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샤핀: 과학혁명
- 책 밑줄긋기/책 2023-26
- 2026. 9.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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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혁명 | 갈릴레오 총서 7 | 스티븐 샤핀 - ![]() 스티븐 샤핀 (지은이),한영덕 (옮긴이)영림카디널 |
감사의 글
서론
제1장 지식이란 무엇인가?
제2장 지식은 어떻게 획득하는가?
제3장 과학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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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과학혁명같은 것은 없었다. 이 책은 바로 그에 대한 이야기이다. 얼마 전, 학계 내에서의 의견 제시가 좀더 분명하고 좀더 수월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분위기가 조성되었을 때 역사학자들은 과학혁명에 대해 "사람들이 자연계에 대해 알고 있는 것과 자연계에 대해 올바른 지식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을 근본적이고 결정적으로 변화시킨 설득력 있고 획기적이며 확고부동한 사건이 실제로 일어난 것"이라고 밝혔다. 그 사건은 근대로 넘어가던 16세기 후반부터 18세기 초에 걸쳐 일어났다. 1943년 프랑스의 역사학자 알렉상드르 코이레는 과학혁명의 중심부에서부터 일어난 그 근본적인 변화에 대해, 고대 그리스 이래 '인간의 정신이 달성한 가장 의미 있는 혁명'이라고 칭송했다. 또 그는 과학혁명은 "인류가 수세기 동안 그 참뜻과 의미를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심오하고 난해한 것이었으며, 그래서 지금까지도 때로는 잘못 평가되고 이해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 몇 해 후 영국의 역사학자 허버트 버터필드는 과학혁명이 "기독교 등장 이후의 모든 것을 무색하게 하고 르네상스와 종교개혁까지도 하찮게 여겨질 정도로 대단한 사건이며...... 근대 세계와 정신의 진정한 근원" 이라는 유명한 말을 했다. 그것은 개념상의 혁명, 즉 자연에 대한 우리의 사고방식을 근본적으로 재구성하는 것을 의미했다. 이런 점에서 과학혁명에 관한 이야기는 사유의 근본적인 범주에서 일어난 획기적인 변화에 대한 설명이라고 할 수 있다. 버터필드의 말을 빌리면, 과학혁명의 기초를 이루는 정신적 변화는 '새로운 안경을 쓰는 일'과도 같다. 그리고 A. 루퍼트 홀에게는 과학혁명이 '철학적·과학적 탐구에 있어서 무엇보다도 우선해야 하는 탐구 대상'이었다.
과학혁명에 대한 이러한 개념은 오늘날엔 전통으로 여겨지고 있다. 과거의 역사적 사실에 대한 연구 중에 과학혁명만큼 내용이 깊거나 확실하게 가치 있는 것은 거의 없었다. 서양의 교양 교과 과정에는 과학혁명에 대한 설명이 확고부동한 영역을 차지하고 있다. 이 책은 그 영역을 효과적으로 충족시키고, 초기 근대 과학의 성립에 대해 보다 재미있게 접근하기 위한 하나의 시도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20세기 '전통'들처럼, 과학혁명에 대한 개념이 전통이 된 것은 생각처럼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과학혁명'이라는 표현은 1939년에 알렉상드르 코이레가 사용하기 전까지는 일반적으로 사용되지 않았고, 1954년에 이르러서야 처음으로 책에서 사용되었다. 역사적으로 상반된 입장을 다룬 두 책 A 루퍼트홀의 <과학혁명 The Scientific Revolution>과 J. D. 버널의 <과학사Science in History)(마르크주의자 부분에서 <과학과 산업혁명The Scientific and Industrial Revolutions>)에서 제목으로 사용되었다. 그 이전에는 과학혁명이라고 일컬어지는 교과 과목을 공부할 기회가 없었으며, 역사 연구에서도 과학혁명이라는 따로 분리된 분야는 없었다. 17세기의 많은 학자들이 급진적인 지적 변화를 꾀하는 경향이 강했지만, 실제로 과학혁명을 이끌어냈던 사람들조차도 그런 용어를 사용하지는 않았다.
고대부터 근대 초에 이르기까지 '혁명' 이라는 말은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순환의 개념으로 인식되어 왔다. 예를 들어 16세기 중반 코페르니쿠스의 새로운 천문학에서는 태양을 중심으로 한 행성들의 공전이 혁명을 수행한다고 보았다. 정치적 혁명과 관련해서는 밀물과 썰물이나 인간사의 순환─운명의 수레바퀴─이라는 개념으로 사용되었다. 급진적이고 되돌릴 수 없는 개편이라는 과학혁명의 개념은, 시간이 한 방향을 향해 곧바로 진행된다는 개념과 함께 발전되었다. 이 새로운 개념에 의하면 혁명은 반복이 아니라 뒤엎는 것인데, 그것은 이전에 한번도 본 일이 없고 다시 보기도 어려운 새로운 지위를 부여받는다.
혁명에 대한 이러한 개념뿐만 아니라 과학에서의 혁명이라는 개념은 18세기 프랑스 합리주의 철학자들의 저작물에서부터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자기 자신과 자신들이 발견해 낸 원리들이 구습을 타파했다고 떠벌리길 좋아했다. (반면에 이 책에서 소개하는 몇몇 17세기 저술가들은 스스로에 대해 완전히 새로운 국면을 가져온 것이 아니라 옛것을 다시 복귀시키고 정화시킨 것뿐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획기적이고 되돌릴 수 없는 변화로서의 혁명이란 개념은 처음에는 과학적 사건에 한해서만 적용되었고, 정치적인 사건에 대해서는 얼마의 시간이 지난 뒤에야 이루어졌다. 즉 혁명이라는 것은 과학적 혁명을 뜻하며, '아메리카 혁명, 프랑스 혁명, 러시아 혁명' 등의 정치적 혁명은 그로부터 파생된 개념이다.
17세기 과학에 대한 우리의 이해가 최근에야 바뀌었기 때문에 역사학자들에게도 '과학혁명'이라는 개념은 더욱 다루기 어려워졌다. 그리고 과학혁명이라는 용어를 구성하는 각각의 단어들이 가지는 타당성에 대해서도 이견이 많다. 그러나 이제 많은 역사학자들은 더 이상 독자적이고 때와 장소가 제한된 특정한 사건이 '과학혁명'에 해당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또 많은 역사학자들은 혁명적인 변화를 겪던 17세기에 '과학'이라는 문화적 실체가 있었다는 것을 부정하기도 한다. 오히려 당시에는 자연계를 이해하고 설명하며 통제하려는 다양한 문화적 행위가 있었고, 그것들은 각각 서로 다른 성격과 서로 다른 양식으로 변화를 경험했다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과학적 방법'─과학적 지식을 만들어 내기 위한 적합하고, 보편적이며, 효과적인 절차─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있다. 나아가 그 과학적 방법의 기원을 그것이 우리에게 확실하게 전달된 시기인 17세기로 보는 것에 회의적이다. 또한 많은 역사학자들은 17세기에 과학적 신념과 행위에 작용한 그 변화가 흔히 말하듯 '혁명적'이었다는 데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오늘날엔 17세기 자연철학과 그 이전 중세와의 연속성을 당연한 듯 여기지만, 화학과 생물학 분야에서 18~19세기 '지연된' 혁명을 언급할 때는 본래의 바로 그 과학혁명에 대한 역사학자들의 정의를 따르진 않는다.
22 나는 자연계에 대한 지식의 변화와 그 지식의 확립 수단의 변화와 관련된 네 가지 양상에 대해 특별히 주의를 기울일 것이다. 첫째는 자연관의 기계론화, 즉 자연의 변화 과정들과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기계론적인 비유를 더욱더 많이 사용하게 된 점, 둘째 자연 지식의 객관화, 즉 세속적인 인간의 경험과 자연이 '실제 무엇과 같은지'에 대한 관점 사이의 차이에서 명백히 드러나듯이 인간의 주관과 그들의 지식에 나타난 자연의 객관 사이에 중대하는 차이, 셋째 지식을 만들어 내는 과정의 의도적인 기계론화, 즉 인류의 열정과 흥미에서 비롯된 결과들을 관리하거나 제거함으로써 지식 생산을 통제하려는 목적으로 확립된 방법상의 규칙들을 의도적으로 전개한 점, 그리고 넷째는 윤리적·사회적·정책적 목적을 위해 새로운 자연지식을 이용하려고 열망했던 점인데, 그것을 위해서는 문제의 지식이 진실로 유용하고 강력하고 특히 사욕이 없어야 했다. 첫번째와 두 번째 논지는 1장에서 소개될 것이고, 세 번째 논지는 2장과 3장에서 주로 다룰 것이며, 네 번째 논지는 3장에서 중점적으로 다룰 것이다.
81 라이프니츠와 다른 사람들의 경우 이해 가능성에 대한 최고의 조건으로 타당한 기계론적 근거를 요구한 반면, 뉴턴은 그렇게 하지 않았기 때문에─인력의 경우처럼─그의 설명은 명료함이 없고 신비주의적인 것으로 간주되었다. 뉴턴은 떨어져 있는 물체 사이에 물질적 매개물 없이 인력이 작용하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여겼기 때문에, 어떤 매개를 통해 인력이 작용되는지 알아내려고 끈질기게 노력했다. 하지만 그러한 물리적 이론이 없다고 인력의 힘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었다. 이해 가능하다는 것은 그 움직임에 대한 법칙적 설명이 있다는 것이다.
129 17세기 영국의 일반적인─비록 보편적이지는 않더라도─연구 경향은 신학적·도덕적·정치적 사고가 자연철학의 테두리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거부하는 것이었다. 근대 자연철학자들이 읽은 자연이라는 책은 신의 책이라고 이해되었지만, 기계론적 철학은 자연의 기계론적 면만을 다루어야 한다고 종종 말해지곤 했다. 따라서 예를 들어 1660년대에 공기의 탄력성에 관한 보일의 연구를 비판하던 사람들은 기계론적 설명의 적절성에 의문을 제기했고, 정신적 힘을 고려해야 할 필요성을 강하게 주장했다. 이에 대한 답으로서 보일은 자신의 깊은 신앙심을 언급하면서, 한편으로는 자연철학의 적절한 범위를 그 비판자들에게 상기시켰다.
142 뉴턴의 광학 연구를 둘러싼 대립은 지식 생산 전통이 17세기에 이르러 분열된 것임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론상의 신중함과 경험에 기반을 둔 과학의 개념이 이제는 이론적 확실성을 위해 실험적 방법뿐만 아니라 수학적 방법도 전개하는 과학 개념을 병합되었다. 머뭇거림은 야망으로 자연의 구체적 특성에 대한 존경은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이상화의 탐구로 수집가의 겸손은 추상화된 철학자의 자신감으로 나타났다. 여러분은 자연의 본질을 포착하고, 그 규칙성의 표현에 대해 동의를 얻기를 원하는가? 여러분은 실제로 세상에 존재하는 중간 정도 크기 물체들의 움직임에 대해 묘사하는, 혹은 그것을 일반화하는 학문에 자신이 길들여지기를 원하는가?
147 17세기의 기계론적 철학자들은 어떤 경우라도 철저히 자연계에 대한 목적론적 설명을 배제하려고 했다. 그러나 일상적인 인간의 문화적 행위를 해석하는데는 목적론이 정당하다고 여겼고, 당시 대부분의 역사학자들이나 사회학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인간 행위 자체- 물리적 움직임이 아닌 의도적 행위는 그 행위가 가지고 있는 관점, 목적, 의향을 어느 정도 구체적으로 표현한다. 작별인사를 하며 손을 흔드는 사람의 행위는 손 근육 운동의 정교한 묘사만으로는 제대로 설명되지 않는다. 이와 마찬가지로 자연철학자들이 믿고 탱했던 모든 것은 자연지식에 대한 목적론적 의미로 다루어져야 한다. 일반적으로 자연지식의 목적은 무엇인가? 구체적으로 말해, 17세기에 착수된 자연철학 개혁의 최종 목적은 무엇이었는가? 자연 지식의 외양은 의도했던 목적에 따라 갖추어 겼고, 쓸모에 따라 그 의미가 부여되었다.
187 과학혁명에 대한 설명에서 일관되게 제기되는 주제는 자연 현상의 종교적 설명에 대한 근대 학자들의 의심, 또는 격렬한 거부이다. 즉 자연 현상이 보여주는 목적을 자연의 원인이라고 규정하는 데 대한 거부인 것이다. 그러한 주제는 아리스토텔레스주의적 '자연의 지위'에 관한 교리에 대해 갈릴레오와 홉스가 비판한 것에서부터 메르센이 주장한 '르네상스 자연주의'의 기계론적 복귀, 보일이 가졌던 '자연 법칙'이라는 말의 철학적 사용에 대한 경계심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나타난다. 그러므로 극단적으로 요약하다 보면 그 주제가 과학혁명의 '중요한 본질', 또는 적어도 기계론적 철학의 본질을 빼앗는다고 결론을 내릴 수도 있다. 기계론적 설명은 목적론적 설명을 대신했고, 그럼으로써 근대성을 만들어 냈다고 보는 것이다.
196 기계론적 철학자들에 의해 매우 격렬하게 비판받은 아리스토텔레스주의의 목적론적 구조는 인간과 자연 모두를 해석하는 데 정당하다고 생각된 목적론적 학풍을 가지고 인간과 자연에 대해 통합된 이해를 추구했다. 그러나 17세기 기계론적 철학자들의 목적론에 대한 거부는 인간의 존재 이유에 대해 말하는 방식이 자연의 과정에 대해 말하는 방식과 근본적으로 달라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인간은 더 이상 우주의 중심이 아닌데, 지각 있고 도덕적인 본성에 대해 말하는 근대적 방식은 오히려 인간을 더 특별하게 만들었고, '자연의 형식으로부터 멀어지게 했다. 데카르트 같은 기계론적 철학자들이 주장한 대로 인간의 신체를 기계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의 집단적 인간성의 조건은 인간을 기계가 아닌 것으로 취급하게 했다. 인간이라는 존재의 일원으로 말하는 것은 목적, 외식, 그리고 도덕적 책무라는 관념과 교류하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 자신을 기계와 기계적 자연으로부터 실제로 구별해 내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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