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기 20분 | 02 역사 3


+ 선생님께서 블로그에 올리신 글과 녹음파일을 들으면서 필사한 것을 함께 정리하여 올린다.

+ 녹음파일은 선생님 블로그에서 링크되어 있다.

[책읽기 20분] 역사 – 5

Posted on 2016년 4월 18일


제4장 목소리와 침묵, 제5장 천릿길의 여정

— “역사가가 역사를 탐구하는 과제를 어떻게 시작하는지를 보여주는 것”


사료읽기

– 먼저, 문서고 관리자가 역사가를 위해 사료를 분류하고 정리해야 한다. 문서고는 체계화된 정보보관소이다. 문서고 관리자가 과거의 유물을 어떤 질서 안에 배치하여 문헌목록과 간략한 요약문을 만든다.

– “우리에게 과거의 흔적을 전해주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사료가 될 수 있다.”

– 모든 사료가 역사가에 의해 이용되는 것은 아니다. “역사가 자신, 즉 자신의 관심사와 관념, 환경, 경험”이 특정한 사료에 대한 관심을 불러 일으킨다.

– 사료를 읽는 데에는 다양한 기술과 지식이 필요하다.

– 어떤 사료를 제시하고 지지할지 결정해야 한다.

– 문헌의 위조 여부와 편향성을 판단해야 한다.

– 다른 역사가의 저작도 참조해야 한다.


‘이야기’ 구성하기

– 이야기를 구성하기 위해서는 사료의 빈 곳을 추측해야 하고, 여러 추측들 중에서 선택을 해야 한다.

– 당면한 사건보다 더 큰 또는 그 사건을 포함하는 상위의 “더 긴 이야기”를 고려해야 한다.

– “더 많은 양의 자료를 어떻게 종합하고 더 큰 이야기가 제시하는 윤곽선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생각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 이야기의 “의미”를 논증해야 한다. 이것을 위해서는 사건의 원인과 결과를 따져야 한다.


인과관계를 따지는 방식

– 권력자 개인이 원인이라는 사고방식

– 사회구조와 경제적 변화에 주목 — 사회경제적 설명(marxist 해석)

– 사람들의 일상생활에서 나타나는 행위의 패턴 — 가족구조, 일상적 행동, 주변의 사회적 공간을 배열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방식

– ‘문화’ — 사유와 이해의 패턴, 언어의 양식, 인생의 의례, 사고방식


어떤 설명방식을 사용할지에 따라 원인-결과 연쇄는 달라질 것이며, 역사가의 관심도 달라질 것이다.

그러나 핵심적인 것은 ‘환경’, ‘역사’, ‘사람들’은 서로 별개가 아니라는 것이다.




  


서중석 《대한민국 선거이야기

죙케 나이첼, 하랄트 벨처 《나치의 병사들

칼 마르크스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




오늘 읽을 부분은 이 책의 4,5장이다. 처음에 이 책 전체를 소개할 때 4,5장은 역사를 탐구하는 구체적인 방법, 즉 사료를 해석하는 방법에 관한 것이다 라고 했었다. 사료를 해석하고, 그것을 추론하고 종합해서 진실한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과정을 집중적으로 다루는 부분. 이 얇은 책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바로 4,5장이 아닌가 한다. 이건 꼭 역사가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한번쯤은 곰곰이 읽어보면서 살펴봐야 하는 부분으로 생각한다. 


책에 따르면 역사가가 역사를 탐구하는 과제를 어떻게 시작하는지를 보여주는 부분부터 시작한다. 오늘은 책에 있는 내용을 구체적으로 들어가기 앞서서 지난 주 4월 13일에 있었던 국회의원 총선에 대해 이야기해본다. 이것도 역사에서 일어난 사건이다. 우리가 살아있기 때문에 역사가 되리라고 생각하지 못하는데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 한반도에 생겨났던 많은 나라 중 하나인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지난 주 수요일은 역사의 일부가 되었다. 이 사건이 벌어진 것을 놓고 사람들이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데 어떤 과점에서 이걸 보느냐에 따라 선거 분석을 한다. 그런데 신문을 보면 기자들은 역사가가 아니기 때문에 업신여기는 것이 아니라 그때그때 일어나는 사건을 적으니까 역사가적인 통찰을 가지기가 어렵다. 그런데 대개 많이 쓰는 말이 '민심이 무서웠다'라고 한다. 민심이라는 말은 국민의 마음이라는 말인데 민심이라는 것이 마치 하나 있는 것처럼 얘기한다. 뭉뚱그려서 뭐가 뭔지를 분별해 내기가 어려울 때 민심이라는 말을 쓰는 것일 것이다. 사실 2016년 4월 13일 총선거가 있기 전에 2006년 5월에 있었던 지방선거를 머릿속에 떠올렸다. 지방선거는 현재 대통령이 야당 대표로서 압승을 거둔 선거. 그때부터 흔히 말하는 운빨이 있었다. 그리고 권력은 10년을 가지 않는다는 말을 생각하면서 2016년은 권세가 10년이 되는 해니까 권세가 꺾인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얼핏 했었다. 그러면 이 머릿속에 이런 것을 판단하는 기준이 '권불10년'이라는 낡아빠진 격언도 아닌 속설에 불과한 것이다. 권불10년이라는 말은 출처도 막연하고, 그 말도 수없이 많은 사례들을 보고 끄집어낸 것이겠다.  사실 지금 현재 권력의 정점에 있다고 스스로 자부하는 자신만만한 사람의 권력이 꺾일 때가 된 것이고, 그것이 이번 총선에서 드러나지 않겠는가 라는 생각을 아주 아주 막연히 했었다. 이걸 지금 얘기하는 게 역사적인 판단이 아니다. 조금 더 정교하게 이걸 보고자 한다면 책을 참조할 수 있겠다. 서중석 교수가 쓴 《대한민국 선거이야기》라는 책이 있다. 2008년에 나온 책인데 1948년 제헌선거에서 2007년 대선까지를 다룬 책. 이 책을 읽고 대한민국에서 선거가 어떻게 진행되어 왔는지를 생각해볼 수 있겠다. 이 책을 읽어보면 구체적으로 일어났던 선거들을 놓고 그것을 분석한다. 물론 모든 분석이 다 앞뒤가 착착 맞아떨어지는 건 아니다. 서중석 교수가 이 책을 2008년에 쓴 이유는 2007년 대선이라는 사건이 있었기 때문이고, 그 사건을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해 관심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선거결과나 여러가지 전후 일어났던 사건들을 가지고는 앞뒤가 맞춰지지 않는 부분에서는 서중석 교수는 어느 정도 추론을 하고 빈자리를 매꿔놓기도 한다. 그렇게 해서 역사책이 쓰여진다. 그러니까 지금 현재 우리 눈 앞에 벌어진 사건인 4월 13일 총선을 역사로 기록한다고 하면 어떻게 기록할 것인가를 생각해보면서 오늘 배우는 4,5장에 나오는 방법론을 들으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과거에 일어난 사건을 모두 역사적 사건이라 하지는 않는다. 무엇을 역사적 순간, 역사적 행위라고 하는가. 어떤 자격을 갖추어야 역사적인 날이 될 것인가를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겠다. 다시 말해서 지난주 총선이 과연 역사적 선거인가. 단지 맨날 있었던 선거 중 하나일뿐인가를 생각해 볼 수 있겠다.


그러면 역사가는 어떻게 해서 역사서술을 시작하는가. 먼저 사료를 읽는다. 사료는 읽기 좋게 만들어진 게 아니라 문헌학자, 문서고 관리자가 사료를 분류하고 정돈해야 한다. 일정한 질서 안에 배치를 해서 문헌목록을 만들고 간략한 요약문을 제시해두면 그것을 역사가가 보는 것. 저자에 따르면 우리에게 과거의 흔적을 전해주는 것이면 무엇이든 사료가 될 수 있다. 다시 말해 사료는 과거의 흔적이다. 그런데 모든 사료가 역사가에 이용되는 건 아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역사가 자신이 어떤 관심사를 가지고 있는가에 따라 특정한 사료가 선택되는 것이다.


그래서 역사가의 문제 설정이라는 것이 있다. 이 것은 기계가 해주는 것이 아니다. 지금 2016년 4월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가 무엇인가를 결정하는 건 사람이다. 역사가 바로 그런 걸 결정한다. 이를테면 《나치의 병사들》이 있다. 일종의 역사책 같기도 한데 영국에서 나치 병사들을 포로로 잡아서 그들이 수용되어 있는 방에 도청장치를 해서 서로 주고 받은 얘기를 녹취해놓은 것을 기록한 것이다. 그냥 지나칠 수도 있는데 그걸 학자들이 역사적인 연구를 할 수 있겠구나할 때는 다른 의미를 갖게 된다. 그리고 문제 설정을 한 다음에 사료를 읽어나가는 데에는 다양한 기술과 지식이 필요하다. 어떤 사료를 사용할 것인지 사용하지 않을 것이지 결정을 해야 하고, 문헌이 위조된 건 아닌가 생각해야 하고, 이 문서가 애초에 작성자가 편향을 가지고 쓴 건 아닌가도 판단해야 하고, 문제를 발견하고 설정했으니 탐색을 과정을 거치는 것이다. 


107 저술되는 모든 역사는 이와 비슷한 무언가, 즉 일군의 특정한 사료를 향해 나아가도록 역사가를 추동하는 실마리를 내포한다. 역사가는 증거에 눈길을 주기도 전에 선택과 결정을 한다. 따라서 사료를 가지고 시작하는 것은 역사를 시작하는 한 가지 방법이라고 말하는 편이 더 진실할 것이다. 다른 방법은 역사가 자신, 즉 자신의 관심사와 관념, 환경, 경험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111 그런데 어떤 집을 지어야 하는가? 역사가는 무엇을 지을지, 어떤 사료를 제시하고 지지할지 결정해야 한다.


113 '편향'(필자의 편견, 필자가 서술을 왜곡하는 방식)을 찾는 사람은 '편향되지 않은' 입장을 찾을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이것이 문제다. 누구에게나 있는 특색이 '편향'에 포함된다면, '편향되지 않은' 문헌이란 없다. 어떤 사료는 의견과 편견을 아주 공공연히 드러내고 우리는 당연히 이런 점을 고려해야 하지만, 어떤 사료는 그 사료가 가정하는 것들을 밝히기 위해 아주 신중하게 연구해야 한다.


이런 1차 사료들이 제공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고려해서 사료가 말해주는 것과 말해주지 않는 것 사이에 틈이 무엇인가 이런 것도 보고 동시에 다른 역사가의 저작도 고려를 한다. 이런 것들로 해서 처음의 문제를 설정하고 탐색하면 일단 우리 앞에 무질서하게 놓여있던 사료들을 일정하게 취사선택을 한다. 이를 바탕으로 서사, 즉 구조를 갖춘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과정이 된다. 이렇게 검토하는 것에 요구되는 능력은 역사가만이 아니라 우리가 뭔가를 탐구할 때 갖추어야할 자질을 모두 포함한다. 


114 역사가는 사료의 뉘앙스, 말해지는 것과 말해지지 않는 것 사이의 틈, 사료의 리듬과 당김음을 의식해야 한다.


116 역사가들은 자신의 사료 조사 못지않게 다른 역사가의 저작에도 의존한다. 근대 초 영국에 관해 누군가 이미 말한 진실한 이야기에 도전하는 무언가를 버뎃 관련 사료에서 발견한다 해도 괜찮다. 그러나 이미 제공받은 길잡이를 무시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126 사료가 입을 다무는 어느 순간부터 역사가는 추축을 시작해야 한다. 즉 문헌을 해석해야 한다.


131 새로운 질문은 언제든지 있다. 왜 그런가? 사료를 보는 새로운 시각 때문에, 사료 이전과 이후에 보이는 다른 사료 때문에, 역사가가 걸어가는 다른 길 때문에 그렇다. 그러나 주된 이유는 사료에 틈, 여백, 생략, 침묵이 있기 때문이다. 사료는 말을 하지 않으며 전부 이야기해주지 않는다.


이것을 한마디로 '미세한 적절함'이라고 표현해 볼 수 있다. 즉 데이터에 근거하면서도 데이터 자체만 매몰되지 않고 말해주지 않는 빈틈을 채워가는 능력. 일단 진실한 이야기라고 할 때 사료에 근거하고 있으니 역사가 진실에 근거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기본은 갖춘 셈이다. 그러면 이야기를 구성할 때는 어떻게 할 것이가. '진실'에서 '이야기'로 넘어왔다. 사료의 빈곤을 추축해야 하고 그것들 중에서 무엇을 선택해서 뼈대를 만들지 결정을 하는 것이 5장에 나와있다. 사료 읽기를 통해 얻어진 것을 바탕으로 당면한 사건보다 더 큰 또는 그 사건을 포함하는 상위의 더 긴 이야기를 고려한다.


134 우리는 오랜 여정의 빈 공간에, 더 긴 여정에서 의미를 발견하고 논쟁을 살펴볼 가능성에 이끌린다. 버뎃은 적어도 두 가지 더 긴 이야기, 즉 영국 내전과 아프리카 식민화의 일부다.


서중석 교수처럼 《대한민국 선거이야기》라고 하는 것도 더 상위에 놓여있는 이야기이다. '1948년 제헌선거에서 2007년 대선까지'라고 하면 더 큰 이야기가 되고, 조금 더 큰 이야기는 '선거로 본 대한민국 정치사'가 되겠다. 다시 말해 어떤 사건을 보되 그 사건이 포함하는 상위의 긴 이야기까지 고려한다는 것 상하 범주에 대한 고려가 있어야 한다. 지극히 사적으로 이번 선거가 보여준 몇 가지 함의가 있는데 그게 꼭 정치에 관련된 것이 아니라 문화·사회적인 구조의 변화가 있다고 생각한다. 꼭 정치사만이 아니라 문화사·사회사 범주까지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러려면 꼭 선거에 관련된 것만이 아니라 더 많은 양의 자료를 선거보다 상위에 있는 것들, 옆에 나란히 있는 것들을 어떻게 종합하고 큰 이야기가 제시하는 윤곽선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를 생각하는 과정이 그 다음에 필요하겠다. 앞서서 얘기한 것들은 문제를 설정하고 탐색해서 미세한 적절함을 발휘하여 그것을 탐구하는 과정에 대한 것이라면 이제는 종합해서 상위로 올라가는 과정이다. 이것을 저자는 이야기의 의미를 논증하는 일. 원인과 결과를 따져 묻는 일이라고 말한다. 변화의 원인들은 서사의 구성을 위해서 반드시 찾아야 하지만 그것도 왜곡되기 쉬운데 어쨌든 인과관계를 따지는 것이 더 긴 이야기이고 상위 범주로 올라가는 것이다. 인과관계를 따지는 것은 대체로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권력자 개인의 좋은 결정이나 나쁜 결정이 사태의 원인이라는 사고방식. 둘째가 사회구조와 경제적 변화, 이것은 저자가 넓은 의미에서의 marxist 해석으로 말하고 있다. 대문자 M이 아닌 소문자 m. 사회·경제적 변화를 따지는 것은 마르크스주의의 영향이다. 사람들의 일상생활에서 나타나는 행위의 패턴, 즉 가족구조, 일상적 행동, 주변의 사회적 공간을 배열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방식, 이런 것들도 고려해야할 것이다.


135 다시 말해 더 많은 양의 자료를 어떻게 종합하고 더 큰 이야기가 제시하는 윤곽선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생각하는 과정이다. 이 과정에서 역사가는 시간의 흐름에 따른 변화만이 아니라 연속성까지 의식하고, 그런 변화와 연속성을 설명하려 한다.


141 마르크스와 그의 동지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역사의 해석에도, 장기간에 걸쳐 사회에서 변화가 어떻게, 왜 일어나는지 설명하는 일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마르크스는 20세기에 다른 누구보다도 역사서술에 큰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142 오늘날 글을 쓰는 모든 역사가는 사실상 마르크스주의자다(marxist, 대문자 'M'이 아닌 소문자 'm'). 이 말은 역사가들이 모두 '좌파'라거나(그와는 거리가 멀다) 그들이 마르크스에 진 빚을 반드시 인정하거나 기억한다는 뜻이 아니다. 그러나 마르크스 사상의 핵심 요소는 오늘날 역사가들이 사실상 당연하게 받아들일 만큼 그들의 관념에 깊숙이 배어들었다. 그 요소란 사회적·경제적 환경이 사람들이 그들 자신과 그들의 삶, 그들을 둘러싼 세계에 관해 생각하는 방식에 영향을 끼치고, 그리하여 행동에 나서도록 그들을 추동한다는 통찰이다.


144 사회사가는 인류학과 사회학에 힘입어 사람들의 일상생활에서 나타나는 행위의 패턴, 즉 그들의 가족구조, 일상적 행동, 그들 주변의 사회적 공간을 배열하고 거기에 의미를 부여하는 방식을 조사할 수 있게 되었다.


그 다음이 '문화'적인 의미. 저자는 문화라는 말을 잘 규정했는데 사유와 이해의 패턴, 언어의 양식, 인생의 의례, 사고방식 이런 것들을 고려한 설명이 요구된다는 것. 그리고

이것을 묶어서 사회적 설명방식, 문화적 설명방식, 정치적 설명방식, 경제적 설명방식으로 말하는데 어떤 설명방식을 사용할 것인가에 따라서 원인과 결과 연쇄는 달라질 것이며, 역사가의 관심도 달라질 것이다. 


145 그 '문화'는 사유와 이해의 패턴, 언어의 양식, 인생의 의례, 사고방식을 가리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문화사가들은 경제적 환경이 사람들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방식에 영향을 끼치고 그 방식의 강조점을 바꾼다는 마르크스의 견해를 받아들여, 사람들이 생각하는 방식이 그들과 사회 및 경제의 관계에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논증했다.


155 마르크스의 말마따나 역사는 자기네가 선택하지 못하는 환경에 속하는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다. 그러나 그들은 삶을 영위하는 공간이 그 환경에 영향을 끼친다. '환경', '역사', '사람들'은 서로 별개가 아니다. 이것들은 역사가가 역사에서 하나의 패턴을 이끌어내기를 기다리며 계속 동행한다.


155 이처럼 서로 부딪히는 물결들에 의해 형성되는 패턴 안에서, 역사는 생겨난다.


역사적 행위가 일어나는 순간을 역사적 순간이라 한다. 저자는 "역사는 자기네가 선택하지 못하는 환경에 속하는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다. 그러나 그들은 삶을 영위하는 공간이 그 환경에 영향을 끼친다. '환경', '역사', '사람들'은 서로 별개가 아니다." 라고 하면서 마르크스를 인용한다. 이 부분은 마르크스의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에서 나오는 얘기다. "인간은 스스로 선택한 환경 하에서가 아니라 과거로부터 곧 바로 맞닥뜨리게 되거나 그로부터 조건 지워지고, 넘겨 받은 환경하에서 역사를 만드는 것이다" 간단히 말하면 자기도 어쩔 수 없는 환경 속에서 태어난다는 것. 모두 다 원해서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것이 아니고. 그러니까 마르크스는 "모든 죽은 세대들의 전통은 악몽과도 같이 살아 있는 세대의 머리를 짓누르고 있다" 고 말을 이어간다. 이것이 우리가 지금 처해있는 기본값이다. 이 전통을 어떻게 할 것인가. 또 어떻게 했는지가 역사적 행위와 순간을 결정하는 것. 다시 말해서 넘겨받은 환경을 그대로 따라가는 것인가 아니면 그것을 바꿔내는가. 별 수 없이 따라간다고 하면 역사적 행위라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번 총선거가 과연 역사적 순간인가. 어찌하다보니 이런 선택을 하게 되었는데 이 선택이 과연 역사적인가. 몰락의 역사를 썼을 수도 있고 지극히 혼란으로 빠져들어간 역사를 썼을 수도 있고, 20년이 지나서 돌이켜 보니 그때 그 선택이야 말고 대한민국이 생겨난 이래 모든 것을 다 청산하는 출발점이 되었구나 판단하는 일도 될 수도 있겠다.


그래서 어떤 설명을 우리가 선호할 것인가, 매달릴 것인가를 한번 생각해볼 수도 있겠다. 이런 것을 알파고 같은 컴퓨터에 입력하면 엄청난 결과가 나올 수도 있겠지만 그러한 결과가 과연 우리에게 어떤 행위를 결정하는 밑바탕이 될 것 같지는 않다. 결단을 내리는 것은 인간이기 때문에 그 결단이 집단적으로 내려지게 되면 역사가 되겠다. 




[책읽기 20분] 역사 – 6

Posted on 2016년 4월 25일


제6장 고양이 죽이기, 또는 과거는 낯선 나라인가?, 제7장 진실 말하기


망탈리테(mentalité)

– 특정 시대의 심성구조, 행동의 상징적인 패턴, 사고방식, 시대정신, 문화적 의식

– 인류 역사 전체를 고유한 특색으로써 나눈다.

– 사료를 이용하는 방식이 다르다.


사실, 진실, 의미

– 사실과 진실은 해석과 판단을 거쳐야 한다.

– 진실은 “일반적인 수용에 의존하므로… 합의의 과정”이다.


역사의 쓸모(또는 역사를 공부하는 까닭)

– 그저 ‘즐거움’

– 생각할거리로 이용할 수 있다.

– 이의를 제기할 수단을 제공한다.




오늘은 6장 고양이 죽이기, 또는 과거는 낯선 나라인가?, 여기서 '과거는 낯선 나라인가'라는 말에 주목할 필요가 있고, 7장 진실 말하기를 하면서 이 책을 마치려고 한다. 다음 주에는 이 책 전체를 다시 집약하여 정리하면서 책을 읽는 일반론에 대해서 정리하려고 한다. 


사료를 연구하고 거기에 의미를 부여해서 진실한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 역사라는 작업이다. '진실한 이야기'라고 하고 할 때 진실은 하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진실한 이야기를 만든다고 하는 것에 벌써 거부감을 느낄 것이다. 진실을 왜 만드는가. 진실은 저절로 드러난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그렇지 않다. 과거 지나간 일인데 진실한 이야기를 만드는 역사라고 하는 작업이 오늘날 어떤 의미가 있는가. 사실, 진실, 의미는 어떻게 다르고 완전한 진실이라는 것은 없는데 그런데 역사라는 것이 과연 쓸모가 있는가 왜 공부하는가 이런 것에 대한 생각을 해보는 것이 이 책 마지막 부분 얘기이다.


역사에서 진실한 이야기를 만든다는 것에 주목을 해보면 과거는 낯선 나라이기 때문에 우리가 아무리 노력을 해도 그것에서 대단한 진실을 만들어 낼 수는 없다. 그런데 그렇다 해서 미리 포기해서는 안되고 최대한 노력을 해서 그 낯선 나라에 관한 진실한 이야기를 만들어 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정치적인 사회적인 문화적인 다양한 설명 방식을 채택하게 된다. 그러면 그런 여러가지 설명 방식 중에 오늘날 널리 알려진 게 이른바 망탈리테라고 하는 것이 있다. 특정 시대의 심성구조, 행동의 상징적인 패턴, 사고방식, 시대정신, 문화적 의식 것들을 가리킬 때 사용하는 것인데. 어떻게 보면 아리스토텔레스 《니코마코스 윤리학》의 hexis와 같은 개념으로 보이기도 한다. 이 망탈리테라고 하는 것은 흔히 특정 시대의 심성구조라고 번역을 하는데 단순히 마음 씀씀이 정도가 아니라 집단이 가지고 있는 의식, 이 의식이라고 하는 것은 겉으로 드러날 때는 하나의 상직적인 패턴으로 드러나기도 하고 사고방식으로 드러나기도 하는데 그것이 시대의 아젠다, 시대가 표방하는 의식과 주제를 담고 있으면 시대정신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각각의 시대는 고유한 태도를 가지고 있으므로 특정시대를 이해하려면 그 시대를 꿰뚫고 있는 망탈리테를 이해해야 한다는 말도 성립할 수 있게 되는 것. 


164 원래 망탈리테는 20세기 전반기에 프랑스 역사가 뤼시앵 페브르(Lucien Febvre)가 친구 마르크 블로크(Marc Bloch)와 함께 '아날적' 접근이라 알려진 새로운 종류의 역사를 시작하며 사용한 표현이다('아날 Annales'은 그들이 창간한 학술지 『경제사회사연보 Annales d'historie economique et sociale』에서 유래한 말이다). 아날학파의 목적은 몇 가지가 있었다. 그 중 하나는 역사 연구의 방향을 정치적 사건에서 경제와 사회, 문화의 문제로 돌리는 것이었다(이 목적 역시 투키디데스의 탑에서 탈출하는 결과를 낳았다). 다른 하나는 역사의 훨씬 광범한 진전 ─ 아날 학파가 말하는 '장기지속(longue durée) ─ 을 검토하고 과거에서 뿌리 깊은 흐름을 찾는 것이다. 이 목적과 연관된 것이 기후 변화와 지리적 위치, 장기간의 경제적 변천을 역사적 인과관계에 대한 이해에 포함하려는 욕구였다.


이 말은 원래 뤼시앵 페브르와 마르크 블로크가 경제사회사연보에 '아날'이라고 하는 것을 시도하면서 나온 말인데 이 사람들은 우선 역사 연구의 방향을 정치적 사건에서 경제·사회·문화로 돌리는 것이 1차적인 목표였다. 그리고 역사의 광범위한 진전을 검토하고 과거에서 뿌리깊은 흐름을 찾는다. 아날학파는 단기적으로 일어나는 사건들은 상대적으로 관심을 덜 주고 오래도록 진행되어 온 장기지속이라는 말을 쓰는데, 예를 들면 한반도에서 오랫동안 지속되어온 정치라고 하는 것을 대체로 결정해 온 문화의 뿌리는 무엇인가. 물론 아날학파는 그런 것에서 찾지는 않았지만, 한반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정치적인 의식을 지배해 온 가장 오래된 의식은 백성을 구원해주는 지도자, 초월적 지도자는 아니고, 백성하고 비슷하면서도 백성과는 다른, 친서민적이라는 말을 하는데, 서민이면 안되고, 일반백성과는 다르지만 다르다는 것만 강조하면 안되고 백성 친화적이어야 한다. 이런 미묘한 지도자. 지나치게 잘난척해서도 안되고, 그렇다 해도 너무 빤해도 안되는 그런 지도자가 앞장서서 이끌어줄 것이다라는 것이 한반도 사람들의 아주 오래된 정치문화의 기본적인 의식인데 그것에 근거해서 지도자들이 나타났다. 


167 망탈리테는 우리가 과거 시대에서 발견하는 가지각색의 가정과 관습, 의례를 압축하는 약칭이 되었다.


"망탈리테는 우리가 과거 시대에서 발견하는 가지각색의 가정과 관습, 의례를 압축하는 약칭이다"라고 했다. 특히나 아날학파가 탐구했던 장기지속에 대해서 가장 잘 보여주는 저작은 페르낭 브로델의 『펠리페 2세 시대의 지중해와 지중해 세계』이다. 망탈리테는 심성구조에 대해서 생각하는데 지나친 측면이 있다. 심성구조 정도만 아니라 토지, 바다까지 탐구하다 보니 어떤 때보면 움직이지 않는 것들의 본질을 찾으려는 것 같다. 그것으로부터 표면에 나타나는 여러 사건을 설명하려다 보니 《물질문명과 자본주의》를 읽어보면 도대체 뭐가 변했다는 건가라는 생각 밖에 안 든다. 역사책을 읽으면서 변화의 원인과 결과를 찾아봐야 하는데 원인이 지나치게 근원적인 것이어서 그 이후에 일어난 사건들이 다 하찮고, 사소한 것처럼 되어버린다는 말이다.


167 내가 넌지시 말했듯이 망탈리테라는 술어를 사용한다는 것은 과거 사람들을 오늘날 우리와 본질적으로 다른 존재로 본다는 것을 뜻한다. 이 통찰이 정확한지 여부와 무관하게, 뒤에서 이 문제로 돌아갈 것이다. 우선은 망탈리테 관념이 다른 두 가지 인지적 조작 또한 수반한다는 것, 다시 말해 인류 역사 전체를 기간들로 나누는 조작과 역사적 증거를 그것을 만든 사람이 결코 의도하지 않은 방식으로 읽는 조작을 수반한다는 것에 주의해야 한다.


171 상이한 사고방식들과 망탈리테들을 파악하려면 사료를 신중하게 이용해야 한다. 앞에서 시사했듯이, 그러기 위해서는 사료를 만든 이들이 결코 의도하지 않은 방식으로 사료를 읽어서 그들이 결코 고려하지 않은 의미를 드러내야 할지도 모른다. 현대 역사가들은 이런 읽기를 '결을 거슬러 읽기'라고 부르곤 한다. 여기서 '결'은 사료가 제시하고자 하는 방향과 논증을 뜻한다.


어쨌든 망탈리테를 연구하려면 두 가지 정도의 인지적 조작이 수반되어야 하는데 하나가 전통적인 방식의 시대구문을 하지 못한다. 더 이상 고대·중세·근대는 통용되지 않는다. 그래서 역사를 역동적으로 볼 수 있게 해준다. 둘째로는 사료를 읽을 때 읽는 방식을 다르게 하게 된다. '결을 거슬러 읽는다'라고 하는데 어떤 방식으로 사료를 읽을 것인가는 무엇을 탐구할 것인가를 마음속에 두느냐에 따라 다르겠다. 그리고 이렇게 과거에 대한 이해를 달리하게 되면 시대구분, 사료 읽는 방법도 달리하게 되면 어떤 이름을 붙일까도 다르게 되겠다. 혁명이라는 이름 붙일 것인가 쿠데타라라고 이름을 붙일 것인가 이런 것들. 과거에 대한 이해 차이를 단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이른바 이름 붙이기이다.


과거에 사람들이 어떤 이름을 붙였던 그 사건들은 자신들이 이해한 바를 집약한 것인데 여기에 오늘날 사람들이 다른 이름을 붙인다 하면 새로운 이해를 시도한 것이 되겠다. 그런데 정치적인 것에만 국한해서 과거의 역사를 설명하려는 것은 어이없는 것임을 인정하지만 망탈리테를 이용해서 따져보게 되면 그것이 진실한 것이라 할 수 있는 것인가. 사료를 결을 거슬러 읽어서 과거 특정시대의 망탈리테를 파악했을 때 그것을 진실이라 말할 수 있는가. 진실에 가깝다고는 할 수 있겠다. 망탈리테에 대해서 모든 역사가들이 동의하는 것은 아닌데 이런 관점의 차이는 어떻게 확인할 수 있는가. 뭐가 더 진실에 가까운가. 과거와 현재 중 어떤 것이 옳은가. 


예를 들어서 죽음과 관련해서 기독교 이전 시대에서 서양에서는 영웅처럼 싸우다가 한 순간에 죽는 것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으나 기독교시대에는 선행을 베풀고 영혼을 돌보기 위해서는 오래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기독교 이전 이후 시대의 죽음과 관련한 경험과 이해도 이렇게 다르다. 지금 오늘 날에는 어떤 것이 과연 옳은가. 


181 죽음 ─ 죽음과 관련한 다른 사람들의 경험과 이해 ─ 역시 엄청나게 변해왔다. 기독교 이전 시대의 전사들은 가급적 영웅처럼 싸우다가 젊은 나이에 한 순간에 죽기를 바랐다. 이와 달리 기독교 기사들은 미래가 어떠할지 이해하고 현세에서 선행을 하고 영혼을 돌보기 위해서 장수하다 죽기를 바랐다. 어떤 이들은 장례의 일환으로 인육을 먹는 것을 적절하고 영예로운 행동으로 여겼다. 


망탈리테는 무엇이 좋은 심성구조이고, 무엇이 나쁜 심성구조를 말해주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 역사에서 교훈을 얻는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만한 것일 수도 있다. 그저 과거와 현재는 어떤 점에서 같고, 어떤 점에서 다른가를 고찰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또 과거를 응시해서 현재를 새롭게 볼 수 있게 해주는 것을 생각할 수 있겠다.


마지막으로 사람들이 대문자 H로 시작하는 역사를 말하는데 역사의 진실이라고 하는 것이 단 하나만 있다고 판단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렇다고 진실은 없다고 말하는 것, 가령 홀로코스트에 의한 유대인 대학살은 없다고 말하는 것은 미친 짓이고, 일어났기 했는데 어떤 이유로 일어났는가, 과연 히틀러 혼자 독단적인 결정에 의해서 가능했는가 이런걸 따져 묻이지 일어난 사건 자체를 없다고 말하는 건 어이없는 것에 불과하다.


192 개념으로서의 망탈리테의 문제는 자칫 모든 차이를 허물고 개개인의 복잡한 특질들을 어떤 시공간에서 '정상적'으로 통하는 하나의 그림으로 바꿀 수도 있다는 것이다.


192 내가 말하려는 바는 망탈리테를 더 미묘하고 섬세하게 복원하려 할 수 없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사유 양식이 있다고 가정하는 위험이 여전히 남아있다는 것이다.


194 진실과 거짓의 전투를 지켜보는 이들은 상충되는 이야기들의 함의 역시 결정해야 한다. 더욱이 실제 법정과 달리 역사에서는 한 사건을 여러 번 재판할 수 있다. 이것은 두 가지를 의미한다. 첫째, 어떤 '사실'과 '진실'도 의미와 해석과 판단이라는 맥락 외부에서 말할 수 없으므로 사실과 의미의 양극성은 옹호될 수 없다. 둘째, '진실'로 통하는 것('진실한 이야기'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다른 사람들의 절대적인 수용까지는 아니더라도 일반적인 수용에 의존하므로 진실은 합의의 과정이다.


199 두 역사 모두 (저마다 고유한 편견과 계급에 따른 이해관계, 성정치를 가진) 주관적인 역사가들이 사건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가능한 유일한 견해로 제시하려는 시도다. 그러나 단 하나의 진실한 이야기 ─ 대문자 'H'로 시작하는 역사(History) ─라는 관념은 여전히 굉장히 매력적이고 따라서 굉장히 위험하다.


201 '대문자 진실'과 단일한 역사라는 관념을 포기한다고 해서 절대적 상대주의로, 다시 말해 사건에 대한 어떤 서술이든 다른 모든 서술과 똑같이 타당하게 받아들이는 입장으로 귀결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홀로코스트가 일어났음을 부인하는 사기꾼들과 이데올로그들에게 도움을 주는 것은 아니다.


사실과 진실이라는 것은 해석과 판단을 거쳐야 하는데 진실은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이가에 의존하므로 합의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 그러니까 진실이라는 것은 단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라 또 망탈리테의 역사 이런 것도 따져묻는게 정치·사회·문화사를 탐구하는게 단 하나의 진실을 찾기 위해서가 아니라 진실이 다면적인 계기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다면적 계기를 찾기 위해서 탐구하는 것. 그러니까 역사가들은 저마다 복잡한 정도가 다른 진실들, 여러개의 진실을 제시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진실이라고 하는게 뭘 의미하는가를 생각해봄으로서 우리 자신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202 그런데 역사가 그토록 복잡하고 그토록 어렵고 전적으로 확실하지 않은 것이라면, 어째서 역사를 탐구하는가? 역사는 왜 중요한가?


203 우리는 그럴 수 없으며 늘 그래왔듯이 미래는 지금도 불투명하고 흥미진진하다. 그렇지만 앞서 말한 주장의 의미가 과거가 우리에게 고찰할 교훈을 이끌어낼 기회를 준다는 것이라면, 설득력이 더 있어 보인다.


204 역사가 인간의 조건에 대한 깊고도 근본적인 어떤 통찰을 보여줄 수 있다는 주장, 과거를 샅샅이 조사하면 우리의 삶과 이어지는 어떤 본질적인 가닥을 발견할 수 있다는 주장도 이따금 제기되었다.


그러면 마지막으로 역사를 공부하는 까닭을 보자. 그저 '즐거움'이 있어서 한다. 그리고 둘째로는 저자가 제시하는 답으로 생각할거리로 이용할 수 있다고 하지만 설득력이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그리고 셋째로는 이의를 제기할 수단을 제공한다. 독단적인 주장을 누가 할 때 역사에 의지해서 많은 행동방식이 있었다는 것을 지적해서 독단적인 주장을 반박할 수 있다는 말인데 그저 '즐겁다' 외에는 크게 설득력은 없다고 본다. 그렇지만 역사를 공부하면 뭔가 미세한 조정이 필요한 것들에 대해 잘 할 수 있는 힘을 기를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다. 미세한 것을 조정할 수 있는 힘. 미묘함을 다루는 능력이 생기지 않을까 생각한다.


205 나는 역사를 탐구해야 하고 역사가 중요한 세 가지 대안적인 이유를 제시하고자 한다. 첫번째 이유는 그저 '즐거움'이다.


205 두번째 이유로 이어진다. 바로 역사를 생각할 거리로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역사를 탐구할 때 우리는 현재 맥락에서 벗어나 다른 세계를 탐험하기 마련이다. 그렇게 탐험하는 동안 우리는 우리 자신의 삶과 맥락을 더욱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206 마지막 세번째 이유 역시 다른 두 가지 이유와 연결되어 있다. 우리 자신에 관해 다르게 생각하는 것, 우리가 개개인이 '되는' 과정을 알아가는 것은 다르게 행동할 가능성을 의식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 세번째 이유는 제1장에서 역사란 논쟁이며 논쟁은 변화를 위한 기회를 제공한다고 말할 내용을 상기시킨다. "이것이 유일한 행동 방침이다"라거나 "언제나 이런 식이었다"라는 독단적인 주장에 직면할 때, 우리는 역사에 의지해 언제나 많은 행동 방침들과 많은 방식들이 있었음을 지적해 이 주장을 반박할 수 있다. 역사는 이의를 제기할 수단을 제공한다.


다음주는 《세계사 공부의 기초》와 《역사》를 집약해서 역사 공부가 우리에게 무엇을 주는가를 생각해 보도록 하겠다. 그런 다음에 구체적인 역사책을 읽어나가려 한다. 진실을 어떤 방식으로 추적해가고 있는가. 이 역사책은 어떤 방식으로 쓰여져 있는가를 중심으로 해서 읽어보려 한다. 구체적으로 일어난 사건들을 역사가가 어떻게 진실들 중 하나를 제시하고 있는가 라는 것도 유념해서 보면 좋겠지만 역사 방법론을 얼마나 충실히 잘 따르고 있는가 따져가면서 한번 살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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