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완 윌리엄스: 삶을 선택하라
- 책 밑줄긋기/책 2023-26
- 2026. 9.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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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선택하라 | 로완 윌리엄스 선집 (비아) | 로완 윌리엄스 - ![]() 로완 윌리엄스 (지은이),민경찬,손승우 (옮긴이)비아 |
서문
1부 성육신에 관하여
1. 단순함의 나라
2. ‘두려워하지 마라!’
3. ‘우리는 모두 그의 충만함에서 선물을 받았습니다.’
4. 하느님의 생명을 품은 이야기
5. 가장 가난한 이에게 가장 좋은 것을
6. 하늘과 땅의 결혼식
7. 세상의 구원자들, 죽을 수밖에 없는 메시아들
8. 의존에 관하여
9. 위대하다 당신의 신실함
10. 생명의 말씀, 기도의 말
2부 부활에 관하여
1. 내려놓기
2. 빛 속으로
3. 지금 여기에
4. 죽음의 부정
5. 삶을 선택하라
6. 자유케 하는 진리
7. 승리가 죽음을 삼키리라
8. 숨겨진 영광의 씨앗
9. 생명의 신호를 보이라
10. 행복과 기쁨
11. 그것이 진리입니까?
156 제국에게 이 사건이 더 심각했던 이유는 이 사건이 단 한 번 일어난 일 같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다시 살아난 그는 '첫 번째'였을 뿐입니다. 그가 죽음에서 살아났다는 것은 모든 사람이 다시 살아날 수 있음을, 어떠한 생명도 잊히거나 사라지지 않음을, 하데스가 지배하는 어두컴컴한 지하 세계로 밀쳐 내버린 이조차 다시 돌아올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이제 죽음은 사람과 사람이 맺은 관계의 끝이 아니며, 하느님께서 사람과 맺으신 관계의 끝도 아닙니다. 이러한 소식은 기쁜 만큼이나 충격적인 소식이며 손에 피를 묻힌 제국에게는 특히나 두려운 소식입니다. 우리는 너무도 아무렇지 않게 그리스도교가 이 세계에 가져온 것이 무엇인지를 잊어버리곤 합니다. 너무나 익숙해진 나머지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당연한 게 아니었음을 잊어버린 것이지요. 고대 세계에 모든 생명이 소중하다는 생각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특정 상황에서는 아버지가 자식을 주인이 종을 죽일 권리가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범죄자들이나 전쟁 포로들이 서로 죽이는 모습을 보러 극장을 찾았습니다. 대량 학살은 전쟁이 벌어지면 늘 따르는 일이었습니다. 몇몇 철학자가 추상적으로 인간의 존엄성을 논하기는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도 한 생명을 소모품처럼 취급하는 정치 현실을 불가피한 것으로 여겼으며, 이에 익숙했기에 괴로워하지도 않았습니다. 이러한 태도는 인류 역사에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충격적인 일이지요. 그리스도교는 자신이 제시한 비전을 실현하는데 너무나 자주 실패했습니다. 그러나 이를 모두 인정한다 해도 그리스도교가 인류 문화에 돌이킬 수 없는 전환을 일으켰다는 사실은 변치 않습니다. 그리스도교는 말합니다. 한 사람의 가치는 결코 폭력이나 죽음으로 사라지지 않는다고, 누구도 잊혀서는 안 된다고.
168 첫 번째로 명심해야 할 것은 바울로는 우리가 영원히 살 것이라고 말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무수한 그리스도교 사상가가 수도 없이 이를 말했지만, 우리는 이 점을 계속 놓칩니다. 오히려 그는 우리가 죽을 것이며 예수께서 다시 살아나셨듯이 우리도 다시 살아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는 심령주의나 냉동학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이른바 '생존'에 관한 이야기도 아닙니다. 바울로는 우리가 죽지 않고 이생을 계속 살리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우리가 하느님의 활동으로 인해 다시 살리라고 생각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죽음이라는 현실을 제대로 받아들이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 안에서 우리를 옭아매는 것, 우리가 편협한 사리사욕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모든 것을 죽여야 합니다. 진실로, 바울로가 우리에게 가르친 것은 죽기를 거부하는 마음, 우리의 한계를 두려워하며 이를 부정하는 태도가 우리의 이기적인 습관, 자신을 마비시키는 죄 된 습관의 뿌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죽기를 거부하는 마음을 죽여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건강한 환경은 우리와 우리의 한계, 시시각각 닥쳐오는 사고, 거침없이 우리를 바꾸어 놓는 세월의 흐름을 받아들이게 도와줍니다. 해로운 환경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 자신을 탓하게 하고, 보상해줄 대상을 찾게 하며 시간과 변화로 인해 아무런 흠집도 나지 않기를 바라는 우리의 환상을 붙잡도록, 이를 유지하는 데 안간힘을 쓰도록 부추깁니다.
169 바울로는 우리에게 말합니다. 우리가 희망하는 바가 이 세상에서의 삶을 보장받고 그 삶이 이어지는 것이라면, 우리가 확보한 안락이 결코 도전받지 않는 것이라면, 우리가 언젠가는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이며 유한한 존재라는 현실과 직면하지 않는 것이라면 하느님께서 우리를 도우실 것이라고. 그러한 희망이 환상, 우리 자신의 영혼을 죽이는 행위, 우리 자신을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길임을 일깨워 주실 것이라고 말입니다. '참된' 삶은 죽음과 정반대 편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며 우리는 지금 여기에서 우리 자신을 방어하는 법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것에 마음을 열고 사는 법을 익혀야 한다고 그는 말합니다.
171 예수의 부활이 중요한 이유는 우리가 통념적으로 알고 있는 죽음 이후의 삶이 있음을 입증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예수의 부활이 입증하는 것은 하느님께서 약속을 지키신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아들 예수를 향한 아버지 하느님의 헌신은 절대적이며 영원합니다. 십자가조차 아버지와 아들을 갈라놓을 수는 없습니다. 참 생명, 곧 갈릴래아 예수의 평범한 육체적 삶과 그렇지 않은 영적 삶 모두 십자가 저편에서 회복됩니다. 우리 가운데 계시는 하느님이신 예수께서 당신의 친구들과 맺으신 거룩한 약속, 자비와 갱신의 약속 역시 절대적입니다. 제자들의 불신앙조차 이를 깨뜨릴 수 없습니다.
171 죽음은 우리와 하느님의 관계가 단절되는 사건, 하느님께서 결국 우리를 일회용으로 여기고 계심을 드러내는 사건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예수의 부활 안에서, 그리고 그 부활을 통해 하느님께서 신실하심을 확신할 수 있다면 우리는 죽음을 달리 대할 수 있습니다. 이는 죽음이 더는 별다른 문제가 되지 않는다거나, 우리를 해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우리가 이전처럼 계속해서 나아갈 수 있다는 보장을 받은 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죽음을 달리 대할 수 있는 이유는 하느님께서 우리와의 관계를 끝내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더욱 그분께 받아야 하며 그분께서는 우리가 더 받기 위한 가능성을 여는 조건을 마련하실 것입니다.
200 여기서 우리는 하나의 단서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즉 부활은 죽음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부활은 십자가에서 일어났던 악몽 같은 죽음을 현실 아닌 무언가로 만들지 않습니다. 이때 죽음은 예술가와 과학자, 심리학자들이 말했던 바로 그 죽음입니다. 죽음은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반응과 성장이 완전히 멈추는 것이며, 우리가 가치 있다고 여기거나 잘 알고 있는, 혹은 바라는 그 모든 것에 밤이 찾아오는 것입니다. 그러니 누군가의 죽음 앞에서 두려움을 느끼는 것. 슬퍼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입니다(기억하십시오. 예수께서도 친구가 죽음에 이르자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죽음을 피하려 하지 마십시오. 죽음이 지닌 심각성을 부정하지 마십시오. 죽음에서 눈을 떼지 마십시오. 죽음을 마음에 되새기십시오. 교회 전통은 날마다 죽음을 생각하라고, 죽음을 준비하라고 조언합니다. 이는 죽음에 대한 병적인 관심을 보이라는 말이 아닙니다. 그것이 영원하지 않으리라는 사실과는 상관없이 모든 순간과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 소중히 여기십시오. 소중히 여기는 법을 몸에 익히십시오.
202 부활 이야기는 예수가 어떻게 죽음에서 살아났는지, 혹은 어떻게 예수의 영이 죽을 수밖에 없는 몸(이든 그 무엇이든)이 없어져도 존재할 수 있는지를 말하려 하지 않습니다. 부활 이야기는 어둠 속으로 내려간 한 사람이 그의 모든 것, 그가 겪은 모든 순간, 모든 존재가 사라졌다가 무에서 다시 부름받았다고 말합니다. 누군가 말했듯 부활은 하느님께서 진행하시는 창조를 이루는 말씀이 결코 억눌리지도, 침묵하지도 않음을 확증하는 제8 요일,우리의 상상을 벗어난 새로운 무언가입니다.
203 하느님께서는 죽음을 굴복시키십니다. 부활은 죽음을 굴복시키는 유일한 길이자 우리가 이를 분명하게 알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역사 속에서, 하느님께서는 예수의 생명을 보고 만질 수 있도록 새로이 창조하셨기에 우리는 늘 그러했던 모습의 예수로 그분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분은 우리가 그 온전함을 다 파악할 수 없는 방식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죽음은 예수를 가장 악랄하게 괴롭히도록 허락받았습니다. 그분은 육체적인 고통을 겪고 죽음을 맞이했을 뿐 아니라,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동안 두려움과 외로움이라는 고통도 겪어야 했습니다. 그분은 모든 것을 내려놓았습니다. 하느님께서 개입하셔서 죽음을 피하게 하시리라는 희망조차 내려놓았습니다. 그렇게, 그분은 지옥으로 내려갔다가 창조주 아버지의 부름을 받아 다시 건져 올려집니다. 그 모든 과정에서 그분은 죽음과 고통스러운 전투, 투쟁을 벌이셨습니다(고통agony의 뿌리가 되는 그리스어 아곤은 본래 투쟁을 뜻합니다). 그리고 그분은 승리하셨습니다. 이 승리는 관계의 역전을 뜻하지 않습니다. 지난 일을 모두 무로 만드는 것도 아닙니다. 부활의 승리는 다시 살아난 삶, 새로운 시대의 시작을 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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