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라 타라브라: 암스테르담 국립 미술관
- 책 밑줄긋기/책 2023-26
- 2026. 9.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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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스테르담 국립 미술관 | 마로니에북스 세계미술관 기행 9 | 다니엘라 타라브라 - ![]() 다니엘라 타라브라 (지은이),윤인복 (옮긴이)마로니에북스 |
서문
암스테르담 국립 미술관
작품들
마술관 안내
화가 및 작품 색인
11 암스테르담 국립 미술관의 입구를 통과하는 방문객들은 17세기에 제작된 렘브란트, 베르메르, 프란스 할스 외에도 무수한 네덜란드 화가들의 작품이 이 놀라운 컬렉션에서 그들을 기다린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이곳 암스테르담 국립 미술관은 수많은 작품을 수집했지만, 특히 네덜란드 회화의 걸작품들을 한 장소에 다시 모았다는 점에서 커다란 의의가 있다. 따라서 이 박물관의 기원은 18세기와 19세기 사이 유럽에서 시작된 근대 박물관학의 역사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국립 미술관의 변천은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의 변천사와 평행을 이룬다. 둘 다 18세기 말에 세워졌으며 나폴레옹의 재위기간 동안 준비되었다. 그러나 암스테르담 국립 미술관은 빌렘 5세의 개인 컬렉션에서 유래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과는 달리 저지대 국가의 상업 사회의 특성으로 도시 단체의 추진력에 의해 발전한 것이었다. 이런 시민 정신으로 나타난 수집의 특징은 '황금시대' 인 17세기 네덜란드 회화의 기본을 이루게 된다. 당시 국립 미술 갤러리(Nationale-Kunst Galerij, 나티오날레 쿤스트할레레이)는 헤이그의 인근에 있었으며, 아무도 거주하지 않았던 데스타테 를 개조한 것이었다. 원래 이곳에 있었던 200여 점의 작품들은 하위스 텐 보스 왕궁으로 옮겨져 1800년 5월 31일에 처음으로 일반인들에게 공개되었다. 1795년 프랑스 대혁명이 저지대국가의 연방공화국─ 바타비아 공화국 건설(1795-1806년) ─ 을 붕괴했을 때 오렌지 가의 수집 미술품은 프랑스로 옮겨져 루브르 미술관으로 흡수되었다. 영국으로 망명한 얼마 동안 총독 빌렘 5세의 수집품 일부는 권력의 지배적 질서를 위해 경매로 팔리게 되었다. 남은 작품의 일부는 ─ 특히 회화, 초상화 그리고 역사적 가치의 물건들은 ─ 국립 미술 갤러리 컬렉션의 기반을 형성하게 된다.
1800년, 프랑스 황제의 아우 루이 나폴레옹이 바타비아 공화국(후에 네덜란드 왕국으로 탄생)의 왕좌에 오르게 됨과 동시에 최초의 작품얀 아셀렌의 <위협적인 백조>이 구입되었다. 그 후 암스테르담은 왕국의 수도로 선택되었으며, 1648년 야코프 반 캄펜이 담'에 세운 시청사 건물은 현재 왕궁으로 변화되었다. 이미 새로운 왕은 왕의 거처와 그의 정부를 암스테르담에 건설하기로 확정했고, 또한 문화의 중심부를 암스테르담에서 실현할 뜻에서 1808년 왕궁의 1층에 거실과 두 개의 방을 정리하여 '회화, 소묘, 조각, 브론즈, 보석, 골동품, 작품과 관심 있는 모든 유형에 대한 수집품'으로 컬렉션을 설립할 것을 규정했다. 국립 미술 갤러리에는 이미 매입했던 오렌지 가의 컬렉션에 있던 작품들 이외에도, 미술관 설립 후 즉시 구입한 65점을 추가로 입수했으며 당시 가장 유명한 게리트 도우의 <야학교>를 배치하고 있었다.
당시 암스테르담 시는 렘브란트의 <야간순찰대>와 <직물조합의 평의원들 초상>들, 반 데르 헬스트의 <시민 민병대의 연회>, 반 데르 벨데의 <암스테르담의 항구>를 포함한 7점의 중요한 회화 작품을 기증하였다. 또한 국립 미술 갤러리에 대한 루이 나폴레옹의 깊은 관심은 메추의 <아침식사>와 스텐의 <성 니콜라오 축제> 같은 걸작들로 미술관의 컬렉션이 더욱 풍부해진 사실을 통해 알 수 있으며, 이는 한 해에 137점의 회화 작품을 구입한 것으로 증명된다. 미술관의 책임자로 임명된, 코르넬리스 아포스톨이 출간한 첫 번째 작품 목록'에 따르면 개관 당시 미술관은 583점의 작품을 보유하고 있었다.
나폴레옹이 프랑스와 네덜란드를 병합했을 때 이러한 번영의 기간은 일시적인 중단을 겪었다. 그러나 1813년 프랑스가 네덜란드를 지배하던 사건이 종결되면서, 오렌지 가의 6대 후손인 빌렘 1세가 네덜란드의 왕위를 계승했다. 그는 프랑스에 귀속되었던 자국의 국립 미술관이 암스테르담에 남아 있어야 한다는 결심을 했고 이에 따라 야심 찬 문화 계획을 준비했다. 얼마 후네덜란드 왕국의 미술관에는 암스테르담 국립 미술관(Rijksmuseum)' 이라는 이름이 붙여졌고 루브르 박물관에 몰수된 작품이 반환되면서 공간에 대한 부족 문제를 더 절실히 느끼게 되었다.
또한 이 시기에 사들인 프란스 할스의 <즐거운 음주가>, 필립스 바우베르만의 <백마> 등을 포함한 몇몇 작품으로 전시 공간이 부족한 문제는 더욱 심각해졌고, 일부의 수집품은 트립펜후이스로 옮겨졌다. 이곳은 1817년 2월에 미술관처럼 대중들에게 개방되었고, 이 시기에도 전시 공간이 불충분한 것은 사실이었지만, 국립 미술관 컬렉션의 작품은 그곳에 70년 동안이나 전시되었다.
18 1852년에 구입한 작품 중 할스의 <신혼부부 초상>이 중요한 가치를 가졌다면, 다른 한편으로 미술관은 높은 가치를 가진 두 개의 유산- 1870년에는 회화작품 63점으로 구성된(호베마 루이스달, 반 고이엔, 스텐, 마스의 작품을 포함한) L.뒤페르 웨젠의 유산과, 1873년에 M. A. 리오타르드가 소장했던 스위스 화가 리오타르드의 15점의 파스텔화를 포함한 작품을 기증받았다.
또한 현실적인 관점에서 새로운 미술관의 필요성은 지체할 수 없는 요구사항처럼 인식되기 시작하였다. 당시 미술관의 조명은 적합하지 않았으며 미술관 가까이에는 난방시설과 석유 보관실이 있어 화재의 위험이 있었다 따라서 앞으로 건립할 새 건물은 국가의 힘과 영광을 미래의 후손들에게 나타내 보일 정도의 국가적 기념물이어야 했다. 네덜란드 정부는 이를 추진하고자 건축가들로부터 수집품을 보관할 새 건물의 설계도를 공모하였고, 스물 한 명의 건축가들이 이 경합에 참가했다. 그러나 당선자로 지명되었던 P. J. H. 카이퍼스(1827-1921)의 설계 제안서가 작업에 착수되기까지는 십 년이 걸렸다. 결국 1876년이 되어서야 작업은 시작되었고, 1885년 7월 13일에 암스테르담의 국립 미술관은 공식적으로 개관되었다.
팔라초(palazzo,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기의 귀족들을 위한 살림집-옮긴이)는 미술사의 사원처럼 미술관의 의미에 대해 강조하고 있다. 이 새로운 건물은 네덜란드의 옛 도시와 새로 확장된 19세기의 도시에서 사용되었던 전통적 재료인 붉은 벽돌과 장식적인 모티브들을 이용하여 네오고딕양식으로 설계되었다. 이 건물의 정면 위쪽에 있는 장식 조각상, 부조, 도자기 판, 납으로 봉인한 유리 창문과 입구, 복도, 출입문은 네덜란드의 다양한 시대에 대한 예술사를 나타내 보인다. 내부에는 모자이크 바닥, 장식된 기둥, 다양한 종류의 돌로 구성된 천장, 비문, 벽화의 제작 등으로 예술가들과 그들의 작품에 경의를 표현했다.
그 밖에도 카이퍼스가 계획한 미술관 뒤쪽의 야외정원은 네덜란드의 여러 도시에 설립된 건축 유물들의 파편으로 형성되었다. 그러나 새로운 미술관을 개관하는 날부터 그림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 사실을 고려하면 이 같은 과다한 장식은 작품 감상에 필요한 최적의 시각을 방해하고 있었다. 미술관은 베르메르의 <연애편지>와 프란스 할스의 <자화상>을 구입했으며, 1921년에는 베르메르의 <골목길>을 기증받았다. 1차 세계대전 이후 이미 전시된 작품들은 1600점이었다 더 실용적인 공간을 위해서, 또는 1916년 드르케르와 같은 기증된 작품의 소장을 위해서 건물의 기본적인 개조를 착수했다.
국립 미술관은 구입과 기증 등으로 수집한 중세 후기부터 19세기 초까지의 네덜란드 회화를 다양하게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는 거장들의 작품뿐만이 아니라 다소 유명하지 않은 화가들의 작품도 다채롭게 구성되어 있으며 이는 전시장의 모습을 더욱 완벽하게 하는데 일조했다. 외국의 회화 작품들은 대부분 크기가 작은 편이지만, 피에로 디 코시모, 카를로 크리벨리, 무릴로, 루벤스, 반 데익, 리오타르드, 고야와 같은 플랑드르, 이탈리아 그리고 스페인 거장들의 귀중한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또한 미술관은 다음과 같은 중요한 부분을 포함하고 있다. 예를 들어 더 다양한 재질로 이루어진 가구, 인형, 금은세공, 보석, 도자기, 유리공예, 벽걸이 양탄자, 직물 그리고 의상 등이 바로 그것이며, 이는 1816년에 설립한 왕실 컬렉션 소유의 희소가치가 있는 수집품들이다. 그 밖에도 렘브란트의 상당수의 에칭 작품들과 소묘, 그리고 인도, 중국, 일본, 인도네시아와 같은 여러 대륙의 화가들에 의해 나타난 아시아의 다양한 미술 수집품들이 소장되어 있다.
2003년 12월부터 미술관은 건물 내부의 기본적인 복원과 현대화 작업을 의뢰하였다. 스페인 출신의 건축가 안토니오 크루즈와 안토니오 오르티즈의 감독 아래, 이 작업은 2008년까지 연장되었다. 작업기간 동안 미술관은 부분적으로 개방되며, '황금시대' 인 17세기 네덜란드의 조각, 도자기, 장식미술, 그리고 역사물들을 포함한 걸작품들을 '필립스 왕에서 전시한다. 그리고 새로운 암스테르담 국립 미술관은 21세기의 수많은 방문객을 받아들이기 위해 2008년을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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