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레산드라 프레골렌트: 에르미타슈 미술관
- 책 밑줄긋기/책 2023-26
- 2026. 9.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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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미타슈 미술관 | 마로니에북스 세계미술관 기행 10 | 알레산드라 프레골렌트 - ![]() 알레산드라 프레골렌트 (지은이),최병진 (옮긴이)마로니에북스 |
서문
에르미타슈 미술관
작품들
마술관 안내
화가 및 작품 색인
8 사람들은 표트르 대제(표트르 1세, 1672.6.9~1725.2.8)가 에르미타슈 미술관을 열었다고들 말하지만 사실 그는 박물관 컬렉션을 구성하는 몇몇 예술 작품의 역사와 관련이 있을 따름이다. 러시아의 첫 황제였던 표트르 1세는 플랑드르 회화에 관심을 가지고 있긴 했지만 예술보다 혼치 않은 기물들, 혹은 진귀한 자연의 조각들이나 수수께끼에 싸인 과거의 이상한 물건들을 더 좋아했다. 사람들은 종종 비틀어진 태아의 박제, 혹은 미이라와 같은 등골이 오싹한 표트르 대제의 컬렉션과 마주치곤 했다. 일종의 '전율의 박물관이었던 셈이다. 그래서 때로 비위가 약한 사람들은 입장 전에 보드카를 마셔야 했다고 전한다. 표트르 대제가 스텝의 초원에서 발견한 신기한 금장신구들을 높이 평가하고 수집했다는 점은 이후에 에르미타슈 미술관의 컬렉션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 표트르 대제의 이상한 수집품들에 비해 ─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당시에 그는 몰랐겠지만 이 금장신구들은 스키타이인들과 사르마티아인들의 고분의 부장품들이었으며 오늘날 대 에르미타슈의 역사적 가치가 뛰어난 컬렉션의 일부로 남아있다.
에르미타슈 미술관의 진정한 기원은 1700년대 중반 러시아의 예카테리나 여제(1762~96 통치)의 재위 기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764년 예카테리나 여제는 몇몇 친구들과 함께 유럽 시장에서 구입한 그림을 감상하기 위해 겨울 궁전 옆에 자신을 위한 작은 궁전을 짓도록 했다. 이 궁전은 예술 작품을 감상하기 위한 조용한 장소로 설계했으며 '에르미타슈' 라고 불렀는데 이는 '은자의 집'이라는 뜻이다. 예카테리나 여제는 "나는 그림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나는 그림을 좋아한다"며 스스로 자신이 회화 자체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좋은 작품들의 수집에 관심이 많았다고 말한다. 여제는 아주 까가운 친구들과 몇몇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에르미타슈의 방문을 허용했다. 여제는 이 시기를 다음과 같이 회고하곤 했다. "에르미타슈엔 나와 생쥐들만 종종 예술 작품을 감상하러 갔었다." 여제는 또한 에르미타슈의 방문에 매우 독특한 입장 규칙을 만들어 방문자들에게 적용하였다. 방문자들은 칼과 모자를 두고 들어가야 했고 모든 사회적 지위와 권리는 에르미타슈 안에서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또한 에르미타슈의 예술 작품들을 보호하기 위해 방문객들은 항상 주의를 기울여야 했으며 낮은 목소리로만 대화를 할 수 있었다. 기지개나 하품을 해서도 안 되었다. 이러한 규칙을 위반했을 때 예카테리나 여제는 방문객들에게 찬물을 마시게 했는데 이는 러시아 사람들에겐 매우 커다란 모욕이다. 이 규칙은 오늘날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오늘날 에르미타슈 미술관은 예카테리나 여제 시절과 비교해보면 규모가 거의 다섯 배 정도까지 커졌다. 오늘날엔 여제가 처음 지었던 에르미타슈뿐만이 아니라 주변에 있는 궁전을 포함한 다섯 개의 건물 모두를 에르미타슈미술관이라고 부른다.
귀족들이 방문하던 층에는 러시아 황제의 접견실과 더불어 고대 예술이 전시된 미술관이 있다. 한편 일층에는 로마와 그리스의 고전 작품들과 유명한 스텝의 금장신구들이 전시되어있다. 4층에는 슈킨과 모로쵸프의 컬렉션이 있었으며 시월혁명 이후에 에르미타슈 미술관에 이관된 인상파와 후기 인상파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사실 근대 역사의 물결 속에서 러시아 황실컬렉션들이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한때 스탈린은 경운기를 사기 위해서 미국에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을 비밀리에 팔았다. 박물관 종사자들이 에르미타슈 미술관의 컬렉션들이 흩어져버릴까 봐 많이 걱정했었다는 건 안 봐도 알 수 있겠다. 그러나 큐레이터들은 컬렉션을 보호하기 위한 매우 효과적인 백신을 찾아냈다. 스탈린이 몇몇 작품을 팔라고 했을 때 큐레이터들은 스탈린에게 죠르지아 지방의 고전 예술 작품을 팔겠다고 말했다. 자신의 고향인 죠르지아 지방의 고전 예술이 팔려나가게 생기자 스탈린은 자신이 살아있는 동안 에르미타슈 미술관의 어떤 작품도 팔지 못하게 하였다고 한다.
한편, 20세기 초 레닌그라드가 나치에 점령당했던 시기에 박물관 직원들은 에르미타슈 미술관의 모든 소장품들을 안전한 장소에 숨겼다. 하지만 박물관의 문은 항상 열려있었으며 박물관의 활동도 계속되었다. 텅빈 액자 앞에서 에르미타슈 미술관의 나레이터들은 방문한 학생들에게 예술 작품이 눈 앞에 있는 양 설명을 계속하였다. 이러한 작품없는 박물관의 이면에는 예술이 민중에게 전쟁의 광기를 극복할 수 있는 힘과 지친 삶에 희망과 용기를 줄 수 있다는 생각들이 깔려 있다.
마지막으로 독자들이 궁금할까 봐 덧붙이는데 현재 에르미타슈 미술관의 소장품 목록을 분류하고 세어본 결과 미술관은 현재 2,938,638점의 예술 작품을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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