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에네크 위르봉: 부두교 - 왜곡된 아프리카의 정신 |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 41

제1장 대서양 횡단
제2장 지옥같은 노예생활 속에 감춰진 부두교
제3장 국제무대에서 나타나는 주술
제4장 '르와'정령
제5장 사자(死者)숭배
제6장 망제 르와, 당세 르와:봉헌
제7장 놀라운 생명력

기록과 증언
참고문헌
그림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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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자연과 인간사의 여러 분야를 관장하는 정령들을 숭배하는 부두교는 아프리카의 가나에서 나이지리아와 토고에 이르는 지역에 살고 있는 베냉만의 퐁족, 요루바족, 에베족들 사이에서 찾아볼 수 있다. 특히 현 베냉 공화국인 다호메이에서 부두교가 발달했다. 이곳에서는 민족, 마을, 씨족, 혈통 등이 사회 조직의 기반이 된다. 각 집단은 조상신이자 수호신인 자신들의 고유한 '보두' 혹은 '보둔'을 가지고 있다. '에군군(Egun-gun)'이라는 죽은 이에 대한 숭배 의식은 씨족이나 부족 집단들을 집결시키는 역할을 함과 동시에, 종교적인 전통을 보존하는 데에도 기여한다. 

이러한 의식들은 수도원이나 사원에서 행해지는데, 의식 때는 북 장단에 맞춰 춤을 추는 가운데 보둔의 호의를 얻기 위해 소, 양, 닭 같은 동물을 제물로 바친다. '보두노' 혹은 '후'라고 불리는 제사장들은 보둔의 메시지를 해석하고, 신자들이 보둔과 접촉할 수 있도록 인도해 준다. 보둔은 의식이 진행되는 중에 신자들, 특히 '운소'라 불리는 입문자의 몸으로 들어오는데, 이런 경우를 두고 '신이 들렸다' '정령'의 '말(馬)'이 되었다고 말한다. 

15 베냉만 주위에 사는 부족 집단들 사이의 관계는 긴장과 적대 관계, 빈번한 전쟁으로 점철되어 있으며, 이러한 관계는 종교 생활에도 그대로 반영된다. 그리하여 18세기 초엽, 도시 국가인 아보메이의 왕가는 자신들의 권력을 확장시키기 위해 적대 진영, 특히 요루바족의 몇몇 신들을 흡수하면서 부두교를 중앙 집권화했다. 

이런 이유로 그때까지 정치권과 동떨어져 독립적으로 활동을 벌여 오던 제사장들은 궁궐의 고관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 과정에서 어떤 정령들은 숭배 대상에서 배제된 반면, 어떤 정령들은 명령에 따라 왕국 전체의 공공 보둔으로 섬겨졌다. 아보메이 왕가의 시조인 '아가'는 공공 보둔으로 받아들여진 정령 중 하나인데, 여자와 표범 사이에서 태어났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46 폭동을 일으킨 노예들은 두 달 동안 식민지 전역을 공포에 빠뜨렸다. 200개의 설탕 농장과 1,800개의 커피 농장이 불에 타 없어졌으며 수천여 명의 백인이 죽음을 당했다. 뒤티도 매복 중에 숨졌다. 흑인의 새 지도자 중에는 아라다 왕의 손자이며 섬 북쪽의 브레다 거주지에서 태어난 투생 루베르튀르가 있었다. 뒤티와 마찬가지로 마부 출신인 그는 읽고 쓸 줄 알았다. 그는 흑인을 해방해 줄 새 스파르타쿠스가 생도맹그에 나타날 것이라고 예언한 레이날 신부의 《두 인도의 역사》에 대해 들은 바가 있었다. 사실, 루베르튀르는 1791년 8월 22일부터 흑인들의 반란을 이끈 지도자들인 뒤티, 비아, 자노, 그리고 자신이 비서로서 모신 적이 있는 장프랑수아와 알고 지냈다. 점차 그의 이름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했고, 마침내 혼혈인뿐 아니라 백인 식민지 경영자에게도 권위를 가지기 시작했다. 용병술에 뛰어났던 루베르튀르는 500명으로 구성된 자신의 군대를 조직하여, 섬의 일부를 차지하고 있던 스페인인과 동맹을 맺었다가 흑인의 자유를 보호하기 위해 다시 그들과 결별했다. 이어서 그는, 루이 16세가 노예제도의 폐지를 원한다고 판단하고 왕당파 백인과 동맹을 맺었다. 그의 군대는 빠른 속도로 성장을 거듭해 병사의 수가 5,000명을 헤아리게 되었다. 

1793년 8월 29일, 파리 의회의 전 변호사이자 혁명 지지 인사로 이름을 날리던 레제 펠리시테 송토닉스가 전 세계의 노예제도 폐지를 선언했다. 프랑스의 국민의회가 식민지의 정국을 진정시키기 위해 프랑스 정부를 대표해 다른 두 명과 함께 그를 파견했던 것이다. 이리하여 마침내 1791년 8월의 흑인 봉기는 승리를 인정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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