건에 노출 / 설명을 찾도록 유도 / 정보를 가진 누군가가 등장", 여기 네 개는 모두 오이디푸스에 해당하는 것이다. 설명을 찾도록 유도했는데 정보를 가진 누군가가 등장해서 알려주나 주인공은 끝내 모르고 있다가 결국에는 파멸에 이를 것 같지만 그래도 그것을 이기고 뭔가 새로운 삶을 찾아 떠나는 것, 이게 비극이다. 마지막에 주인공이 불행해져 완전히 파멸하는 게 비극이 아니다. 불행한 사태가 결말로 오는 게 비극이 아니다. 주인공이 파멸적인 종말에 이르렀는데 그것을 이겨내고 다른 모습으로 변화하는 것이 비극이다. 그래야 감동의 도가니가 쏟아진다. 드라마는 변화에 관한 것이라고 얘기했다. "이야기는 변화에 관한 것, 변화는 인간의 성격을 반영한 행위에 의해 일어난다." 즉 변화가 일어나야만 한다. 비극이 되었건 뭐가 되었건 드라마틱하다 라고 하는 건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 드라마틱하다 드라마다 하는 건 변화를 가져온 이야기이다.
오늘 여러분들이 배운 것 중에 제일 중요한 것은 드라마는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고 그 변화가 우리로 하여금 지리게 해야 된다는 것이다. sympathy와 katharsis를 불러일으키는 변화, 그게 잘 만들어진 드라마이다. 우리의 인생은 절대로 그런 변화가 있으면 안 된다. 드라마는 ideal한 것일 뿐이고, 가상적으로만 그럴 뿐이다. 그러니까 드라마를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건 metabasis가 어떻게 일어나고 있는가를 보는 것이고, metabasis를 만들어내는 방법은 주인공의 hamartia이다.
'강의노트 > 책담화冊談話 2021-24' 카테고리의 다른 글
책담화冊談話 | 그리고 로마는 그들을 보았다(7) [8] (0) | 2024.05.21 |
---|---|
책담화冊談話 | ε. Gilson(12), God & Philosophy, Ch. 2 (0) | 2024.05.20 |
책담화冊談話 | ε. Gilson(11), God & Philosophy, Ch. 1 (0) | 2024.05.16 |
책담화冊談話 | ε. Gilson(10), God & Philosophy, Ch. 1 (0) | 2024.05.13 |
책담화冊談話 | 시학 강독 4-1 (0) | 2024.05.10 |
책담화冊談話 | 그리고 로마는 그들을 보았다(6) [7] (0) | 2024.05.10 |
책담화冊談話 | 그리고 로마는 그들을 보았다(5) [6] (0) | 2024.05.09 |
책담화冊談話 | 그리고 로마는 그들을 보았다(4) [5] (0) | 2024.05.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