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 크리티아스


크리티아스 - 10점
플라톤 지음, 이정호 옮김/이제이북스



'정암학당 플라톤 전집'을 펴내며


작품 해설

작품 개요

등장인물


본문과 주석

1.도입부 대화

2.옛 아테네와 선조들

3.아틀란티스섬과 사람들

4.본성의 타락과 징벌


부록

아틀란티스에 관하여

옮긴이의 글

참고 자료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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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 연대는 기원전 369년, 대화시기는 기원적 430-425년 소크라테스가 40-45세.


<작품 해설>

20 <크리티아스>가 쓰인 기원전 360년경의 아테네는 이미 선조들이 물려준 자랑스러운 모습도 아니었고 강대국 페르시아를 물리쳤던 위대한 조국도 아니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아테네는 페르시아를 물리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후, 도시국가들 사이에서 주도권을 행사하며 급속하게 패권 국가로 나서기 시작하였다. 아테네가 더욱 제국화되면서 서로 조화와 공존을 유지하던 전통적인 그리스 도시국가들 간의 우호와 평등은 서서히 붕괴되었고, 끊임없는 정쟁으로 내정 또한 무질서와 혼란에 빠졌으며, 스파르타와 치른 지루한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패퇴하자 급기야 급격한 몰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패권 국가 아테네를 떠받치고 있던 민주정의 또한 대중에 영합하고 공공성이 결여된 귀족들의 무분별한 권력 다툼을 심화시키며 아테네를 끊임없는 정변과 정치적 불안 속으로 빠트리는 온상이 되었다. 그리고 당시의 지식인을 대하던 소피스테스들은 시대적 혼란을 틈타 소수 귀족들의 정치적 야욕을 뒷받침할 수 있는 기술 개발과 전수에 많은 노력과 정열을 기울였고, 그 교육의 핵심 또한 냉철하고 진지한 반성을 통한 객관적 진리의 발견이 아니라 정치적 선동에 효과적인 연설 기수로가 임기응변으로 상대를 압도하는 수사적 기술이었다.


21 플라톤은 쓰러져 가는 아테네와 그리스 사회를 누구보다도 심각한 눈으로 목도하였을 것이다. 특히 그러한 과정에서 겪은 소크라테스의 죽음은 그로 하여금 온몸과 온 마음을 다해 전통적인 그리스 정신의 복원과 재정립에 힘을 쏟도록 만들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주지하다시피 스승 소크라테스의 입을 통해 굴절되어 가는 아테네의 모습을 바로 잡으려는 거인적인 노력을 평생토록 경주하였다. 특히 <국가> 등을 통해 새로운 정치적 대안을 제기한 이후 인생 후반기에 이르러서는 우주 생성론에서부터 세부 법률 규정에 이르기까지 그것을 뒷받침하기 위한 이론적 작업에 총력을 기울였고, 그 이론들을 현실적으로 구현하기 위해 아카데메이아에서 정치가 양성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한 것을 비롯, 노구를 이끌고 직접 현실 정치에까지 참여했다. 이런 점에서 <티마이오스>, <크리티아스>, <헤르모크라테스>로 이어지는 3부작 시리즈는 <국가>를 우주론적으로 뒷받침하고, 역사적 논거를 제시하며, 현실적인 세부안을 수립한다는, 이론과 실천을 총체적으로 완성하기 위한 플라톤 말년의 야심 찬 계획에 기초해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22 <크리티아스>의 마지막 부분을 둘러싼 여러 가지 해석들은 고대 아테네의 번영과 몰락뿐 아니라 오늘날 우리들이 처한 정치적 정황과 관련해서도 많은 것을 시사한다. 물론 고대와 현대의 사회경제적 차이와 문화적 차이를 무시한 채 단순히 비교•평가하는 것은 무리일 수 있다. 그러나 근세 자본주의 성립 이 후 개인주의적 자유주의의 등장과 발흥은 고전기 그리스 말기의 상황을 연상하게 하고, 냉전 승리 이후 자본주의 강대국으로서의 지위를 확고히 하고 있는 미국은 페르시아 전쟁 이후의 아테네 제국을 연상시킨다. 


<본문과 주석>

112e~113e

그럼 그들과 대적했던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이었고 본래 어디에서 태어난 사람들인지를 친구인 자네들과 공유할 수 있도록 지금 다 터놓고 이야기 나누기로 하세. 어렸을 때 들었던 이야기를 우리가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다면 말일세. 그런데 그 이야기에 앞서, 종종 이방인들이 그리스 식 이름으로 불리는 것을 듣게 되더라도 자네들이 놀라지 않도록 간단히 밝혀야 할 게 있네. 이제 자네들은 그 연유를 알게 될 걸세. 즉, 그 이야기를 자신이 시를 창작하는 데 활용하고자 마음먹고 그 이름들의 의미를 조사할 때, 솔론은 이집트 사람들이 그 이름들을 문자로 처음 기록하면서 자기네 말로 바꾸어 놓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네. 그래서 그는 다시 본래 뜻을 되살려 그 이름들 각각을 우리말로 바꿔 기록해 두었지. 바로 이 기록이 내 조부님의 수중에 있다가 지금 내 수중에 아직까지 남아있는 것이라네. 내가 어렸을 적 그것을 열심히 학습했던 것이지. 그러니 그러한 이름들이 이곳 사람들의 이름인 양 들리더라도 자네들은 절대 놀라서는 안 되네. 자네들은 그러한 이유를 들었으니 말이야. 자, 그 긴 이야기의 시작은 대충 이러하네.

앞에서 신들이 땅을 배분한 것에 대해 이야기할 때, 그들이 땅 전체를 여기는 큰 몫으로 저기는 작은 몫으로 나누고 자신들을 위해 제물과 신전을 마련하였다고 언급했듯이, 포세이돈도 아틀란티스 섬을 자신의 몫으로 받아, 사멸하는 자인 인간 여성에게서 자기의 아이들을 낳아 이 섬의 다음과 같은 곳에서 살게 했던 것일세. 바닷가에서 섬 중앙에 걸쳐 전체가 평야였는데 그것은 실로 모든 평야들 중 가장 아름다운 곳이자 기름진 곳으로 일컬어졌으며, 또 평야 근처, 섬의 중앙 방향으로 50스타디온(8.88km) 떨어진 곳에는 사방 어디에서 봐도 나지막한 산이 있었네. 그리고 그곳에는 '에우에노르'라는 이름의 남자가 아내 레우킵페와 함께 처음부터 대지에서 태어난 토박이 주민들 중 하나로 살고 있었다네. 그런데 '클레이토'라는 외동딸이 이 부부에게서 태어났다네. 바야흐로 이 처녀가 혼인할 나이에 이를 즈음, 그녀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돌아가셨지. 그러자 포세이돈은 그녀에 대한 욕망에 빠져 한 몸을 이뤄 살게 되었고, 그리하여 그녀가 사는 동산을 빙 둘러 돌아가며 잘라 파내, 바닷물과 땅으로 된 크고 작은 고리형 띠들을 서로 번갈아 가며 둘러쳤네. 그 고리형 띠들 중 둘은 육지 띠이고, 셋은 해수 띠였는데 포세이돈은 그 고리형 띠들을, 이를테면 선반을 깎듯이 섬 중앙에서 전 방위로 같은 폭으로 잘라 냈지. 그리하여 결국 사람들에게 그곳은 접근할 수 없는 곳이 되었던 것일세. 왜냐하면 당시에는 아직 배가 없었고, 배를 모는 기술도 없었거든. 그리고 그는 신이었던 만큼 실로 아주 거뜬히 중앙의 섬을 다음과 같이 장식했네. 즉, 땅 밑에서 솟아오르는 두 개의 샘물을 끌어다 샘 하나에서는 뜨거운 물이, 다른 하나에서는 차가운 물이 흐르게 하여 땅에서 온갖 종류의 풍성하게 여물도록 말일세.


121a~121e

그런데 신은 실로 그 왕국들에 있었던, 앞에서 말한 그러한 만큼의 그리고 그러한 정도의 엄청난 능력을 이번에는 다시 여기 이 나라 아테네에다 장착시켜 주었던 게야. 전하는 바에 따르면 그 연유는 이러하네. 여러 대에 걸쳐 신의 본성이 그들을 지배할 때까지만 해도 그들은 법에 귀를 기울였고 또 동족신들에 대해 정중했던 사람들이었네. 즉 그들은 언제라도 일어날 수 있는 우발적인 인생사들에 대해서, 그리고 서로 간의 인간관계에 대해서 지혜와 더불어 온화함으로 대했던 사람들로서, 진실하고도 아주 고매한 정신을 소유하고 있었네. 그런 까닭에 그들은 덕 이외에 모든 것을 경멸하였고 갖고 있는 재산 같은 것도 하찮게 여겼을 뿐 아니라 막대한 황금이나 그 밖의 재물 같은 그런 무거운 짐도 거뜬히 감당해 냈지. 그래서 그들은 부의 사치스러움에 취해 자제심을 잃어 그들 자신을 망쳐 버리는 일이 없었으며, 오히려 깨어 있는 정신으로 이러한 모든 것들이 우애로운 교분을 통해 덕과 함께 불어나는 것임을 예리하게 통찰하고 있었다네. 반대로 부와 사치스러움을 얻고자 안달하고 그것들을 떠받들면 오히려 덕은 줄어들고 급기야는 그 덕 자체도 그들에게서 사라져 버린다는 것을 말일세.

실로 그들은 이러한 생각과 신적인 본성을 유지하고 있었으므로 우리가 앞에서 말했던 모든 것들이 그들에게서 불어났던 것이네. 그러나 그 신적인 부분은, 여러 사멸하는 것들과 수차에 걸쳐 뒤섞여짐으로써 그들에게서 점차 줄어들게 되었고, 오히려 인간적 성정이 우위를 차지하기에 이르자 그들은 급기야 갖고 있는 재물을 감당해 내지 못하고 평정을 잃어, 사람을 볼 줄 아는 사람들에게는 파렴치한 자로 간주되었네. 가장 귀한 것들 중에서도 가장 훌륭한 것을 잃어버린 것이지. 그러나 참되고 행복한 삶을 볼 줄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당시의 왕들이 가장 아름답고 복된 사람들이라고 여겨졌던 것이네. 사악한 탐욕과 권력으로 가득 찼던 사람들인데도 말일세.

그래서 신들의 신이자 법으로 다스리는 제우스는 이와 같은 것을 내려다볼 줄 아는 능력이 있었으므로 이 뛰어난 종족이 비참한 상태에 빠져 있음을 알고 그들을 자제력을 배워 한층 더 바른 사람들로 태어날 수 있도록 그들에게 벌을 내리기로 마음먹고, 실로 전체 우주의 중심에 자리하여 생성과 관련하여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굽어볼 수 있는 신들의 가장 존귀한 거처로 모든 신들을 불러들여, 그들이 다 모이자 이르기를 (...)


<아틀란티스에 관하여>

90 플라톤의 이야기는 새로 지어졌을지라도 그 골자만큼은 그 이전부터 전해져 내려오던 것이라는 추론도 가능하지 않을까? 실제로 플라톤의 이야기가 쓰이기 이전 시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그 원형으로 볼 수도 있을 법한 신화가 부분적으로 발견된다. 우선 아틀란티스 섬 최초의 왕인 아틀라스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해 친숙한 인물이다. 신화에서 그는 티탄족 이아페토스(뱀의 다리를 가진 티탄족의 한 명으로 올림포스의 신들을 공격했다고 전해진다)의 아들이며, 프로메테우스나 에피메테우스의 형제이다. 호메로스는 그에 대해 '모든 바다의 깊이를 알고 있는 아틀라스, 하늘과 땅을 떼어 놓은 높은 기둥을 떠받치고 있는 아틀라스여'라고 노래하고 있다. 신화에 따르면 아틀라스는 오케아노스의 딸 중 한 명인 플레이오네와의 사이에서 아틀란티데스라고 하는 일곱 명의 딸을 낳는다. '아틀란티스'라는 말 역시 아틀라스의 딸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지금의 대서양 The Atlantic Ocean과 아틀라스산맥의 이름은 모두 아틀라스와 관련된 신화로부터 나온 것이다). 그리고 해신 포세이돈은 아틀라스의 딸 중 한 명인 켈라이노와의 사이에서 아들 뤼코스를 낳아 이 아들을 서방 어딘가에 '축복의 섬'에 살게 한다. <크리티아스>의 내용과 비교해 보면, 이 아틀라스는 포세이돈에 해당하지만, 포세이돈이 불사의 신이므로 동시에 아틀라스의 아버지로 불렸을 수도 있을 것이다. 원시 신화라는 것을 문명의 발생과 연계하는 학자도 있지만, 어쨌든 모순으로 가득 차 앞뒤가 따로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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