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적군파 - 퍼트리샤 스테인호프 지음, 임정은 옮김/교양인 |
한국어판 서문
감사의 말
프롤로그 - 이스라엘 감옥의 일본인 테러리스트
1장 오카모토 고조 - 적군파 병사의 꿈
2장 적군파 - 혁명군 병사라는 이미지
3장 연합적군 숙청 사건 - 폐쇄된 집단의 내부 폭력
4장 아사마 산장 농성 - ‘섬멸전’의 아이러니
5장 사건 이후 - 끝없는 이야기 지어내기
에필로그
참고 문헌
옮긴이 후기
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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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 조직에 해를 끼칠 만큼 중대한 잘못을 저질렀을 때 공식적인 자리에서 자기 비판을 하는 것은 일본공산당에서 물려받아 일본 학생 운동에 뿌리내린 전통이었다. 모리의 경우 특징적이었던 점은 '자기 비판'과 '총괄'을 일체화한 부분이었다. '총괄'이란 일본의 운동에서 일반적으로 널리 쓰이는 말인데, 조직이 당면한 문제를 다 함께 반성하며 검증하고 그 결과의 개략을 정리함으로써 다음 행동 방침을 세우는 일이다. 보통 총괄 회의는 하나의 행동이 끝날 때마다 열리며 잘하지 못한 점을 어떻게 개선할지 생각해서 다음 행동을 결정한다. 총괄 회의에서 토론은 무척 개방적으로 진행될 때도 있었지만 지도자가 '총괄'명령을 종종 하달하기도 했다. 따라서 '총괄'은 한 개인의 사적인 반성에서 나오더라도 결국에는 조직의 행동 방침을 언급하게 된다. 연합적군의 결성 이전에도 모리는 이 두 가지 용어를 확실히 구분하지 않았으며, 그가 어떤 사람에게 '총괄'을 명령할 때는 정책을 둘러싼 조직 상황을 설명하라는 게 아니라 '자기 비판'을 하라는 뜻이었다. 즉 모리는 각 개인이 자신의 행동을 어디까지나 조직과 맺은 관계 속에서 인식하고 조직에 걸맞도록 개선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번 공동 군사 훈련에서 모리는 자기 나름대로 사용해 온 '총괄'이라는 말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했다. 각 멤버는 조직 전체의 상호 비판을 통해 사고방식과 행동을 수정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모리가 '총괄'이라는 말을 모호하게 사용하기는 했어도 모두가 이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멤버들은 누구나 혁명가가 되겠다는 진지한 뜻을 품고 모였으며 그 여정에서 자기 변혁을 이루려고 마음먹고 있었다. 모두에게 각자 뛰어넘어야 할 약점이 있다고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모리는 자신이 일단 자기 변혁에 집중하자, 그게 혁명 달성으로 가는 지름길이라고 제안한 것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강유원 선생님 서평
적군파는 1960년대 일본의 학생운동 전개과정에서 생겨난 무리들을 가리킨다. 이 무리가 어떻게 생겨나고 분화되고 소멸되었는지는 이 책의 관심사가 아니다. 이 책은 1972년 2월 산악 군사훈련(?) 과정을 전후하여 동료 14명을 살해한 이른바 ‘연합적군’(連合赤軍) 사건만을 다루고 있다. 이 사건 역시 다양한 방식으로 파악되어야만 하기 때문에 미국의 사회학자가 내놓은 이 분석은 우리에게 그 사건에 대한 전체적인 조망을 주기에는 아주 부족한 것일지도 모른다. 앞날개의 저자 소개에는 “2003년 이와나미 쇼텐(岩波書店)에서 재출간된 이후 <<적군파>>는 지금까지 적군파의 전모를 이해하기에 가장 적합한 길잡이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문장이 있는데 이는 과장된 평가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바로 그러하기 때문에 우리는 이 책을 통하여 연합적군 사건을 특정한 단면에 따라 잘라볼 수 있을 것이다.
연합적군 숙청사건에 연루된 이들은 본래 학생들이었다. 이들의 목표는 ‘혁명’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직면했던 현실은 강고했고 혁명이라는 이상은 머나먼 것으로 보였다. 연합적군은 이상을 실현할 구체적인 방안을 찾았다. 그것은 ‘유총주의’(唯銃主義)라는 말로 집약할 수 있는 것이었다. 이로써 학생들은 ‘병사’가 되었다. 병사들의 심성은 결연함, 미묘한 낭만으로 채색된 죽음에의 동경, 다른 병사들에게 뒤지지나 않을까 하는, 폐쇄된 집단 속에서의 경쟁과 불안 등으로 가득 찬다. 이러한 심성을 가진 이들이 군사훈련을 하기 위해 산 속에 집결했다.
병사들은 “공산주의화”라는 목표를 설정하고 급진적이고도 급박하게 그것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들은 “공산주의화라는 개념이 도대체 무엇인지 정확하게” 밝히지 않은 상태에서 “더욱 훌륭하게 공산주의화한 혁명전사가 되기 위해 각자 자신의 부르주아적인 행위를 자기비판하여 일소”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공산주의화를 달성하는 방법은 각 멤버의 약점을 집단적으로 검증하고 개개인이 지적받은 약점을 뛰어넘고자 노력하는 것이었다.” 그들이 사용한 이 방법은 “총괄”이었다. “‘총괄’이란 일본의 운동에서 일반적으로 널리 쓰이는 말인데, 조직인 당면한 문제를 다함께 반성하며 검증하고 그 결과의 개략을 정리함으로써 다음 행동 방침을 세우는 일”을 가리킨다.
총괄은 조직 차원에서 일어나는 일인데, 이것을 개인의 자기비판과 결합시키면 “각 개인이 자신의 행동을 어디까지나 조직과 맺은 관계 속에서 인식하고 조직에 걸맞도록 개선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다. 조직의 일원으로서 생각하고 행동하는 일은 중요하다. 그러나 개인의 행동, 심지어 생각까지도 전부 조직의 차원에 합치시키면, 개인의 자아정체성은 소멸되고 모든 것이 ‘조직적으로’ 변모된다. 더욱이 그러한 변모의 수단이 정신적인 것이라면 조직에 대한 개인의 투신은 끝없이 상승한다. 연합적군은 외부와 단절된 상태에서 철저하게 정신적인 목표를 설정했다. 설정된 목표는 추상적일 수 있으나 그것을 달성하는 수단은 구체적이고 측정가능한 것이어야만 했으나 그것마저도 정신적인 것이었다. 이러한 집단적 의식고양에 일본 특유의 조직문화가 결합하였다.
저자가 지적하고 있듯이 “미국의 조직에도 이와 비슷한 관습적 순서가 있으나 방법이 조금 다르다. 자유롭게 이의를 표명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다수결에 따라야 한다는 전제가 있지만 다수결로 정해진 결정을 비판하는 것은 허용된다. 결정에 반대하는 사람은 기꺼이 따르지 않고 마지못해 따르는 태도를 보여도 상관이 없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개인적인 반대 의견을 억누르는 게 보통이다.” 개인적인 반대 의견을 억누름으로써 개인은 책임을 벗어나며 일이 실패했을 때에는 모든 책임을 조직에 떠넘기는 사태가 벌어진다. 그러나 조직은 책임을 질 수 있는 인격이 아니다. 귀책은 개인에게만 가능한 것이다.
군사훈련을 하기 위해 모인 병사들은 철저하게 조직과 하나가 되기로 하였고 그렇게 되어갔다. 그 과정에서 사태에 대한 공포가 조금이라도 생겨나고 자신에 대한 의심이 들 때면 그 공포와 의심을 과잉으로 부풀려 지목된 희생자에 대한 분노로 폭발시켰다. 이 폭발에는 ‘정화’(淨化)로 미화된, 조직의 대의를 위해 봉사하는 폭력이 수반되었다. 조직의 눈에는 희생자가 더이상 인간이 아니었고, 각 개인은 조직의 눈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였다. “인간성을 빼앗긴 희생자들에게 신체적 폭력을 휘두르는 것은… 분노를 안전하게, 심지어 만족스럽게 토해낼 수 있는 출구였다. 이런 도착적인 논리 속에서 희생자들은 맞아도 싼 위치에 서서 스스로 자기 죽음의 ‘원인’이 된 것이다.” 공산주의화라는 고도의 측정불가능한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모인 병사들은 조직의 차원에 합치하여 “죽음으로 향하는 의식”을 치르게 된 것이다.
저자의 말처럼 “기본적으로 이데올로기의 창조란 적절한 행동방침을 결정하기 위해 이론으로 사회현실을 분석하고자 하는 적극적 시도다. 첫 번째 문제는 이론으로서의 이데올로기가 다양하게 해석 가능한 유동적 현실에 직면했을 때 시험대에 오르는 방식이다.” 이데올로기가 현실의 사태에서 적실성을 검증받지 못하면 폐기된다. 그러나 폐쇄된 집단에서는 그러한 현실적 적실성 검증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더욱이 폐쇄된 집단 안의 다른 개인들이 교조적으로 이데올로기에 집착하면 그것은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실현해야 할 계시가 되고 만다. 연합적군의 병사들을 죄고 있던 논리는 바로 이것이다.
연합적군 사건은 개인의 책임 한계가 불분명한 조직에서 충분히 발생가능한 사건이었다. 크리스토퍼 브라우닝의 지적처럼 “잔혹성은 개인적이고 성격적인 것이 아니라, 훨씬 더 근본적인 뿌리를 볼 때 사회적이다.” 대부분의 인간은 사회가 그들에게 제공하는 역할로 “미끌어져 들어간다.”(<<아주 평범한 사람들: 101예비경찰대대와 유대인 학살>>, 책과함께, 2010) 이렇게 미끄러져 들어간 개인에게 조직은 끊임없이 정당화 논리를 제공한다. 위기때마다 자신의 행위를 적절하게 설명해주는 정당화 근거를 찾게 되면 개인은 그것에 더욱 집착하게 된다. 더욱이 그 근거들이 권위자에 의해서 제시되고, 폐쇄된 집단의 구성원들에 의해 동의된다면 더욱 그러하다. 이렇게 본다면 연합적군 가담자들은 “올바른 선택을 진지하게 행한 극히 평범한 사람이라도 벗어날 수 없는 사회적 경로에 무의식적으로 휘말”렸으며, 그런 까닭에 “결국 숙청을 일으킨 것은 예측가능한 사회적 경로와 예측하기 어려운 개인 사이에 벌어진 미묘하고 불안정한 상호작용”이었던 것이다. 그들은 집단의 압력에 굴복했고, 어쩔 수 없이, 정말로 어쩔 수 없이, 그러나 상당 부분 동의가 이루어진 상태에서 “죽음으로 향하는 의식”의 당사자가 되었다.
연합적군 사건이 집단 구성원 모두를 죽음으로 몰고간 것은 아니었다. 살아남은 자들이 있었다. 더욱 범위가 넓은 또다른 문제는 이들에게서 발생했다. 폐쇄된 집단은 그 집단만이 가진 정당화 근거가 있다. 그런데 그 집단을 벗어나 좀 더 넓은, 성격이 다른 집단에 던져진 개인, 즉 집단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는 자신들이 저지른 행위를… [그 집단의] 이데올로기가 아닌 다른 근거로 해명”해야만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자신이 속해 있던 집단의 이데올로기, 정당화 논리를 버리는 일은 ‘전향’이다. “책임 소재가 흩어진 시스템에 참여했고, 전원에게 책임이 있다고도, 아무에게도 책임이 없다고도 할 수 있었던” 조직에 가담했던 이에게는 이것이 어렵지 않다. “책임이라는 문제는 결국 자신이 놓인 체제를 이해하고 행동을 선택한 뒤 자신을, 또는 동지를 상대로 하여 그 행동을 정당화하는, 개개인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갈등으로 수렴된다. 대부분의 경우 이 과정은 개개인을 둘러싼 사회적 합의를 받아들임으로써 매우 간단한 일”이 되는 것이다.
개인은 사회적 힘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책임은 개인에게 귀속된다. 이러한 모순적 상황에서 개인은 자신이 속해있던 집단의 정당화 논리를 버리고 새롭게 가담한 집단의 논리를 받아들임으로써 책임의 문제를 해결한다. 그러나 변화된 상황에서도 새로운 집단에 가담하지 않고 자신이 속해있던 집단의 정당화 논리를 계속해서 보유하려는 개인은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이는 ‘전향’의 문제이고, 이 문제는 이 책의 범위를 넘어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