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싱어: 다윈주의 좌파
- 책 밑줄긋기/책 2012-22
- 2013. 4. 10.
다윈주의 좌파 - 피터 싱어 지음, 최정규 옮김/이음 |
문제제기: 사회구조를 바꾸면 인간 본성도 바꿀 수 있을까?
1 다윈주의의 정치적 입장은 무엇인가?
2 좌파는 인간 본성에 대한 다윈적 견해를 받아들일 수 있는가?
3 경쟁을 할 것인가? 협동을 할 것인가?
4 협동의 수준을 넘어선 이타성은 존재하는가?
제안: 오늘날 다윈주의 좌파의 숙제
옮긴이 해제: ‘다윈주의적 좌파’에 대한 몇 가지 생각
다윈주의 좌파
13 여기서 내 관심의 초점은 정치적으로 조직화된 세력으로서의 좌파에 대한 것이 아니라, 보다 나은 사회를 이루어내려고 하는 사상의 스펙트럼의 하나로서, 소위 사상의 총체로서의 좌파에 대한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좌파는 새로운 사고와 새로운 접근법을 절실히 필요로 한다. 나는 좌파를 부활시킬 수 있는 새로운 사상 체계를 세울 수 있으리라 믿는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인간의 본성을 이해하고 이를 기초로 인간의 사회적, 정치적, 그리고 경제적 행위를 이해해야 한다고 제안하고 싶다. 이제 좌파들은 우리 인간들이 진화해온 동물이라는 사실, 그리고 우리 육체와 DNA뿐만 아니라 우리의 행동까지도 유전적인 기초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신중히 고려해야 할 때가 되었다. 다시 말해 다윈주의 좌파사상을 개발해야 할 때가 되었다.
17 우리가 노력을 기울이기만한다면 해결할 수 있는 약자와 빈자의 고통에 무관심하고, 착취 받고 괴롭힘을 당하는 존재들이 느끼는 고통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면, 그리고 최소한의 삶의 조건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사람들의 고통 앞에서 주저한다면, 우리는 더 이상 좌파가 아니다. 만일 세상이라는 곳이 원래 그렇고 또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라고 이야기한다든지, 혹은 여기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없다고 말한다면, 우리는 좌파일 수 없다. 좌파는 이러한 상황에서 뭔가를 하고자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19 나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면서 이야기를 시작하려고 한다. 다윈주의적 사고와 관련해서 좌파들이 전통적으로 위치하고 있는 지점은 어디인가, 그리고 왜 그러한가?
26 사회 다윈주의의 여러 분파들은 사실fact로부터 가치value를 유축해내려는 오류를 저지르고 있다. 진화론은 과학적 이론이고, 데이비드 흄이 1739년 처음 지적했던 것처럼 사실과 가치 사이의 간격은 이어지지 않은 채 남아 있기 때문에, 우리는 진화가 '옮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결론을 내릴 수 없다. 진화를 어떠한 도덕적 가치도 수반하지 않은 채, 그냥 진행된다. 진화적 과정의 속도를 늦추려고 혹은 방향을 바꾸려고 노력하는 것을 정당화할 수 없는 만큼이나, 진화의 과정을 돕는 것도 정당화되지 않는다.
45 인간 본성이란 고정된 것이 아니라는 믿음은 좌파들에게 특히 중요한 것으로 여겨져 왔는데, 그 이유는 그 믿음이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유형의 인간사회가 가능하다는 희망의 근거를 제시해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는 결국 바로 이점 때문에 다윈주적 사고가 좌파로부터 배척당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다윈주의는 완전한 인간형 달성이라는 좌파의 위대한 꿈에 찬물을 끼얹어버렸다.
48 마르크스와 엥겔스 중 어느 누구도 다윈 이론 전체를 거부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 역시 진화해온 존재이고 그렇기 때문에 진화이론이 자연의 역사뿐 아니라 인간사회의 역사에도 적용된다면, 마르크스가 공산주의로 해결할 수 있다고 본 적대와 갈등들 - '인간과 자연 간의 적대, 인간과 인간 간의 적대' 그리고 '개체와 전체로서의 종 간의' 갈등 - 은 완전하게 해결될 수 없게 된다. 다윈에게 생존투쟁 즉, 자기 자손의 생존을 위한 투쟁은 끝이 없는 과정이다. 이렇게 보았을 때 완전한 인간의 실현이라는 꿈은 거의 불가능한 것이 된다.
다른 한편 역사유물론이 옳다면, 그래서 사회적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면, 다윈주의자들이 우리 본성의 불가피한 측면이라고 이해했던 욕심, 이기심, 개인적 야망, 질투 같은 것들은 사적 소유와 생산ㅅ단의 사적소유가 이루어지는 사회에 살기 때문에 기인하는 것이 된다. 따라서 그렇지 않은 사회적 제도 하에서는 사람들이 자신의 사적인 이해에 그리 큰 관심을 갖지 않게 될 것이다. 거기서 사람들은 공공의 재화를 만들어 내기 위해 타인과 협조적으로 일하면서 행복을 찾을 수 있게 될 것이다. 이것이 공산주의가 인간과 인간 간의 적대를 극복할 수 있는 이유이다. 갈등 해결이라는 역사적 난제는 이러한 적대가 우리의 인간 본성에 내재한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경제적 토대의 산물일 때에만 해결될 수 있다.
58 한 사회의 생산양식의 변화는 지배적인 사상과 문화에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생산양식의 변화가 가져온 차이점들에만 초점을 맞추고 다른 변하지 않는 다른 것들을 무시하는 것은 군사 전술의 차이를 분석할 때 수세기에 걸쳐 무가기 계속 변화해왔음을 이해하면서도 왜 국가들이 전쟁을 일으키려 하는지에 대해서는 묻지 않는 것과 같다. 이제 생산양식이 우리의 사고, 우리의 정치, 그리고 우리의 의식을 변화시키는 방식이 우리의 생물학적 전수 과정을 통해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실할 때가 되었다.
87 리처드 도킨스의 용어법에 따르면 매일 당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들을 등쳐서 잘먹고 잘사는 '사기꾼'들도 있게 마련이다. 여기서 매일 당하는 사람이 반드시 개인일 필요는 없다. 그것은 제도일 수도 있고, 국가일 수도 있다. 사기꾼으로 살아가는 게 쉬운 세상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살기 쉽다. 다윈주의를 받아들이기전 좌파들은 이러한 사기꾼의 존재를 빈곤, 교육 부재, 혹은 반동적 자본가의 사고방식 등에서 연유한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다윈주의 좌파라면 이러한 요인들을 개선함으로써 무임승차의 정도를 약화시킬 수는 있지만, 무임승차 문제에 관한 유일하고도 항구적인 해결책은 보수를 바꿔서 무임승차를 일삼는 사람들이 번성하지 못하게끔 만들어주는 것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다시 말해 왼뺨을 맞으면 절대로 오른뺨을 대주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105 다윈주의 좌파는
·인간의 본성을 부정해서도, 인간의 본성이 원래 선한 것이라고 주장해서도, 그리고 인간의 본성이 무한히 변할 수 있다고 주장해서도 안 된다.
·정치적 형명에 의해서든 사회적 변화에 의해서든 혹은 보다 나은 교육에 의해서든, 인간들 사이의 모든 갈등과 분쟁이 언젠가는 완전히 없어질 것이라고 기대해서는 안 된다.
· 모든 불평등이 차별, 편견, 억압 혹은 사회적 조건들로부터만 기인한 것이라고 가정해서는 안 된다. 불평등의 일부는 이들로부터 유래했겠지만 모든 경우에 그럴 것이라고 가정해서는 안 뇐다.
다윈주의 좌파는
·인간 본성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리하여 정책을 제시할 때에는 그 정책이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에 대한 증거들을 바탕으로 제시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어떤 것이 '자연적'이기 때문에, 그것이 '옳다'는 식의 추론을 거부해야 한다.
·어떤 사회적·경제적 시스템 아래에서 살든지, 사람들은 자신의 지위를 상승시키고, 권력을 얻기 위해서, 그리고 그들과 그들의 친족들의 이익을 증대시키기 위해서 경쟁적으로 노력할 것이라고 예상해야 한다.
·경쟁보다는 협조를 촉진하는 사회구조를 만들고, 경쟁이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목표를 향해 작동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인간이 아닌 동물들을 착취해도 된다는 생각은 사람과 동물 간의 간극을 과장하는 다윈주의 이전의 유산임을 깨달아야 한다. 그리하여 동물들의 도덕적 지위를 향상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자연에 대한 인간의 지배라는 인간 중심적 사고를 버려야 한다.
·약자,빈자, 그리고 억악받는 자의 편에 섬으로써 좌파가 가졌던 전통적 가치를 옹호해야 한다. 하지만 어떤 사회적·경제적 변화가 이들에게 혜택을 가져다줄 수 있는지 곰곰이 연구해야 한다.
어떻게 보면 이는 거품을 뺀 좌파의 모습이며, 좌파가 일찍이 가졌던 유토피아적 사고를 버리고 실제로 어떤 것이 성취 가능한지에 대한 냉철한 현실적 비전으로 대체한 것이다. 나는 이것이 우리가 오늘날 할 수 있는 최대한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는 좌파의 편에 서 있는 많은 사람들이 이해했던 다윈주의, 또한 이들이 다윈주의가 인간의 본성에 대해서 이러저러하게 생각하고 있을 것이라고 가정해왔던 것들보다 훨씬 더 현실적인 비전이다.
옮긴이 해제: ‘다윈주의적 좌파’에 대한 몇 가지 생각
113 자연선별적 과정이 완전한 적응을 향한 과정으로 이해되면서 다윈주의는 목적론과 결합하기 시작했고, 목적론과 결합한 다윈주의는 역사적 비극을 여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어떤 민족이 자민족 문화의 우월성을 내세워 다른 민족의 지배를 정당화할 때, 혹은 어떤 특정 인종 혹은 계층이 자신의 유전적 우월성을 내세워 다른 인종 및 계층의 지배를 정당화할 때 그 '과학적' 기초를 제공해준 것이 소위 사회적 다윈주의 혹은 사회진화론이었다. 사회적 다윈주의란 진화에는 방향성이 있어, 그 과정이 종국적 목표를 향해 진행되게 되며, 그렇지 못한 개체 혹은 집단에 비해 우월하다는 관념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114 이러한 낡은 좌파의 과념으로 말미암아, 기존 사회주의(혹은 공산주의) 사회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개인들 내부에 고정되어 변하지 않는 몇 가지 심성들을 무시하게 되었고, 그 결과 기존 좌파들이 건설한 새로운 세계는 인간의 본성과 상충되는 체계가 되어버렸다는 주장이다.
따라서 새로운 사회에서도 변하지 않는 개인들의 본성을 제대로 고려하지 못한 제도는 이제 다시 본성상 이에 순응하지 못하는 개인들을 억압하는 도구가 되어버린 비극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127 적응에는 항상 두 개의 힘이 작용한다. 그것은 주저진 환경하에서 개체들이 상호작용을 하면서 그 환경에 적응하려는 힘, 그리고 개체들 사이의 상호작용이 환경을 변화시키는 힘이다. 환경과 개체 간의 작용 - 반작용은 어디서나 존재하지만, 인간 사회에서는 두 경향이 얽히고설키면서 어떤 경향성이 주된 경향성인지를 묻는 것조차 무의미할 정도이다. 우리는 다양한 방식으로, 때로는 의식적으로 환경에 영향을 준다. 때로는 관습·제도 등을 통해, 때로는 문화를 통해 환경을 재구성함으로써 자연선택의 속도를 바꿔버리기도 한다. 자연선택 압력이 약하게 작용하게끔 환경을 바꾸어 이른바 틈새niche라 부르는 공간을 만들어낸다. 나는 인간사회에서 종종 발견되는 이타적인 행동들이 바로 그렇한 틈새 공간에서 살아남는 본성의 발현이라고 믿는다. 홉스의 상상력과는 달리 우리 조상들은 만인 대 만인의 투쟁이라는 혼돈의 상태를 겪으면서 살아가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수십만 년 혹은 그 이상의 오랜 역사 속에서 자리를 지킨 평등주의적 제도들하에서, 그러한 제도가 존재하지 않았을 때 진화했을지도 모를 본성과 다른 본성을 진화시켜나갈 수 있었다. 어쩌면 인간사회에서 중요한 것은 적응이라는 명제보다 제도와 본성 간의 공진화coevolution라는 개념 틀이 더 중요한 주제가 될지도 모른다.
'책 밑줄긋기 > 책 2012-22' 카테고리의 다른 글
피터 디어: 과학혁명 (0) | 2013.04.29 |
---|---|
알베르 카뮈: 시지프 신화 (0) | 2013.04.29 |
라인홀드 니버: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 (0) | 2013.04.22 |
퍼트리샤 스테인호프: 적군파 (0) | 2013.04.15 |
장 자크 루소: 사회계약론 (0) | 2013.04.10 |
마이클 가자니가: 뇌로부터의 자유 (0) | 2013.04.08 |
그루노브: 칼 바르트의 신학묵상 (0) | 2013.03.26 |
사마천: 사기 열전 1 (0) | 2013.03.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