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담화冊談話 | 미 제국 연구(12) ─ 1부, 4장. 독립을 위한 투쟁

 

2026.10.14 📖 미 제국 연구(12)

앤서니 G. 홉킨스, ⟪미 제국 연구⟫
텍스트: https://buymeacoffee.com/booklistalk/American-Empire

 


앤서니 홉킨스의 《미 제국 연구》, 이번 주에는 4장을 읽고 있다. 지난 월요일에는 미국과 인도의 탈식민화 과정에 유사한 점, 미국의 건국자들이 직면했던 과제와 인도의 지도자 자와할랄 네루가 언급한 것으로 4장이 시작되었다. 그 지도자들이 부딪혔던, 대면했던 상황이 어떤 점에서 공통점이 있는가 하면 몇 가지가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인도인으로서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과정, 그것이 어렵다. 미국인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과정은 어떠한가 하면, 문화적 정체성만 가지고는 되지도 않는다. 그다음에 정치적으로 어떻게 독립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있다. 사실 미국이라고 하는 나라는 영국의 본토 식민지였고, 그 사람들은 식민지 정착자들이었는데, 정착자들은 자신들이 영국인이라고 생각을 했기 때문에 독립이라고 하는 것에 대해서 과연 무엇이 독립일까 하는 것을 생각하기 꽤나 어려웠을 것이다. 그리고 경제적인 문제는 아주 심각하다. 그래서 1776년에 독립 선언을 했는데, 그러면 오늘부터 독립이다 라고 하면서 모든 게 끝날 거라고 생각하지만 실질적인 독립이라고 하는 것은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그게 바로 이제 4장의 제목 '독립을 위한 투쟁'이다. 독립을 했는데 뭐가 또 독립을 위한 투쟁을 하느냐 하고 물어볼 수도 있지만 할 수밖에 없었다. 현실적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있다. 그냥 여러 주들이 모여 있었을 뿐이고, 주들이 모여서 최소한의 합의할 수 있는 것만 가지고, 이를테면 연방을 헌법으로 만들어냈는데, 그렇다고 해서 각 주의 이해관계가 서로 합치하거나 그러지는 않았다. 계속 불씨가 남아있고 지펴지고 하다가 남북전쟁까지 가는 것이다.  

오늘은 현실적인 국가 건설 과정에서 마주치는 문제들, 정치적인 부분들이 하나 있다. 미국 내부에서 하나의 나라one nation state를 만들어내는 데 직면했던 문제들이 무엇이고, 그것이 정치 권력의 문제 또는 정치체제의 문제라면, 다른 하나는 종속적 발전의 딜레마라는 중요한 부분이 있다. 종속적 발전의 딜레마라고 하는 것은, 경제적으로 완전히 독립된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또 어느 정도까지는 글로벌 교역의 관계에 들어가 있어서, 이 글로벌 교역의 관계에 들어가 있는 것을 어떤 식으로, 맺을 건 맺고 끊을 건 끊고 해야 되는데, 그것이 과연 쉬운 일인가 하면 정말 어려운 문제이다. 나중에 종속적 발전의 딜레마 부분을 설명하면서 말하겠지만, 탈식민화라는 것이 정말 쉽지 않다. 운이 맞아야 되고 기적과 같아야 되는 일이다. 2차 대전 이후에 탈식민화한 나라들을 보면, 일단 대표적인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그다음에 타이완, 필리핀, 싱가포르가 있다. 필리핀만 해도 1960년대만 해도 우리보다 잘 살았는데 지금 필리핀은 답이 없는 나라라고들 하는데, 제조업 생태계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수입 대체 전략을 하다가 그것을 어느 선에선 끊어야 되는데 그게 잘 안 되었다는 이야기들이 오고 간다. 그게 종속적 발전의 딜레마 부분에서, 식민지 문제는 이때도 그렇고 18세기, 19세기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계속 붙어가는 문제이다. 그래서 외국의 원조를 쉽게 받아들일 수는 없는데, 원조가 애초에 없으면 일어서지도 못하고, 어느 정도 일어선 다음에 자립적인 제조업 생태계를 만들어야 되는데, 제조업 생태계를 만든다는 것이 참 쉽지 않고, 또 한 번 만들어진 것이 잘 가다가 또 무너져 버리면 다시 만들어내는 것은 또 어렵다. 지금 현재 미국에서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처럼 그렇다. 국가의 흥망성쇠라는 것이 여러 가지가 맞추어져야 되는 것이다. 《미 제국 연구》 4장은 현실적인 국가 건설 과정에서 마주치는 문제들과 종속적 발전의 딜레마, 문화적 지속성, 이 세 가지는 정치·경제·문화이다. 그리고 정치·경제·문화가 전개되어 가면서 사회의 구성원들이 어떻게 되는가 하는 문제이다. 미국은 정말 골치 아픈 나라이다. 이른바 단일 민족 신화도 없는 나라이고, 4장에서 이 부분을 유념해서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독립을 했다. 독립을 하고 나서 보니까 영국에서 완전하게 벗어나 있는 상태는 아니고, 독립을 했는데 어떤 나라를 만들어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있다. 해밀턴주의자가 있고 제퍼슨주의자들이 있다. 우리나라도 건국을 했고 일제로부터 벗어났다. 벗어났을 때 어떤 나라를 만들 것인가를 놓고 아주 심란하고 복잡하게 싸움들이 벌어졌다. 해밀턴주의자들하고 제퍼슨주의자들이 대표적인 대립관계에 있었던 것이다. 해밀턴주의자들은 제조업 부분이 계속 성장하고 강력한 도시중산층이 형성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합리적이고 교양 있는 엘리트 집단이 사회를 이끌어야 한다고 생각을 했다. 그래서 이 사람들이 생각하는 선행하는 모형이 무엇인가 하면, 영국을 보니까 젠트리 계급이 나서서 성공했다는 것이다. 토지 귀족들도 어느 정도 양보를 하고, 영국이 보여준 발전 모델을 가지고, 영국의 모형이 어떤 것이냐는 여기서 아주 중요한 문제는 아니지만, 자기들이 보기에는 영국이 성공적인 발전 모델을 제시한 것은 사실이다. 신대륙의 조건에 맞게 변형해서 그것을 따라가면 된다는 것이다. Fast Follower, 아주 재빠르게 따라가는 그런 전략을 취했던 것이다. 2차 대전 이후에 일본이나 우리나라나 그것이 한미일 삼각동맹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그런 모형을 가지고 우리도 시작을 했었다. 처음에는 박정희도 수입대체화 전략을, 그러니까 국산품 애용하자 이런 것을 했다. 영국이 보여준 성공적인 발전 모델을 신대륙의 조건에 맞게 변형해서 따르고 했기 때문에 식민 모국과 좋은 관계를 맺어야 된다고 생각을 했다.  

그 반면에 제퍼슨주의자들의 생각도 무시할 수 없는 것이, 미국에 이런 사람들이 많았다. 농업공동체를 강화하고, 남부의 어떤 목장 주인들 또는 면화 농장주들, 이런 사람들이 정치 권력을 분산해서 대중의 기반 위에 안착시키는 것을 목표로 삼았는데, 영토를 확장해서 다수의 소규모 공화국을 건설하고 시민적 덕목이 구현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해밀턴주의자들이 말하는 시민이라고 하는 것은 합리적이고 교양 있는 엘리트 집단이 이끌어가는 시민사회가 아니다. 가진 자들, 총을 든 남부 농장주와 같은 사람을 시민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자기가 지킬 것은 지키고, 내 땅에 들어오지 마라, 총 쏴서 쫓아내고 이런 것이다. 헌법적 평등을 실현하지만 사회평등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 체제를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땅을 가진 사람들, 농장주들이 모인 것인데 유럽 중세의 영주들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이런 구상을 했다는 것이 맞다. 이런 구상이 남부에 확장이 되어서, 앤드루 잭슨, 제퍼슨주의자와 그 후신인 잭슨 민주당Jacksonian Democrats, 이들이 남북전쟁 시기 이전에 대부분의 대통령직을 유지하고, 그러면서 사실은 미국은 남북전쟁을 거치면서 다른 종류, 해밀턴주의자들이 그리는 나라로 바뀌어 나갔다고 보면 되겠다. 꽤 오랫동안, 그런 것들은 지금도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사회평등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 나라를 생각했던 것이다. 그래서 제퍼슨주의자들이 궁극적으로 생각하고 있던 모형은, 법적인 측면에서는 각각의 신생주가 원래의 주와 동일한 형태이겠지만, 영국에서는 사라지고 있던 자영농과 노예노동을 기반으로 하는 대농장이 혼합된 구조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생각이 남부 지역에서는 아주 편재해 있었다. 어쨌든 이런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는 제퍼슨주의자들하고 해밀턴주의자들의 생각은 달랐을지는 몰라도, 연방정부가 뭔가를 좀 해야 된다는 데는 공통적으로 공감을 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도 해밀턴주의자들이 나라를 좌지우지하기에는 아직 비전 자체가 사람들에게 쉽게 어필이 잘 안 되는 것이었다.  

사실 어떤 나라를 만들 것인가라고 하는 것은 굉장히 많은 사람들의 이해관계를 조정을 해야 하고, 또 그들이 상상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뭔가 모형을 제시해야 되는데, 해밀턴주의자들이 내놓은 것은 1776년 이후 19세기 초반 사람들에게 과연 이것이 먹힐 것인가 하면 그다지 먹히기 어려운 것이 많았다. 차라리 제퍼슨주의자들은 미국에서 힘 있는 사람들에게는 노예가 많이 있으니 노예를 공급하고, 서아프리카에서 계속 노예를 들여오고, 그렇게 하면 되지 않나 하는 것이다. 우리에게 흑인이라고 하면 똑같은 사람인 것 같지만 아프리카의 흑인도 여러 갈래가 있다. 크게 보면 동아프리카 에티오피아 지역의 흑인들은 다리가 길고 마라톤에 특화된 듯한 몸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미국의 흑인은 서아프리카에서 온 사람들이다. 가나, 코트디부아르, 그다음에 콩고와 같은 중앙아프리카의 사람들도 있고, 남아프리카의 흑인들도 있고, 크게 보면 중앙·서·동·남 이렇게 해서 네 부류가 있다. 서아프리카 사람들은 미국의 전형적인 노예 농장에서 일하던 사람들이다. 그렇게 볼 때는 제퍼슨주의자들이 강력한 힘을 가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을 해볼 수 있다.  

앤드루 잭슨은 중요한 사람이다. 연방 대법원을 자신들의 인물로 채웠고, 각료와 고위의 군부 고위직을 차지하고, 남북전쟁 시기 이전 시기에 대부분의 대통령직을 유지했다. 그래서 제퍼슨주의자와 민주당, 앤드루 잭슨은 한 묶음으로 이해를 하면 된다. 노예제에 의존하는 경제구조가 지배적이었던 남부주들에서 가장 많은 지지를 얻었다. 그리고 이 시기를 대표하는 사람이 바로 앤드루 잭슨이다. 말 위에 올라탄 군사 지도자로서 1829년에서 1837년까지 대통령직을 역임했다. 이 사람은 일단 1824년에 대통령 후보로 나섰다. 그러니까 1824년에서 37년이면 한 10여 년으로, 여기서 1800년대 전반부를 앤드루 잭슨 시대라고 하는데, 일단 어떤 점에서 다르냐 하면, 제퍼슨만 해도 동부의 기득권층이고 노예농장주였다. 그리고 해밀턴도 그렇고, 대화가 되는 사람들이다. 앞으로 우리나라를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달랐다고는 할지라도 서로 동부 엘리트 기득권층이다. 그런데 앤드루 잭슨은 변경에 새로 개척된 주 출신이다. 미국 리처드 호프스테터가 이야기하는 것처럼 미국 사회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경향 중에 하나가 반지성주의이다. 반지성주의 성향은 앤드루 잭슨이 구현했다고 보면 된다. 그리고 이게 미국에서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무시할 수 없는 정도가 아니라 미국을 지배하는 사람들의 성향으로 자리를 잡는 것이 앤드루 잭슨 시대 이후부터이다. 코스모폴리탄적인 성향을 가진 교양 있는 건국의 아버지들하고는 아주 다른 종류의 사람이다. 그 사람이 활동한 시대를 잭슨 민주주의 시대라고 흔히 이야기한다. 그래서 대중 정치의 장을 열었다고 말을 하는데, 사실 겉으로는 그렇게 이야기를 하지만 진정한 업적은 확장된 유권자층을 동원해서 대중민주주의 시대를 열었다는 이야기이다. 개별 주의 자치권을 옹호하고, 영토를 확장하고, 최소한의 정부라는 제퍼슨주의의 원칙을 대중적 의제로 활용하고, 외국의 영향력에 대한 적대감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데 있었다. 대중민주주의가 있는데 대중들에게 호소력이 있다. 그런데 그것을 가지고 무엇을 했는가 하면, 오늘날의 용어로 말하자면 극우파의 정책을 펴낸 것이다. 그래서 외국의 영향력에 대한 적대감, 그다음에 최소한의 정부, 이런 것들로 대중들의 지지를 얻는다고 해서 최대한의 정부와 같은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잭슨 민주주의가 가지고 있는 내용을 잘 이해해 둘 필요가 있다. 그래서 잭슨과 그 후계자들은 연방 권력을 자신들의 목적에 부합하게 이용하면서 남부 지역의 특권을 더욱 확대하고자 했다. 제퍼슨주의를 현실적으로 정말로 잘 구현했다고 할 수 있다. 자유민주주의의 부상이었다고 흔히들 지금까지 이야기해오고 있는데, 남부의 이해관계가 지배하는 노예제 국가 체제의 확립과 확대가 이 시기의 핵심 주제이다. 방금 말한 것처럼 노예제에 의존하는 경제구조가 지배적이던 남부 주들에서 많은 지지를 얻었고, 제퍼슨주의자들의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인가 하면, 영국에서 빠르게 사라지던 자영농과 노예노동을 기반으로 하는 대농장이 혼합된 구조를 유지하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민주정일 수는 있다. 그러나 공화정은 아니다. 노예노동에 기반을 둔 그런 나라를 생각을 했던 것이다.  

미국의 정치 체제는 이렇게 가고 이런 나라를 이룩하고 있는데, 경제는 과연 어떠한가 하면, 앞서 처음에 시작할 때 말한 것처럼 식민지 경제이기 때문에 그렇게 간단치 않다. 식민지 경제를 탈식민화해서 자립적인 경제로 만들어내는 것은 어렵다. 우리가 잘 이해할 수 있게 타이완이나 한국이나 일본이나 필리핀이나 이런 나라를 살짝 예를 들어서 말해보면, 박정희 시대에도 수입 대체화 전략을 폈다. 그래서 국산품 애용하자, 외국 물건 안 된다, 자국 산업을 보호해야 된다 라고 했다. 그런데 그렇게 하다 보면, 경쟁에 노출되기 전에는 결국 기술 개발이 잘 안 된다. 전형적인 나라가 필리핀이다. 1960년대만 해도 필리핀이 우리보다 잘 살았다고 한다. 그것이 어느 정도는 먹힐 수 있는데 어느 순간에 가면 수출 주도 정책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자국 경제의 폐쇄성에 의해서, 그리고 그것이 정치 권력과 경제적인 이권 집단이 결합이 되어 버리면 과두정oligarchy이 된다. 필리핀 같은 경우는 아얄라 가문Ayala, 코주앙코 가문Cojuangco, 이런 가문들이 지배하는 나라가 되는 것이다. 그 가문에서 상원의원도 배출하고, 집안의 후계자도 만들고 한다. 필리핀에서는 거의 천만 명 가까운 국민이 외국에 나가서 벌어서 국내로 송금을 한다. 그렇게 송금한 돈으로 결국 국내에 있는 그런 가문들이 지배하고 있는 체제를 먹여 살리게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어느 순간 제조업 생태계가 만들어졌다. 그런데 제조업 생태계를 만든다는 것이 그냥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교육이 있어야 한다. 기술개발이라는 것은 아무나 다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 교육제도를 만드는 것도 쉽지 않다. 어느 순간에 그 제조업 생태계도 특정한 기업을 중심으로 돌아가기 시작하면 결국에는 또 어떻게 될지 모르고, 한 번 무너진 제조업 센터는 다시 되돌리기도 어렵다.  

미국이란 나라도 결국 탈식민화를 해야 되는데, 그게 종속적 발전의 딜레마이다. 영국에 계속 종속해서 뭔가를 하게 되면 당장 먹고 살 수는 있는데 탈식민화를 못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결국에는 미국이라는 나라가 땅덩어리가 크다고 해서 그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19세기 전반기에 영국이라고 하는 것, 영국에서 1776년에 독립을 했는데 실질적인 독립은 안 되어 있는 상태였다. 일단 영국은 미국의 가장 중요한 교역 상대이고 해외 자본의 주요 공급원이다. 무역관계가 독립 이후에 더 늘어났다. 그래서 중상주의의 제약들이 철폐되면서 더욱 확대되고, 남북전쟁 전까지도 미국 경제가 1인당 수출입액을 기준으로 보면 해외 무역이 중심이고 농산물 중심의 전형적인 식민지형 수출 의존 형태였다. 우리나라가 일제강점기 때 식민지형 수출 의존 형태였다. 그때 활발하게 교역이 이루어져서 근대화를 시켰다고 하는 것이 식민지 근대화론자들이 하는 이야기이다. 허수열 교수가 쓴 책을 보면 허울뿐인 호황이라는 말이 나온다. 미국에서도 그랬던 것이다. 식민지가 예전 식민 모국에 의존하는 경제가 계속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미국에서 뭔가를 좀 해봐야겠다 하더라도 생존 가능성 또는 발전이라고 하는 것들도 결국에는 런던 금융가의 재정 지원에 크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이러던 와중에 1820년대 대공황이라고 하는 것이 삶의 모든 측면에 영향을 미친다. 대중들이 먹고 살기 힘들어지니까 그때 바로 앤드루 잭슨의 대중영합주의Populism라고 하는 것을 등장한다. 그래서 1829년에 당선이 된다. 종속적 발전의 딜레마라고 하는 것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었던 것이다. 이게 앞서 말한 것처럼 정치체제의 문제, 경제의 문제, 그리고 금요일에 말할 문화적 지속성의 문제, 문화적인 독립의 문제, 이게 바로 제4장 독립을 위한 투쟁에서 아주 중요한 내용들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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