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에르 레베크: 그리스문명의 탄생 |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 5
- 책 밑줄긋기/책 2023-26
- 2026. 9.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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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문명의 탄생 |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 5 | 피에르 레베크 - ![]() 피에르 레베크 (지은이)시공사 |
제1장 화려한 청동기 시대
제2장 아르카이즘, 태동하는 창조력
제3장 고전적 균형, 그 이상과 현실
기록과 증언
연대표
참고문헌
그림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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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그리스에 농경과 목축이 소개된 것은 B.C 6000년경으로 동양보다 상당히 뒤늦은 것이었다. 이 신석기시대 기술은 소아시아에서 들어온 이주민이 전해준 것으로 그리스 반도에 큰 어려움 없이 수용되었다. 테살리아 지방의 비옥한 평야 위에 세워진 건축물은 조직적인 체계를 갖추고 한때 막강한 힘을 누렸으리라 여겨지는 공동체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 원형 성벽으로 둘러싸인 디미니(Dimini) 성곽 안에는 모습을 제대로 갖춘 궁전이 세워졌다. 이는 군주체제의 초기형태를 엿보게 하고, 앞으로 다가올 미케네의 화려한 궁전시대를 예고한다. 한편, 청동 제련기술이 전파된 것은 B.C. 2600년 전후로, 이점에서도 그리스는 후진성을 벗지 못했다. 청동 제련기술을 사용하게 되면서 그리스는 동지중해와 교류하기 시작했다. 그리스 땅에서는 구리의 산출량이 적었을 뿐만 아니라 주석은 거의 생산되지 않았기 때문에 두 가지 금속을 수입해야 했기 때문이다. 제련기술의 발전은 농경기술과 전쟁무기의 발달을 가져왔다. 공동체사회는 청동기시대 초기(B.C. 2600~2000)부터 형성되는데 이 시기의 도시유적이 아르골리스만 연안 레르네에서 발굴되었다. 이곳은 교역이 매우 활발하던 지역으로, 그리스 신화에 따르면, 헤라클레스가 처치한 머리가 100개 달린 무시무시한 바다뱀 히드라(Hydra)가 살던 곳이다. 유적에서 발굴되는 가옥은 '머리핀 모양이라 일컫는 선사시대 가옥형태에 머무르고 있고, 도시를 에워싸고 있는 성곽은 이웃의 공격을 막으려 했던 그들의 굳은 의지를 잘 보여준다. 유적의 중심부에는 궁전이 우뚝 서 있으며, 여기에서는 강력한 권력을 소유하는 왕이 성곽을 한눈에 내려다보면서 군림했을 것이다. 고대 청동기시대의 그리스 사회에서는 아직 참다운 그리스적 요소를 찾아볼 수 없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그리스인이 등장한 것은 B.C 2000년 무렵이었다. 그리스어를 사용하는 이들 인도-유럽족의 일족은 카르파티아 지방에서 우랄 산맥에 이르는 광활한 유럽의 스텝 지역에 살면서 그들의 문화와 언어를 탄생시켰다. 다른 인도-유럽족은 유럽 전체와 일부 아시아의 주민으로 정착하였다.
16 아카이아인의 물결이 닿지 않은 크레타에는 B.C. 2000년경부터 궁전이 건축되기 시작하였다. 평화가 지속되고 생산증대와 인구증가가 이루어지자, 전제군주제가 자연스럽게 등장했던 것이다. 이처럼 크레타 궁전은 전제군주제의 등장과 밀접한 관계를 지닌다. 그러나 B.C. 1600년대에 발생한 거대한 자연재해 산토린 화산의 폭발, 그리고 그에 따른 해일과 지진이 아닐까 추정된다로 초기에 세운 궁전은 완전히 파괴되었다. 그뒤 그들은 더 크고 화려한 궁전을 지어 이 민족의 활기 넘치는 황금기를 보여주었다. 그렇지만 B.C 15세기 중엽에는 바다를 건너 침입해 오는 아카이아인과 싸워야 했고 또다시 막강한 지진을 겪어야 했다. 크레타섬은 아카이아인이 침입하기 전 수백 년 동안 크노소스 왕의 통치 아래 뭉쳐 있었다. 크노소스의 왕은 미노스(minos)라고 불렀는데, 훗날 아카이아인은 미노스라는 칭호를 고유명사인 줄 잘못 알고 부와 권력의 상징인 '미노스왕' 전설을 만들어 냈다. 초기 크레타 문명이 남긴 프레스코화들은 크노소스의 군주를 왕이면서 제사장으로 그리고 있다. 더 나아가 군주는 신격을 가진 존재로서 백성들에게 무조건적인 복종과 충성을 정당하게 요구할 수 있었다. 크레타의 왕권은 너무나도 강력하여 그리스 신화에서는 미노스왕이 원하기만 하면 신들의 우두머리인 제우스와 대화할 수 있었다고 묘사하고 있다. 미노스의 궁전은 정치중심지였을 뿐만 아니라 경제활동을 조종하는 생산중심지이기도 했다. 창고에는 곡식과 생활용품이 그득했고, 인근의 작업장에서는 솜씨 좋은 장인들이 사치품을 만들어 냈다. 또한 이 모든 공간은 종교적 분위기 속에서 성역으로 기능했다. 크레타의 전제군주를 이집트의 파라오나 메소포타미아의 군주들과 비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여러 차이점에도 이 왕국들은 신권정치, 절대군주제, 경제활동에 대한 왕실의 통제 등 몇 가지 점에서 공통성을 가진다. 크레타의 백성들은 비록 노예는 아니었지만 예속된 신분이었으며 왕의 권력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었다. 그리고 왕의 관료들은 생산과 무역을 통제하고, 노동력을 교묘히 배분했다. 강력한 관료체제의 바탕에는 그들만이 해석할 수 있는 문자로 기록을 남겼던 서기관(필경사)들이 도사리고 있었다. 전체 구조에서 크레타 왕국과 비교될 수 있는 나라들은 소아시아의 연안국들과 시리아, 팔레스타인 연안에 위치했던 소왕국들이다.
52 암흑기가 전적으로 퇴보와 야만의 시대였던 것은 아니다. 이 시기에도 커다란 혁신이 이루어졌다. 도자기 예술에서는 미케네풍 작품들이 사라지고 아카이아의 전통을 소화해 낸 새로운 양식의 기법들이 선보이기 시작하였다. 새로이 탄생한 도자기는 원시 기하학 형태에서 기하학 형태로 발전하는데, 이점에서 기하학적 세계관의 참다운 실현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추상작업은 기존 예술의 내부적 진화에 따른 결과이지 새로 이주해 온 그리스인이 이루어 낸 것은 아니다. 종교분야에서도 이에 못지않은 중대한 변화들이 일어났다. 제우스가 하늘과 땅을 통치하는 신들의 신으로서 더욱 중요시되었는데 이는 권력이 불확실하여 항상 반발의 여지가 있는 사회에서는 절대로 필요한 사상체계였다. 또한 아시아의 여러 신들이 새로 그리스 신전에 받아들여져서 B.C 1000년경에는 확고히 자리를 잡는다. 세계의 아프로디테와 아나톨리아의 아폴론과 그의 어머니 레토 등이 그들이다.
53 호머의 작품에는 2,000여 년의 세월이 집약되어 있다. 그가 B.C. 750년경인, 도시국가의 전성기에 작품을 썼다고 해도 그는 최소한 후기 미케네 시대로부터 내려오는 오랜 구전전통에 입각해 그의 천재적 능력을 발휘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것은 마치 되풀이되며 제시되는 하나의 위대한 주제를 중심으로 연주되는 교향곡을 듣는 듯하다. 서사시가 역사연구의 엄밀한 자료로서 쓰일 수는 없으나, 당시 사회상은 엿볼 수 있게 해준다. 그의 서사시는 트로이 전쟁이나 전쟁 후의 귀향을 주제로 하였지만, 그러한 주제의 틀 위에 드러나 있는 것은 호머 왕국의 사회상이다.
61 도시국가의 초기에는 귀족세력이 판을 치고 있었으나 차츰 시민들은 자신의 권리에 대해 눈을 뜨게 된다. 그리하여 왕은 1년을 재임기간으로 하는 다수의 행정관과 평의회, 평민의회 등 새로운 정치기구들로 급속히 대치된다. 왕국에서 도시국가로, 다시 말해 모든 형태의 혁신을 자체 내에 수용할 수 있는 강력한 정부로 변천하는 과정에서 가장 큰 혜택을 입은 자들은 귀족이었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도시국가는 출범부터 합의에 따라서 이루어진 체제였다. 그 점은 도시의 가장 빈곤한 사람들까지 누구나 평민의회에 참여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도 익히 알 수 있다. 물론 구시대의 제도 중 사회통합적인 차원에서 보탬이 될 만한 제도들은 그대로 채택되었다. 그들은 도시국가 내에서 이오니아인, 도리아인, 아이올리아인 따위 각 부족을 몇 개의 집단으로 분할하였다. 그리고 이렇게 분할된 집단들이 모여서 도시국가라는 커다란 총체를 이루었다. 따라서 도시국가는 모든 부분집합의 총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개인은 공동체에 소속되어 있는 하위집단, 즉, 핵가족, 가문, 씨족, 부족 등의 구성원으로 규정되었다.
61 그리스에서 최초로 철기가 등장한 시기는 BC 1100년경이지만, B.C.9세기가 되어서야 철기가 일상생활에 보급된다. 질 좋은 농기구와 무기가 보급되면서 인구가 급증했다. 이에 따라 생산이 증대되고 교역활동이 촉진되었으며, 수확량이 늘고 잉여생산물이 축적되자 스스로를 보호해야 필요성도 절실해졌다. 이제 그들은 정착생활의 기반을 확고히 다지기 시작했으며 농업은 이제 목축업보다 훨씬 중요한 산업으로 자리를 굳혔다 서서히 도시국가로 발달하게 되었던 것이다. 인구의 증가, 다양한 생산활동과 교역의 증대, 그리고 이에 따른 도시화는 조직적인 사회체제 구성에 크게 기여하였다. 이때 새로운 사회의 중심이 되었던 계층은 전쟁용사 출신 귀족이었다. 아울러 B.C9세기 말부터 근동지방과 북쪽 국가, 시칠리아, 이탈리아와 무역이 재개되어 경제발전의 토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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