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담화冊談話 | 미 제국 연구(13) ─ 1부, 4장. 독립을 위한 투쟁

 

2026.10.16 📖 미 제국 연구(13)

앤서니 G. 홉킨스, ⟪미 제국 연구⟫
텍스트: https://buymeacoffee.com/booklistalk/American-Empire

 


이번 주에는 앤서니 홉킨스의 《미 제국 연구》 1부 4장을 읽고 있다. 독립을 위한 투쟁, 먼저 미국이라는 나라가 영국에서 형식적으로 독립은 했는데 그것이 과연 얼마나 잘 이루어질 것인가 하는 문제를 세 가지 측면에서 살펴보고 있다. 첫 번째가 현실적인 국가 건설 과정에서 마주치는 문제들이고, 이것은 지난 수요일에 말했다. 제퍼슨주의자와 해밀턴주의자들이 어떤 나라를 만들 것인가를 놓고 서로 대립을 하다가 결국 제퍼슨주의자와 그 후신인 잭슨 민주당이 의회를 장악하고 남북전쟁이 일어나기 전까지 미국이라는 나라의 사실상 지배적인 정치 형태를 만들어냈다. 제퍼슨주의자들이 생각했던 미래의 미국 사회는 어떤 것이냐 하면 영국에서 사라지고 있던 자영농을 기반으로 하고, 그다음에 노예노동을 바탕으로 하는 대농장이 혼합된 구조를 유지하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그들이 생각한 그 나라가 제대로 굴러가려면 경제 발전을 이루어야 한다. 그런데 미국이라는 나라의 경제 발전이라는 것이 그렇게 만만치 않았다. 미국은 영국에 거의 종속적인 상태에 있었다. 그래서 자본이라든가 이러한 것도 그렇고, 그리고 자기 나라가 그 당시에도 글로벌한 교역의 상태에 있었기 때문에 대공황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한 영향을 받으면서 미국 사회가 종속적 발전의 굴레에서 벗어나기는 어려웠다. 세 번째 측면이 문화적인 측면이다. 정치, 경제, 문화이다.   

오늘은 문화적 지속성에 대해서 얘기를 해보겠다. 제4장에서 정치 권력이 어떠했는가는 오늘날의 모습을 그대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기는 하지만, 잭슨 민주당은 벌써 1800년대의 얘기이다. 그리고 미국 경제가 과연 과거에 그러했는가는 오늘날의 모습을 보고 이해하기는 어렵다. 그런데 문화적 지속성은 상당히 시사점이 많다. 우리가 문화라고 할 때 음악, 예술만 생각하면 안 되고, 우리가 살아가면서 거의 무의식적으로 선택하는 하나의 그러한 것들이다. 이 섹션 제목인 문화적 지속성이라고 하는 것이 식민지 문화가 여전히 지속되고 있었다는 뜻으로 쓰이고 있지만, 조금 더 생각을 해보면, 오늘날에도, 21세기에도 이때 형성된 그러한 문화적인 모습들이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래서 이 부분은 21세기의 미국을 이해하는 데도 많은 시사점을 주는 부분이 된다고 본다. 그래서 이 부분을 열심히 읽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일단 미국이라고 하는 나라가 독립을 했는데, 문화적인 측면에서 가장 주요한 과제는 무엇인가. 이전의 지배 세력의 문화와 구별할 수 있는 대항문화counterculture를 형성해야 하는 과제가 있다. 그런데 미국이라고 하는 나라는 nation의 범주에 속하지도 못하고 state로서의 면모도 갖추지 못한 상태이다. state라고 하는 것은 통치 구조를 갖춘 정치 단위, 즉 정부, 영토, 주권을 가진 정치 공동체이다. 그런데 그렇게 되어 있지 못했다. 연방 국가인지 아니면 각 주들이, 각 주들은 주권을 갖고 있는데 주권을 가진 각 주들이 어설프게 얼기설기 모여 있는 나라인지, 그러면서 그것이 얼기설기 모여 있지 않고 어느 정도 통합을 갖추고 있어야 공유된 정체성이라고 하는 것을 가질 수 있다. 우리가 흔히 민족이라고 번역을 하는데, 민족이라고 하면 혈연적인 의미가 강하게 느껴지기 때문에 선뜻 꺼려지는 말이지만, 그래도 nation-state라고 하는 것이 적당하다. 우리나라도 지금 이주배경인구가 5%를 넘었다. 그러면 단일민족 국가라는 말은 더 이상 하면 안 된다. 국제적인 기준으로는 이주배경인구가 5%가 넘어가면 다민족 사회라고 얘기한다. 그 기준을 따라서 정책도 만들고 해야 하는 상황에 있는 것은 맞다. 미국도 그러하다. 그러나 미국이라는 나라는 다른 식민지들과는 달리 영국 사회의 연장이나 다름없다. 본토 식민지였기 때문에 그렇다. 그리고 지배계층도 확보했고, 해밀턴주의자들이나 제퍼슨주의자들이나 성향은 다를지언정 영국에도 그러한 사람들이 있었다.   

식민 지배기의 민족 특성과 기준점이 있는데 식민 통치가 끝난 이후에도 오랫동안 존속했고, 이 부분을 읽으면서 제가 생각하기로는 지금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예를 들면 영국에서는 어떤 사회 계층에 속하느냐에 따라서 단어를 발음하는 방법이 다르다. 그러니까 아예 계층 식별 지점을 말에다가 집어넣어버린다. 우리는 그렇지 않다. 특정한 단어를 어떻게 발음하느냐를 가지고 어느 계층에 속하느냐를 따지지는 않는다. 일본은 성씨를 가지고 따지기도 한다. 일본은 메이지 유신을 한 다음에 성이 없던 사람들에게 성을 갖게 했다. 그러니까 그때 너도나도 성을 갖게 된,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성들이 있다. 그런데 오래된 성씨들이 있다. 옛날 귀족들은 성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고노에 후미마로의 고노에, 그다음에 호조 등 이러한 것들이 있다. 이러한 성들은 오래전에 있었다. 그러니까 우리는 성씨가 많다고는 해도 아주 희귀한 성이 아니면 알 수가 없다. 그런데 일본은 성씨를 들어보면 이것은 오래전부터 일본 열도에 있던 성이다 라고 하면 몇 명 안 된다. 그러니까 일본에서는 이름이 알려지면 그 사람을 알아내는 것이 그렇게 어렵지 않다고 한다. 그러면 추적 조사가 가능하다. 그리고 전에 벨랴코프 일리야가 쓴 《지극히 사적인 러시아》를 보면 거기서도 그러한 얘기를 한다. 러시아도 성이 굉장히 많다. 벨랴코프라고 하면 알아낸다는 것이다.   

미국이라고 하는 나라는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일단 과거의 역사 서술들을 보면 미국이라는 나라는 용광로melting pot이라고 하는데 그것만큼 거짓말이 없다. 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가치를 구현하는 국민 정체성이 비교적 이른 시기에 등장해서 19세기에는 이미 완성되었다고 하는데 그렇지 않다. 그리고 이민자들은 그 용광로로 쏟아져 들어와서 이미 완성되어 있는 시민 정체성으로 융합되었다고 하는 허구가 통용이 되었다. 그래서 지난번에도 말한 것처럼 미국사를 읽을 때는 자국사 중심의 그러한 서술의 책들은 이제 안 읽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한다. 미국에 대한, 사실과는 거리가 먼 허상들을 심어주고 있다. 어쨌든 최신 연구에 따르면 독립 당시 본토 식민지의 정착민 대부분이, 여러 차례 말했듯이, 자신을 영국계 미국인으로 인식했다는 것이다. 영국계 미국인British Americans이다. 미국에 살고 있는 한국 이민 1세대는 벌써 돌아가신 지 꽤 되었을 것이다. 그분들은 내가 미국 사람인가 라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냥 한국계 미국인이다 라고 대부분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런데 또 일부 주민들은 내가 브리티시 아메리칸도 아니고 나는 대서양 세계의 한 사람 아닌가, 그리고 또 어떤 사람들은 중서부의 변경주로 갔던 사람들은, 황야의 무법자들과 맞서 싸워서 자기 토지를 지켜낸 사람들은 대륙 사회의 일원이라고 생각을 했을 것이고, 그다음에 스페인이나 프랑스와 문화적·혈연적 유대관계를 유지한 사람들도 꽤 있었을 것이다. 루이지애나와 같은 지역에는 그랬을 것이다.  

연방 체제라고 하면 일단 각 주들이 얼기설기 모여 있었고 그 와중에 이러한 다양한 정체성들이 있었기 때문에 다중적 정체성multiple affiliations, 이것은 지금 현재도 그러하다. 그러니까 미국이라는 나라는 3개 이상의 언어를 사용하고 있는 또는 교육하는 그러한 것들이 꽤 많고, 저번에 어디선가 보니까 댈러스 공항 같은 곳에서는 에스파냐어로 말을 해도 다 통용이 된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브리튼계 민족 집단British ethnie는 다른 집단에 대해서 우위를 확립하고, 그렇게 해서 나온 것이 앵글로 동화주의Anglo-conformity, 그러니까 앵글로색슨이라고 하는 문화의 동화 정책을 펴는 것이다. 이것을 꼭 기억을 해야 한다. 19세기에 미국은 앵글로 동화주의Anglo-conformity라고 하는 정책을 가지고 있는데, 이 동화 정책이라고 하는 이념을 매개하는 것으로 건국 숭배, 앵글로색슨 신화, 복음주의 개신교, 이 세 가지가 작동하는 것이다. 여기에 반지성주의까지 더하면, 미국 문화의 메인스트림이 바로 이것이다. 건국의 아버지들이라고 하는 말, 그다음에 앵글로색슨 신화, 그리고 복음주의 개신교이다. 그런데 과연 이것이 얼마나 큰 역할을 했을까. 일단 친영 정서Anglophilia가 있다. 앵글로색슨 신화이다. 영국에서 좋다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다 가져다가 모방을 한다. 아이비리그 대학, 그다음에 단과대학에서 영어와 영국식 발음을 열성적으로 가르치고, 윌리엄 셰익스피어를 널리 가르치고 공연하고, 그다음에 새로운 계층의 도시 신사, 젠트리gentry를 흉내 내는 것이다. 이때 일어난 웃지 못할 얘기는 웹스터 영어 사전, 미국 영어 사전American English이다. 1828년에 노아 웹스터Noah Webster가 아메리칸 잉글리시를 담은 웹스터 사전을 편찬했는데 인정을 받지 못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친영 정서를 다지는 데 아주 큰 기여를 한 사람이 헨리 롱펠로우Henry Wadsworth Longfellow이다. 유럽 문학에서 영감을 얻어서 백인 공동체의 결속을 다지고, 급격한 사회 변화에 따른 대중의 불안감을 해소하는 역할을 했다. 롱펠로우를 미국의 시인이라고 하는데, 왜 미국에서 이 사람을 그렇게 떠받드느냐 하면 Anglophilia를 널리 전파했기 때문에 그렇다. 그다음에 눈에 띄게 표현되는 것이 바로 건축일 것이다. 보스턴의 경제 상류층은 영국의 토지 귀족 계급을 흉내 내서 countryside에다가 저택을 짓고, 남부 농장주들은 웅장한 조지아풍 저택을 계속 유지하고, 이것이 영국식이다. 그러다 보니까 미국에서 구한말에 한국으로 온 선교사들이 한국에 지어놓은 건물들을 가만히 보면 영국식인 것 같기도 한데 뭔가 변형된 듯한 느낌을 갖게 되는 것이 이때 나온 것이기 때문에 그렇다. 예를 들면 아펜젤러Appenzeller가 프린스턴 대학을 나왔는데, 그 사람의 조상이 스위스 아펜첼Appenzell 지방 출신이다. 그것을 가장 잘 집약하고 있는 사람이 토크빌이다. 앵글로 아메리칸Anglo-Americans이라는 말을 쓴다. 그리고 미국에 있는 영국 인종the English race in America라는 이러한 명칭을 쓰는데, 이것은 바로 미국 국민의 정체성이 아직 자체적으로 뭔가를 갖추고 있지는 못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표현이다. 토크빌의 《아메리카의 민주주의》를 읽어보면 감탄하게 된다.   

앵글로색슨주의는 정당화 이데올로기로 기능을 했지만, 앞서 대항문화counterculture를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대항문화를 만들어야 하는데 자기네 식민 본국의 문화를 계속 받아들여서 되겠는가. 한때는 우리나라에서도 일본 문화를 금지했었다. 일제강점기가 꽤 있었고 아직도 일본식 문화의 잔재들이, 일본식 용어들이 남아 있다. 이제는 일본 사람들이 오히려 걱정을 할 것이다. 문화라고 하는 것은 결국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단계의 미국만 해도 그러지는 않았다. counterculture를 만들어야 한다는 과제가 있는데 계속 Anglophilia로 나아가버리면 독자적인 문화를 만들어내는 것은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앵글로색슨주의가 정당화 이데올로기로 기능을 했지만 역설적이게도 대서양 너머 영국과의 관계를 지속하는 결과를 가져와서 미국만의 고유한 기원 신화를 확립하는 것을 어렵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뭔가 있어야 하는데 없으니 어렵기는 할 것이다. 《케임브리지 세계사》를 읽어보면 북아메리카 역사는 정리할 것이 없다. 유럽인들이 오기 전까지는 이러했다는 것이 하나가 있고, 유럽인들이 온 다음에 이러했다는 것이 있다. 그전에 역사라고 기록된 것도 없다. 그것을 업신여기자는 것이 아니라 구대륙은 엄청나게 역사들이 많다. 그러니까 미국에서는 자체적으로 길어 올릴 것이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되지 않았나 한다.   

건국의 아버지들 숭배는 지금도 하기는 하지만 어이가 없고, 앵글로색슨 신화는 counterculture를 만들어내는 데는 이러한 역기능이 있었다. 그러면 복음주의 개신교이다. 대각성 운동에 영향을 받고 복음주의 개신교가 미국 특유의 개신교를 만들어낸 것은 맞다. 그리고 그것이 한국으로도 건너왔다. 그런데 복음주의 메시지라고 하는 것은 백인 미국인 뿐만 아니라 앵글로색슨의 범위를 넘어선 지역에서 온 이민자들과 아프리카계 미국인, 여성들에게도 호소력이 있었다는 것이다. 복음주의 메시지는 지극히 사적인 정서에 호소한다. 사실 이것을 가지고 전체를 묶어내는 것은 어려운 점이 있다. 국가적인 어떤 규모로 하기보다는 지역 형태의 시민 정체성을 지지하는 경향이 있고, 그러다 보니 이것을 가지고 미국 특유의 통합의 어떤 메시지를 만들어낸다는 것은 굉장히 어려울 것이다. 앵글로 동화주의라는 이념을 실현하기 위해서 건국 숭배, 앵글로색슨 신화, 복음주의 개신교, 이 세 가지가 주요한 매개체가 되었는데, 하나 더 하자면 지난번에 앤드루 잭슨 이후로 반지성주의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세 가지가 미국의 정체성을 만들어내는 데 결국에는 실패하지 않았나 한다. 더 넓은 국민적 연대 의식을 만들어내는 데는 실패하지 않았나 한다. 그것이 미국이라고 하는 나라가 오늘날 직면하고 있는 가장 심각한 문제가 아닐까 한다. 그것이 굉장히 어려운 문제이다. 문화적으로 어느 정도 통합이 되지 않으면 어렵다. 미국이라고 하는 나라가 끊임없이 19세기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이것을 노력을 해왔는데 잘 안 되고 있다. 미합중국이라는 공화국 자체가 끊임없이 변모한다. 땅도 넓고 구성원들도 다양하고 변모하기 때문에 뭔가 하나로 묶어내기가 어렵다. 다음 주에는 제5장을 읽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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