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 테일러: 불안한 현대사회


불안한 현대 사회 - 10점
찰스 테일러 지음, 송영배 옮김/이학사



제1장 세 가지 불안 ...9 

제2장 아직까지 명료하게 제시되지 못한 논쟁점 ...24 

제3장 자기 진실성의 원천들 ...40 

제4장 내쳐 버릴 수 없는 지평들 ...47 

제5장 인정에 대한 요구 ...61 

제6장 주관주의로의 침물 ...75 

제7장 투쟁은 계속되고 있다 La Lotta Continua ...94 

제9장 보다 미묘한 언어들 ...106 

제10장 파편화를 반대하며 ...139 


옮긴이 부록:현대사회의 불안 요인과 유교적 윤리관의 의미 ...154 

테일러 교수에게 보내는 편지 ...178 

감사의 말 ...183 

찾아보기 ...184






38 내가 제시하려는 그림은, 변형되긴 했지만 그 자체에 있어서 매우 가치가 있는 어떤 이상에 대한 그림이다. 사실 현대인들이 결코 거부할 수 없는 그런 것이라고 나는 말하고 싶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근본적인 저주나 한탄도, 무비판적인 칭찬도 아니다. 조심스럽게 산술적으로 균형 잡힌 상쇄법도 아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들이 도덕 실천을 회복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줄 수 있는 이상의 [새로운] 만회 작업인 것이다.

이런 작업에 동참하려면 우리는 논쟁의 여지가 많은 다음의 세가지를 믿어야만 한다.

(1) 자기 진실성은 타당한 이상이다.

(2) 이상들, 그리고 그런 이상과 실천의 합일을 누구나 이성적으로 논증할 수 있다.

(3) 이런 논증들은 [개개인들의 삶에서 질적인] 차이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첫 번째 믿음은 자기 진실성의 문화에 대한 부정적 비판과 정면으로 충돌된다. 두 번째 믿음은 주관주의에 대한 배격을 의미한다. 세 번째 믿음은, 자본주의, 산업 사회, 혹은 관료주의 그 어느 것으로 정의되든지 간에 "(사회) 체제system" 때문에 우리 인간들이 현대의 문화 속에 갇혀 있다고 보는, 현대 사회에 대한 [비관적인] 해석들과 합치될 수 없다. 이런 몇 가지 믿음을 납득할 수 있도록 서술하고자 한다. 자기 진실성의 이상부터 시작해 보겠다.


44 18세기 말엽 이전에는 어느 누구도 인간들 사이의 다양한 차이가 도덕적 의미와도 연관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다. 이제는 인간적일 수 있는 특정한 방법이 존재하며, 그것이 바로 나의 방식이라는 것이다. 나는 결코 다른 사람의 것을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방식으로 내 인생을 살아가도록 소명을 받은 것이다. 이런 생각이 자기 진실성에 새로운 중요성을 부여하는 것이다. 내가 나 자신에게 진실하지 못하면 나는 내 인생의 요점을 잃어버리는 것이고, 인간답게 산다는 것이 결국 나를 위하여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대해 파악하지 못하는 셈이다.

이것이 현대를 사는 우리들에게 전해져 내려온 강력한 도덕적 이상인 것이다. 이런 도덕적 이상은 자기 자신과 나 자신의 내적 본성과의 접촉에 상당한 도덕적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소중한] 내적 본성은 [현대 사회에서] 부분적으로 외면적인 행동 일치의 압력에 의하여 사라질 위험에 처해 있다. 또한 자기 자신에 대한 도구적인 태도로 인하여 우리들은 이런 내면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능력마저 상실할 수 있다. 그런데 바로 [우리 서양인들에게 전해져 내려온] 이런 도덕적 이상은, 우리 목소리들 하나하나가 바로 자기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자기 본연의 어떤 것을 가지고 있다는 본연성, 독자성의 원리를 도입함으로써, 자기와의 접촉self-contact의 중요성을 증폭시키고 있다. 나는 나의 삶의 방향을 외면적인 행동 일치의 요구에 맞추어서는 안 될 뿐만 아니라 내가 지켜 나가야 할 삶의 모델을 내 자신의 밖에서 찾을 수도 없다는 것이다.


58 자기 선택의 이상은 자기 선택을 넘어서는 다른 사항들이 있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다. 이상이란 홀로 성립될 수 없는 것이다. 이상은 자기 창조가 의미를 갖게 되는 관점들을 규정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그런 중요한 문제들의 지평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니체에 의하면, 내가 가치들의 도표를 다시 만들어 낼 때 나는 진실로 위대한 철학자가 되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인생의 중요한 문제들에 관한 가치들을 재정의 하는 것을 의미한다.


59 인생의 의미를 추구하며 자신의 정체성을 유의미하게 만들고자 하는 사람은 자신의 현존재를 중요한 문제들의 지평 앞으로 이끌어내야 한다 사회, 혹은 자연의 요구들에 정면 대립하면서, 역사나 연대적 고리를 차단해 가면서, 오직 자기 실현에만 골몰하고 있는 현대 문화의 생활 양태들 속에서 이상은 스스로 파괴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자기만을 중심에 놓고 있는 "나르시시즘"의 형태들은 정말로 천박하고 진부한 것이다.


63 자기 진실성의 이상은 사회에 관한, 아니면 적어도 사람들이 어떠한 방식으로 함께 살아가야 하는가 하는 문제에 관한 몇 가지 생각들을 포괄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자기 진실성은 현대 개인주의의 한 단면이다. 모든 형태의 개인주의는 단순히 개인의 자유를 강조하는 것만이 아니고 또한 사회의 모형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 공통된 특징이다. 우리들은 개인주의의 이런 두 가지 다른 의미를 혼동할 때, 이런 [사회적] 의미를 보지 못하는 것이다. 물론 아노미나 와해를 추구하는 개인주의에서는 사회 윤리라는 것을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도덕 원리, 혹은 도덕이상으로서의 개인주의는 개인들이 마땅히 어떻게 남들과 함께 살아가야만 할 것인가에 대한 견해를 제공해야만 한다.


152 이제까지의 서술로부터 끌어내고자 하는 나의 총체적 요지는 현대사회에 대한 우려를 나타내는 다양한 흐름들과 함께 묶여 있다. 기술을 새로운 틀 속에 묶어 두려는 실제적인 작업은 시장과 관료적 국가에 의하여 야기되는 점점 더 커지는 원자주의와 도구주의의 경향을 정면으로 전환시키려는 공동의 정치적 행동을 요구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공동적 행위는 파편화와 무력감 - 말하자면, 토크빌이 처음으로 정의 내린 바 있는 걱정, 즉 보호[감독] 권력에로의 민주주의 침하 경향을 극복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동시에 원자주의적이고 도구주의적 태도는 자기 진실성을 점점 더 저질적으로 그리고 천박하게 만드는 주범들이다. 이런 [현대 사회의 곤궁한] 상황에서 새로운 틀짜기의 기획에 참여하는 생동적인 민주적인 삶은 또한 긍정적인 충격을 줄 것이다. 

우리의 상황이 요구하는 복잡하고 다층적인 투쟁, 즉 지적, 정신적, 정치적인 투쟁이다. 따라서 공공의 장에서의 논쟁은 병원, 학교 등과 같은 많은 제도적 장치들에 대한 논쟁들과 상호 연결되어 있다. 이런 제도적 장치들에는 기술을 새로운 틀에 묶으려는 문제들이 구체적인 형태로 체험되고 있다. 사실 이런 논쟁들은, 기술의 위치와 자기 진실성의 요구를, 그리고 그것 이상의 인간의 삶의 양태, 그리고 그것과 우주와의 관계를 이론적 맥락에서 정의 내리려는 많은 시도들을 키워 나가거나 또는 그것들에 의하여 키워지기도 하는 것이다.

이런 다면적인 논쟁에 효과적으로 참여하기 위해서, 우리는 현대 사회의 문화 속에 있는 위대한 점과 동시에 천박하거나 위험스러운 점을 볼 수 있어야만 한다. 파스칼(1623~1662)이 일찍이 인간에 대하여 말했던 것처럼, 현대 사회는 장대함grandeur과 동시에 비참함misere에 의하여 특징지어진다. 이 두 가지 점을 포용하는 시각만이 이 시대의 최대의 도전에 제대로 대처할 수 있는 우리 시대에 대한 굴절 없는 통찰을 우리들에게 허용할 것이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