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기 20분 | 03 옥스퍼드 중국사 1


폴 로프(지음), <<옥스퍼드 중국사 수업>>, 유유출판사, 2016.

원제: Paul Ropp, China in World History, 2010.


옥스퍼드 대학 출판부에서 펴내는 New Oxford World History에 포함된 책. 세계사의 관점에서 중국의 역사를 읽는다.


목차


편집자 서문

저자 서문

1장 형성기: 역사의 시작부터 기원전 3세기까지

2장 최초의 제국: 진나라(기원전 221–기원전 206)와 한나라(기원전 206–220)

3장 혼돈의 시대(220–589)

4장 다시 통일된 제국: 수 왕조(581–618)와 당 왕조(618–907)

5장 축소된 제국과 유목 민족 도전자들: 송 왕조(960–1279)와 원 왕조(1279–1368)

6장 근대 초기의 중국: 명 왕조(1368–1644)와 청 왕조 전반기(1644–1800)

7장 청 제국의 쇠퇴와 몰락, 그 후(1800–1920)

8장 내전, 일본의 침략, 공산주의의 흥기(1920–1949)

9장 중화인민공화국(1949–현재)

옮긴이의 말

후주

참고문헌

찾아보기



+ 선생님께서 블로그에 올리신 글과 녹음파일을 들으면서 필사한 것을 함께 정리하여 올린다.
+ 녹음파일은 선생님 블로그에서 링크되어 있다.

[책읽기 20분] 옥스퍼드 중국사 – 1

Posted on 2016년 5월 9일


저자 서문

[1] 중국만이 가진 고유한 것, 지속된 것.


[2] 중국이 다른 문명과의 교류를 통해서 공유한 것


[3] 중국의 지리적 환경: 모든 문명과 사상의 근본 토대

– 초기 문명들 중 유일하게 3,000년 동안 대륙 전반에 걸쳐 통일성과 지속성을 유지할 수 있었던 기초

– 유라시아 대륙 동부의 지리 환경

– 북부와 서부는 국경 너머로부터의 위협을 막고 중국 내의 교통과 통신을 수월하게 하였다.

– 동부는 긴 해안선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정박가능한 수심깊은 항구가 거의 없다.”

– “지리 환경은 지난 3,000년 동안 중국인의 삶에 내재하는 놀라울 정도의 지속성뿐 아니라 본질적인 변화에 깊은 영향을 끼쳤다.”


[4] “세계사라는 큰 맥락”에서 살펴본 중국만의 고유한 특성

– 농업: 세계에서 가장 노동집약적이었고 생산성도 높았다.

– 조상숭배와 가부장제

– “낙관적 휴머니즘” — 현세주의(現世主義)


[5] 중국의 교류

“중국은 비한족계 아웃사이더로부터 때로는 적극적으로, 때로는 강압에 의해 어쩔 수 없이, 그러나 언제나 자신들이 의도한대로, 제도, 발명품, 생산품, 생산방식을 수용했다.”



 


이준갑,김병준 외 《아틀라스 중국사

마빈 해리슨 《식인과 제왕



《옥스퍼드 중국사 수업》를 읽는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이 책의 원제는 China in World History, 즉 세계사의 맥락에서 본 중국이다. 지금 현재 중국에 관한 책들이 굉장히 다양하게 나와있다. 그런데 이 책을 선택한 이유는 세계사의 맥락에서 본 중국이라고 하는 제목 때문이고, 내용도 그러하다. 중국은 굉장히 광대한 땅이고, 4천년 넘는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것 자체로 굳이 중국이 외국과 또는 다른 지역과 어떻게 교류했는가를 따져묻지 않고, 중국 자체에 대해서만 생각을 한다 해도 그 역사가 장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살았기 때문에 따져볼 만한 것들이 많은 나라이다. 우리는 중국 그러려면 하나의 완결된 문명 단위라 생각하고 외부와의 교류는 전혀 없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사실은 광대한 땅인 것은 지리적인 여건이기는 하지만 다양한 문화를 갖게 된 것은 아주 오랜 역사 속에서 많은 교류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중국 그러면 아주 간단하게 머릿속으로 생각하는데 그렇게 보는 것은 중국을 제대로 읽지 못하는 태도라고 할 수 있다. 어쨌든 이 책을 가지고 촘촘하게 읽어나가려고 한다. 이 책은 살펴보면 9개의 챕터로 되어있다. 읽고자 하는 부분은 1장 '형성기: 역사의 시작부터 기원전 3세기까지'부터 6장 '근대 초기의 중국: 명 왕조(1368–1644)와 청 왕조 전반기(1644–1800)'까지이다. 왜 거기까지냐 하면 1800년이라고 하는 연도가 그 해에 특별히 무언가 많이 일이 일어난 것은 아닌데 대체로 봐서 세계사의 맥락에서 봐도 그렇고 한국사의 맥락이나 중국사의 맥락에서 봐도 중요한 해이다. 1800년에는 한국에서 정조가 죽은 해. 이 책은 명왕조와 청왕조 전반기를 1800까지 잡고 있다. 대체로 서구사에서 1789년 프랑스혁명을 '본격적인' 근대의 시작, 근대라고 하면 17세기도 다룰 수 있지만, '본격적인' 근대가 시작되는 시기로 대개 잡는다. 그래서 1-6장까지 하려고 한다. 그 이후 1800년부터 현재까지는 현대사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사실 원래는 얇은 문고판 책인데 한국어로 번역된 책도 사실 그리 두껍지는 않다. 페이지 수는 400페이지가 넘지만 판형 자체가 작아서 분량이 많거나 하지는 않다. 그렇다면 왜 이 책을 선택했는가. 앞서 말한 것처럼 China in World History가 원래 제목이다. 세계사에서 본 중국이라는 뜻이다. 저자는 중국 문명에서 대해서 살펴보면서 중국만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것을 살펴본다. 중국에서 오래도록 지속된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중국이 지속적으로 가지고 있었던 것. 그런데 이것은 지리적 환경에 의해서 생겨난 것일 테고, 중국의 땅 안에서 이루어진 문명의 성과물들이 있겠다. 하지만 그것만이 전부가 아니라 우리가 지속된 것이라는 말을 들으면 동시에 머릿속으로 변화한 것도 따라서 떠올려야 한다. 지속된 것과 변화한 것. 이 두 가지를 떠올려야 한다. 다시 말해서 지속된 것이 있고, 그것에서 뭔가가 변화했다. 그러면 지난 시간까지 배운 것을 상기해 보자면, 그 변화한 것이 또 어떻게 고정이 되어서 지속되었는가. 지속된 것이라 해서 아주 먼 옛날부터 변화 없이 그대로 고정되어서 지속된 것은 없다는 것이다. 변화라고 하는 것은 어떻게 생겨나는 것인가. 변화의 원인이 무엇인가를 생각해보면 분명히 그 땅 안에서 일어난 거대한 지리적 변동도 있겠지만 주원인은 다른 문명과 교류하고 공유한 것에서 생겨난다. 먼저 교류가 있다. 중국이 지속된 뭔가를 가지고 있는데 다른 문명과 교류가 일어난다. 그 다음에 교류가 원인이 되어서 그 지속된 것의 변화가 생기고, 그리고 다시 고착되어서 지속된 것이 된다. 그때 교류가 일어난 것을 다른 문명과 공유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13 중국은 다른 문명과 무엇을 공유했고, 중국 문명만의 독자적이거나 독특한 특징은 무엇인가? 중국은 역사적으로 국경 너머에 있는 문화, 민족과 어떤 관계를 맺어왔나?


14 중국은 어떻게 초기 문명들 가운데 유일하게 3,000년 동안 중국 대륙 전반에 걸쳐 정치적·문화적·언어적 통일성과 지속성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


중국이라고 하는 땅에서 가장 먼저 우리가 고려해야 하는 것은 모든 문명과 사상의 근본토대, 그 문명에서 생겨난 심성구조를 보기 이전에, 항상 어떤 지리적 환경을 가지고 있는가를 살펴보아야 한다. 지리가 굉장히 중요하다. 지도를 보면 중국은 우선 유라시아 대륙 동부에 위치하고 있다. 이것 자체가 중국 문명의 기본 성격의 저 밑바닥에서 자리잡게 한 원인이 된다. 초기 문명들 중에서 유일하게 3천년동안 대륙전반에 걸쳐서 통일성과 지속성을 유지할 수 있었던 기초가 바로 이 지리적 환경이다. 


그러면 조금 이것을 세분해서 보자. 북부지역으로는 시베리아가 있고, 동북부에는 만주 산악지대, 몽골 초원이 있고, 중국의 북서부 지역으로는 고비 사막과 타클라마칸 사막이 있고, 남서부 지역에는 칭하이-티베트 고원이 있다.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대륙으로 들어오는 어떤 영향도 저절로 막아주는 지리적 효과가 있다. 그렇다고 해서 중국이 고립된 땅덩어리에서 살아갔던 나라는 아니다. 항상 유목민족과의 '교류', 당하는 입장에서는 침략이라 하겠지만, 침략이라는 말보다는 가치중립적인 교류라는 말을 쓰려고 한다. 물론 분명히 침략도 분명히 있다. 그 다음에 동부지역으로는 긴 해안선. 한반도에서도 마주보고 있는 중국 동중국해와 남중국해가 있다. 여기 특징은 한마디로 말해서 정박 가능한 수심 깊은 항구가 거의 없다. 이게 굉장히 오랫동안 바다로부터의 외부의 침입을 받지 않게 해준 주요한 지리적 요건이다. 물론 1793년 청나라 초반이 끝나갈 무렵 건륭제 시기 때 네메시스 배를 타고 중국을 침략하게 되는 매카트니가 있다.


281 1793년 건륭제가 다스리고 있는 청나라에 사신으로 파견된 매카트니 경은 청 조정의 무능함과 허약함에 큰 충격을 받았다. 그는 중국이라는 배가 이미 치명적인 손상을 입고 가라앉기 시작했음을 예리한 통찰력으로 꿰뚫어 보았다.


16 유라시아 대륙 동부는 북쪽에서 남쪽으로 그리고 동쪽에서 서쪽으로 이어지는 산맥들이 초원 지대, 사막, 산들로 둘러싸인 채 장기판의 선처럼 교차하고 있다. 중국 북부에는 저 멀리 북쪽에 숲으로 뒤덮인 시베리아의 초원 지대, 동북쪽에 숲으로 뒤덮인 만주의 산악 지대, 북쪽에 몽골 초원이 자리하고 있다. 중국 서부에는 척박한 고비 사막과 타클라마칸 사막이 놓여 있고, 남서부에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봉우리를 지닌 칭하이-티베트 고원이 있다. 동부는 긴 해안선이 이어지는 데 정박 가능한 수심 깊은 항구가 거의 없다. 그래서 지난 3,000여년 동안 잠재적인 외부 위협을 막는 또 하나의 자연 방벽 구실을 해 왔다. 대양, 건조한 초원, 사막, 산 등 주변 지역이 자연 방벽이 되어 주어, 중국은 3,000년 넘게 정치적·문화적 지속성을 비교적 잘 유지할 수 있었다.


중국 역사에서 1800년에 이르기까지는 동부 해안선으로부터는 침략도 없었다고 말하는 것이 중국의 지리 환경에 대한 논의를 할 때 한번쯤은 덧붙여두어야할 말이 아닐까 한다. 어쨌든 북부와 서부지역에 사막과 고원, 산맥이 있었기 때문에 중국은 국경 너머로부터 위협을 막고 교통과 통신이 수월하였다. 그리고 지리환경은 지난 3,000년 동안 중국인의 삶에 내재한 놀라울 정도의 지속성뿐 아니라 본질적인 변화에 깊은 영향을 끼쳤다.


16 중국의 지리환경은 중국 국경 너머로부터의 위협을 막고, 중국과 외부 세계 사이보다는 중국 내에서의 교통과 통신을 훨씬 더 용이하게 함으로써 하나로 통합된 정치 단위가 지속되는 것을 가능케 했다.


17 이처럼 지리환경은 지난 3,000년 동안 중국인의 삶에 내재한 놀라울 정도의 지속성뿐 아니라 본질적인 변화에 깊은 영향을 끼쳤다.


지리 환경을 먼저 살펴봐야 한다. 지리환경이라고 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데 잊기 쉽다. 평소에 자기가 익숙하게 살고 있는 곳에 대해 따져 묻는 법이 별로 없기 때문에 그러할 것이다. 그 다음에 중국 내부로 들어가게 되면 큰 강이 두 개 있다. 하나가 황하 다음이 장강이다. 중국사람들은 황허, 창장이라 한다. 같은 강인데 하나는 河라고 하고 하나는 江이라 하는가. 원래 한자에서는 河는 황하를 가리키는 말이었고, 江이라고 하면 장강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양쯔강이라고도 하는데 공식적인 명칭은 아니다. 그리고 장강과 황하 사이에 화이수이 강이 있다. 회수淮水라고 한다. "귤이 회수를 건너가면 탱자가 된다"는 말처럼 회수와 진령산맥이 있는데 식생은 진령회수선을 가지고 나눈다. 중국 남부에 있는 강이 장강이라면 북부는 황하강, 그 사이에 진령산맥과 회수를 연이어서 진령회수선이라고 한다. 이를테면 진령회수선 아래는 쌀밥을 먹고, 위쪽은 밀농사가 발달해서 만두를 많이 먹는다. 회수 이남에 있는 귤이 회수를 건너가면 탱자가 된다는 말은 회수라는 강이 가지고 있는 상징성을 가리켜서 하는 말. 지도를 보면 회수라는 강이 한반도의 제주도와 대체로 비슷한 위치에 있다. 그러니까 한반도는 황하 북쪽에서 회수강까지 된다. 장강은 중국 역사에서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황하 유역에서만 문명만 일어난 것이 아니고 중국의 역사는 장강 유역에 물산이 얼마나 북중국쪽으로 교류되고 하는지 내부의 교류도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중국을 생각할 때는 외부와 연결된 지점이 무엇이고, 내부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를 먼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17 중국 본토, 또는 우리가 중국 내륙이라고 부르는 지역에는 두 개의 큰 강이 있다. 북부의 황허 강 黃河과 중국의 창장 강 長江은 서쪽에서 동쪽으로 흐른다. 히말라야 산맥 그리고 두 강을 나누어 태평양으로 흘러 나가게 하는 다른 산들로부터 물을 빼내어서 말이다. 두 강 모두 중국 문명의 발전에 핵심 역할을 했다.


15 페이지를 보면 중국의 지리적 환경이라고 하는 자그마한 지도가 있는데 방금 내용을 이해하기에 충분하다. 



지도를 유심히 보고 머릿속에 담아두어야 한다. 이게 바로 중국에 대한 공부, 중국사에 대한 공부뿐만 아니라 중국 일반에 대한 공부의 출발점이다. 그런 의미에서 《아틀라스 중국사》도 꼭 살펴봐야할 책이라 하겠다. 그러면 저자가 서문에서 말하는 것은 중국만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특성, 즉 지속된 것이 무엇인가를 살펴보고 있는데 그것이 무엇인지 살펴보자. 20페에지를 보면 "세계사의 큰 맥락에서 살펴보면"이라는 말이 있다. 중국만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특성이 무엇인지를 보려면 중국만 들여다봐서는 소용이 없다. 세계사라는 큰 맥락에서 볼 때 중국의 고유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다. 첫째가, 중국의 농업이다. 농업이라고 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지리적인 환경과 아주 긴밀한 영향을 주고 받고 있는 것이다. 이런 것을 집중적으로 궁리해서 카를 비트포겔의 수력 사회 이론이라는 것이 있다. 이 수력사회는 물이 가지고 있는 힘을 이용해서 이 사회가 유지된다는 것. '동양적 전제주의'라는 이끌어 내기도 했는데 과연 이게 맞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 오히려 마빈 해리슨의 《식인과 제왕》이라는 책이 있이 있는데 물의 '올가미'라는 챕터를 참조하는 것이 오히려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다.


29 중국을 세계사라는 큰 맥락에서 살펴보면 중국만의 고유한 특성이 뚜렷이 드러난다. 황허 강 유역을 따라 초기 문명이 탄생한 이래, 중국의 농업은 세계에서 가장 노동 집약적이었고 생산성도 가장 높았다. 예를 들어 벼농사의 경우는 대단히 노동 집약적이며, 논 1에이커당 부양 가능 인구수의 측면에서도 효율성이 대단히 높다. 중국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것도 바로 이러한 중국 농업의 특성 때문이다. 유사 이래 중국은 거의 대부분의 시간 동안 지구상에서 인구 밀도가 가장 높은 나라였다.


21 우리에게 잘 알려진 카를 비트포겔의 주장에 따르면, 이 '수력 사회'는 '동양적 전제주의'라는 독특한 통치 제도를 만들어 냈는데, 이와 같은 통치 제도 아래에서는 대개의 경우 개인의 욕구와 권리보다는 지배자와 집단의 욕구가 우선시된다. 오늘날 대다수의 학자들은 비트포겔의 주장이 지나치게 지리 결정론적이라며 반박한다.


어쨌든 큰 맥락에서 살펴보면 첫째가 농업, 둘째로 조상숭배와 가부장제가 있다.


21 중국 문명에서 강력한 지속성을 보인 또 다른 요소로 조상 숭배와 가부장제를 들 수 있다.


세번째로는 낙관적 휴머니즘. 나중에 1장 형성기부분에도 이 논의가 나오는데 서양사람이니까 이런 말을 쓴 것 같다. 그냥 우리식으로 이해하기 쉽게 하면 현세주의. 현실사회를 중시하는 태도를 말한다. 


22 중국이 지난 4,000년 동안 보여 온 뚜렷한 특징들 가운데 마지막으로 하나 더 언급하고 싶은 것은 내가 '낙관적 휴머니즘'이라고 부르면 좋겠다 싶은 그런 경향이다.


'전체주의적'이 아니라 '전제주의적'으로 holism을 말하는데 하나의 통으로 보는 것의 뜻이다. 이렇게 보는 것은 중국만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것은 아닌데 다른 문명세계에서 만들어진 세계관에 비하면 굉장히 낙관적 휴머니즘, 즉 현세주의가 있다. 이를테면 《논어》의 첫 구절을 보면 "배우고 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친한 벗이 먼 곳에서 찾아오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바로 즐겁다라는 말에서 시작한다. 


논어 - 학이편(學而篇)

一. 子曰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有朋 自遠方來 不亦樂乎 人不知而不溫 不亦君子乎

     자왈 학이시습지 불역열호 유붕 자원방래 불역낙호 인부지이불온 불역군자호


배우고 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친한 벗이 먼 곳에서 찾아오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성내지 않으면 또한 군자가 아니겠는가.


예를 들어 인도에서 나온 불교를 보면 인생은 고통스러운 것이다. 중국의 심성구조는 기본적으로 현세주의가 있다. 세계사의 맥락에서 이런 특징을 드러내었다면 그런 것들이 반드시 중국에서 지금까지 변함없이 있었을 수는 없으니까 교류를 생각해야 된다.


23 중국이 고립되어 외부 세계로부터 별 영향을 받지 않았을 거이라는 일반적 통념과 달리, 중국은 국경 너머의 민족과 문화로부터 엄청난 영향을 받아 왔다.


그런 변화의 귀결들도 중국의 하나의 지속성을 만들어낸 것이라 하겠다. 그래서 저자는 서문 마지막에 다음과 같이 말했다.


24 중국인은 비한족계 아웃사이더로부터 때로는 적극적으로, 때로는 강압에 의해 어쩔 수 없이, 그러나 언제나 자신들이 의도한 대로, 제도, 발명품, 생산품, 생산 방식을 수용했다. 그러한 사례를 이 책에서 자주 언급한다고 해서, 그것이 중국인의 천재성 또는 독창성을 평가 절하하는 것은 결코 아니라고 확신한다.


교류가 있었다는 것. 그리고 그런 교류가 없었으면 우리가 하나의 중국 문명라고 부르는 것도 만들어지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게 말한다고 해서 중국 고유함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281 1793년 건륭제가 다스리고 있는 청나라에 사신으로 파견된 매카트니 경은 청 조정의 무능함과 허약함에 큰 충격을 받았다. 그는 중국이라는 배가 이미 치명적인 손상을 입고 가라앉기 시작했음을 예리한 통찰력으로 꿰뚫어 보았다.



[책읽기 20분] 옥스퍼드 중국사 – 2

Posted on 2016년 5월 16일


저자 서문

[1] 중국만이 가진 고유한 것, 지속된 것.


[2] 중국이 다른 문명과의 교류를 통해서 공유한 것


[3] 중국의 지리적 환경: 모든 문명과 사상의 근본 토대

– 초기 문명들 중 유일하게 3,000년 동안 대륙 전반에 걸쳐 통일성과 지속성을 유지할 수 있었던 기초

– 유라시아 대륙 동부의 지리 환경

– 북부와 서부는 국경 너머로부터의 위협을 막고 중국 내의 교통과 통신을 수월하게 하였다.

– 동부는 긴 해안선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정박가능한 수심깊은 항구가 거의 없다.”

– “지리 환경은 지난 3,000년 동안 중국인의 삶에 내재하는 놀라울 정도의 지속성뿐 아니라 본질적인 변화에 깊은 영향을 끼쳤다.”


[4] “세계사라는 큰 맥락”에서 살펴본 중국만의 고유한 특성

– 농업: 세계에서 가장 노동집약적이었고 생산성도 높았다.

– 조상숭배와 가부장제

– “낙관적 휴머니즘” — 현세주의(現世主義)


[5] 중국의 교류

“중국은 비한족계 아웃사이더로부터 때로는 적극적으로, 때로는 강압에 의해 어쩔 수 없이, 그러나 언제나 자신들이 의도한대로, 제도, 발명품, 생산품, 생산방식을 수용했다.”


문명 단위로의 중국이라고 하면 해야 할 이야기들이 많다. 여기에 읽으면서 생각한 것을 덧붙이려고 하다보니 분량이 많아졌다. 제일 먼저 1장 형성기에 있는 내용은 중국 고대 문명의 1차적인 완성기에 해당한다. 중국에서 처음 형성이 되고 그 이후에 지속된 것은 무엇인가를 다루고 있는게 1장이다. 그러면 그것들이 무엇인가. 바로 한자이다. 물론 한자는 문자체계이기 때문에 한자 이전에 기술문명의 특징 같은 것들을 다루어야 하겠지만 문명에서 가장 마지막으로 형성되어 나온 최종 산물이 한자이고, 그 다음에 중국 문명의 특유의 가족제도가 있고 중국 문명이 가지고 있는 국가제도들이 있겠다. 그리고 중국 문명이 다른 문명과 어떤 차이를 가지고 있는가에 대해 저자는 낙관적 휴머니즘이다 라고 말하는데 이것은 나쁜 뜻으로 쓰이는 것은 아니지만 현세주의라는 것은 지금 당장 눈 앞에 일들을 중요하게 여기고 초월적인 세계에 대해서는 뭔가를 해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라는 생각이다. 


10,000년에서 8천년 전 중국 북부와 중부에 살고 있던 사람들이 정착 농경을 시작함으로써 중국 문명이 시작되었다. 정착 농경이 중요하다. 많은 인구를 부양하는 결정적 계기이기 때문에 중국을 얘기할 때는 항상 정착 농경부터 출발점으로 삼는 게 좋다. 이 시대 사람들의 특징은 "세계와 인간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의 현실로 받아들였으며, 초자연적 설명이나 신성한 창조주는 필요하지 않다고 이해했다. 그들은 이 세계가 인간 친화적 공간이며, 문명의 진보는 신이나 창조주가 아닌 인간이 직접 일궈 낼 것이라고 생각했다."라고 저자는 정리를 하고 있다. 


33 초기 중국인 공동체들은 다른 공동체들과 대조적으로, 세계와 인간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의 현실로 받아들였으며, 초자연적 설명이나 신성한 창조주는 필요하지 않다고 이해했다. 그들은 이 세계가 인간 친화적 공간이며, 문명의 진보는 신이나 창조주가 아닌 인간이 직접 일궈 낼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러한 낙관적 휴머니즘은 근대에 이르기까지 중국 사상과 문화의 뚜렷한 특징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이는 비극 작품들에 대한 고대 그리스의 매혹, 유대교·기독교·이슬람교의 질투의 하나님 그리고 인도 신비주의자들이 정교하게 짜 놓은 형이상학적 이론들과 현격한 대조를 보인다.


이는 형성기에 있어 아주 중요한 사건 또는 태도라 하겠다. 그리고 이런 것들은 다른 곳과 비교를 해보면 "비극 작품들에 대한 고대 그리스의 매혹" 그러니까 고대 중국에서는 비극이라는 것이 잘 안 나온다. 그리고 유대교·기독교·이슬람교를 만들어낸 오리엔트 문명에서는 창조주가 있다. 인간은 사실상 창조주에 비하면 부수적인 것에 불구하고, 인도 문명에서는 정교한 형이상학이 있다. 사실 중국 문명에서 나온 우주론을 보면 인도의 신비주의자들이 만든 정교한 형이상학은 없다. 그래서 저자는 세계와 인간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의 현실로 받아들인다는 현세주의를 말한다. 


그런데 우리가 지금 《옥스퍼드 중국사 수업》를 읽으면서 유념해야 하는 지점은 대개 역사책을 읽을 때 사람들은 역사적 사실들에 집착해서 암기과목으로 외워야 하지 않느냐 하는데 외울 필요는 없다. 사건 자체의 내용을 아는 것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여러 사건들이 어떻게 일어났고 어떤 방식으로 연결되어 있는 가를 아는 것이다. 그러면 거기서 제시된 역사적 사건들이 우리 사유의 재료가 되고, 그렇게 재료가 되어서 우리 눈 앞에 벌어지고 있는 다른 사건들을 보고 이게 어떻게 일어났는지 어떻게 전개되었는지를 생각해 볼 수 있는 힘을 기르는데 도움이 된다. 역사책을 읽을 때는 이런 태도로 읽자는 것이다.


형성기에서 중요한 것은 편견인지는 모르겠지만 항상 기술적인 측면이 있는가를 살펴보는 것이다. 요즘에도 제4차 산업혁명과 미래의 직업 이런 것들이 나오는데 이런 태도를 보는 것 자체가 기술이다. 기술은 분명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에서 만든 것인데 예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새로운 문명 세계로 우리를 이끌어간다는 것이다. 중국 고대의 형성기에서 청동기 제작기술은 상나와 주나라가 공통으로 지녔던 것이다. "청동기 제작기술은 곧 중국 문명의 탄생을 의미한다" 그런데 청동기 제작기술을 가지고 만들어 놓은 것들을 살펴보면 가장 많이 만들어진 제품이 제기祭器, 제사 지낼 때 쓰는 그릇이다. 따라서 이때는 청동기가 굉장히 비싼 것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한자의 역할. 한자는 상왕조 시기의 갑골문자에서0 그 뿌리를 찾을 수 있는데 한자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중국의 장구한 역사 속에서 걸쳐서 "남과 북, 그리고 동과 서를 하나의 정치 시스템으로 통합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문자의 통일이라고 하는 것이 중국 문명을 이룩하는게 굉장히 중요했다. 중국은 한자가 그 문명을 유지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을 놓쳐서는 안된다. 그 다음에 중국에서는 조상을 숭배하는데 상제가 영혼들의 최고 권력자로 자리잡고 있었다. 중국 문명에서 상제가 어떤 역할을 하는가를 찾아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일단 여기서는 소홀하게 지나가겠다. 상나라에서 중요한 문명의 교류라는 측면에서 바라보면 상나라는 황하유역을 넘어서는 문화권이었고, 상나라로 전차가 유입되어 들어온 것도 유념해야 할 부분이라고 하겠다. 정리하자면 상나라에 관해 중요한 점은 세가지이다. 첫째, 청동기가 만들어졌다. 그래서 제기를 만들었다. 둘째, 한자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중국 문명의 통합에 기여를 했다. 


39 청동기 제작기술은 곧 중국 문명의 탄생을 의미한다. 구리와 주석을 소량의 납과 합금하여 만드는 청동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우선 각각의 금속 광석 매장지를 찾아가서 채굴한 뒤 이것들을 제련해야 한다. 그 다음으로 섭씨 1,000도 이상의 매우 높은 온도에서 세 가지 금속을 정확한 비율로 녹여 섞는다. 중국보다 5세기 정도 앞서 단조나 망치로 치는 방식으로 소량의 청동을 생산한 메소포타미아인과는 달리, 상 왕조의 청동기 장인들은 엄청난 양의 구리 광석과 주석 광석을 채굴하여 녹인 뒤 고도의 정교한 기술로 엄청난 양의 청동기를 주조해 냈다.


40 머리 장식, 단·창 같은 무기, 마구 등 다양한 물품이 청동으로 만들어졌다. 그러나 가장 많이 만들어진 청동 제품은 술과 음식을 담는 제기祭器로 상나라(와 주나라) 왕의 죽은 조상에게 존경을 표하거나, 전쟁의 승리 또는 제후와 관료의 임명과 취임을 기념할 때 사용했다.


45 이 문자들은 상징성이 무척 강해서 구어로는 잘 통하지 않는 상황은 물론이고 언어가 다를 경우에도 서로 소통할 수 있게 해준다. 예를 들어, 중국 남부에서 온 사람이 한자를 소리내어 읽으면 중국 북부에서 온 사람과 발음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두 사람은 절대 구어로는 소통할 수 없지만 한자를 사용하면 쉽게 소통할 수 있다. 그래서 상 왕조에 뿌리를 둔 한자는 중국의 장구한 역사에 걸쳐 남과 북, 그리고 동과 서를 하나의 정치 시스템으로 통합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그리고 과거 한국, 일본, 베트남은 자신들의 언어가 중국어와 거의 연관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한자를 자신들의 문자로 받아들였다.


46 죽은 조상은 저승에서도 신분 질서에 따라 차등적으로 배치되며, 죽은 지 오래된 조상일수록 지위가 더 높다고 여겼다. 상나라 왕과 정인들은 영혼들 중에서 최고 권력자는 바로 '상제'上帝라고 생각했다. 상제는 비, 천둥, 바람을 다스리며, 상나라의 국가와 사회를 해칠 수도 있고 지켜 줄 수도 있는 존재였다.


50 천명은 하늘이 덕이 높은 군주를 도우며, 그 군주에게 백성을 통치하는 권한을 부여한다는 관념으로, 이러한 관념은 오늘날 중국의 정치문화에도 여전히 남아있다.


주나라의 서주·동주 시대의 정치적인 변화보다도 더욱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전국시대이다. 춘추는 공자의 시대고, 전국시대는 맹자의 시대다 라고 하는데 왜 전국시대가 중요한가. 기본적으로 전국시대는 혼란한 시대다. 혼란한 시대라고 해서 두려워해서는 안되고, 혼란한 시대이니 새로운 것이 생겨나는 시대라고 말할 수 있다. 사실 혼란한 시대에서 새로운 것이 생겨나면 당대 사람들은 굉장히 고통스러웠을 것이지만 후대에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는 그 고통이 느껴지지는 않는다. 혼란한 시대라고 하는 것부터 어떤 창조적인 것들이 나타나게 된다고 생각한다. 특히 전국시대 戰國時代는 전쟁하는 나라, 전쟁에 최적화된 시대이다. 전국시대에 생겨난 여러 가지 것들을 보면 인류의 역사가 가지고 있는 아이러니한 측면, 즉 전쟁이 만들어 놓은 문명의 조건 또는 성과라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우선 전쟁에 최적화된 전국시대에는 농업 생산성이 극대화된다. 사람수가 늘어나야 전쟁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중요하게는 기술의 변화가 일어나는 데 그 기술이라고 하는 것이 바로 청동기 제작기술이 아닌 철이 보급되기 시작했다. 철이 보급되고 농업생산성이 극대화되니 산업이 변화한다. 바로 이게 물질적인 토대가 된다. 이 물질적 토대 위에서 정치체제와 권력이 변화된 것을 이해할 수 있겠다. 전국시대는 전쟁이 일상화되었다. 그렇게 할 수 있었던 배경으로는 농업생산성, 철의 보급이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의 문명을 누리면서도 기술문명의 발전을 목격하면서도 그것이 가져다 주는 사회 변화에 대해서는 둔감한 편이다. 무엇이 변할지를 생각해보는 것이 좋겠다. 전국시대에서 추출할 수 있는 변화 방식을 이해해 두어야 한다. 농업생산성 극대화, 철의 보급 및 산업의 변화, 그리고 정치체제와 권력의 변화 이런 것들이 하나의 포맷으로 만들어져 있겠다. 


전국시대 여러 고전 텍스트들이 나왔고 사람들이 많이 얘기하는데 전국시대의 시대정신을 집약한 고전은 《손자병법》이라고 말 할 수 있다. 첫 문장이 兵者 國之大事 死生之地 存亡之道 不可不察也(병자 국지대사 사생지지 존망지도 불가불찰야), "전쟁[방식]은 나라의 큰 일. 죽고 사는 곳이요, 존립과 멸망의 길이니 살피지 않을 수 없다"로 되어있다. 병兵은 목숨을 건 경쟁, 전쟁을 가리키기도 하고 전쟁방식을 가리키기도 한다. 그러니까 전쟁이라고 하는 것이 나라의 가장 큰 일이다.


전국시대에서 우리가 알아낼 수 있는 중요한 사건은 이른바 제자백가 사상가들의 등장이다. 저자도 이 책에서 중국 역사상 가장 창조적인 시대라고 말한다.


59 전국 시대는 변화와 불확실성의 시대였고 불안감은 날로 커져만 가고 있었다. 이러한 시대적 환경 속에서 수많은 중국 사상가들이 경쟁국 사이를 오가며 당대의 핵심 문제를 놓고 논쟁을 벌였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인간을 만든 것은 무엇인가? 사회적·정치적·군사적 투쟁과 불안정은 어디에서 기인하는가? 인간 사회는 어떻게 조직되어야 하는가? 누가 정치권력을 장악하고 있고 그것은 왜 그런가? 그러나 어쩌면 가장 중요한 문제, 적어도 군주 또는 군주가 될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는 바로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나는 어떻게 하면 세계를 정복할 수 있는가? 주나라 말기의 사상가들은 이와 같은 질문에 대한 해법을 내놓기 위해 노력했고, 그리하여 흔히 제자백가諸子百家 의 시대라 불리는 중국 역사상 가장 창조적인 시대를 주도했다.


왜 이런 제자백가의 가장 창조적인 시대가 등장하게 되었나. 첫째는 전국시대에 들어서 사람들이 어떤 심성을 갖게 되었는가를 생각해볼 수 있다. 변화, 불확실성, 불안감 이게 바로 당대의 핵심문제였다. 그러면 개인차원에서 물어야 할 질문은 인간에 관한 근원적 물음을 갖게 된다. 인간을 만들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인간의 본질을 물어봐야 하고 인간은 공동체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묻기 시작했다. 즉, 근원적인 물음을 묻기 시작했다. 혼란한 시대일 수록 이런 것을 물어야 하고 비로소 창조적인 사상이 가능한 것이다. 개인에게도 마찬가지. 개인도 불안한 시대에 살고 있으니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한다. 이게 바로 혼란한 시대의 특징이다. 그런 다음 사회적인 차원에서 이런 물음들은 사회적·정치적·군사적으로 끊임없이 투쟁을 하는 것이 어디서 기원하는지에 대해서도 사람들은 묻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변화하는 사회는 어떤 식으로 조직을 해야할 것인가 어떤 방식으로 정치를 해나갈 것인가를 묻게 된다. 정리하자면 두 가지 물음이다. 인간 본질에 관한 물음과 사회구조에 관한 근원적인 물음. 물론 군주들에게는 세상을 정복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었을 테고, 그러다 보니 법가가 가장 성공적이고 영향력이 컸던 학파라고 할 수 있다. 


이 무렵에 중국에서만이 아니라 전세계에서도 위대한 사상가들이 등장했다. 이들이 등장한 맥락을 보면 농업의 생산성, 철의 보급 그리고 전세계적으로도 마찬가지로 물자와 사상의 교류가 확대되고, 국가가 철제무기와 보병에 대한 의존을 높임으로서 전쟁기술이 발전하고 그러다 보니 기존의 사회 정치구조가 쇠퇴하였다. 이 세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다. 현대사회의 변화를 설명할 때도 이것을 가지고 얘기할 수있다: 물자와 사상의 교류확대 → 국가가 철제 무기와 보병에 대해 의존도를 높임 → 기존 사회·정치구조가 쇠퇴. 세 가지 변화를 이해할 때 필요한 기본적인 방식은 변화가 어떤 것이 원인이 되어서 변화가 일어나고 어떻게 사회를 바꾸고 지속적인 것으로 나아가는가를 봐야 한다.


안타깝기는 하지만 사실 사람이 개인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21세기 한국 사회를 보면 기술이 변화하고 있다. 다른 종류의 기술들이 생겨나서 이전의 기술 위에 놓여있던 사회·정치구조가 쇠퇴하고 본질적인 변화가 시작된다. 지금이 바로 본질적인 변화가 시작되는 시점인 것 같다. 극도로 불안하고 불확실함이 사회에 만연했지만 이것을 두려워할 필요 없다. 사실 이렇게 말하면 이 자체가 건방진 생각이긴 하다. 전국시대 형성사에서 전국시대의 특징과 제기되었던 물음들이 무엇인가를 잘 유념해야 하는 것이 좋겠다.


마지막으로 전국시대가 중국 고전시대의 일반적이 특징을 만들어낸 시대라고 했는데 다른 공동체와 중국은 어떻게 다른가를 비교해보자. 변화에 대한 설명. 중국은 가족을 문명의 기초로 여겼다. 이게 굉장히 중요한 포인트. 효가 가장 중요한 윤리규범이다. 예를 들어서 나중에 중국에 불교가 들어오는데 불교에서는 석가모니 집을 떠나는 출가를 한다. 불교가 중국에 전래되었을 때 충돌되는 지점이다. 중국의 고유한 전통의 규범과 가장 큰 충돌하는 지점이 바로 효이다. 그리고 중국에서 생겨나서 전세계적으로도 고유한 중앙집권적 관료제 국가. 관료제라는 것이 중국의 고유한 점이라 할 수 있다. 그 다음에 조상숭배가 일상화되었다. 그렇지만 중국의 문명과 다른 문명들이 두드러지게 다른 점은 첫째, 지식엘리트 계층은 인본주의를 가지고 있었다. 이 인본주의라는 것이 바로 낙관적 휴머니즘, 즉 현세주의와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책에는 두 가지를 점을 들었는데 궁극적으로는 한가지라고 볼 수 있다. 우주의 존재들은 서로 연결되어있고, 삶의 의미는 인간만이 포착할 수 있다는 것 이게 바로 현세주의이자 인본주의이자 낙관적 휴머니즘이라고 할 수 있다.


76 다른 공동체들과 비교할 때 초기 중국은 다음과 같은 경향이 두드러졌다. 가족을 문명의 기초로 여겨 대단히 중시했고, 국가를 가족이 확장된 것으로 보았다. 대규모의 중앙 집권적 관료제 국가를 건설하고자 했고 그럴 역량도 갖추고 있었다. (법가 사상가들은 이 점에 반대하지만) 조상 숭배와 성현의 지혜에 대한 미음이 현재와 미래를 좌우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76 초기 중국이 고대 메소포타미아, 그리스, 인도와 가장 두드러지게 달랐던 점 두 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 적어도 지식 엘리트층은 세계의 창조는 단지 수동적으로 주어진 것이고 저절로 지속되며 인간을 넘어선 신의 권능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고 가정했다. 둘째, 이 세상과 우주의 모든 존재는 매우 긴밀하게 상호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중국인의 시각에서 본다면, 삶의 의미는 스스로의 노력과 과거에 대한 반성을 통해 인간만이 포착해 낼 수 있는 것이었다.


다음주에는 2장과 3장을 나갈 예정이다. 분량은 2장이 많은데 3장이 해야할 이야기가 더 많다. 3장은 혼돈의 시대인데 현재 우리가 혼돈의 시대를 살고 있기 때문에 과거 문명에서 혼돈시대가 어떠했는가를 살펴보는게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에 대한 이해 또는 불안을 견뎌내는 데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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