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 고르기아스


고르기아스 - 10점
플라톤 지음, 김인곤 옮김/이제이북스



‘정암학당 플라톤 전집“을 펴내며 


작품 해설 

작품 개요 

등장 인물 


본문과 주석 


부록 

옮긴이의 글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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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개요

I. 도입부(447a-448e)

연설 회장 바깥 장면: 소크라테스, 카이레폰, 칼리클레스 간의 짧은 대화


II. 소크라테스와 고르기아스의 대화 (449a-461b)

(1) 연설술에 대한 정의 (449a-453a)

(2) 정치술의 원동력이자 모든 기술의 상위 기술로서의 연설술 (453b-457b)

(3) 고르기아스적 연설술의 문제점 (457c-461b)


III. 소크라테스와 폴로스의 대화 (461c-481b)

(1) 고르기아스적 연설술의 정체: 정치술의 부분적 모상 (461c-466a)

(2) 고르기아적 연설술의 힘은 과연 큰가? (466b-468e)

(3) 소크라테스적 도덕 원리 (468e-479e)

  ① 불의를 저지르는 것은 나쁘고 비참한 것이다. (470e-474a)

  ② 불의를 저지르는 것이 불의를 당하는 것보다 더 나쁘다. (474a-476a)

  ③ 불의를 저지르고 처벌받지 않는 것이 가장 나쁜 것이다. (480a-481b)

(4) 연설술은 불의의 고발하고 제거하는 데 사용해야 한다. (480a-481b)


IV. 소크라테스와 칼리클레스의 대화 (481b-522c)

(1) 칼리클레스의 반론 (482c-492d)

  ① 자연의 정의와 법의 정의 (482c-486d)

  ② 더 강한 자의 정체와 행복의 본질 (491b-492d)

(2) 칼리클레스에 대한 소크라테스의 설득 (492d-505c)

  ① 설화를 통한 설득 (492d-494a) : 무절제한 삶과 절제있는 삶의 비교

  ② 쾌락주의에 대한 논박 (494b-500a)

  ③ 기술적 활동과 경험적 아첨활동의 구별에 따른 평가 (500b-503d)

    - 민중을 상대로 한 아첨 활동 (500b-503d)

    - 참된 연설술과 연설가의 활동 (503d-505b)

  ④ 절제 있는 사람이 행복하다. (505b-508c)

    - 절제(개인) - 사회(정의) - 우주(질서)의 관계

(3) 사적인 활동과 공적인 활동(정치 활동)에 관한 결론

  ① 불의에 대한 대책은 어떠해야 하는가? (508c-513c)

  ② 참된 정치가의 자격과 현실 정치가들에 대한 비판 (513c-521a)

  ③ 소크라테스의 자기변호(521a-522e)

(4) 사후 심판에 관한 설화 (523a-526d)

(5) 삶의 선택을 위한 권고 (526d-627e)





521e -522a

내가 믿건대 나는 참된 정치술을 시도하며 정치를 하는 몇몇 아테네인들 가운데 한사람이네. 나 혼자뿐이라고 말하지 않으려고 몇몇이라고 했지만, 요즘 사람들 중에는 내가 유일하다고 믿네. 내가 매번 하는 발언들은 보답을 목적으로 하지 않고 최선의 것을 목적으로 하며 가장 즐거운 것을 목적으로 하지 않기 때문이네. 그리고 나는 자네가 권하는 이 세련된 것들을 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재판정에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를 거네. 내가 폴로스에게 했던 말이 그대로 나에게 적용되는 셈이지. 나는 의사가 요리사의 고발을 받아 아이들 앞에서 재판을 받듯이 재판을 받을 테니까. 누군가가 이런 말로 그를 고발한다면, 그런 사람이 이 아이들 앞에 붙잡혀서 무슨 변론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보게. "아이들이여, 여기 이 사람은 바로 여러분들에게 나쁜 짓을 많이 저질렀습니다. 특히 여러분들 중에서도 가장 어린 아이들을 자르고 지져서 망가뜨립니다. 그리고 당혹스럽게 만들기도 하지요. 배고픔과 갈증을 강요하여 여위게 하고 쓰디쓴 물약으로 사레들게 함으로써 말입니다. 그는 내가 온갖 종류의 많은 즐거운 것들로 여러분에게 호화로운 잔치를 베풀어 왔던 것처럼 하지 않습니다." 이런 나쁜 상황에 걸려든 의사가 무슨 말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나? 아니면, 그가 "아이들이여, 나는 이 모든 일을 건강을 생각해서 해 왔습니다."라고 진실을 말하면, 이런 부류의 재판관들이 얼마나 크게 아우성을 칠 거라고 생각하나? 아우성 소리가 크지않겠나?


522d 그러므로 만약 누군가가 나를 논박하여 이것으로는 내가 나 자신과 다른 사람을 도와줄 수 없다는 걸 보여준다면, 많은 사람들 앞에서든 몇몇 사람들 앞에서든 일대일로든 나는 논박당하는 것을 부끄러워할 거네. 그리고 이 무능함으로 인해 죽게된다면 나는 원통하겠지. 그러나 아첨하는 연설술을 가지고 있지 않아서 삶을 마감하게 된다면, 내가 확신하거니와 자네는 내가 그 죽음을 쉽게 감내하는 것을 보게 될 거네. 사실, 완전히 무분별하고 비겁한 자가 아니라면 누구나 죽는 것 자체는 두려워하지 않고 불의를 저지르는 것을 두려워하네. 혼이 여러 부정의한 행위들로 가득 차서 하데스에 이르는 것은 모든 나쁜 것들 중에서도 가장 극단적인 것이니까. 


525b-527e

  형벌을 받는 모든 자들에게는 다른 이로부터 올바르게 형벌을 받음으로써 유익을 얻고 더 나은 자가 되는 것이 적절하네. 아니면 다른 사람들에게 본보기가 되어야 하네. 어떤 응분의 고초를 겪는지를 보고 두려워하여 다른 사람들이 개선될 수 있도록 말이네. 신들과 사람들에 의해 대가를 치르고 이롭게 되는 자들은 치료가 가능한 잘못을 저지르는 자들이네. 그렇기는 하지만 그 이로움은 여기서나 하데스에서나 고통과 괴로움을 통해서 그들에게 주어지네. 다른 방법으로는 불의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지. 본보기들은 극단적인 불의를 저질러서 그 부정의한 행위로 인해 치료가 불가능해진 자들에게서 나오네. 그리고 이들은 치료가 불가능한 자들이기 때문에 자신들은 더 이상 유익을 전혀 얻지 못하지만, 이들이 잘못으로 인해 가장 크고 가장 고통스럽고 가장 무서운 수난을 영원히 겪는 것을 보는 다른 사람들은 유익을 얻네. 이들은 저곳 하데스의 감옥에 말 그대로 본보기로 매달린 채 끊임없이 도착하는 부정의한 자들에게 경고성 구경거리가 된다네. 폴로스의 말이 참이라면, 나는 아르켈라오스뿐만 아니라 그런 참주라면 누구라도 이 본보기들 가운데 하나가 될 거라고 주장하네. 나는 이 본보기들의 대사수가 참주들과 왕들과 권력자들과 나랏일을 하는 사람들에게서 나왔다고 생각하네. 이들은 권세를 남용하여 가장 크고 가장 불경한 잘못들을 저지르기 때문이지. 호메로스도 이에 대해 증언하고 있다네. 그는 왕들과 권력자들을 하데스에서 영원한 시간 동안 형벌을 받고 있는 자들로 묘사해 놓았으니까. 탄탈로스와 시쉬포스와 티튀오스가 그들이네. 그러나 테르시테스의 경우는, 그리고 다른 어떤 몹쓸 자가 평범한 사람일 경우에는, 아무도 그를 치료 불가능한 자로서 큰 형벌에 붙잡혀 있는 것으로 묘사해 놓지 않았네. 내가 생각하기에 그는 권세를 부릴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았기 때문이네. 그렇기 때문에 그는 권세를 부릴 수 있는 자들보다 더 행복했던 것이지. 그러나 실은 칼리클레스, 대단히 몹쓸 자가 되는 사람들도 힘 있는 자들 가운데서 나오네. 물론 이들 중에서도 훌륭한 사람들이 나지 말라는 법은 없네. 그리고 그런 자들이 나온다면 그들은 대단히 감탄할 만한 인물이네. 불의를 저지를 수 있는 큰 권세를 가졌는데도 평생 정의롭게 산다는 것은 대단히 칭찬받을 만한 일이니까. 그러나 그런 사람들은 몇 안 되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이 이곳에서도 나왔고 다른 곳에서도 나왔기 때문에 앞으로도 있을 거라고 생각하네. 누가 무엇을 맡겨도 그것을 정의롭게 처리해 내는 능력으로서의 덕이 훌륭하고 뛰어난 자들 말이네. 뤼시마코스의 아들 아리스테이데스가 바로 그런 사람들 가운데 하나로 다른 모든 그리스인들 사이에서도 명성이 높았지. 그러나, 내가 말했듯이, 저 라다만튀스가 그런 자를 하나 붙잡으면, 그에 관해서는 다른 것은 - 그가 누구이며 누구의 아들인지는 - 전혀 몰라도 그가 몹쓸 자라는 것은 안다네. 그는 이것을 알아보고 치료가 가능해 보이는지 불가능해 보이는지를 표시해서 타르타로스로 보낸다네. 그리고 그곳에 도착하면 응분의 고초를 겪게 되네. 그러나 때때로 그는 경건하게 진리와 함께 살았던 다른 혼, 그러니까 평범한 사람의 혼이나 다른 누군가의 혼, 특히 사는 동안 자신의 일을 행하고 다른 일에 참견하지 않았던 철학자의 혼을 - 어쨌거나 나는 이렇게 주장하네, 칼리클레스 - 알아보고서 감탄하며 축복받은 자들의 섬들로 보내기도 하네. 아이아코스도 이와 똑같은 일을 하네. 이 둘은 각자 지팡이를 지니고 심판을 하네. 그리고 미노스만이 황금홀을 가지고 앉아서 지켜본다네. 호메로스의 오뒤세우스가 "황금 홀을 가지고 죽은 자들에게 정의의 판결을 내리는" 그를 보았다고 말하고 있듯이 말일세.

  그러므로 칼리클레스, 나는 이 이야기를 믿고 있네. 그래서 나는 어떻게 하면 심판관에게 되도록 가장 건강한 혼을 보여 줄 수 있을지 살피고 있다네. 나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얻은 명예들과는 작별하고, 진리를 연마하면서 내가 할 수 있는 한 참으로 가장 훌륭한 자로 살고 죽을 때도 그렇게 죽으려고 노력할 거네. 그리고 나는 내 능력이 닿는 데까지 다른 모든 사람에게도 이 삶과 이 경쟁을 권하며, 무엇보다도 자네에게 자네가 권한 것에 대한 대답으로서 권하는 바이네. 나는 그것이 이승의 어떤 경쟁보다도 가치 있다고 주장하네. 그리고 나는 자네를 비난하네. 왜냐하면 내가 조금 전에 말한 심판과 판결을 받을 때 자네는 자신을 도울 수 없을 테니까. 자네가 아이기나의 아들인 저 심판관 앞에 갔을 때, 그리고 그가 자네를 붙잡아 재판에 붙일 때, 자네는 여기서 내가 그랬던 것 못지않게 입을 쩍 벌리고 현기증을 일으킬 것이며, 어쩌면 누군가가 치욕스럽게도 자네의 턱을 갈기고 진창에 밟아 뭉갤지도 모르네.

  그런데도 아마 자네는 내가 말한 이것들을 마치 노파의 이야기인양 설화로 여기고 깔보겠지. 물론 이보다 더 훌륭하고 더 참된 것들을 어떻게든 뒤져서 찾아낼 수만 있다면, 이것을 깔보더라도 조금도 놀랍지 않겠지. 그러나 사실은, 자네가 알다시피, 자네와 폴로스와 고르기아스, 이렇게 당신들은 셋이고 요즘 그리스인들 중에서 가장 지혜로운 자들이지만, 저승에서도 분명히 이익이 되는 이 삶이 아닌 다른 어떤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당신들은 입증해 보일 수 없네. 오히려 그렇게 많은 주장들 중에서 다른 것들은 모두 논박당하고 이 주장만 확고하게 남았네. 불의를 당하는 것보다 불의를 저지르는 것을 더 조심해야 하며, 사람은 사적으로나 공적으로나 훌륭해 보이는 데 주의를 기울일 것이 아니라 실제로 훌륭한 상태에 있도록 하는 데 무엇보다도 주의를 기울여야 하며, 누구든지 어떤 점에서 나빠진다면 응징을 받아야 하고 응징을 받고 대가를 치름으로써 정의로워지는 것이 정의로운 상태에 있는 것 다음으로 두 번째로 좋은 것이며, 모든 아첨은 자신에 대한 것이든 다른 사람들에 대한 것이든 몇몇 사람들에 대한 것이든 많은 사람들에 대한 것이든 피해야 하며, 연설술은 언제나 정의로운 것을 위해 사용해야 하고 다른 모든 행위도 그렇게 되어야 한다는 주장 말이네.

  그러므로 나를 믿고 따라 오게. 자네가 도착하면, 앞서 한 이야기가 알려 주고 있듯이, 살아서나 죽어서나 행복을 누리게 될 곳으로, 그리고 누가 자네를 어리석다고 깔보고 진창에 밟아 뭉개고 싶어 한다면 그러라고 하게. 그렇다네, 제우스께 맹세컨대 이 치욕스러운 매를 자네에게 치라고 자신 있게 허락하게. 자네가 덕을 단련함으로써 실제로 훌륭하고 좋은 상태에 있다면 끔찍한 일을 조금도 당하지 않을 테니까. 그리고나서, 우리가 함께 이렇게 덕을 단련한 후에, 그때 비로소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나랏일에 나서거나, 아니면 우리가 의미 있게 여기는 일을 하기로 결정해야 할 것이네. 그때는 우리가 지금보다 결정을 더 잘 내릴 수 있는 상태에 있을 테니까. 사실, 지금까지 드러난 바와 같은 상태에 놓여 있으면서 우리가 무슨 대단한 자들이라도 되는 양 호기를 부리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네. 우리는 같은 문제에 대해서, 그것도 가장 큰 문제에 대해서 생각이 전혀 일치하지 않으니까. 우리는 그만큼 교육이 부족한 상태에 있네. 그러므로 지금 우리에게 드러난 이 주장을 인도자로 이용하세. 살아서나 죽어서나 정의는 물론이고 다른 덕을 모두 단련하는 것, 이것이 가장 좋은 삶의 방식임을 우리에게 지시해 주는 주장을 말이네. 그리하여 이 주장을 따르세.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권하세. 자네가 확신을 가지고 나에게 권하는 그 주장은 따르지 마세. 그것은 아무런 가치도 없으니까, 칼리클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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