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루: 형이상학 강의


형이상학 강의 - 10점
마이클 루 지음, 박제철 옮김/아카넷


1판 서문 

2판 서문 

3판 서문 


서론 

형이상학의 본성 : 몇 가지 역사적 고찰 

범주 이론으로서의 형이상학 


제1장. 보편자 문제Ⅰ: 형이상학적 실재론 

제2장. 보편자 문제Ⅱ: 유명론 

제3장. 구체적 개체Ⅰ: 기체, 다발, 실체 

제4장. 명제 

제5장. 가능 필연 

제6장. 인과성 

제7장. 시간의 본성 

제8장. 구체적 개체Ⅱ : 시간을 뚫고 지속함 

제9장. 반실재론의 도전 

참고문헌 

찾아보기 

역자 후기





서론

형이상학metaphysics이 어떤 학문인지에 대해 철학자들은 서로 다른 여러 의견을 내왔다. 아리스토텔레스와 중세철학자들은 형이상학에 대한 두 가지 설명을 제공하고 있다. 때로 형이상학은 제1원인, 특히 신 혹은 부동의 원동자Unmoved Mover가 무엇인지를 확립하고자 하는 시도로 규정되며, 또 때로는 존재로서의 존재being qua being에 대한 매우 일반적인 학문이라 규정되고 있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와 중세 철학자들은 이 두 규정 모두가 단일한 학문 분과를 가리키는 것이라 믿었다. 반면 17~18세기의 합리론자들은 형이상학자의 범위를 확장했다. 그들은 형이상학이 신의 존재와 본성을 다루는 것 외에도, 정신과 물질 사이의 구분, 영혼의 불멸성, 자유의지 등의 주제도 다루는 학문이라 생각했다.

경험론자들과 칸트는 형이상학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와 합리주의자들의 개념화를 비판했다. 이들에 따르면, 아리스토텔레스와 합리론자들은 인간 지식의 한계를 넘어서는 것을 찾고자 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칸트조차도 정당화된 형이상학적 지식이 가능하다고 했다. 그에 따르면, 형이상학의 목적은 우리가 세계에 대해 생각할 때 작동하는 가장 일반적인 [개념] 구조물을 탐색하는 것이다. 형이상학에 대한 칸트 식의 이러한 개념화는 현대 철학자들 사이에서 인기를 누려왔다. 그래서 그들은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형이상학의 목적은 우리의 개념 도식conceptional scheme 혹은 우리의 개념틀conceptional framework을 묘사하는 것이다. 이 철학자들은 칸트에 동의해 전형적으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세계의 구조 그 자체에 우리가 접근할 수는 없으며 형이상학자들은 그 세계에 대한 우리의 생각의 구조를 묘사하는 데 만족해야 한다.

형이상학에 대한 칸트 식의 이러한 개념화는 그리 인상적이지 못하다. 왜냐하면 만일 세계 그 자체의 성격을 규정하는 것에 문제가 있다면, 그 세계에 대한 우리 생각의 성격을 규정하는 것에도 비슷한 문제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만약 우리가 아리스토텔레스적인, 아니면 합리주의적인 형이상학이 그 시작부터 이미 실패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에 동의한다면, 위의 두 개념화가 형이상학에 관한 책에서 매우 상이한 여러 주제를 제공한다는 점을 기대할 수 있다. 이 책에서 우리는 아리스토텔레스를 따라, 형이상학을 존재로서의 존재에 대한 탐구로 간주할 것이다. 형이상학을 이렇게 간주한다는 것은, 사물들이 속하게 되는 가장 일반적인 범주가 무엇인지를 확인한다는 것이다. 또 이러한 범주들 사이에 어떠한 관계가 성립하는지를 확인해 본다는 것이다.


형이상학의 본성: 몇 가지 고찰

형이상학이 무엇인지 말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형이상학 분과에서의 여러 작업을 살펴보면, 우리는 이 분과가 매우 상이하게 특징지어지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어떤 경우 형이상학은 기술적descriptive인 것으로 특징지어진다. 이 경우 설명은 형이상학자라고 불리는 철학자들이 실제로 하고 있는 작업을 보여줌으로써 이루어진다. 다른 경우 형이상학은 규범적nomative인 것으로 특징지어진다. 이 경우 설명은, 형이상학이라는 작업을 할 때 철학자들이 해야만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줌으로써 이루어진다. 기술적이든 규범적이든 형이상학에 대한 이러한 규정은 형이상학의 주제와 방법론에 대한 서로 아주 다른 설명들을 제공하고 있으며, 그래서 아마 제3자가 본다면 이들이 사실은 서로 다른 분과들을 규정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고 느끼게 될 것이다. 형이상학의 본성에 대한 이러한 의견 불일치는 분명 형이상학의 오랜 역사와 관련이 있다. 철학자들은 형이상학을, 혹은 그들이 형이상학이라 부르는 어떤 것을 2000년도 넘는 시간 동안 행해 왔으며, 그 노력의 결과 다양한 주제와 방법론이 무엇인지를 정하기 어려운 이유는 이 분과의 오랜 역사에만 기인하는 것은 아니다. 형이상학의 태동기부터 형이상학이 무엇이어야 하는 지에는 모호한 점들이 있었다.

이 분과의 이름인 '형이상학'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문들 중 어느 한 논문의 제목에서 따온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 자신이 이 논문에 제목을 붙이지는 않았다. '형이상학'이라는 제목은 후대의 사상가들이 붙인 것이다. 그 논문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분과를 제1철학first philosophy 혹은 신학theology이라고 불렀고, 이 분과가 추구하는 지식을 지혜wisdom라고 불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중에 형이상학이라는 제목이 사용되는 방식으로 보아 우리는 다음과 같이 생각할 수 있다. 즉 우리가 형이상학이라고 부르는 것, 바로 그것이 아리스토텔레스의 그 논문에서 펼쳐진 사상이다. 불행하게도 아리스토텔레스는 그 논문에서 자신이 수행하고 있는 것에 대한 단일한 설명을 제공하지 않고 있다. 어떤 맥락에서는 그는 그 논문에서 자신이 추구하는 것에 대해 그것은 제1원인에 대한 앎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것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암시한다. 즉 형이상학이란 일종의 분과 학문으로서, 다른 분과들이 탐구하는 주제와는 전혀 다른 주제를 탐구하는 학문이다. '제1원인'이라는 표현은 어떤 주제를 가리키고 있을까? 아마도 서로 다른 여러 가지 것을 가리키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핵심적인 것은 신 혹은 부동의 원동자이다. 그래서 나중에 형이상학이라고 불리게 된 그 분과는 신을 다루게 된다. 이 분과에 대해 아리스토텔레스는 더 많은 것을 이야기해 준다. 그는 이 분과가 이론적 분과라고 말한다. 생산을 목적으로 하는 다양한 기술들, 그리고 인간 행위의 계도를 목적으로 하는 다양한 실용적 학문들(윤리학, 경제학, 정치학 등)과 달리 형이상학은 진리 자체를 파악하고자 하는 목적을 가진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형이상학은 수학이나 물리학 등의 학문과 일치한다. 수학은 양을 주제로 삼는다. 물리학은 자연세계를 구성하는 물질적 혹은 물리적 실체들(살아 있는 것과 죽어있는 것 모두)의 구조와 본성을 탐구한다. 반면 형이상학은 비물질적 실체를 자신의 주제로 삼는다. 형이상학 분과와 이 분과의 주제 사이의 관계는 형이상학으로 하여금 흥미로운 지위를 갖도록 해준다. 다른 분과들과는 달리 형이상학은 형이상학의 주제가 되는 것이 그냥 존재한다고 가정해 버리지 않는다. 형이상학은 비물질적 실체가 존재함을 증명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자연 세계 바깥에 부동의 원동자가 존재함을 증명하고자 하는 기획이 형이상학의 한 부분을 이루게 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구분된 주제가 있을 때에만 구분된 분과가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따라서 그는 다음과 같은 착상에 개입하게 된다. 즉 형이상학자들은 형이상학의 의제에 대한 여러 기획 중 하나가 성공적으로 수행되어야만[비물질적 실체의 존재에 대한 증명], 자신들이 활동한 분과의 존재를 확신할 수 있다.

그런데 아리스토텔레스는 형이상학을 제1원인에 대한 탐구로서만 묘사하는데 만족하지 않는다. 그는 이렇게도 말한다. 형이상학은 존재로서의 존재를 탐구하는 학문이다. 이러한 규정에 살이 붙는다면, 형이상학자이란 자신만의 특정 주제를 다루는 분과 학문이 아닌 것으로 드러난다. 형이상학이란 오히려 보편 학문으로서, 존재하는 모든 대상을 다루는 학문인 것이다. 이러한 규정에 따르면, 형이상학은 다른 학문의 주제가 되는 것들을 탐구한다. 형이상학은 이러한 대상들을 탐구하는 방식에서 다른 학문들과 구분된다. 형이상학은 이러한 대상들을 특정한 관점에서 탐구한다. 즉 이러한 대상들이 존재자beings라는 관점에서, 혹은 이러한 대상들이 존재하는 사물이라는 관점에서 말이다. 그래서 형이상학은 사물들을 존재자로서 혹은 존재하는 것으로 고찰하며, 사물들이 존재자인 한에서 드러내는 속성들 혹은 특성들이 어떠한 것인지를 밝히고자 한다. 따라서 형이상학은 단순히 존재자라는 개념만을 이해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매우 일반적인 다른 개념들, 즉 단일성unity 혹은 동일성/정체성identity, 차이difference, 유사성similarity, 비유사성dissimilarity 등의 개념도 이해하고자 한다. 보편 학문으로 이해되는 형이상학에서 핵심적인 것은 아리스토텔레스가 범주categories라고 부르는 것에 대한 성격 규정이다. 범주란 사물들이 속하는 최고의 혹은 가장 일반적인 유형/종kinds이다. 그래서 형이상학자들이 하는 일이란 다음과 같은 것이다. 이러한 최고의 유형/종이 무엇인지 규정하는 것, 각 범주에 고유한 특징이 무엇인지 규정하는 것. 이렇게 함으로써 형이상학자들은 존재하는 모든 것의 구조에 대한 어떤 지도를 우리에게 제공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아리스토텔레스 안에서 형이상학에 대한 서로 다른 두 가지 설명을 보게 된다. 제1원인, 특히 신이 무엇인지 규정하고자 하는 분과 학문으로서의 형이상학이 그 하나이고, 다른 하나는 사물들을 존재의 관점에서 탐구해서 존재의 모든 영역의 성격에 대한 일반적인 규정을 제시하고자 하는 본편적이면서 완전히 일반적인 학문으로서의 형이상학이 그것이다. 첫눈에 보기에, 형이상학에 대한 이 두 개념화 사이에는 긴장이 있는 것 같다. 한 학문이 어떻게 분과적이면서 보편적 일 수 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여기에서 긴장을 깨닫고 있었고, 그래서 이 긴장이 겉보기에만 그렇다는 것을 보이기 위해 노력했다. 한편에서 그는 다음과 같은 제안을 한다. 제1원인에 대한 학문은 사물들의 근본적인 특성을 지탱해주는, 즉 사물들이 드러내는 그 밖의 다른 특성들의 바탕이 되는 근본적인 특성을 지탱해 주는 원인이 무엇인지를 규정한다.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는 다음과 같이 말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 사물의 존재 그 자체가 바로 근본적인 것으로, 제1원인을 탐구하는 학문은 존재로서의 존재를 탐구하는 학문이 된다. 다른 한편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다음과 같이 주장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어떤 것을 탐구할 때 그것을 존재하는 것으로서 탐구하는 학문은 신을 탐구의 대상으로 간주할 것이다.

중세의 아리스토텔레스 전통 속에서 우리는 형이상학에 대한 이러한 이중적 성격 규정을 다시 만나게 된다. 또한 중세 철학자들도 아리스토텔레스와 마찬가지로 형이상학에 대한 이러한 이중적 개념화가 단일 분과 내에서 실현된다고 믿었다. 그래서 이 분과는 실재의 범주적 구조를 기술하는 동시에 신이라는 실체의 존재와 본성을 확립하려는 목적을 가진다. 그러나 17~18세기 대륙 합리론자들의 저술들에서 우리는 그 전의 형이상학자 기획의 범위를 확장하는 형이상학적 개념화를 만나게 된다. 대륙 합리론자들이 아리스토텔레스적 형이상학 이론의 세부적인 여러 사항을 거부하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이들은 형이상학이 무엇을 하는 학문인가에 대해서는 아리스토텔레스와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이들에게도 형이상학은 존재하는 사물들의 가장 일반적인 유형/종의 성격을 규정하는 학문이며, 또한 신이라는 실체와 그의 인과적 역할을 규명하는 학문이다. 그럼에도 아리스토텔레스 형이상학에서는 나오지 않던 주제들이 새로이 형이상학적 탐구의 대상으로서 이해되기 시작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경우, 변화하는 물리적 대상들에 대한 탐구, 생물과 무생물 사이의 간극에 대한 탐구, 그리고 무엇이 인간에게 고유한 것인가를 확립하려는 시도 등은 형이상학이 아니라 자연과학이나 물리학의 맥락에서 처리되어야 할 것들이었다. 그러나 합리론자들은 아리스토텔레스 물리학이 더 수학적이며 더 실험적인 새로운 물리학으로 대체되어 가는 지적 환경 속에서, 위와 같은 주제들 역시 형이상학적이라 생각하게 되었다. 이들에 따르면 형이상학이란 단순히 신의 존재와 본성만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정신과 물질 사이의 구분, 인간 안에서의 정신과 물질 사이의 관계, 자유의지의 본성과 범위를 다루는 학문이다.


제1장. 보편자 문제Ⅰ: 형이상학적 실재론 

유사함이라는 현상phenomenon of similarity 혹은 속성 일치 현상phenomenon of attribute agreement이 있다. 이 현상은 실재론자들과 유명론자들 사이에 논쟁을 불러온다. 실재론자들은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대상들이 서로 유사하거나 속성이 일치하는 경우, 거기에는 어떤 것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대상들은 바로 그 어떤 것을 공유하는 것이다. 유명론자들은 이를 부정하지만, 실재론자들은 이를 인정하면서 공유되는 이 엔터티entity를 보편자universal라고 부른다. 그들에 따르면 보편자란 어떤 엔터티로서, 서로 다른 여러 대상에 의해 동시적으로 예화하는exemplified 것이다. 아 보편자에는 사물들이 갖는 속성properties, 사물들이 놓이는 관계relations, 사물들이 속하는 종kinds 등이 있다.


실재론자들은 보편자가 실재한다고 주장한다. 이를 보이기 위해 그들은 주-술 담론 현상phenomena of subject predicate discourse, 추상물 지칭 현상phenomena of abstract reference 등을 지적한다. 실재론자들은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만약 우리가 주술의 지칭체로서의 보편자를 상정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주-술 문장이 참이 될 수 있는지 설명할 수 없다. 또 그들은 다음과 같이 논한다. 추상물 지칭 용어가 포함되어 있는 어떤 문장이 참임이 설명되려면, 그 설명은 오직 다음과 같은 전제하에서만 가능하다. 즉 추상물 지칭 용어가 규정하는 것은 보편자라는 전제.

그럼에도 실재론자들은 술어화나 추상물 지칭이라는 것들에 대해 설명하면서, 그것이 어느 정도 일반성을 갖느냐 하는 문제를 놓고 종종 의견의 불일치를 보인다. 예를 들어 어떤 실재론자들은 술어화에 대한 자신의 설명이 '예화하다exemplifies'라는 용어를 포함하는 문장에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또 다른 실재론자들은 자신의 설명이 오직 기본적인primitive, 혹은 정의되지 않은 undefined 술어나 추상 용어에만 적용된다고 주장한다. 그외에 어떤 실재론자들은 보편자의 존재를 인정하기는 하지만, 오직 존재하는 대상들에 대해 현실적으로 actually 참이 되는 술어들에 대응하는 보편자의 존재만 인정한다. 반면 또 다른 실재론자들은 예화된 속성, 종, 관계뿐만 아니라 예화되지 않은 속성, 종, 관계도 존재한다고 믿는다.


제2장. 보편자 문제Ⅱ: 유명론 

유명론자들은 보편자가 존재함을 부정한다. 이러한 견해를 취하게 된 동기는 그들이 다음과 같이 믿기 때문이다. 즉 우리의 형이상학은 이론적으로 단순해야 한다. 그들은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만약 설명력이 똑같은 이론이 둘 있다면, 우리는 가정하는 사물의 종류가 더 적은 이론을 선택해야 한다. 그리고 그들에 따르면, 오직 개체들particulars이나 개별자들individuals만 가정하고도 우리는 속성 일치, 주-술 문장, 추상물 지칭, 이 모든 것을 충분히 만족스럽게 설명할 수 있다.

그러나 유명론의 형태는 여럿이다. 가장 극단적인 형태는 오직 구체적 개체들만 포함하는 존재론을 취한다. 그러고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즉 분명히 보편자에 대한 주장처럼 보이는 모든 주장은 사실 구체적 개체들에 대한 주장의 위장에 불과하다. 이러한 극단적 형태의 유명론에는 여러가지 어려움이 있다. 그리고 이러한 어려움들은 어떤 철학자들로 하여금 메타 언어적metalinguistic 형태의 유명론을 취하게 했다. 그렇지만 이 견해는 다음과 같은 입장을 취한다. 즉 분명히 보편자에 대한 주장처럼 보이는 모든 주장은 사실 언어적 표현들에 대한 주장일 뿐이다. 트롭 이론trope theory이라고 불리는 유명론도 있다. 이 견해에 따르면, 속성이나 성질 같은 것들이 존재하기는 한다. 그러나 이것들 모두 개별적이다. 다시말해 이것들 각각은 오직 한 대상 안에서만 발견될 수 있다.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분명 보편자에 대한 주장처럼 보이는 모든 주장은 사실 이러한 개별적 속성들에 대한 주장이다. 마지막으로 허구주의fictionalism라고 불리는 유명론이 있다. 이 견해에 따르면, 보편자에 대한 이야기는 마치 허구적 담론에 대한 이야기 같은 것이다. 보편자에 대한 이야기는 단지 우리가 이야기 하는 허구적 이야기의 한 요소일 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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