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드리히 엥겔스: 루트비히 포이어바흐와 독일 고전 철학의 종말


루트비히 포이어바흐와 독일 고전철학의 종말 - 10점
프리드리히 엥겔스 지음, 강유원 옮김/이론과실천


서문 

Ⅰ 

Ⅱ 

Ⅲ 

Ⅳ 

포이어바흐에 관한 테제 - 칼 마르크스 지음 

포이어바흐에 관한 테제 - 칼 마르크스 지음 / 프리드리히 엥겔스 편집 





포이어바흐에 관한 테제


지금까지의 모든 유물론(포이어바흐의 유물론을 포함하여)의 주요 결함은 대상, 현실, 감성이 객관이나 직관의 형식에서만 파악되고 있다는 것, 그러나 인간의 감성적 활동, 실천으로 주체적으로 파악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활동적 측면은 유물론과의 대립속에서 관념론에 의해 추상적으로 - 관념론은 당연히 현실적인 감성적 활동 자체를 알지 못한다 - 전개된다. 포이어바흐는 감성적인 객관 - 사유의 객관과 현실적으로 구별되는 객관 - 에 호소하지만 그는 인간의 활동 자체를 대상적 활동으로 파악하지는 않는다. 그런 까닭에 그는 <기독교의 본질>에서 이론적 태도만을 참된 인간적 태도로 간주하고, 그에 반해서 실천은 그 추잡한 유대인적 현상 형식에서 파악되고 고정될 뿐이다. 그런 까닭에 그는 "혁명적", "실천적 비판적" 활동의 의미를 개념적으로 파악하고 있지 않다.


대상적 진리가 인간의 사유에 귀속되는가 하는 문제는 - 이론의 문제가 아니라 실천적문제이다. 인간은 실천속에서 진리, 즉 현실성과 힘, 자신의 사유의 차안성을 증명해야만 한다. 사유 - 실천에서 고립된 - 의 현실성이나 비현실성에 관한 논쟁은 순전히 스콜라주의적인 문제이다.


사태와 교육의 변화에 관한 유물론적 학설은 사태가 인간에 의해 변화되며, 교육자 자신도 교육되어야만 한다는 것을 잊고 있다. 그런 까닭에 그 학설은 사회를 두 부분 - 그 중 하나는 사회를 넘어서 있다 - 으로 나누어야만 한다. 사태의 변경과 인간 활동의 변경 또는 자기 변화의 일치는 혁명적 실천으로만 파악될 수 있고 합리적으로 이해될 수 있다.


포이어 바흐는 종교적 자기 소외라는 사실, 종교적 세계와 세속적 세계로의 세계의 이중화라는 사실에서 출발한다. 그의 노고는 종교적 세계를 세속적 기초로 해소한 데에 있다. 그러나 세속적 기초가 스스로에게 떨어져 나와 스스로를 구름속에 하나의 자립적 영역으로 고정시킨다는 것은 이러한 세속적 기초의 자기 분열과 자기 모순에서만 해명될 수 있다. 그러므로 후자[세속적 기초] 자체는 그 자체에 있어, 그 모순에 있어 이해되어야할 뿐만 아니라, 실천적으로 혁명화되어야만 한다. 그러므로 예를들면 세속적 가족이 신성한 가족의 비밀로 폭로된 다음, 이제는 전자[세속적 가족]자체가 이론적으로 그리고 실천적으로 파괴되어야만 한다.


추상적 사유에 만족하지 않은 포이어바흐는 직관에 호소한다. 그러나 그는 감성을 실천적인 인간적, 감성적 활동으로 파악하지 않는다.


포이어바흐는 종교적 본질을 인간적 본질로 해소한다. 그러나 인간적 본질은 개별적 개체에 내재하는 추상물이 결코 아니다. 그 현실에 있어 인간적 본질은 사회적 관계의 총체이다. 

그런 까닭에 이러한 현실적 본질의 비판으로 들어가지 않는 포이어바흐는:

1. 역사적 과정을 도외시하고 종교적 심정을 그 자체로 고정시키며 하나의 추상적-고립된-인간 개인을 전제하지 않을 수 없다.

2. 그런 까닭에 본질은 "유"로서만, 내면적이고 침묵하는, 많은 개체들을 자연적으로 묶고 있는 보편성으로만 파악된다.


그런 까닭에 포이어바흐는 "종교적 심정" 자체가 하나의 사회적 산물이라는 것, 그리고 그가 분석하는 추상적 개체가 하나의 특정한 사회 형태에 속한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모든 사회적 삶은 본질적으로 실천적이다. 이론을 신비주의에 빠지게 할 모든 신비는 인간의 실천과 이 실천의 개념적 파악  에서 그 합리적인 해결을 발견한다.


직관하는 유물론, 다시 말해서 감성을 실천적 활동으로 개념적으로 파악하지 않는 유물론이 이르는 최고의 정점은 각각의 개인들과 시민사회의 직관이다.


10 낡은 유물론의 입각점은 시민사회이며, 새로운 유물론의 입각점은 인간적 사회 또는 사회적 인류이다.


11 철학자들은 세계를 다양하게 해석해 왔을 뿐이며, 중요한 것은 세계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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