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주사변에서 중일전쟁으로 - 가토 요코 지음, 김영숙 옮김/어문학사 머리말-5제1장 만주사변의 4가지 특질 15제2장 특수권익을 둘러싼 공방 45제3장 무너진 세 개의 전제 81ㅡ 제4장 국제연맹 탈퇴까지 125제5장 중일전쟁으로 193 맺음말-261저자 후기 267역자 후기 269연표 272참고문헌 274색인 282 관련 공부 글 보기책읽기 20분 | 일본 근현대사 | 05 만주사변에서 중일전쟁으로 1책읽기 20분 | 일본 근현대사 | 05 만주사변에서 중일전쟁으로 2책읽기 20분 | 일본 근현대사 | 05 만주사변에서 중일전쟁으로 3책읽기 20분 | 일본 근현대사 | 05 만주사변에서 중일전쟁으로 4책읽기 20분 | 일본 근현대사 | 05 만주사변에서 중일전쟁으로 5책읽기 20분 | 일본 근현대사 |..
일본 근현대사를 어떻게 볼 것인가 - 이와나미 신서 편집부 엮음, 서민교 옮김/어문학사 Reading_20min_20141117_9– 1938년 이후 중일전쟁의 성격 규정에 관한 일본의 표현 변화– 1차 고노에 후미마로(近衛文麿) 내각의 ‘쇼와연구회(昭和研究会)’가 내놓은 문서: “현하 시국의 기본적 인식과 그 대책”(1938. 6. 7)“영토 침략, 정치·경제적 권익을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 일중국교회복을 방해하고 있는 잔존 세력의 배제를 목적으로 하는 일종의 비적토벌전[討匪戰]”– 새로운 국제 질서 규범이 미국주도로 창출되고 있던 시대에 개념과 용어를 정의하고 있던 미국에 대해 일본이 얼마나 자신의 해석을 정당화하려 했는가를 살펴보아야 한다.– 참조: 슈미트, “격한 대립은 결정적 순간에 말싸움이 ..
일본 근현대사를 어떻게 볼 것인가 - 이와나미 신서 편집부 엮음, 서민교 옮김/어문학사 Reading_20min_20141109_8– 제1차 세계대전 이후의 경제제재– 국제연맹은 ‘쌍방’이 아닌 침략국에 대해서만 경제제재를 가하였다.– 1935년 이탈리아-에티오피아 전쟁에서 미국은 8월에 중립법을 발동하고 연맹과 공동보조를 취하지만 연맹의 방침과는 달리 교전국 쌍방에 무기, 탄약, 군용기재의 금수를 적용하였다.– 여기서 침략행위가 국제범죄라면 중립의 위치에 있으면서도 침략국에 대해 공평과 회피의 의무를 질 필요가 없다. 즉 차별적인 행동을 취할 수 있다는 발상으로 전개된다. 이로써 중립법이 경제제재 수단으로 사용될 가능성이 열렸으며, 절대적인 경제력을 가진 미국의 중립법이 실질적으로 정치적인 중요성을 띠..
일본 근현대사를 어떻게 볼 것인가 - 이와나미 신서 편집부 엮음, 서민교 옮김/어문학사 Reading_20min_20141103_7– 국제법에서의 전쟁 책임 문제(1) — 국민책임론 – 유럽대전(제1차 세계대전)까지 행해진 방식: 국가=국민 전체가 진다. 상대국에 대한 영토 할양, 배상금 지불 – 청일전쟁: 배상금 지불, 타이완 할양 – 러일전쟁: 동청철도 남지선, 남부 사할린 할양 – 유럽대전 패배 후 독일의 거액 배상금 지불과 식민지 할양 – 국제법에서의 전쟁 책임 문제(2) — 지도자책임론 – Robert Jackson(1892-1954)의 생각 1) 국민책임은 패배국 국민이 노예가 된다는 적국의 프로파간다를 불러 일으키고 절망적인 저항을 초래하므로 국민과 지도자를 분리하여야 한다. 2) 침략전쟁은..
만주사변에서 중일전쟁으로 - 가토 요코 지음, 김영숙 옮김/어문학사 Reading_20min_20141027_6– 이시하라 간지가 바란 것: 소련이 아직 약체였을 때, 중국과 소련의 관계가 악화되어 있을 때, 일본과 소련이 장래에 대치하는 방위라인을 중소국경의 천연 요새까지 북으로 밀어붙이는 것. “만주는 장래 미국과의 전쟁보급기지로서도 필요”– 군부에 대한 비판 등장: 민정당 의원 사이토 타카오(斎藤隆夫)의 反軍연설(1940. 2.2)1) 동양평화를 위해 싸우는 성전이라는 정부의 설명은 성립하는가2) 장개석을 상대하지 않은 전쟁 해결은 가능한가3) 중일전쟁은 가장 노골적인 침략전쟁인데 왜 정부는 무배상을 말하는가 – 1930년대의 전쟁은 ‘국제법에서의 전쟁책임론’이라는 주제와의 관련 속에서 논의해야만 ..
만주사변에서 중일전쟁으로 - 가토 요코 지음, 김영숙 옮김/어문학사 Reading_20min_20141020_5– ‘満蒙領有論’과 관련된 세 가지 전제1) 시데하라 키주로(幣原喜重郞) 외교의 붕괴, 즉 일본의 만몽권익은 조약에 기초를 둔 확고한 것이라는 견해가 무너짐으로써 일본은 자력으로 안전을 확보하려 했다. “두 개의 체제 사이에서 동요한 국민정부를 워싱턴 체제 쪽으로 끌어당기기 위해 영국과 미국은 워싱턴 체제의 경제적 룰을 변용시켰다. 그것은 중국에 대한 내정불간섭 정책을 취하는 시데하라 외교의 기반을 무너뜨리는 일이 되었다.”2) 장작림을 통한 만주지배의 안정성. 다나카 기이치 내각이 퇴진함으로써 동삼성의 현지 정권을 통해 북만주를 개발하려는 노선이 무너졌다. “북벌군과의 전투를 위해 봉표를 남발..
만주사변에서 중일전쟁으로 - 가토 요코 지음, 김영숙 옮김/어문학사 Reading_20min_20141013_4– ‘만몽특수권익’이란 무엇인가1) 특수권리: “조약에 의해 인정되어, 타국에 균등하게 적용될 수 없는 전유권”2) 특수이익: “특수권리를 행사한 결과로서, 타국이 이를 침해하는 경우 국가의 힘으로써 대항해야만 하는 경제적·정치적 발현 현상”– 만몽특수권익에 관한 일본 국내의 입장들1) 육군: 옛날에는 국제적인 승인을 받았지만 지금은 아니다2) 아리타 하치로(有田八郎, 외무성 아세아국장): 옛날에도 승인을 받은 적이 없었고 지금도 받은 상태가 아니다.3) 요시자와 켄키치(芳沢謙吉, 주중대사): 만주는 러일전쟁의 보상이다. – 일본의 만몽특수권익에 관한 국제적 입장들1) 워싱턴 회의: “동아시아 ..
만주사변에서 중일전쟁으로 - 가토 요코 지음, 김영숙 옮김/어문학사 Reading_20min_20141005_3– 중일전쟁의 실체와 중일전쟁에 대한 일본인들의 인식차이에 유념해야만 한다.– 일본인들은 중일전쟁을 ‘日中戦争’이라 부르지 않고 ‘支那事変’이라 불렀다는 것.– 고노에 후미마로 관계문서, “현 시국의 기본적 인식과 그 대책”(1938. 6. 7): 전쟁의 성질 — 영토침략, 정치·경제적 권익을 목표로 하지 않으며, 일본과 중국의 국교 회복을 저지하고 있는 잔존 세력의 배제를 목적으로 하는 일종의 토벌전.– “쌍방이 상대 국가에 대해 국제 불법행위를 했다고 주장하면서 스스로 취한 강력조치가 보복이기 때문에 위법이 아니라고 서로 논쟁하는 두 나라, 그것이야말로 1930년대 일본과 중국의 모습이었다...
만주사변에서 중일전쟁으로 - 가토 요코 지음, 김영숙 옮김/어문학사 Reading_20min_20140929_2후지와라 아키라, 를 참조하여 만주사변에 이르기까지의 전간기 국제정세와 일본 국내정세를 먼저 살펴본다. – 국제정세의 측면1) 유럽대전(제1차 세계대전)의 귀결로서의 총력전 개념: “전쟁은 단순한 무력전에 그치지 않고 정치 경제 문화 등 국가의 총력을 동원한 격렬하고 장기간에 걸친 형태를 띠게 되어, 국민 전체가 전쟁의 주체라는 형식을 취하지 않을 수 없어, 국민의 정치적 사상적 단결력과 국가의 경제력이 전쟁의 승패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이 되는 새로운 단계에 접어든 것”2) 총력전의 폐해를 극복하고자 하는 국제적인 군축 평화 분위기3) 워싱턴 회의와 런던조약: 1921년 11월부터 워싱턴에서 ..
만주사변에서 중일전쟁으로 - 가토 요코 지음, 김영숙 옮김/어문학사 Reading_20min_20140922_1– 다루는 시기는 만주사변(1931년, 쇼와 6년)부터 중일전쟁(1937년)까지이나 만주사변의 기원을 1920년대로, 필요한 경우 러일전쟁 시기까지 추적한다. 독일군의 서유럽 침략이 1940년이었으며, 일본이 중일전쟁을 독자적으로 해결할 방책이 소멸되는 시기도 1940년(쇼와 15년) 10월 대정익찬회(大政翼賛会)가 성립하면서였다.– 戰間期 국제질서가 본격적으로 국내정세에도 영향을 끼치는 시기이기도 하다.– “베르사이유·워싱턴 체제라는 국제 질서를 자신의 국가의 질곡으로 생각한 일본이나 독일이 군사력을 바탕으로 실력으로써 체제의 변혁을 시도한 10년”– “동시에 이 10년은 일본에서 관습화된 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