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자오광: 중국사상사 1

 

중국사상사 | 중국사상사 1 | 거자오광 중국사상사 | 중국사상사 1 | 거자오광 - 10점
거자오광 (지은이),오만종,심규호,이등연,양충렬 (옮긴이)일빛

 

한국의 독자들에게
추천의 글
들어가는 말

● 도론 : 사상사의 서술 방법
사상사의 서술 방법
속 사상사의 서술 방법
1절 일반 지식과 사상, 그리고 신앙세계의 역사
2절 지식사와 사상사
3절 '도' 또는 '궁극적인 의거'
4절 연속성 : 사로, 장절 및 그 밖의 문제
5절 그리지 않은 곳도 모두 그림이다
6절 역사 기억, 사상 자원과 새로운 해석
7절 사상사 연구에서 고고학과 문물
8절 '육경은 모두 역사이다'에서 '역사는 모두 문학이다'까지 :
사상사 연구 자원으로서의 포스트모던 역사학

● 제1편
서언 : 아득히 먼 고대
1절 상고시대 사상 세계의 재구성 : 전통문헌, 현대 이론, 그리고 고고학적 발굴
2절 복사에 나타난 은인의 관념 체계
3절 주나라 시대의 잔존 문헌과 청동기 명문에 보이는 사상의 발전
4절 사상사로서의 한자
5절 후세 사상사의 배경 : 의식, 상징과 숫자화한 세계 질서

● 제2편
서언 : 이른바 '축심軸心 시대'에 관하여
1절 춘추전국 시대의 일반 지식과 사상
2절 '사士'의 굴기와 사상적 변이
3절 사상 전통의 연속적 갱신(1) : 유가
4절 사사 전통의 연속과 갱신(2) : 묵가
5절 사상 전통의 연속과 갱신(3) : 도가
6절 전국시대의 '정영精英' 사상과 일반 지식 : 방술 및 그 사상사적 의미
7절 백가쟁명과 세 종류의 화제(1) : 우주시공
8절 백가쟁명과 세 종류의 화제(2) : 사회질서
9절 백가쟁명과 세 종류의 화제(3) : 개인 존재
10절 언어와 세계 : 전국시대의 명변지학

● 제3편
서언 : 백가쟁명의 미성과 중국 사상 세계의 형성
1절 진한 시대의 보편적 지식 배경과 일반 사상의 수준
2절 철리의 종합 : 『여씨춘추』에서 『회남자』까지
3절 국가 이데올로기의 확립 『춘추번로』에서 『백호통』까지
4절 경과 위: 일반 지식과 정영 사상의 상호 관련 및 그 결과

● 제4편
서언 : 이역의 풍
1절 한나라에서 진나라 때까지 : 고유 사상과 학술의 변화
2절 현의유원 : 3세기 사상사의 전환
3장 청정도교 : 도교사상, 지식, 기술의 종교화 과정
4절 불교의 동방 전래와 그 사상사적 의의(1)
5절 불교의 동방 전래와 그 사상사적 의의(2)
6절 불교가 중국을 정복했는가?
7절 목록과 유서 및 경전 주소에서 보이는 7세기 중국 지식과 사상 세계의 윤곽

옮긴이의 글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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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사의 서술 방법
17 영국의 역사가이며 철학자인 콜링우드는 사상사야말로 진정한 역사로 간주하였다. 그의 주장은 의미 있는 견해로 받아들여지기도 하지만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콜링우드의 주장이 다소 지나친 면이 있기는 하지만 오늘날에도 사상의 역사적 전통은 여전히 존속된다는 의미로 이해한다면 어느 정도 동의할 수 있지 않을까? 

역사란 무엇인가? 역사가 과거의 시간 속에 출현했던 인물이나 사물, 혹은 사실에 지나지 않는다면 그것은 분명 과거라는 시간의 소멸과 함께 사라져 버릴 것이다. 지난날의 금과철마(금으로 된 창과 철로 된 말)도 이제는 스러져버렸고, 온갖 조화를 부리던 기상이변도 이제는 그저 스쳐 지나가는 가을바람처럼 쓸쓸한 흔적으로만 남아 있을 뿐이다. 또한 동창이나 고요한 담장 안에서 모의되었던 갖가지 음모들 역시 겨우 몇 쪽 혹은 몇 줄의 흔적만 남아 있을 따름이다. 게다가 많은 사람들에게 비난을 받았거나 칭송을 받은 사람들도 현명함이나 어리석음, 충성스러움이나 간사함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그저 몇몇 연극작품으로 각색되거나 이야기로만 남아 전해질뿐이다. 이렇듯 지난 시절의 일들은 박물관이나 고고학적 유적지, 혹은 고대 문헌이나 역사 교과서에서나 발견할 수 있는데 우리는 거기에 귀를 기울일 수도 있고, 외면할 수도 있다. 

'역사'는 결코 '그때 당시'로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다. 내가 볼 때 적어도 두 가지는 지금까지도 면면히 이어져 현재의 생활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하나는 수천 년 동안 계속해서 축적된 지식과 기술이다. 옛사람들의 지혜와 노력은 인류의 생활에 많은 지식과 기술을 축적해 놓음으로써 후세 사람들이 그것을 누릴 수 있도록 했으며, 뿐만 아니라 옛 사람들의 업적을 발판으로 삼아 새롭게 발전할 수 있도록 밑거름이 되어 왔다. 역사는 바로 이러한 점에서 끊임없이 발전한다. 다른 하나는 수천 년 동안 반복적으로 사유해 온 문제와 그것을 통해 형성된 관념, 그리고 몇 세대에 걸쳐 애써 추구해 온 우주와 인생의 의미, 우주와 사회와 인생의 문제에 관한 관념과 방법이다. 이러한 것들은 오늘날의 사유 방식에도 영향을 미쳐 지금도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들을 여전히 그런 방식에 따라 사유하도록 만든다. 바로 그러한 점에서 역사는 끊임없이 중첩된다. 전자가 기술사에 속한다면 후자는 사상사에 속한다. 

사상은 유형의 기물이나 생명의 유한성에 의해 소멸되지 않고, 언어나 문자 또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들어온 습관을 통해 학교 교육과 학교 밖의 환경 속에서 대대로 계승되어 왔다. 이러한 '연속'을 통해 요즘 사람들은 옛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며 살았는가를 배울 수 있다. 바로 그것 때문에 옛사람들의 사고는 요즘 사람들에게도 의미를 지닌다. 콜링우드는 "역사의 지식은 과거에 정신적으로 어떤 일을 했는가에 관한 지식이다. 동시에 그것은 그와 같은 일을 다시 행할 때 과거의 영원성으로 현재 속에서 활동하고 있다"라고 말하였다. 사유 대상이나 사유방식, 해석과 실천 방식은 한 세대 한 세대 이어지면서 중복, 변화, 순환되며 새롭게 바뀌어감으로써 시간과 공간의 연속성을 갖게 된다. 이로 인해 역사가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21 사실 철학이란 용어가 없다는 것은 중국인에게 철학 개념에 부합하는 지식이나 사상, 학술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서구의 학술 개념이 지배하는 세상 속에서 당군의 또한 자신의 입장을 견지하지 못하고 결국 '중국 철학'이란 말로써 고대의 사상과 학술을 포괄하게 되었다. 이에 비하면 '사상사(History of Thought 혹은 Intellectual History)'란 용어가 중국 역사상 존재해 왔던 각종 학문들을 기술하는데 타당해 보인다. 그것은 '사상'이란 말이 '철학'에 비해 보다 더 포용성이 풍부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상반되어 보이면서도 실은 동일한 이유로 인해 사상사 또한 곤란한 처지에 놓일 때가 있다. 이는 '사상'이란 개념이 지나치게 포용성을 지녀 경우에 따라 그 범주가 불분명하게 되고, '사상사' 또한 이로 인해 지나치게 무거운 책임을 짚으로써 자신의 범위와 내용조차 분명히 깨닫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 학자들이 철학사를 여러 권 집필했던 80여 년 동안 '사상사'라는 명칭이 사용된 것은 단지 몇 번에 불과했으며, 그것도 대부분 앞에 한정어가 붙어 있는 경우, 예를 들어 '정치사상사', '종교사상사', 학술사상사, 그리고 단대, 즉각 조대별 또는 시대별 사상사에 국한되었을 따름이다. 그 가운데 후외려가 주편한 중국 사상 통사가 거의 반세기의 성과를 덮을 만할 정도이다. 

23 사상사의 전개 방식에도 약간의 혼란이 생겼고, '사상사'의 내용에도 '철학', '논리', 그리고 '사회사상이 포함되었을 뿐만 아니라 '토대'와 '상부구조', '이데올로기'가 포함되었다. 이렇듯 개념이 불분명한 채로 기술된 내용을 통해 사상사의 어려움을 능히 짐작할 수가 있다. 이해가 가능한 당시 상황 외에 사상사와 철학사, 이데올로기의 역사나 논리학의 역사 등과 같이 경계가 불분명한 것도 하나의 중요한 원인이다. 따라서 우리는 마땅히 이렇게 질문하지 않을 수 없다. 사상사가 과연 철학, 이데올로기, 정치, 법률, 그리고 과학을 포용할 수 있는 대역사가 될 수 있을까? 만약 그렇다면 콜링우드가 이야기한 것처럼 모든 역사는 단지 사상사일 뿐이라는 말이 정말로 성립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누가 감히 이처럼 삼라만상을 두루 포괄하는 사상사를 쓸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도대체 사상사를 어떤식으로 기술해야 할까? 여전히 내 마음속에는 많은 의문들이 남아 있다. 이 책 「상권을 완성할 때까지도 여전히 여러 가지 의문점들이 불분명한 상태로 남아 있었다. 다음에 기술할 내용들은 사상사의 몇가지 문제에 대한 내 개인의 견해일 뿐 결코 사상사 기술 방법에 대한 종합적인 논술은 아니다. 

속사상사의 서술 방법
25 오늘날까지 사상사는 여전히 파악하기 어려운 영역이다. 중심은 분명하지만 서술할 경계가 상당히 모호하여 그 면목이 분명치 않고, 또한 인근 학과처럼 명확하게 자신의 경계를 확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예컨대 사상사는 종교사나 학술사와 동일한 대상에 대해 관심을 갖기 때문에 늘 '영역 싸움이 일어난다. 또한 사상사는 사회사나 문화사와 일부 지식과 문헌을 공유해야 하기에 이들 사이에도 늘 '영상의 중첩'이 발생한다. 뿐만 아니라 사상사는 정치나 경제사와 상호 해석 관계를 유지하기 때문에 양자간에 '서로의 배경이 되어야 하고, 심지어 어느 쪽이 어느 쪽을 총괄하거나 포함하는가에 관한 일종의 등급 및 질서의 문제가 생기게 된다. 이런 이유로 사상사는 하나의 학과로써 토대와 규범을 정하기가 어렵다. 

이는 마치 어떤 역사에서 사방을 떠돌며 유목하는 민족이 여러 나라가 함께 대치하는 경계 지역에 잠시 거주하게 되었을 때 영토와 법률을 당장 확립하기 어렵고, 국민이 경계선을 넘는 것을 범법으로 묶어두기 어려운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찍이 반스가 "정치사의 편협된 그물을 돌파하여 인류 문명의 변화와 발전을 연구하는 각종 사학 가운데 사상사(Intellectual History)의 노력이 가장 오래되었다"고 설파하긴 했지만, 근래에 이르기까지 학자들은 여전히 사상사를 스스로의 체계를 갖춘 대국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길버트에 의하면 19세기까지 "지식 생활 현상을 언급한 사학 저작은 여전히 사학의 주류 밖에 처해 있었다." 심지어 "1939년에 와서도 사상사는 아직 보편적 용어가 되지 못한 상태였고, 학술계에서 차츰 자신도 모르는 가운데 이 단어를 채용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27 비록 그 당시부터 상당한 수량의 사상사 저작이 차츰 중국학술계에 등장했지만, 실제 편찬 작업이나 학과의 제도화 또는 대중의 이해 시각에서도 사상사는 여전히 그 면모가 불분명했고, 실제로 여전히 궁한 처지에 놓여 있었다. 내가 현재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은 아래 몇 가지 문제이다. 
첫째, 사상사의 의의는 어디에 있는가? 역사상 표창할 만한 사상적 '도통'을 확립하는 데 있는가, 아니면 한 사상의 역사적 과정을 서술하는 데 있는가? 이 문제는 사상사란 것이 사상에 속하는가 아니면 역사에 속하는가를 묻는 것이기도 하다. 
둘째, 만약 후자라면 이는 그 서술 대상을 새롭게 확립해야 하는가의 여부가 문제일 수 있다. 사상의 역사 가운데 정채한 것과 경전적인 것이 있을 뿐만 아니라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지식이나 사상, 그리고 신앙 세계가 존재하여 전체 사회 생활을 지탱하고 있다. 또한 엘리트 사상이 배출된 시대도 있고, 사상이 평범했던 시대도 있다. 그렇다면 후자, 즉 일반 지식과 사상, 그리고 신앙세계 역시 역사 시간에 포함시켜 고찰해야만 하는가의 여부도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셋째, 언급 범위가 한층 광범한 지식이나 사상, 신앙세계를 서술하고자 할 때 사상사가 어떻게 가닥 없는 산만함을 극복하면서 사상사와 사회사·정치사의 상호 배경 문제를 제대로 분명하게 처리할 수 있겠는가에 관한 문제이다. 
넷째, 사상사는 문화사나 학술사와의 영역 충돌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바꿔 말해 사상사가 하나의 명확한 경계를 정해 문화사나 학술사 사이의 영역 중복을 피할 필요가 있는가의 여부에 관한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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