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슈미트: 땅과 바다


땅과 바다 - 10점
칼 슈미트 지음, 김남시 옮김/꾸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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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133

옮긴이의 말 _『땅과 바다』에 대한 몇 가지 추언 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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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도입부: 1-2

[2] 핵심테제, 기본원리: 3

[3] 땅의 힘과 바다의 힘의 투쟁에 관한 역사적 사실들: 4-9(9에서는 영국에 의해 성취된 공간혁명)

[4] 공간혁명의 문화적·법적 의미: 10-19

[5] 에필로그: 새로운 공간으로서의 하늘, 향후 전망: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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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인간은 땅의 존재, 땅을 밝고 있는 존재다. 인간은 견고하게 정초된 대지 위에 서서 걸어가고 움직이지. 그 대지가 그가 서 있는 곳이자 그의 토대이다. 


8 대지(흙), 물, 불, 공기라는 전승된 4원소론에서 대지(흙)가 인간에 상응하고 인간을 가장 크게 규정하는 원소인 것도 이 때문이야.


9 해변에 가서 주위를 둘러보기만 해도 압도적인 넓이의 바다가 너의 시선의 지평을 둘러싸고 있는 걸 보게 될 거야. 해변가에 서 있는 인간이, 당연한 말이지만, 땅에서부터 바다를 바라보지, 바다에서 땅을 바라보지 않는다는 사실은 생각해보면 놀라운 일이지 않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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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인간이 전적으로 그가 사는 환경에 의해 남김없이 규정되는 생명체라면, 인간은 육지동물이거나 물고기, 새, 아니면 이 원소적 규정들의 상상적 혼합물에 불과하겠지. 그렇게 되면 4원소들의 순수한 유형들, 특히 순수한 대지인간과 순수한 바다인간들은 서로 연관 없이 아무 관계도 맺지 않은 채 대립적인 것으로 이해되고, 그들이 순수할수록 이 무관계성은 더 강해지게될 거야. 


15 인간은 전적으로 환경으로 환원되지 않는 존재란다. 인간은 존재와 의식을 역사적으로 점령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지. 


15 인간에게는 권력과 역사적 힘Geschichtsmachtigkeit의 작동공간Spielraum이 존재하기 때문이야. 인간은 선택할 수 있고, 어떤 역사적 순간에는 심지어 원소를 선택할 수도 있는데, 스스로의 행위와 능력을 통해 자신의 새로운 역사적 실존의 전체형태로서의 그 원소를 향해 결단하고 그 원소로 조직하기도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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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세계사는 땅의 힘에 대한 대양의 힘의 투쟁, 대양의 힘에 대한 땅의 힘의 투쟁의 역사란다.


17 중세 시절 카발리스트들의 해석에 따르면, 세계사는 리바이어던이라 불리는 힘센 고래와 그만큼이나 강한 땅의 동물로 코끼리 아니면 황소로 상상되던 베헤모스 사이의 투쟁이라는 구나.


20 아테네가 살라미스 해전(기원전 480년)에서 그들의 적 "전능한 페르시아인"을 나무 장벽 뒤에서, 다시 말해 배 위에서 막아내었지. 아테네의 생존은 해전의 결과에 빚진 거야. 한편 펠로폰네소스전쟁을 통해 그리스인들의 권력은 땅의 권력 스파르타에게 굴복하지만, 스파르타는 그리스의 도시와 부족들을 통합해 그리스 제국을 이끌 능력이 없었어.


20 이탈리아의 농부공화국 태생으로 순수한 땅의 권력이던 로마는, 무역과 대양 권력이던 카르타고에 대한 투쟁을 거치며 제국으로 자라나게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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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베네치아는 지중해의 다른 나라들처럼 갤리라 불리는 노 젓는 배만 보유하고 있었어. 거대한 장거리 범선은 나중에 대서양에서 지중해로 전해진 거야. 그러니까 베네치아 함대는 기본적으로 노의 힘으로 움직이는 갤리함대였던 거지.


30 다만 한 민족이 자신의 역사적 실존 전체를 다른 원소가 아닌 바다를 향해 결단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분명히 해야겠지.


32 레판토해전은 전반적으로 1500년 전 악티움에서 이용했던 것과 동일한 조선기술 수단을 가지고 이루어졌어. 스페인의 유명한 최정예 보병부대인 테르시오와 오스만 제국의 친위부대 예니체리가 갑판 위에서 맞섰던 근접전이었던 거야.


32 레판토해전이 있은 지 불과 몇 년 뒤인 1588년에, 영국과 대륙 사이에 영국해협에서의 스페인 아르마다함대의 패배는 해양 전쟁 전술의 전환점을 알렸지. 영국의 작은 범선이 스페인의 육중한 국가 함대보다 월등하다는 것이 입증됐기 때문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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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허먼 멜빌은 『모비딕』에서 이 싸움의 과정에서 사냥꾼과 사냥감 사이에 거의 "개인적 관계"라고 까지 말할 수 있는 미묘한 적대와 동지적 결합이 어떻게 맺어지는지 묘사하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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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16세기에는 새로운 군함이 등장, 해전에서 또 다른 단계가 시작돼. 포를 장착한 범선이 측면에 화포를 설치해 적을 향해 측면에서 포탄을 퍼붓는 거지.


46 처음으로 제대로 된 해전이라 말할 수 있는 것이 등장하게 된 셈이야. 이와 더불어 새롭고 복잡한 해전 및 대양교전 전술이, 곧 해상 교전이 이루어지기 전과 교전 중, 그리고 교전 후에 필요한 고도로 "진화한" 기술이 등장해.


48 사략선 | 사략선은 국가로부터 특허장을 받아 개인이 무장시킨 선박을 뜻한다. 근대 초기 유럽 국가들은 상비 해군력을 보충하기 위해 사략선에 교전자격을 부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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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여기서 우리는 또 다른 무모한 유형의 "대양의 자식들"을 다룰 거야. 그 중에서도 유명한 이름들, 즉 프랭크 드레이크, 호킨스, 윌터 롤리 경, 헨리 모건 경처럼 여러 책에서 바다와 해적에 관한 전설에 등장하는 영웅들 말이야.


51 대담한 대양 약탈자들이 역사적 명성을 얻게 된 이유는 이들이 스페인의 세계 권력과 무역 독점에 첫 번째 타격을 가했기 때문이야.


51 제고이젠 | 네덜란드 독립전쟁 당시 스페인의 압정에 반항한 네덜란드 프로테스탄트교도 및 그들의 동맹.


52 이들의 영웅적 시기는 1550년경에서 1713년까지 약 150년간 지속되는데, 이 시기는 가톨릭 세계 권력 스페인에 맞선 프로테스탄트 권력의 투쟁부터 시작해서 위트레흐트 조약까지에 해당돼.


52 위트레흐트 조약 | 에스파냐 왕위 계승 전쟁의 결과 1713년에 체결된 평화조약


53 1713년 위트레흐트조약에 이르러 이들의 시대가 막을 내리는데, 당시 유럽의 국가 체계가 이때 공고화되기 때문이야.


53 바다 원소에 기초한 영국의 새로운 세계 지배가 처음으로 가시화되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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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모든 바다에서 영국의 사략선원들과 해적들이 약탈한 전설적인 노획물들이 영국의 섬으로 쏟아져 들어왔어.


64 중세 말 무렵, 사자의 새끼들은 대부분 양을 쳤고 거기서 나온 양털은 플랑드르 지방에서 직물로 가공되었다. 16,17세기에 이 양치기 민족은 사략선의 대양 주름잡이 민족, "대양의 자식들"로 변신하게 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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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 결국 다른 이들을 다 따라잡아서 모든 경쟁자들을 격파하고 해양 지배 위에 기초한 세계의 패권을 확보한 건 영국인들이었어.


67 어느 날 땅에 대한 영국의 대양 지배가 되어버린 것이지.


67 1655년 크롬웰의 군대가 자메이카를 점령하고 지켜냈을 때, 영국의 세계 해양에 대한 전반적인 정책과 스페인에 대한 해외에서의 승리가 암묵적으로 확인되고 있었던 거야.


67 1689년, 그들의 총독인 오라녜 공 월리엄 3세는 동시에 영국의 왕이 되었지.


67 프랑스가 1572년 바르톨로메오 축일의 학살과 하인리히 4세의 가톨릭 개종과 더불어 위그노에 반대하고 가톨릭을 선택했을 때, 최종적으로 바다에 반대하고 땅을 향해 결단을 내렸던 거야.


67 바르톨로메오 축일의 학살 | 기독교 역사상 1572년 8월 24일부터 10월까지 있었던 로마 가톨릭교회 추종자에 의한 개신교 신도들을 학살한 사건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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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같은 시대 속에서도 일상적 삶의 실천들을 위한 각자의 환경세계는 이미 그들의 다양한 직업에 따라 서로 다르게 규정되지.


72 모든 중요한 역사적 변화는 대개의 경우 새로운 공간 인식을 의미해. 정치, 경제, 문화의 지구적 변화의 진정한 핵심이 그 안에 놓여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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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 알렉산더 대제의 정복 과정에서 그리스인들에게는 강대하고 새로운 공간의 지평이 열렸어. 헬리니즘 문화와 예술이 그 결과지.


74 3백년 후 카이사르가 갈리아와 영국을 정복하기 위해 로마를 떠났을 때 사람들의 눈은 비로소 북서쪽을 향해 열리고 대서양에 가까이 다다르게 되지. 이것이 오늘날 "유럽"이라 불리는 공간의 실재를 향한 첫번째 발걸음이었어.


74 게르마니아 | 유럽 중부, 도나우 강의 북쪽, 라인 강 동쪽에서 비슬라 강까지의 지역으로서, 로마인에게 정복되지 않은 게르만인 거주지를 가리킨다.


75 아그리파의 세계지도와 스트라본의 지리학이 이러한 공간 확장의 증거인 셈이야.


77 세네카가 사용한 "새로운 세계novus orvis"라는 표현이 1492년 발견된 아메리카 대륙에 곧바로 적용되었던 것도 이 때문이야. 


77 바다로부터의 후퇴, 함대의 부재, 영토 구획은 초기 중세 시대와 봉건체제의 특징이었어.


78 순전히 육지적이고 대지경제적인 땅권력복합체에서처럼 그렇게 오랫동안 읽지도 쓰지도 못한 채 살아남지는 못했을 거야.


78 공간 확장은 동시에 심대한 문화적 전화이기도 헀어. 유럽 곳곳에서 새로운 정치적 형태가 모습을 드러내지.


78 새롭게 신학과와 법학과를 갖춘 대학들이 전례 없이 설립되고, 로마법의 재발견은 새로운 교양 계층인 법률가의 형성을 주도했으며, 중세 봉건제의 전형이었던 교회성직자들의 교육 독점에 종지부를 찍었지.


79 고대의 사원이나 뒤이어 따라올 르네상스 시대의 건축물들과 달리 고딕 양식의 예술은 공간을 변화시키는 고유한 힘과 운동을 표현하고 있는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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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 고대와 중세의 전통적인 개념을 일소해버렸고 인간의 전반적인 의식과 우리의 행성에 대한 이미지뿐만 아니라 우주에 대한 천문학적인 표상도 바꿔버렸지. 역사상 처음으로 인간이 실제 지구를 마치 공처럼 손에 넣을 수 있게 된 거야.


81 그 공간변화에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은 우주로의 확장, 그리고 끝없이 비어있는 공간에 대한 표상이었어.


83 그 이전에 일부 철학자들이 "비어있음Leere"에 대해 이야기한 바는 있어도, 비어있는 공간을 떠올린다는 건 있을 수 없었던 일이란다. 이전에 사람들은 비어있음에 대한 공포, 소위 '호로 바쿠이horror vacui"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야.


84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메리카는 그 이전이 아니라 1492년 콜럼버스에 의해 "발견"되었다고 인정받고 있어. "콜럼버스 이전"의 발견은 전 지구적 공간혁명을 야기하지도 않았고, 그 혁명의 과정 중에 있지도 않았기 때문이야.


85 르네상스 회화는 중세 고딕 예술의 공간을 없애버렸지. 그때부터 화가들은 사람들과 사물들을 원근법적으로 텅 빈 깊이를 지닌 공간에 배치했어.


86 르네상스 시대의 조각은 인간 모양의 입상들을 공간 속에 자유롭게 세워놓는데, 이는 중세의 조각상들이 기둥과 벽에 "묶여" 있던 것과는 다른 모습이야.


86 르네상스, 인문주의 종교개혁, 반종교개혁과 바로크는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이 공간혁명의 총체성에 기여했던 거야.


87 중세적인 인간 공동체를 파괴했으며 새로운 국가, 함대, 군대를 구축하고 새로운 기계들을 발명해냈으며 비유럽 민족들로 하여금 명령을 따르도록 만들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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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 진정한 본래적인 근본 질서는 그 본질에 있어 특정한 공간적 경계와 구획 Abgrenzungen, 특정한 척도와 땅Erde의 특정한 분배를 전제로 한단다.

91 18세기와 19세기에 오면 기독교 선교라는 명은, 아직 문명화되지 않은 민족들에게 유럽 문명을 전파한다는 명으로 바뀌게 되지. 바로 이러한 정당화 Rechtfertigungen로부터 기독교-유럽적 국제법[대륙법] Volkerrecht, 다시 말해 나머지 세계와는 다른 유럽 기독교 민족들의 공동체 Gemeinschaft의 법이 생겨나게 돼.

93 기독교-유럽의 국제법[대륙법], 그 근본 질서의 의미와 핵심은 바로 새로 발견된 땅의 분배에 있었어. 유럽 민족들은 그다지 면밀한 고민 없이 지구상에 있는 비유럽인의 땅들을 식민지 땅으로, 다시 말해 점령과 약탈의 대상으로 바라본다는 점에서는 완전히 의견을 같이 하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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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 1493년, 그러니까 아메리카가 발견되고 채 1년이 되지 않았을 때 스페인인들은 당시 교황이었던 알렉산더 6세로 하여금 칙령 Edikt을 내리게 했지. 그

96 그 칙령에는 아조레스 Azoren 제도와 카보베르데 Cape Verde로부터 서쪽 100마일에 대서양을 관통하는 선이 규정되어 있었지. 이 선 서쪽에서 발견되는 모든 땅은 교황의 봉토로 스페인이 받도록 되어 있었어. 몇 년 후 토르데시야스 Tordesillas에서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그 선 동쪽에서 발견되는 모든 땅들은 포르투갈이 갖는다는 조약을 맺었지.

96 1493년에 교황이 마련한 분할선이 새로운 근본 질서, 새로운 세계의 노모스를 향한 싸움의 시작이 된 셈이지.

96 새로운 땅의 소유권을 둘러싼 싸움은 종교개혁과 반종교개혁, 스페인의 세계 가톨릭주의와 위그노, 네덜란드, 영국인들의 세계 프로테스탄티즘 사이의 싸움이 되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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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예수회와 칼비니즘의 대립이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독일의 내적 문제들은 떨어져 나간 거야. 그때부터는 동지와 적의 구분이 세계 정치의 축 역할을 하게 되었어.

101 칼빈파에 대한 루터파의 증오는 교황주의자에 대한 증오에 못지 않았지만, 가톨릭파가 칼빈파에 대해 갖는 증오 역시 만만치 않았어.

102 모든 비-칼빈파가 칼빈주의 신앙에 경악했는데, 인간이 영원 가운데에서 선택되었다는 강한 믿음, 즉 "예정론 Pradestination" 때문이었어. 현세적으로 말해 예정론의 교리란, 자기 자신 말고 다른 사람들은 몰락하도록 저주받은 타락한 세계의 일원이라는 의식을 극단적으로 고양시킨 것에 다름 아니야. 

102 간단히 말해, 그것은 구원받았다는 확실성으로, 이때 구원이란 모든 개념에 대항해 결단하는 세계 역사 전체의 의미 gegen jeden Begriff entscheidende Sinn aller Weltgeschichte를 갖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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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 영국의 대양 취득은 바다의 측면에서 이 세기에 이루어진 유럽 전체의 약진 Aufbruch의 결과야. 그를 통해 첫 번 째 전 지구적 공간질서의 근본 노선이 결정되었는데, 그 본질은 땅과 바다를 분리하는 데 있어.

106 육지는 20여 개의 주권 국가에 귀속하게 되었어. 반면, 바다는 누구에게도 속하지 않거나 모두의 것으로 여겨졌는데, 실제로는 결국 단 한 국가에 속했지. 바로 영국이야.

106 육지의 질서는 그 땅이 각 국가의 영토로 나누어져 있다는 사실에서 생겨나. 그에 반해 공해 hohe See는 자유로워. 다시 말해 국가로부터 자유롭고, 어떤 국가의 영토 주권 Gebietshoneit에도 종속되어 있지 않지. 이것이 공간과 결부된 raumhaft 근본 사실이고, 그로부터 지난 3백 년 동안의 기독교-유럽의 국제법이 발전되어 나왔어. 이것이 이 시대의 근본법칙이었고, 땅의 노모스였어.

107 유럽 대륙의 국가들은 16세기 이래 육지전의 특정한 형태들을 생각해 냈는데, 그 근저에는 전쟁이란 한 국가의 다른 국가에 대한 관계라는 생각이 깔려 있었어. 전쟁의 쌍방에게는 국가가 조직한 군사력이 있고, 군대는 열린 전장에 서 서로 대치하며 격돌하지. 전장에 있는 군대만이 적대에 참여할 수 있어. 비-전투원인 민간인들은 싸움에 관여하지 않고 적대의 바깥에 남아 있는 거야.

107 그에 반해 해전에서는 적의 무역과 경제도 적으로서 다룰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바탕에 깔려 있어. 따라서 적은 더 이상 무장을 하고 있는 상대뿐 아니라 적국의 모든 거주민들, 나아가 그 적과 무역을 하고 경제적 관계를 맺고 있는 중립국들 모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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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 리바이어던의 본질을 건드린 전화는 바로 산업혁명의 결과로 생겨난 것이었어.

119 위대한 대양 권력이 동시에 위대한 기계권력이 된 거지.

120 산업혁명은 바다의 원소에서 태어난 대양의 자식들을 이렇게 기계 제작자와 기계 조작자로 변신시켰어.

20
127 여기에 비행기가 등장하자 땅과 바다에 이어 세 번째 새로운 차원이 점령되었지.

130 당연하게도, 낡은 노모스는 떨어져 나가고 그와 더불어 모든 전승된 척도, 규범과 관계들의 체계 전체도 사라질 거야.

130 낡은 힘과 새로운 힘들이 가장 격렬한 씨름을 벌이는 곳으로부터 정당한 grerchte 척도가 생겨나고 의미심장한 새로운 비율 Proportionen이 형성되기 마련이니까.


후기
"가족의 삶의 원리에 땅, 곧, 견고한 토대 Grund와 경작지 Boden가 그 조건이라면, 산업에는 그를 외부를 향해 부흥하게 하는 원소인 바다가 그 조건이다."
_헤겔, 『법철학 요강』, 247절

눈 밝은 독자라면 나의 상술 속에서, 243-246절이 맑스주의에 와서 전개되었던 것과 유사한 방식으로 위 247절을 전개시키려던 시도의 단초를 발견할 것이다.
1981년 4월 10일 칼 슈미트

* 이 책의 초판은 1942년 라이프치히에서, 2판은 1954년 슈투트가르트에서 출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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