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형: 空 · 반야심경 읽기
- 책 밑줄긋기/책 2023-26
- 2026. 9.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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空 · 반야심경 읽기 | 수인 총서 1 | 서정형 - ![]() 서정형 (지은이)공감과소통 |
서문
일러두기
1부 空이란 무엇인가?
1. 죽기 전에 알아야 할 空
2. 空의 이해
3. 空 개념의 역사
4. 空의 세계
5. 空을 보는 법[空觀]
2부 반야심경 해설
1. 경전의 이름 :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
2. 관자재보살에 대하여
3. 총론
4. 각론
5. 반야를 찬탄함
6. 만트라
찾아보기
107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 줄여서 <반야심경>, 더 줄여서 <심경>이라고 부른다. 마하(maha)란 '크다'는 뜻이다. 반야(prajn)는 지혜, 바라밀다(pāramitā)는 '저 언덕으로 건너간 '완성된'이라는 의미요, 심(hrdaya)은 심장(heart)을 가리킨다. 마음(mind)이 아니다. 경(sutra)은 경전을 가리킨다.
다섯 조각을 붙여보면, "저 (대자유의 언덕으로 건너간(혹은 건 너가는) 크나큰 지혜의 골수를 말씀하신 경전쯤 되겠다. 형용사maha가 경(sutra)을 수식하는 것으로 보아 '위대한 경전'으로 풀어도 된다. 수사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다시 분해해서 보자.
mahā
여기서 '크다'는 것은 "고래가 새우보다 크다"고 할 때의 비교 우위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상대적인 큼이 아니라 절대적 큼이라는 말이다. 세상에 '절대'가 어디 있는가? 공간적으로 아무리 큰 것도 그보다 '상대적으로 더 큰 것을 생각할 수 있고, 시간적으로 아무리 오래된 것도 그보다 상대적으로 더 오래된 것을 상상할 수 있다. 그러나 절대적 큼이라는 것은 '생각으로 측량할 수 없는' 큼이다.
우물 속에 살던 개구리가 태평양을 보게 되면 절로 입이 딱 벌어지면서 할 말을 잃는다. 그래도 속으로는 "엄청나게 넓구나!"라고 생각할 수는 있다. 이것은 바다가 우물'보다' 크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 개구리가 해변에 누워서 하늘을 바라보며 무한한 우주의 크기, 그 끝을 사유하게 되면 '크다'는 말도 부족하다는 것을 느낀다.
무한(無限, the infinite)은 사유의 대상이 아니다. 그것을 불교에서는 불가사의라는 말로 표현한다. 불가사의는 글자 그대로 "생각할 수 없다不可]"는 뜻이고, 논리나 지식으로 담을 수 없다는 뜻이다. 크다는 말조차 붙일 수 없지만 짐짓 '크다'고 한 것이다.
prajñā
'프라즈냐'를 음역한 것이 반이다. 산스크리트어를 한문으로 번역할 때 뜻으로 번역하기도 하고 소리로 번역을 하기도 하는데, '프라즈냐'를 '반야'로 음역한 것은 의역으로는 그 깊은 뜻을 다 드러낼 수 없다는 고심의 흔적이다. 의역하면 지혜다.
붓다의 명칭 중에는 세간해라는 것이 있다. '세상일도 잘 아는 분'이라는 뜻이다. 카필라 성의 왕자로 살면서 수사학, 수학, 철학, 음악, 군사학, 무예 등 다방면의 교육을 받았고, 또 깨달은 후의 말과 행적을 보면 세상일에 대한 지혜도 밝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지혜는 출세간의 일, 궁극적 진리를 꿰뚫어 아는 지혜를 가리킨다. 궁극적 진리는 이요, 연기요, 무아다. 그것을 '꿰뚫어 안다', 혹은 '깨닫는다'는 것은 단순히 지식의 차원에서 그것을 해석하고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실상을 체험적 차원에서 안다는 뜻이다. 이 문제는 아주 중요하므로 1부에서 '진리의 두 가지 차원'이라는 주제로 다루었다.
pāramitā
바라밀다, 혹은 바라밀로 음역된다. para는 '저 건너편, 궁극, 완성'이라는 뜻이고, ita는 '간다(to go)'는 뜻의 어근'의 과거분사로서 영어로 gone과 같다. 합치면 '저 언덕으로 간'이란 의미이다.
para ita의 중간에 삽입된 m은 활음조로 쓰인 매개자음이다. paramita를 완성, 혹은 도피안渡彼岸으로 번역하는데 저 언덕'으로 '건너간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prajna와 paramita를 합치면, '지혜의 완성', 혹은 '저 언덕으로 건너간 지혜'라는 뜻이 된다. 나는 후자가 뜻을 잘 살린 번역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저 언덕'이란 '이 언덕'에 대비되는 말이다. 이 언덕은 무지와 고통의 사바세계요, 저 언덕은 지혜와 안락이 있는 대자유의 세계이다. 저 언덕으로 건너갔다는 것은 궁극적 진리를 얻었다는 비유이다. 그러므로 이 언덕과 저 언덕은 공간상의 분할이 아니다. (空의) 진리를 깨치게 되면 서 있는 자리가 바로 '저 언덕'이 되는 것이다.
알면 지척이요, 모르면 천리다. 깊이 통찰한다는 의미에서 '깨친다'고 표현했지만 결국 '아는' 것이고 이해하는 것이다.
hrdaya
자세히 보면 밑에 점이 있다. 발음은 '흐리다야'와 비슷하다. 장기인 염통 혹은 심장을 가리킨다. 비유적으로 핵심, 골수라는 의미로 쓴 것이다. 원래 반야경 계열의 경전 중에는 십만송에 이르는 긴 것도 있다. 그만큼 경전의 종류와 수도 많다. 아무리 많아도 사상에 뿌리를 두고 있고 넓게 보면 대승불교 자체가 사상의 토대 위에 세워져 있다. 그렇기 때문에 <반야심경>은 반야경전들의 골수 일뿐만 아니라 불교철학 자체의 골수이기도 한 것이다.
<반야심경>의 한역본이 여럿 있는데 글자수로는 모두 300자를 넘지 않는다. 문자로는 짧지만 뜻으로는 결코 짧지 않은 경전이다. <반야심경>에 담긴 사상을 제대로 이해하게 되면 경전의 바다를 자유로이 유영할 수 있다.
sutra
보통 '경'으로 번역된다.
불교는 세 개의 바구니(Pitaka)에 담겨 있다. 부처님의 말씀인 경장(Sutra Pitaka), 경에 대한 주석서인 논장(Sastra, Pitaka), 계율을 기록한 율장(Vinaya Pitaka)이다. 합해서 삼장(Tripitaka)이라고 한다. <서유기>에서 손오공을 데리고 다닌 삼장법사는 삼장에 두루 통달한 선생님이란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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