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기 20분 | 02 역사 1



존 H. 아널드(지음), 이재만(옮김),《역사》, 교유서가, 2015.

원제: John H. Arnold, History: A Very Short Introduction, Oxford Univ. Press, 2000.

옥스퍼드 대학 출판부에서 펴내는 ‘아주 간명한 입문(VSI)시리즈에 포함된 책


목차

1. 살인과 역사에 관한 물음들

2. 돌고래의 꼬리부터 정치의 탑까지

3. “그것은 실제로 어떠했는가”―진실, 문서고, 옛것에 대한 애정

4. 목소리와 침묵

5. 천릿길의 여정

6. 고양이 죽이기, 또는 과거는 낯선 나라인가?

7. 진실 말하기



+ 선생님께서 블로그에 올리신 글과 녹음파일을 들으면서 필사한 것을 함께 정리하여 올린다.
+ 녹음파일은 선생님 블로그에서 링크되어 있다.



[책읽기 20분] 역사 – 1

Posted on 2016년 3월 21일


역사에 관한 간명한 입문서로서 적당한 분량과 내용을 담고 있다.

번역자가 뒤에 붙인 “더 읽을거리”에서 역사책 도서목록을 얻을 수 있다


마크 길더러스 《역사와 역사가들》

투퀴디데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도널드 케이건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도널드 케이건 《투퀴디데스, 역사를 다시 쓰다》

야코프 부르크하르트 《세계 역사의 관찰》

앨런 브링클리 《있는 그대로의 미국사》

마르크 블로크 《역사를 위한 변명》

페르낭 블로델 《지중해의 기억》





에드워드 크레이그《철학》, 마이클 하워드《제1차 세계대전》, 마크 길더러스 《역사와 역사가들

투퀴디데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도널드 케이건 《펠로폰네소스 전쟁사》,투퀴디데스, 역사를 다시 쓰다

야코프 부르크하르트 《세계 역사의 관찰》, 앨런 브링클리 《있는 그대로의 미국사

마르크 블로크 《역사를 위한 변명》, 페르낭 블로델 《지중해의 기억



오늘은 책읽기20분에서 두 번째 책인 《역사》를 한다. 이 책은 존 H. 아널드가 쓴 책이고, 이재만씨가 옮겼다. 이재만씨는 《역사와 역사가들》을 함께 공역을 한 적이 있다. 이재만씨는 역사책을 많이 옮겼다. 그 이후로 《제국의 폐허에서》, 《영국 노동계급의 상황》와 같은 책들, 특히 엥겔스의 《영국 노동계급의 상황》은 고전 텍스트인데 그것을 또 번역을 했다. 《역사》 이 책은 교유서가 첫단추 시리즈로 둘째 책인데 첫째는 《철학》이다. 원래 옥스퍼드 대학 출판부에서 2000년에 출판한 책으로 A Very Short Introduction, 아주 짧은 인문서이다, Short은 '간단한'이라는 뜻도 있지만 간단한 책은 아니니까 ‘짧은’으로 보는 게 좋겠다. 옥스퍼드 출판사에서 한 출판사에다 저작권을 몰아서 주지는 않으니까 여기저기서 출간하고 있는데, 첫단추 시리즈라는 이름이 붙어서 나온 게 몇개있다. 《수사학》도 있고, 《로마공화정》도 있고, 《로마제국》, 《제1차 세계대전》도 있다. 에드워드 크레이그의 《철학》은 출간하기 전에 원고도 검토한 적도 있다. 얼핏보면 난삽해보이는데 철학에 관한 좋은 입문서이다. 《수사학》은 전통적 의미에서의 키케로의 수사학과는 조금 다른 현대 수사학을 많이 포괄하고 있다. 《로마공화정》과 《로마제국》도 읽을만하다. 그리고 마이클 하워드의 《제1차 세계대전>은 꼼꼼하게 읽어봤다. 여러 번 읽어봤는데 책이 괜찮다. 그리고 케빈 패스모어의 《파시즘》이라는 책이 있는데 예전에 A Very Short Introduction 시리즈에 포함된 책이다. 예전에 번역을 했었고, 최근에 옥스퍼드 출판사에서 개정판을 출간해서 교유서가에서 개정판을 가지고 《파시즘》을 다시 출간할 예정이라고 한다. 


정리하자면 이재만씨가 번역한 《철학》과 《제1차 세계대전》 그리고 아직 출간되지 않았지만 《파시즘》은 첫단추 시리즈로 나온 것 중에 읽어 볼만한 것으로 추천한다. 오늘은 역사책에 관한 얘기를 집중적으로 하려고 한다. 존 H. 아널드의 《역사》 이 책은 가장 적당한 분량에 좋은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책을 읽은 다음에는 《역사와 역사가들》을 읽어나가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이 책이 좋은 점은 이재만씨가 적은 '더 읽을거리'에 있다. '더 읽을거리'를 보면 이것만 가지고도 좋은 역사책 도서목록이 된다. 기본도서를 읽고 거기서 추천한 책들로 확장해 나아가는게 가장 좋은 방법. 더군다가 역자가 역사책, 역사를 전공하고 역사책을 번역한 사람이라 도서목록이 아주 훌륭하고 좋다. 역사책이라고 하는 것은 읽을 때 좀 고통스럽다. 독서모임 같은데서 읽어보면 서너권도 읽지 않고 금방 질린다. 다른거 해보자라는 얘기가 금방 나온다. 《세계사 공부의 기초》에서 말했듯이 역사적 사실들을 어느 정도 알아야 책을 읽어도 재미있고 또 다음 것으로 확장해 나갈 수 있으니까 읽어나가는게 쉽지 않다. 그만큼 공부하는데 벅찬 영역. 철학책은 읽고 헛소리라도 하는데 역사책은 헛소리하면 안될것 같은 압박감을 준다. 토론하고 또는 웃으면서 담소 할만한 거리가 많지 않아서 재미도 없지만 그래도 역사책을 읽는 것이 독서의 힘을 기르는데 아주 적당한 분야이다. 그러니 기약없이 읽어나가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올해는 역사책 읽기를 해보는 하는 것. 본인 역시 역사가 전공이 아니고 잘하는 것도 아니지만 독서의 힘을 기르는 셈 치고 해보려는 것이다.


이 책 222페이지를 보면 더 읽을거리가 있는데 이재만씨가 써놓은 책 중에 다 읽어본 건 아니고 거의 다 읽었는데 읽어본 것 중에서 추천할만한 책들을 몇 권 거론하고 거기에 말을 덧붙이는 걸로 오늘 책읽기 20분을 하려 한다.


E.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 이재만씨는 여전히 유효한 책이라고 얘기하지만 본인은 요즘 많이 권하지는 않는다. 약간 당파적 성향을 가지고 있어서 고유한 인문서라고 말하기는 좀 어려운 점이 있다는 것이 본인의 판단. 그렇다 해서 이 책을 몹쓸 책이다 하는 것은 아니지만 선뜻 권하지는 않겠다. 


둘째로 《역사와 역사가들》. 공역한 책인데 이 책은 역사 그 자체보다는 서구의 역사적 사유가 어떤 식으로 전개되었는가에 대한 개관을 하는 책이다, 그리고 역사를 서술하는 이른바 Historiography, 그런 것들은 어떤 식으로 이루어져 왔는가, 또 역사철학은 무엇이고, 역사 방법론에는 어떤 것이 있는가, 이런 것들을 둘러싼 주요한 쟁점과 문제를 소개하는 책. 읽기에 따라서는 처음에는 읽기 어렵다. 그래서 첫단추 시리즈를 읽은 다음에 읽는 게 좋겠다. 역사 그 자체에 관한 책이기보다는 역사학에 관한 책에 가깝다고 하겠다.


그리고 W.H.월쉬의 《역사철학》. 가장 기본적인 역사 교재. 철학과에서 역사철학을 배운다 하면 보는 책이다. 본인도 철학과 4학년때 이 책을 가지고 배웠다. 원래 김정선 선생님이 초역을 하시다가 병을 얻어 돌아가셨는데 이것을 역자 후기에 보면 칸트 《판단력 비판》을 번역하신 이석윤 선생님이 다듬어서 오래 전에 서광사에서 출간한 책. 그만큼 오래된 책이다. 30년도 더 되었지만 여전히 읽을만한 좋은 책. 이것은 책읽기20분에서 다루기는 그렇다. 한 학기 내내 16주 내내 배워도 못 배우는 책이라 그렇다.


그 다음에 헤로도토스의 《역사》, 투퀴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더 말할 필요가 없는 고전. 특히 투키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는 고전 희랍에서 나온 최고의 저작이라고 생각한다. 플라톤의 책보다도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이 책을 좋아한다. 이 책은 읽기가 어렵다. 전쟁이야기니까 전쟁에 흥미없는 사람들은 재미없고, 역사책이라기보다는 정치적인 것과 여러가지 연설문, 종합장르적이다.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만큼 참고서를 먼저 읽는 것이 좋다. 도널드 케이건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투키디데스의 저작에서 다루어진 주제들이 무엇인가에 대해 세밀하게 살핀 글들을 묶은 《투퀴디데스, 역사를 다시 쓰다》를 참조해 봐야 한다. 헤로도토스의 《역사》가 단순한 이야기 책을 시도했다면 투키디데스는 역사라는 학문세계를 만든 사람. 헤로도토스가 역사의 아버지라면 투키디데스는 역사학의 아버지라 불린다. 주의 할점은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는 그냥 역사책이라고 생각해서 읽다가는 좀 고생스럽다. 아무리 여러 번 읽어도 좋은 책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 다음에 야코프 부르크하르트의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문화》 전에 소개했던 책인데 그 당시 야코프 부르크하르트의 시대만 해도 자기 나라의 역사, 국민국가 형성에 따른 자국사 연구가 널리 퍼져있었는데 이 때 뜻 밖에도 세계사적인 책이 많이 나왔다. 그 중 하나가 이 책이다. 하지만 세계사 공부의 기초에서 말했듯이 세계사의 관점에서 중요한 

책은 《세계 역사의 관찰》이다. 이걸 꼭 한번씩이라도 읽었으면 한다. 말로만 하는 것은 한계가 있어서 한번 쯤은 다루어봤으면 하는 참 좋은 책이다. 


그리고 키케로의 《수사학》을 추천했는데 읽기, 쓰기, 말하기, 듣기에 관한 필수적인 고전. 이런 것도 배워야 하는 책이다.


그리고 오언 채드윅의 《종교개혁사》, 디아메이드 맥클로흐의 《종교개혁의 역사》 이런 책들도 좋다.


콩도르세의 《인간 정신의 진보에 관한 역사적 개요》. 좋은 책. 진보적 역사철학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는 책. 이 것과 대비되는 게 새로운 역사철학 이 책은 헤르더의 《인류의 교육을 위한 새로운 역사철학》. 계몽주의에서 나온게 《인간 정신의 진보에 관한 역사적 개요》라면 이른바 독일 낭만주의에서 나온게 헤르더의 책이다. 그리고 거론된 것이 웨드워드 기번의 <로마제국 쇠망사>. 고전이니까 읽지만 큰 영감을 주지는 않는다.


그 다음에 거론한게 앨런 브링클리의 《있는 그대로의 미국사》. 두툼한게 3권이다. 미국사 책으로는 이것 밖에 없다 할 정도로 추천한다. 특히 미국 현대사만이 아니라 미국은 역사가 짧으니까 현대사만 알고 있으면 미국에 대해서 다 알고 있는 것처럼 생각하기 쉬운데 첫째 권을 꼼꼼히 보는게 좋다. 마침 오바마 대통령이 88년만에 쿠바를 방문했다. 항상 새로운 뭔가를 추구하는 것 같아서 과거 역사의 짐을 안고 있지 않은 것처럼 여겨지지만 미합중국 역사도 그렇게 만만치 않게 이제는 좀 읽을 때가 되지 않았나 한다. 미국과 한국과의 관계의 비중을 생각하면 정말 안 가르치는 역사 중에 하나이다.


그 다음이 《치즈와 구더기》. 역사학의 역사에서도 중요한 책. 미시사에 관한 아주 탁월한 저작. 진즈부르그의 또 다른 책으로는 《실과 흔적》. 흔히 역사책 그러면 연대를 나열하고 역사적 의의, 정치적 사건과 같은 거대한 서사를 말하는데 진즈부르그의 이 책은 방법론에 관한 책이지만 《치즈와 구더기》는 세밀한 흔적을 더듬어가는 탐구의 즐거움을 준다. 미시사의 영역에 대해서는 많은 설명이 별개로 필요하다. 그것에 과한 다른 책으로는 단턴의 《고양이 대학살》이 있다. 이것 역시 미시사 관련 책 중에 탁월한 책. 《고 양이 대학살》 이 책은 우리가 역사책을 일반적으로 읽어온 사람에게는 역사책의 새로운 차원을 안겨준다. 


마지막으로 마르크 블로크의 《역사를 위한 변명》. 이 책은 역사입문서로는 E.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보다 낫다고 추천하는 책. 《봉건사회》라는 책도 추천한다. 이런 사람들을 아날학파라고 부른다. 학파에 속하는 사람 중 유명한 사람이 페르낭 브로델이다. 《지중해의 기억》이 좋다. 


첫 시간에는 역사책 도서목록을 만들어 봤는데 꼭 사서 읽어야 할 책으로는 《철학》, 《제1차 세계대전》, 《파시즘》 이렇게 교유서가 첫단추 시리즈. 그리고 <역사와 역사가들》, 월시의 《역사철학》은 중요하기는 한데 배워야 하는 책이니까 당장은 사서 읽지 않아도 된다. 헤로도토스는 제쳐놓더라도 투키디데스는 꼭 가지고 있으면 좋을만한 책. 그걸 읽을 때는 반드시 도널드 케이건의 책을 함께 봐야한다. 야코프 부르크하르트의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문화》도 좋지만  《세계 역사의 관찰》은 꼭 다루고 싶은 책이다.




[책읽기 20분] 역사 – 2

Posted on 2016년 3월 28일


제1장 살인과 역사에 관한 물음들

“이것은 진실한 이야기다.”(true story)

– 과거 자체와 역사가들이 과거에 대해 쓰는 것(역사서술), 그러한 서술의 산물로서의 역사에는 차이가 있다. 과거 자체라는 사료를 해석하여 역사를 서술하기 때문이다. 사료에 담긴 모든 이야기를 역사로 서술할 것은 아니므로 취사선택을 해야만 한다. 여기서 근거의 문제가 제기된다.

– “증거와 합치해야 하고 사실에 의존한다는 점에서 역사는 진실하다.” “동시에 역사는 ‘사실’을 더 넓은 맥락이나 서사 속에 배치하는 해석이라는 뜻에서 이야기다.”




지난 시간에는 더 읽어볼 책들에 관하여 설명했다. 오늘부터 본격적으로 본문내용으로 들어가겠다. 이 책의 전체 목차를 보면 7개의 장으로 이루어져있다, 1,2,3장은 저자 서문에 따르면 과거에는 역사가 어떠했는가, 그러니까 역사라는 학문 영역에 관심을 불러 일으키기 위한 여러가지 이야기들이 들어있다. 그 다음에 4,5장은 구체적으로 들어가서 역사를 탐구하는 방법, 즉 사료를 해석하는 방법에 관한 내용이다. 그 다음에 6,7장은 역사와 진실의 위상과 의미, 역사가 중요한 이유와 같은 내용이 있다. 오늘은 제1장 역사란 무엇인가에 관한 기본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는 부분을 읽어보기로 하겠다.


항상 역사책을 읽으면서도 이런 부분들은 또 읽으면 아 역사란 이런 것이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 만큼 재미있기도 하다. 앞서 세계사 공부의 기초에서도 역사라는게 무엇인가에 대해 물어봤었다. 그냥 옛날 이야기라고 하면 다 역사인 것인가. 그건 아닌 것 같고 그럼 도대체 어떤 것이 역사인가. 저자는 "이것은 진실한 이야기다"라고 하며 1장을 시작한다. 영어로 true story. '진실하다'는 것과 '이야기'를 묶어서 설명하는 것이다. 1장 맨 뒤에 있는 부분을 먼저 당겨서 이야기를 해보면 


30 나는 이 장과 이 책에서 역사에 관해 말하면서 '진실한 이야기(true story)'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이 표현에는 필연적인 긴장이 담겨 있다. 증거와 합치해야 하고 사실에 의존한다는 점에서 역사는 '진실하다'. 그렇지 않으면 '사실'이 잘못된 이유와 '사실'을 고쳐서 사용해야 하는 이유를 밝혀야 한다. 동시에 역사는 '사실'을 더 넓은 맥락이나 서사 속에 배치하는 해석이라는 뜻에서 '이야기'다.


옛날에 실제로 일어났던 일, 즉 사실에 의존 한다는 것. 물론 과거에 일어난 것이니까 진짜인지 검증해보려면 교차·대조를 해보아야 하겠지만 그런 과정을 거쳤다는 것을 전제로 하면 진실하다. 그런데 사실만 가지고 하면 안되고 더 넓은 맥락이나 서사 속에 배치해야만 역사가 되는 것.


"이것은 진실한 이야기다"로 시작하는 제1장을 얘기를 더 자세히 읽어보겠다. 이 얘기를 한 다음에 곧바로 13~14세기에 프랑스 남부지역에서 일어났던 살인사건에 관한 이야기를 저자는 끄집어낸다. 이 사건은 그 당시 프랑스 남부지역에 널리 번성했던 이른바 이단 종파인 카타리파 교도들을 둘러싼 살인사건에 대한 기록이 1308년 종교재판 기록부에 기록되었다는 것이다. 다시말해서 1308년 종교재판 기록부에 당시 살인사건에 관한 기록이 기록되었는데 왜 기록되었는가 하면 13세기 초만해도 프랑스 남부지역에는 카타리파 교도가 수천 명 있었고, 이들이 가톨릭교도보다 훨씬 많았다. 그런데 14세기 초에 이르러 카타리파 교도는 불과 14명만 살아남았고, 대부분 피레네 산맥의 마을들로 숨어들었다. 이런 역사적인 사실이 있었다. 이런 역사적인 판단이 있다. 이런 판단이 가능하게 되는 과정은 이게 얼핏 보기에는 두 문장에 불과하다.


그런데 이런 판단이 가능하려면 수없이 많은 과거의 사실들을 끌어 모아서 뭔가 해석을 해냈을 때 이런 판단이 가능한 것. 그러면 이 판단을 어떻게 만들어냈을까를 한번 추적해보는 것이 저자가 처음에 1장에서 하고 있는 일. 앞서 말한 것처럼 1308년 종교재판 기록부에 살인사건이 기록되었다. 이건 사료로 남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면 이 기록을 놓고 그 다음에 역사를 쓰게 된다. 기록과 역사는 분명히 다르다는 것을 여기서 전제되고 있다. 여기서 용어를 정리하고 들어가보면 옛날이라고 일어난 일인 과거 자체도 역사라고 하고 옛날에 일어났던 일에 대한 이야기도 역사라고 한다. 역사서술은 과거 자체를 놓고 역사가들이 과거에 대해 뭔가 쓰면 역사서술이고, 그러한 역사서술의 최종결과물이 우리가 역사라고 부르는 것. 이 둘 사이에는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 저자도 주장하고 본인도 그렇게 생각한다.


18 언어는 혼란스러울 수 있다. '역사'는 흔히 과거 자체와 역사가들이 과거에 관해 쓰는 것 둘 다를 가리킨다. '역사서술'은 역사를 쓰는 과정을 뜻하기도 하고, 그 과정에 관한 탐구를 뜻하기도 한다. 이 책에서 나는 '역사서술'을 역사를 쓰는 과정이라는 뜻으로, '역사'를 그 과정의 최종 산물이라는 뜻으로 사용한다. 앞으로 보겠지만 이 책은 (내가 말하는) '역사'와 '과거' 사이에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고 주장한다.


즉 과거 자체는 역사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을 서술해서 이야기로 만들어서 서사로 만들어 내야 그게 역사다. 그러면 이 역사에 관한 정리를 놓고 다시 얘기를 해보면 앞서 살인사건에 관한 기록이 종교재판 기록부에 기록되어 사료로 남게되었다고 했다. 이 기록부에 쓰여진 것이니까 엄밀히 말하면 과거 자체는 아니겠지만 어쨌든 역사가의 해석을 기다리는 사료라는 점에서는 아직 역사 서사는 아니다. 그러면 이 기록부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여기서 이제 역사서술이 시작된다. 사료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먼저 마음속에서 '과거는 낯선 나라'라는 것을 고려해야 할 필요가 있다. 


20 작가 L. P. 하틀리(L. P. Hartley)는 "과거는 낯선 나라다. 그곳에서 그들은 다르게 행동한다"라고 말했다. 과학소설 작가 더글러스 애덤스(Douglas Adams)는 반대 경우를 상정해, 과거는 진정 낯선 나라이고 그들은 꼭 우리처럼 행동한다고 말했다.


지금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언어뿐만 아니라 사고방식, 이런 것들이 모두 다 과거와는 다르다는 것을 전제하라는 것이다. 그러면 사료는 먼저 쓰여진 언어가 다르겠다. 이 살인사건은 프랑스 남부지방 사람들이 쓰던 언어가 오크어인데 이 오크어를 쓰는 사람들의 증언을 라틴어로 기록했다. 정확하게 보면 사실 이 종교재판 기록부도 있는 그대로는 아니다. 오크어로 기록한 게 아니라 라틴어로 기록하였으니 있는 그대로의 기록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것을 고려하고 그것을 읽은 다음에 그대로 배끼면 역사가 되는 것인가. 그것은 아니다. 앞서 얘기한 것처럼 카타리파 교도가 13세기에는 많았는데 왜 줄어들었을까 이런 것도 이야기를 해야 하니까 모든 사료에 담긴 이야기를 역사로 서술할 것은 아니므로 필연적으로 취사선택이 일어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취사선택을 하고 골라낸 것이 역사로 남기게 된다. 역사가는 그러면 무엇을 기준을 취사선택 할 것인가가 문제가 된다. 다시 말해서 역사가들이 진실한 이야기를 선택할 때 의존하는 근거는 오랫동안 변화왔다는 것.


22 역사가는 과거의 모든 이야기가 아니라 일부만 말할 수 있다. 사료에는 구멍이 있고(다블리의 기록부 중 일부는 소실되었다), 잔존하는 증거가 없는 영역도 있다. 증거가 있어도,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보다 말해질 수 있는 것들이 훨씬 많다. 역사가들은 말할 수 있거나 말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불가피하게 결정한다. 그러므로 '역사'(역사가들이 과거에 관해 말하는 진실한 이야기들)는 우리의 주의를 붙잡고 우리가 현대의 사람들에게 되풀이해 말하기로 결정한 것들로만 이루어진다. 뒤에서 보겠지만, 역사가들이 진실한 이야기를 선택할 때 의존하는 근거는 오랫동안 변해왔다.


취사선택해서 뭔가를 서술한다 하면 세계사 공부의 기초에서도 얘기한 것처럼 무엇을 목적으로 서술할 것인가에 달려있다. 살인사건 그 자체만을 있는 그대로 서술할 수도 있겠지만 이것을 해석하면 다른 역사서술도 가능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이야기를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더 큰 맥락을 우선 찾아야겠고, 그렇게 되면 일어난 사건만이 아니라 그 사건의 의미를 말하려는 시도가 역사가 되겠다. 저자는 가능한 역사서술을 나열하고 있는데 우선 종교재판과 이단에 관한 것을 쓸 수도 있고, 종교재판 기록부에 발견된 사료니까 종교재판에 관한 더 넓은 역사로 연결지을 수도 있겠고, 종교재판 절차를 다루는 역사도 쓸 수 있겠고, 살인사건이니까 범죄의 역사에 넣을 수도 있겠다. 어떻게 나누느냐는 굉장히 중요한데 이것은 비교를 뭐로 하느냐의 문제이다. 그리고 그 사건이 벌어진 랑그도크라고 하는 프랑스 남부지역, 그러니까 랑그도크 역사에 넣을 수도 있겠다, 또는 당시 종교라는 것이 가톨릭 교도가 되었건 카타리파 교도가 되었건 간에 그냥 단순히 종교문제가 아니라 정치와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프랑스 정치사라고 하는 더 넓은 범위에 집어넣어 쓸 수도 있다.


이렇게 지금 역사란 무엇인가에 대한 대답이 '진실한 이야기다' 그러면 우리 앞에 진실한 것으로 판명된 사료가 있다고 해보겠다. 물론 문헌검토와 사료검토를 거쳐서 진실한 것으로 판명되었다는 것을 전제하자. 그러면 그것만 그대로 가져다가 놓으면 사료집이 된다. 그런데 그 사료는 역사가가 해석을 할 때는 무엇을 기준으로 사료를 해석할 것인가가 전제가 되야 한다. 역사가가 해석을 해서 그것을 어떤 큰 맥락 속에서 집어넣어서 의미를 밝혀내고 그렇게 해서 역사로 만드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지금 우리가 읽고 있는 역사책들이 사료의 묶음은 아니다.


사실 사료가 모든 것을 온전하게 모든 것을 말해주지는 않는다. 그러니까 역사가들은 거기에다가 사료를 놓고 추측도 하고,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이해하려 하고, 그것을 통해 서사를 만들어내려고 한다. 심지어 그 과정에서 일정한 상상력도 동원할 것이다. 그러니 사료가 온전하게 모든 것을 말해주지는 않는다. 역사가가 그 사료를 해석해서 구성한 서사라고 해서 완전한 진실도 아니다. 어중간한 것에 들어있다. 역사는 어중간한 진실. 그러니까 역사 해석이 계속 바뀌고 논쟁도 벌이고 그러는 것. 역사라는 학문은 본질적인 성격을 살펴보면 국정교과서 같은 것은 어이없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28 그러나 더 넓게 보면 역사가들은 언제나 '틀린다'. 우리가 틀리는 이유는 우선 결코 완전히 맞을 수 없기 때문이다. 모든 역사적 서술에는 빈틈과 문제, 모순, 불확실한 부분이 있다. 우리가 '틀리는' 다른 이유는 설 언제나 동의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틀릴' 필요가 있다. 그렇지만 역사가들은 틀리면서도 언제나 '맞으려' 시도한다.


진실한 이야기라고 말하는 것인데 우선 어떤 점에서 진실인가. 무엇보다도 증거와 합치해야 하고 사실에 의존한다는 점에서 역사는 진실하다. 동시에 역사는 그러한 사실들을 더 넓은 맥락이나 서사 속에 배치하는 해석이라는 뜻에서는 이야기다. 


과거 자체는 서사가 아니고, 그냥 늘어놓아진 사실일뿐이다. 그런데 그것에 패턴과 의미를 부여해야 서사와 의미가 되고, 서사가 만들어졌을 때 비로소 역사가 만들어졌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면 서사라는 것은 무엇이고 이야기는 무엇인가. 사전 같은 것을 찾아보면 서사와 이야기가 같은 뜻으로 쓰인다. 요즘 스토리텔링을 한다 라고 하면 그게 뭐냐. 이야기가 있다. 이를테면 ‘니 인생의 이야기를 해봐’ 이럴 때. 곧 이런 얘기는 구조화를 해야 한다는 것. 어느 부분이 내 인생에서 슈프림모멘트인가를 따져서 그것을 기준으로 나누고, 그렇게 나눈 것을 가지고 구조를 짜야 한다. 그랬을 때 우리는 좁은 의미의 이야기, 서사, 내러티브라고 한다. 그런 내러티브가 있는 것과 그저 이야기하고는 구별할 필요가 있다. 스토리텔링을 한다 하면 무엇보다도 먼저 목적이 무엇인지 분명해야 하고, 그 목적에 부합하는 사건들을 추려내서 그 사건들을 재구성하고, 수사학적인 기법을 이용하여 전달해야만 서사가 된다는 말이다. 그것이 잘되어야 스토리텔링이 잘되었다고 말하는데 역사라고 하는 것이 바로 그러한 것을 하는 과정에 놓여있다고 말할 수 있겠다.


살인사건을 가지고 저자가 다양한 종류의 이야기를 쓸 수 있다고 말했다. 종교와 이단, 범죄의 역사, 프랑스 정치사, 살인 사건 자체의 세부적인 역사 등을 쓸 수 있다고 말했는데, 이게 바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 사료를 놓고 머릿속에서 얼마나 많은 것들을 쓸 수 있는가 이걸 궁리 해내는 능력. 이게 바로 역사가가 가지고 있는 능력이겠다. 그리고 그런 능력을 잘 발휘하는 게 훌륭한 역사가이고, 이런 것을 일반적으로 기획한다고 하는데, 기획이라고 하는 것은 많은 사료가 있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비교하는 능력, 추론하는 능력에서 만들어지는 것. 추론이라는 것도 수리연산에 관한 추론도 있지만 어중간하고 모호한 영역에 들어있는 것들을 끄집어다가 추론하는 것이야말로 상당히 본래적인 의미에서의 인문학적 교양 능력이라 하겠다. 그런 점에서 역사는 인문학 공부의 기초훈련을 닦는 게 아주 좋은 영역이라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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