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카 모자티: 대영 박물관 | 마로니에북스 세계미술관 기행 7

 

대영 박물관 | 마로니에북스 세계미술관 기행 7 | 루카 모자티 대영 박물관 | 마로니에북스 세계미술관 기행 7 | 루카 모자티 - 10점
루카 모자티 (지은이),최병진 (옮긴이)마로니에북스

서문
런던 대영 박물관
작품들
미술관 안내
작품 색인



11 계몽주의 문화의 토양에서 태어난 대영 박물관은 일부 학문의 연구자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을 대상으로 인류에 공헌할 수 있는 '공공 서비스'를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대영 박물관 소장품의 기원은 뉴턴의 뒤를 이어 왕립 과학원의 의장이었으며 조지 2세의 개인 주치의이기도 했던 백작 한스 슬론 경의 기증이다. 자연사에 관심이 많았던 슬론 경은 박학다식하고 문화적 선입견이 없던 수집가였다. 그가 죽음을 맞이했을 때 약 71,000에 가까운 수량의 개인 소장품을 남겼으며 이 사이에는 과거의 의상들, 소화와 고서본들, 판화들과 고대에서 근대에 이르는 동전과 메달들, 인장 및 희귀한 수석들, 과학적 측정 도구들이 포함되어 있다. 또한 자연사에 관련된 수많은 서적과 식물도감도 있었다. 슬론 경은 자신의 개인 소장품을 국가의 발전을 위해서 조지 2세에게 기증하였고 자녀들에게는 20,000스털링을 남겼는데, 이는 소장품들의 가치에서 겨우 4분의 1 정도에 해당하는 금액이었다. 

1753년 영국의 의회는 대영 박물관에 관한 법을 제정하였고, 1759년 1월 15일 복원 작업이 끝난 몬타구 하우스에서 대영 박물관을 개장하였다. 피에르 푸제(1620-1694년)가 복원한 몬타구하우스는 20세기 말 런던에 있는 유명한 건물중의 하나였다. 영국 의회에 의해서 제정된 대영박물관의 입법은 박물관의 모든 소장품과 이후에 수집될 모든 소장품들을 학문 연구자 이외에도 이에 대해 관심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공개한다는 공공의 목적을 명시하고 있으며, 당대의 공언은 오늘날 대영 박물관에서도 이용의 편의와 제도, 법령과 무료입장권을 통해서 지켜지고 있다. 대영 박물관은 새로운 박물관 건물을 확장하기로 결정했던 1802년까지 분더캄머(Wunderkammer, 호기심의 방)처럼 수많은 소장품들을 빽빽하게 전시하고 있었다. 

1804년에서 1808년 사이에 건축가였던 조지 샌더스는 당대의 고전적인 건축물이던 팔라디노의 신고전주의 건축 양식으로 타운리 갤러리를 건립하였다. 오늘날 이 신축 건물은 고대 이집트의 예술품들을 위한 전시관으로 사용되며 이밖에도 찰스 타운리 경이 수집한 고전 조각들도 만나볼 수 있다. 

박물관의 고고학 연구자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끊임없는 노력을 기울여 매우 흥미진진한 유물들을 찾아내고 구입하였다. 이러한 작품 중에는 파르테논 신전의 대리석 장식 조각들(1816년 구입)이 있으며, 고대 쐐기문자의 해독에 대한 관심을 낳은 아시리아의 소장품들과 이집트 상형문자의 비밀의 열쇠였던 로제타석도 있다. 

1823년 조지 3세가 개관하였던 도서관을 그의 아들인 조지 4세가 국가에 기증하자 박물관의 큐레이터들은 이를 위한 건축물의 기금을 정부에 요청했다. 이러한 요청이 받아들여지게 되자 1823-1852년 사이에 로버트 스머크 경의 기획으로 새 건물을 지을 수 있었다. 그는 직사각형 구조로 이루어진 이 건물의 동쪽 공간에 새로운 도서관을 설치하였고 남쪽의 공간은 이전 몬타구 하우스를 대체할 수 있도록 설계하였다. 1845년 로버트 스머크 경은 형제인 시드니 스머크 경에게 일의 진행을 위임하고 건축가로서 은퇴하였다. 

16 초기에 큐레이터들은 한스 슬론 경의 분류 체계를 따라 인쇄본과 판화, 고서와 메달들, 그리고 자연사관련 소장품과 '인위적 흥미를 유발하는 소장품'으로 이를 나누어 관리하였다. 1807년 고고학 부서의 설립으로 박물관은 자연 과학에 관련된 소장품들과 그 이외의 것들을 나누어 분류할 수 있게 되었고, 1년 후에는 인쇄본과 소묘화 분야가 고고학부에 포함되어 독립적인 큐레이터를 두게 되면서, 이 분야는 1836년에 독립된 부서로 승격했다. 

1861년에 고고학 부서는 동전과 메달, 그리스 로마의 고전작품, 동양의 고전작품으로 관리 분야가 나뉘어져 있었다. 동양 고전작품 분야는 1866년에 아시리아와 이집트의 고전을 담당하는 부서로 신설되었으며, 동양 고전작품 분야의 하부 부서에 속하던 민속학과 고대 영국, 중세 분야 또한 1866년 독립적인 부서가 되었다. 

박물관은 1912년에 동양 예술 분야의 인쇄본과 소묘에 관한 하부 부서를 설립하였고, 1921년에는 도자기와 민속학을 다루는 부서를 신설하였다. 1946년 민속학 분야는 동양의 고전 예술을 담당하는 부서에서 분리되었다. 1955년엔 고대 이집트와 아시리아를 담당하는 부서가 고대 이집트와 서아시아의 고대로 분화되었다. 또한 1969년에 고대 영국과 중세는 선사 시대와 로마─영국, 그리고 중세와 이후의 시대로 나누어 분류했다. 이에 따라 박물관의 각 부서는 담당하던 내용에 큰 변화 없이 고대 이집트와 수단(고대 이집트), 고대 근동(고대 서아시아), 유럽의 중세와 근대(고대 중세와 이후), 선사와 유럽의 고대(선사 시대와 로마─영국의 고대)를 담당하는 부서로 나뉘어졌다. 또한 마지막 두 부서는 2003년에 통합되었고 고대 일본과 고대 동양의 예술 작품들은 현재 아시아 담당 부서에서 관리하고 있다. 

고대 이집트와 수단
소장품의 질 혹은 그 규모로 보아 세계에서 가장 귀중한 이집트 예술품들을 가지고 있으며 이들 중에는 크기가 큰 조각 작품들도 포함되어 있다. 대영 박물관의 이집트 소장 예술품의 기원은 특별한 의미가 없는 몇 점의 소장품과, 1801년 이집트에서 프랑스 군에 대항한 영국군의 승리로 거슬러 올라간다. 나폴레옹에 의해 주도되었던 연구와 소장품들은 이제 영국인의 몫이 되었고, 이러한 소장품 중에는 이집트 상형문자의 해독에 중요한 열쇠가 되었던 로제타석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후 카이로의 영국 지휘관이었던 헨리 슬랫 장군은 조반 바티스타 벨초니를 도와 박물관을 위해서 크기가 큰 조각 작품들을 수집하였다. 또한 19세기 말 이집트 연구협회의 후원은 개인 소장 작품이나 이집트 고고유물부, 혹은 다른 기관에서 발굴된 매우 중요한 작품들의 구입을 가능하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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