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르헤스: 칠일밤
- 책 밑줄긋기/책 2012-22
- 2013. 6. 25.
칠일 밤 -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송병선 옮김/현대문학 |
차례
일일 밤-신곡
이일 밤-악몽
삼일 밤-천 하룻밤의 이야기
사일 밤-불교
오일 밤-시
육일 밤-카발라
칠일 밤-실명
에필로그
옮긴이의 글
일일 밤-신곡
48 다시 한번 나는 이렇게 열린 방식으로 <신곡>을 읽으며 느끼는 기쁨을 그 누구도 빼앗을 권리는 없다고 주장하고 싶습니다. 나주에 이에 대한 평들이 나올 것입니다. 즉 신화를 언급하는 각각의 대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단테가 어떻게 베르길리우스의 위대한 시를 차용했고, 그것을 번역하면서 어떻게 더 낫게 만들었는지 알고 싶은 욕망이 생기게 될 것입니다. 처음에 우리는 어린아이의 믿음을 가지고서 책을 읽고, 그 책에 빠져야만 합니다. 그러면 그 책은 끝까지 우리와 함께 갈 것입니다. 이 책은 수십 년 동안 나와 함께 있어 주었고, 만일 내가 내일 이 책을 열어본다면,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새로운 것을 보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나는 이 책이 잠을 깨어 살아가는 나와 우리의 인생보다 훨씬 더 오래 지속될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삼일 밤-천 하룻밤의 이야기
116 <천 하룻밤의 이야기>는 죽지 않았습니다. <천 하룻밤의 이야기>의 무한한 시간은 계속해서 길을 갑니다. 18세기 초에 이 책은 번역되었고, 19세기 총 혹은 18세기 말에 드 퀸시는 다른 방식으로 이 책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 책은 다른 번역자들에 의해 또 다시 번역될 것이고, 각 번역자는 이 책의 서로 다른 판본을 출판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천 하룻밤의 이야기>라는 제목을 가진 수많은 책들에 대해 말 할 수 있게 될지도 모릅니다. 갈랑과 마르드루스가 각각 번역한 두 개의 프랑스 번역본, 버튼과 레인과 페인이 각각 번역한 세 개의 영어 번역본, 헤닝과 리트만, 그리고 바일이 각각 번역한 세 개의 독일어 번역본, 그리고 칸시노스 아센스가 번역한 하나의 스페인어 번역본이 있습니다. 각 번역본은 서로 다릅니다. 왜냐하면 <천 하룻밤의 이야기>는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거나 아니면 재창조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스티븐슨의 훌륭한 <천 하룻밤의 이야기>는 신하와 함께 도시를 걸어다시면서 수많은 모험을 겪는 가짱 왕자라는 주제를 채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스티븐슨은 자기의 왕자인 보헤미아의 플로리셀과 그의 신하 제랄딘을 만들어내어 런던을 돌아다니게 합니다. 그러나 그곳은 진짜 런던이 아니라 바그다드와 유사해 보이는 런던입니다. 하지만 이 바그다드도 실제의 바그다드가 아니라 <천 하룻밤의 이야기>에 나오는 바그다드입니다.
사일 밤-불교
156 열반에 이른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간단하게 말하자면, 더 이상 우리의 그림자를 투사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있는 동안 우리는 업에 종속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행위는 모두 업이라고 불리는 정신 구조 속에 촘촘히 얽혀 있습니다. 우리가 열반에 도달하면, 우리의 행위는 이미 그림자를 지니고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자유의 몸이 되는 것입니다.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우리가 구원을 받으면 선이나 악을 생각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선을 생각하지 않고 선을 행하면서 살 것이기 때문입니다.
열반은 무엇일까요? 서양에서 불교에 대해 관심을 보인 것은 대부분 이 아름다운 말 때문입니다. 열반이라는 단어가 아주 소중하고 귀한 것을 담고 있지 않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럼 열반이란 말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그것은 소멸, 소화를 뜻합니다. 우리가 열반에 이르면, 우리 자신의 불이 꺼진다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죽으면 거기에 거대한 열반과 소멸이 있다는 것입니다.
오일 밤-시
170 브래들리는 시의 효과 중의 하나가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잊혀진 것을 기억하는 인상을 주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훌륭한 시를 읽을 때면, 우리도 그것을 쓸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합니다. 즉 그 시는 이미 우리 안에 존재하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생각은 시에 대한 플라톤의 정의, 즉 "가볍고 날개 달렸으며 성스러운 그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칠일 밤-실명
257 나는 이 강연을 괴테의 시구로 마무리 하려고 합니다. 내 독일어 실력은 형편없습니다. 그러나 "가까이 있는 모든 것은 멀어진다"라는 말 정도는 중대한 실수를 범하지 않고 인용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괴테는 저녁의 황혼을 언급하면서 그렇게 썼습니다. "가까이 있는 모든 것은 멀어진다." 이 말은 사실입니다. 해가 지면 가장 가까인 있던 것들이 우리 눈에서 멀어집니다 그것은 눈에 보이는 세상이 내 눈에서 결정적으로 멀어진 것과 같습니다.
괴테는 황혼만이 아니라 인생을 언급하기 위해 이 말을 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모든 것은 우리를 떠나갑니다. 죽음이 최상의 고독이 아니라면, 아마도 늙음이 최상의 고독일 것입니다. 또한 "가까인 있는 모든 것은 멀어진다"는 실명이 천천히 진행되는 과정을 언급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 주제가 바로 오늘밤 내가 여러분에게 말하려고 했고, 그것이 전적으로 불행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것은 운명 혹은 우연이 제공하는 수많은 이상한 수단 중에서 한 가지 수단임에 틀림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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